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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의 인사, 복수의 인사, 실용의 인사

순수한 남자 2008. 4. 25. 08:25
사죄의 인사, 복수의 인사, 실용의 인사
번호 82124  글쓴이 김찬식   조회 2539  누리 529 (529/0)  등록일 2008-4-23 21:19 대문 32 추천 [정책비평] 

 

▲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 헌화 모습

1970년 겨울, 폴란드를 방문한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바르샤바 케토 희생자 추모비에 헌화를 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나치에 의해 40여만 명이 희생된 유대인 게토지구에 세워진 추모비에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한 것이고 이 빌리 그란트의 헌화가 종전 후 2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독일에 유럽인들이 마음을 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빌리 그란트의 진심이 유럽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2차 대전 종결 40주년이었던 1985년, 독일의 대통령 바이체커는 "독일은 과거에 저지른 범죄행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해야 하며 이러한 과거사를 계속 기억해야 한다"며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다시 한번 되새겼고 독일의 이러한 과거사 반성의 거의 연례행사처럼 이어졌다.

물론 독일이 지속적으로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독일이 자행한 1,2차 세계대전의 만행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우츠비츠에서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은 그 어떤 사과와 반성으로도 덮어질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독일이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그 잘못을 후대에까지 알려 다시는 그런 만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당사국은 독일과 일본이다. 그런데 같은 전쟁을 저지른 두 당사국의 행위는 종전 후 62년이 지난 지금 극과 극이다. 독일은 전쟁 발발과 유대인 학살을 여전히 반성 중이고 일본은 2차대전의 패배를 여전히 아쉬워하는 중이다.

나는 그 어떤 보도나 자료를 통해서도 일본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만행을 사죄하고 반성했다는 글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반성은커녕 자신들이 자행한 과거사를 왜곡 축소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 고이즈미 총리 신사 참배 모습

우리나라나 중국은 다 알고 있는 종군위안부 문제나 난징대학살을 일본의 신세대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일본 역사교과서에서 자신들이 자행한 만행을 제대로 기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교과서를 읽고 자라난 세대들이 일본의 과거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먼저 드러내놓고 반성하는 독일과 하나라도 더 숨기려 드는 일본, 과거 침략국의 총리가 종전 후 피침략국에 방문하여 무릎을 꿇고 사죄하여 이해를 이끌어 내는 것, 독일을 일본에 비유하고 폴란드를 한국에 비유하면, 과연 일본이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처럼 일본의 총리가 한국의 종군위안부 시설에 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면 지금 우리가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하라고 여전히 목청을 높이고 있었을까?

단 한 번이라도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면 우리가 일본이란 나라를 그토록 싫어하진 않았을 것이다. 전쟁 일으킨 것을 반성하기는커녕 전쟁에 진 것을 분해하는 나라에 과거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잘못한 것 사과하라는데 단 한 번도 제대로 사과를 안 했다면 그걸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문제인가?

뉴라이트에서 어지간한 일본 역사교과서보다 더 친일적인 역사교과서를 만들어내고 일본 자국내의 역사교과서는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를 삭제하고 감추고, 20년이 지나 그 역사교과서를 배우고 자란 학생들은 일본이 한국, 중국 동남아에서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영문도 모르게 되는 것 아닌가? 지금의 일본 젊은이들처럼.

일본에 대한 과거사 사과를 감정적인 대응쯤으로 여기는 이명박 정부의 인식에 장탄식이 나올 뿐이다. 이게 감정의 문제인가? 왜 너희가 잘못했다고 말을 못하나. 독일은 먼저 사죄하는데 사죄는커녕 감추기에만 급급해하는 일본이 문제이지 그 문제를 지적하는 우리가 잘못된 것인가?

을사늑약이 일어난 지 100년이 넘는데 여전히 사과 한마디 안 하는 일본의 왕에게 천황 운운하며 고개를 숙이는 피해국 대통령의 행태를 그냥 상대국에 대한 존중 정도로 받아들일 문제인가? 존중도 존중할 가치가 있는 대상에게 해야 한다.

여전히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친일 세력이 기득권의 최상층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지 덮고 넘어갈 사안은 결코 아니다.

최소한의 역사의식도 없는 정부, 친일 교과서를 만들어낸 단체를 지지기반으로 두고 있는 정부, 친일 언론의 비호를 받고 있는 정부, 한국의 일본 식민지화는 한국의 근대적 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인식을 가진 정부가 실용이란 이름으로 과거사 문제를 덮으려 한다면 일본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 천황(?)에 인사하는 한국대통령

그나마 빈말이라도 해오던 과거사에 대한 반성마저도 중단하고 여전히 일본의 패전을 분통해 하며 과거사 정당화를 더더욱 가속화 할 것 아닌가. 덮어야 할 것이 있고 끝까지 파헤쳐야 할 것이 있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덮어서 될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파헤쳐 일본으로 하여금 다시는 과거와 같은 침략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해야 할 것이다. 반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성하지 않는 나라가 이상한 거지 그걸 지적하는 나라가 이상한 건 절대로 아니다.

부탁건대 아무 때나 실용 들이대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고개 숙이지 말기 바란다. 왜 실용한다고 국민의 자존심마저 뭉개버리는가. 그게 실용이라면 난 그런 실용 정말로 안 하고 싶다. 피해자 추모비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독일 총리와 종전기념일에 신사 참배하는 일본 총리, 우리가 일본의 과거사를 덮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