이 경이로운 2+2 스포츠카는 단순히 전기차 컨셉트가 아니다. 세아트와 공급업체들의 중대한 협동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나아가 스페인 자동차업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 게오르크 카허가 IB E의 배후 주역들과 만났다
파이프의 꿈 배기관이 없고 알루미늄 아가미가 대신 자리잡았다. 겨울 한철 달린 뒤 이 아가미를 소하려면? 번호판에는 탄생지가 적혀있다. 제네바 2010
깔끔한 플러그인 처리 세아트 배지는 초록으로 빛나고, 충전 포인트의 역할도 한다. LED 램프는 ‘V자 모티브’를 살렸다(시트로앵의 갈매기 배지를 들먹이지 말라)
재발명은 아니고 둥근 형태는 유지했지만 기계로 처리한 5스포크 합금 휠은 주문형. 거기에 구름저항을 낮춘 피렐리 타이어를 신겼다
매크로 칩?이것이 회로 기판의 일부라면 실로 거대한 컴퓨터가 될 수밖에 없다. 기술과 디자인의 강력한 메시지다
절묘한 합작품완전 전기차. 사프트가 배터리를, 악티아가 AC/DC 컨버터를, 그리고 부르사가 충전기를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의 협력업체들이다
장인의 솜씨 아무리 살펴봐도 패널의 틈은 없다. 복합소재 패널이 LED 보석과 빈틈없이 만났다. 한데 양산 버전은 수제품이 아니다
스페인이 세아트를 앞세워 전기차 분야의 선두대열을 겨냥하고 있다. 놀라워라. 세아트의 마르토렐 비밀작업장의 컨셉트카 총책 산티 카스텔라 다가는 여기 보이는 차 IB E를 소개하면서 열변을 토했다. 멍청하고 아리송한 이름(E는 전기/electric, IB는 이베리아/Iberia를 가리킨다)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감동을 준다. 급진적인 스타일과 놀랍게 균형을 잡은 이 차는 폭스바겐그룹 최하위 브랜드의 가장 앞에 나섰다.
이 맛깔스런 피부 아래 차세대 레온과 플러그인 휘발유/전기 파워트레인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가까운 장래에 트윈 드라이브 이코모티브 세아트 모델들에 실릴 파워트레인. 하지만 그 구조보다 더 뜻깊은 것이 그 의도다. 지금 눈앞에 놓인 차는 중대한 협동 프로젝트의 산물. 시스템 공급업체들과 학술연구기관들이 손을 잡았다. 게다가 IB E는 그 시작에 불과하다. 다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이니시아티베 세니트 베르데(ICV)로 알려진 이 프로젝트는 상당히 다각적이다. 16개의 대표적 시스템 공급업체와 16개의 서로 다른 대학과 연구기관의 지원을 받는다. 이 컨셉트카는 우리의 이코모티브 라인업과 다가오는 트윈 드라이브 이코모티브 모델들을 서로 보완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따라서 앞으로 친환경 E를 한층 자주 보게 된다. 우리 하이브리드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연결된 전기모터와 재래식 엔진을 짝짓는다. 무배기에 주행반경은 약 100km. 2014년 시판 예정이다.”
완전 전기 IB E 스타일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디자이너가 다름아닌 루크 동케르볼커. 람보르기니―디아블로 VT, 무르시엘라고와 가야르도를 빚어낸 촉망받는 주인공이다. 그 뒤 람보에서 세아트에 이르기까지 폭스바겐 제국을 두루 거쳐 2005년 세아트에 안착했다. 당시에는 그 자리바꿈의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지금 와 보면 빈틈없이 들어맞는 인사였다. 마침내 그의 비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IB E는 기술과 디자인의 강력한 메시지다.” 그의 최신 창작품 곁에서 내게 한 말이다. 그의 열의가 피부에 와 닿았다. “앞으로 나올 모델에 다양하게 표현될 세아트의 미래형 유전자를 모아 담고 있다. 그 유전자의 정수는 드높은 운전재미와 친환경성을 독특하게 버무렸다. 이런 맥락에서 그린은 아주 매력적인 컬러다.”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바로 이 차를 보라.
지난 3월 초 제네바모터쇼에서 베일을 벗자 백색 메탈페인트의 IB E가 홀연히 나타나 경탄을 자아냈다. 놀랍도록 콤팩트한 패키지. 길이는 겨우 3,780mm. 유전적으로 한결 작은 이비자보다 250mm나 짧다. 높이는 겨우 1,250mm로 현행 레온보다 200mm 낮다. 덩치가 작을 뿐 아니라 매우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다. 2+2 왜건에 오버행이 거의 없고, 본격적인 스포츠카 형태.
거기다 상상력을 조금만 보태면 알파 브레라적 옆모습 뒤에 루머 속의 3도어 레온 쿠페(2011년 예정)가 보인다. 아울러 차세대 세아트의 참신한 언어를 가리키는 수많은 실마리가 드러난다. 훨씬 성숙하고, 재설계한 그릴(주둥이가 타원형이 아니고 직사각형에 더 넓다), 트레이드마크인 옆구리 상하 스트리크(전과는 달리 서로 각도가 다르지 않고 거의 평행으로 달린다), 한층 진보적인 범퍼(스플리터, 디퓨저와 수평 스커트를 갖춘), 더 넓은 트레드와 대구경 5스포크 19인치 휠이 받쳐주는 보다 공격적인 자세가 돋보인다.
앞바퀴를 굴리는 전기모터는 크기가 여성용 핸드백만 하다. 덕분에 뒷바퀴굴림차 만큼이나 노즈가 매우 짧고 낮다. 전기모터는 휘발유나 디젤 엔진보다 냉각하는데 에너지가 훨씬 적게 든다. 따라서 상부 공기흡입구는 기능이 없는 장식에 불과하다. 한편 뒤에서 조명을 받는 세아트 로고는 충전 포인트의 역할도 겸한다. 아래쪽 공기흡입구의 가로줄은 프린트 기판을 모방했다. 브레이크 디스크의 열을 식히기 위해 선택한 무늬이기도 하다.
차체에서 V자 모티브가 단일 디자인 요소로는 가장 눈에 띈다. 이들은 전체적인 인상, 보닛, 헤드램프 및 테일램프와 차체의 기본적인 4개 수평선을 잘 마무리하고 있다. 여기서 시트로앵의 갈매기 로고를 얼핏 떠올릴지 모른다. 한데 나는 디자인 총책 동케르볼커에게 굳이 그 점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밖에 상징적인 유전인자로 길고 우아한 루프라인과 어우러진 윗스포일러 겸 디퓨저, 날씬하고 낮게 다잡은 그린하우스, 아껴 쓴 흑광택 트림, 조각된 휠하우스와 근육질 엉덩이를 들 수 있다. 수많은 컨셉트카와는 달리 이 차는 담백하고 실용적이다. 실속 있고 허세가 적은, 그래서 거의 장식을 하지 않은 가구와 같은 인상을 준다.
동케르볼커팀은 몇 가지 개성 있는 눈요기를 추가했다. 가령 LED 헤드램프와 테일 램프, 기하학적인 도어 미러, 기계로 다듬은 휠, 보디와 평면을 이룬 금속 도어 손잡이, 배기관 대신 들어앉은 알루미늄 아가미 5 팩, 위로 기울어져 올라간 앞윙의 높은 에지와 선팅한 실내가 그런 보기. 테일게이트가 없는 것이 독특한데 작은 트렁크에 짐을 넣으려면 위쪽에 힌지가 달린 뒷창을 통한다. 필요할 때는 튀어올라간다.
“IB E는 중요한 사실을 입증했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깨끗한 공기를 강조한다고 무뚝뚝하고 따분한 차가 되라는 법은 없다.” 동케르볼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CO₂반대세력뿐만 아니라 예리한 드라이버를 만족시켜야 한다. 잘 생긴 집앞의 보석이다. 긴 도어와 상당히 높은 루프라인이 어우러진 왜건형 컨셉트. 따라서 4명이 타고 멋지게 단거리 여행을 할 수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뒷좌석 뒤에 자리잡아 연료탱크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그럼에도 트렁크는 레저 장비와 주말용 짐을 넣기에 충분하다.”
최고 30초 동안 전기모터는 최대출력 102마력과 최대토크 20.4kg·m에 도달한다. 정상 출력은 68마력. 교통의 흐름을 타기에는 넉넉하다. 최대한 충전하고 액셀을 끝까지 밟으면 무게 1,000kg의 IB E는 0→시속 100km 가속에 9.4초가 걸린다. 배터리 수명을 고려하여 최고시속을 160km에 묶었다.
“노련한 운전자라면 주행반경은 130km를 넘는다. 심지어 형편없는 무쇠발이라도 1회 충전에 95km를 넘길 수 있다. 고압전류가 아니면 1회 충전에 6~7시간이 걸린다. 전기 생산에 따른 CO₂배출량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결국 크게 보아 어디서 발전되느냐에 따라 숫자는 달라진다. 바람이 부는 날 스페인에서는(풍력발전기 덕분에) 쉽게 40g/km를 밑돈다. 한편 두바이에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재생가능 태양 에너지가 CO₂배출량 0g/km를 보장한다.” 산티 카스텔라 다가의 주장이다.
뒤에 실린 니켈/코발트/알루미늄/리튬이온 배터리는 저온 수랭식 회로와 복잡한 E 매니지먼트 박스를 합쳐 거의 300kg에 이른다. 제2차 고온 냉각회로는 전기모터와 이른바 파워 전자장비를 식힌다. 후자는 전기모터의 회전속도와 함께 차속에 따라 달라진다. 전기모터의 레드라인은 8,000rpm. 무클러치 직결 1단 방식은 출발 때 상당한 힘을 내지만 시속 120km를 넘어가면 비교적 무기력하다. 하지만 줄잡아 6개월 뒤 내가 직접 스티어링을 잡아보기 전에는 뭐라고 단정할 수 없다.
지금 당장은 IB E의 사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세아트 디자인에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라는 동케르볼커의 말에 “대체 추진력을 해결하려는 우리 의지를 밑받침한다”고 다가가 거들었다. 둘 다 새로운 세아트를 지지하는 열렬한 전도사. 하지만 어느 누구도 구체적인 숫자를 들먹이지 않았다. 예정 생산량도, 조립공장이나 소매가 또는 폭스바겐 브랜드 패밀리 안팎의 제휴가능성도 밝히지 않았다. 이 시점에 IB E는 복합소재 보디 패널을 입은 단 한 대일 뿐이다. 잠정적이지만 아주 전망이 밝은 실내를 갖추고, 레온에서 다양한 기계 부품을 가져왔다. 기존 서스펜션, 전기 진공펌프가 달린 개량형 브레이크와 에너지 재생 모드, 손질한 전동 스티어링에 완전신형 전기 및 전자장비를 추가했다.
세아트는 이 차를 눈요깃거리에서 테슬라 로드스터의 경제적인 대항마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다. 또 친환경에 관심 있는 부유한 고객들의 노리개를 만들 수도 있다. 한데 세아트가 과연 그처럼 돌파력 있는 컨셉트에 알맞은 브랜드인가? IB E를 양산하는 비용은 최소한 1억유로(약 1,520억원). 따라서 아우디가 플러그인 레온을 가져와 차세대 E트론 프로젝트에 넣는 것이 그보다 낫다. 혹은 폭스바겐이 IB E 핵심기술을 새로운 소형 패밀리카에 돌려 쓸 수도 있다. 아니면 세아트-스즈키가 생존가능한 지름길을 찾을 수도 있다.
“제네바모터쇼에서는 이야기의 절반밖에 하지 않았다. 오는 가을 파리에서는 실내를 완전히 갖춘 러닝 프로토타입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때 진정한 테스트가 이뤄진다.” 동케르볼커의 말. 실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동케르볼커는 우리가 실내를 촬영하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디자인만은 미니멀리스트적인 겉모습과 다름없이 센세이셔널했다. 우리가 보기에 완성된 IB E는 날씬한 4개의 레이싱 버킷시트와 일체화된 헤드레스트 그리고 안전벨트를 갖춘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넉넉하지만, 뒷줄의 머리와 다리공간은 넉넉할 리 없다. 뒤로 들락거리려면 요가의 기초 지식은 알고 있어야 한다.
멋진 디테일에는 가죽을 씌운 4차원적 다기능 스티어링 휠, 포뮬러카 스타일의 LED 계기 클러스터, 높이 달린 기어 셀렉터와 Z형 핸드브레이크 레버가 들어 있다. 대시보드에는 라디오, 내비게이션이나 전화기가 없는데 이는 대다수 오너가 휴대용 장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공간과 무게 최소화가 기본 정신이다.
궁극적으로 IB E를 어떻게 해석하든 세아트 디자인이 올바른 궤도로 돌아왔음을 입증한다. 과연 쇼룸에 등장할지는 미지수지만 아무튼 폭스바겐의 불안한 스페인 전초기지가 드디어 친환경 파티에 참석했다. IB E의 멋진 의상에 장내를 적시던 음악마저 뚝 끊겼다. 이 스타일이 시장에 나온다면 차세대 레온은 자동차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것이다.
THE CAR ARCHIVE: MAY 1999 세아트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지막 기회 1999년 제네바모터쇼에서였다. 우리가 세아트 포뮬러를 단독 촬영했다. 이차는 혁신적인 무게 900kg, 알루미늄 프레임에 4기통 엔진의 2인승 로드스터였다. “우리는 세아트 철학에 딱 맞는 차를 만들고 싶었다.” 세아트 관계자의 말이었다. 정말? 이 차가 그렇다고? 화끈한 스타일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한데 세아트는 포뮬러를 처박고, 대신 이비자와 톨레도를 내놨다. 통한의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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