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공화국’에서 국민 노릇 하려면…
(블로그 ‘Finding Echo’ / 虛虛 / 2010-10-20)
하릴없이 유머사이트를 뒤지다 아리까리하고 도발적인 제목에 눈이 꽂혔다. <이게 유머가 아니면 뭐가 유머?>라는.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이런 제목을 달았을까 호기심이 일어 클릭했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국비 9950만 원 투입해 ‘영부인 요리책’ 발간?>이란 엽기 발랄한 기사가 거기 떡 하니 적혀 있었던 거다.
내가 이걸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간단하다. 분노를 유머로 승화시킨 무명의 네티즌의 작명 센스에 크게 공감하고 감탄·탄복해서다.
생각해 보라. 상식이 통하고 법과 원칙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대통령 부인이 제 이름으로 내는 요리책에 1억 원에 가까운 국비를 지원하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이런 짓은 김정일 집단같이 국민을 엿으로 알고 ‘나랏돈은 내꺼’라고 생각하는 독재정권 아니면 절대 못 한다.
아다시피, 이명박 대통령은 ‘공·사’의 개념이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무개념이 어느 정도냐면, 서울시장 재직 시절,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는 공식석상에 반바지·샌들 차림의 아들을 불러 사진촬영을 하게” 하고 “업무 시간에 부인이 동문회장으로 있는 모임에 가서 한 시간 반씩 특강을 한” 일로 조선일보로부터 이런 꾸중까지 들었을 정도다.
“이 시장은 아무래도 ‘공인(公人)’의 개념을 잘 모르는 듯하다…. 공(公)과 사(私)에 대한 초보적 인식만 가진 사람이라면 도무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발상이다…. 그는 또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이중잣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지금 서울시장직을 수행하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일부 제왕적 사기업 총수가 비판받아온 ‘내 마음 내키는 대로’의 모습이다.” (사설, <‘이명박공’의 사>, 2002.07.09)
공·사의 경계를 초월한 이 대통령의 눈물겨운 가족 사랑은 이후에도 아들 위장취업과 불공정한 특채 진급 논란, 해외순방과 국빈방문 자리마다 딸과 손녀 동행하기 등으로 꾸준히 업그레이드 됐다.
부인 김윤옥 씨가 관여하고 있는 ‘한식세계화 사업’에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책정되고, 그도 모자라 김 씨가 제 이름으로 발간하는 책에 국민 혈세를 퍼붓기로 한 것도 그와 무관치 않을 터다. 남편이 끌고 아내가 미는 ‘부창부수’의 저질 코미디에 혈압이 절로 오르지 않나?
그런데도 이 네티즌은 분노하기는커녕 여기에 ‘리얼 유머’라는 딱지를 붙였다. 왜 그랬을까? 미루어 짐작건대, 한 마디로 화내기도 지쳤다는 거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호러블한 사건들에 치이고 고문받다 보니 이제 웬만한 일에는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고 웃어넘길 만큼 강한 내성이 생겼다는 거다.
뿐이랴. 화내고 분노하는 것도 어느 정도 기대가 있고 애정이 가능한 법인데, 이 정권에겐 그조차 아깝다는 거다. 거짓과 불의가 왕 노릇하고 상식과 염치가 ‘몰’(沒)하다못해 ‘몰’(歿)한 나라에서 일이 정상적으로 처리되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것 아니냐는 거다.
막가파 정권 아래서 숨 쉬고 살려면 어떤 일이든 웃음으로 때워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본능도 바닥에 깔려 있을 법 하다. 진지하게 반응했다간 울화가 끓고 화병이 도져서 한 시도 버티기 어려운 세상에서 몸 상하지 않고 목숨 보전하며 지내려면 악착같이 웃는 법을 배워야 하는 탓이다.
내세울 게 G20밖에 없어서 ‘행복한, 너무 행복한’ MB 공화국의 실상이 이러하다. 날마다 쏟아지는 난센스 더미에 깔려 지내는 즐거움이라니… 이게 유머가 아니면 뭐가 유머?
虛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