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봉하마을과 가족휴가, 그리고 에피소드

순수한 남자 2008. 8. 4. 19:18
봉하마을과 가족휴가, 그리고 에피소드
번호 152236  글쓴이 봉피리  조회 2998  누리 1374 (1374/0)  등록일 2008-8-3 18:19 대문 37 추천


봉하마을과 가족휴가, 그리고 에피소드
(서프라이즈 / 봉피리 / 2008-8-3)


아들은 이미 포섭되어 있었기에 흔쾌히 동의하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아내였다. "당신이 노무현 광팬인 거는 알겠는데 식탁에서 매일이다시피 들으니 짜증이 몰려오네. 듣기 좋은 꽃 노래도 한두 번이지. 이제 그만 하시지요."라는 푸념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8시 뉴스와 식사시간이 겹치는 탓에 자연적으로 대화는 뉴스보도에 맞춰지며, 언제나 결론은 참여정부 때는 안 그랬는데 라는 말에 이어 그 근거들을 들려주던 것을 아내는 탐탁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아내를 동행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 몰려왔다.

노짱을 가까이에서 뵈고 그분의 연설을 듣는다면 분명히 회개(?)할 것이란 믿음 때문에 여행의 일원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딸아이는 걱정되지 않았다. 지 어미를 더 좋아하고, 근거리든 장거리든 꼭 동행해서 보필하는 심복이기에 아내만 포섭하면 가족 전체의 여행이 될 것은 분명했다.

방법이 필요했다. 묘수를 생각했다. 아이디어 하나만은 자신 있다고 믿고 있기에 머리를 굴렸다.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사람사는 세상'으로 들어갔다. 봉하사진관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불렀다. 등 뒤에 정렬하자 입을 열었다.

"가족 전체가 휴간데 여행이나 갔다 오자."

"아빠, 그저께 바닷가에 갔다 왔는데 또 가요?"

"야, 신난다."

"어디 갈 건데…"

아들과 아내의 질문이 이어졌다. 딸아이는 마냥 신나했다.

"봉하마을에 갔다 왔으면 하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흘리며 모니터 앞의 유리에 비치는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조금 굳어지는 모습이 보이자 틈을 주지 않고 몰아갔다.

봉하사진관에 저장되어 있는 '봉하마을 방문객인사'를 열며 입을 열었다.

"봉하마을에 가면 이렇게 사진 찍힌다. 그리고 대통령의 홈페이지에 이렇게 영원히 기록으로 저장된다. 전직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뵈는 것도 영광인데 이렇게 사진까지 찍어 저장해주니 얼마나 좋냐. 그렇지?"

애쓰는 모습이 보였는지 아내가 슬며시 웃는다. 혈맹인 우군이 거들고 나섰다. 울산의 촛불문화제에 손을 잡고 참가했던 아들이다. 반에서 유일하게 시위라는 것을 경험한 아이라는 우월감(?)을 갖게 해준 아비에 대한 보상이었다.

"아, 갔다 와서 체험학습 보고서 쓰면 되겠네요."

그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현지야, 씻고 옷 입어라. 근데 몇 시에 출발할 거야?"

부자(夫子)의 협공에 내무부장관이 무장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11시는 이미 물 건너간 터라 4시, 6시 중에 택해야 했다. 포털에서 빠른 길 찾기로 1시간 30분여 거리임을 확인하고 4시에 도착하도록 준비를 구했다. 그리고 꼼꼼하게 경로를 확인했다.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면 안 되니까 말이다.

고속도로로 접어들며 아내와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을까 집필을 생각 중인 '선전포고' 시나리오를 들려줬다. 머리에 들어 있지만 글로 되지 않은 싱싱한 것이다.

일본과 대한민국의 중간에 들어서는 독도문제, 연임을 묻는 대통령 선거에 특이한 이름인 '한국인'이 후보로 출마하며 현직 대통령과 벌이는 선거 각축전,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역공, 긴장과 서스펜스,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 '한국인', 그가 일본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다. 결과는?

20분여를 옆자리와 룸미러로 뒷좌석의 태도 변화를 살피며 시나리오를 짧게 요약해서 들려줬다. 그리고 반응을 살폈다. 아들은 큰 눈을 더 확장시키며 흥미로워했고 "통쾌해요"를 연발했다. 딸아이는 이미 잠에 흠뻑 취해 있었고, 아내는 "재밌기는 한데 '한반도' 느낌이 좀 드네…"라고 폄훼하려 했다.

국내외 영화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지만 '한반도'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내용인지는 뉴스와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남북통일 약속과 경의선 개통, 일본 1907년 대한제국과의 조약 근거로 개통식 방해, 기술과 자본 철수로 대한민국 정부 압박, 문서에 찍힌 국새는 가짜다. 진짜 국새를 찾아라"와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인데 비슷하다고 하는 아내의 말에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나 일본을 향해 총 한번 쏘지 못한 영화와 선전포고를 동일시하는 무례함을 나무랄 수 없었다. 즐거운 여행길이고 또다시 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좋은 선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며 악담에 가까운 감상평에 그냥 웃고 말았다. 대신 봉하마을 생가에서 사진이 많이 찍혀 즐거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남해고속도로를 내렸다.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생가 푯말이 나타났다. 휴가철을 계산에 넣지 않은 관계로 이미 4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6시까지 무엇인가 해야 했다. 삼거리에서 천문대가 가까이 있다는 표지판을 봤다. 10분여 그 길을 따라갔다. 여러 차례 진행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이 나왔지만 표지판은 없었다. "그만 돌아가자!" 아내와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민속박물관도 찾는 데 실패했다.

봉하마을로 냅다 방향을 돌렸다. 아담하고 예쁜 마을이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높지 않았다. 분명 봉하마을의 사람들은 서로 시기하지 않고, 다투지 않을 것이다. 삐죽삐죽 높게 산들이 경쟁하듯 솟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한 후 당파싸움이 심해졌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믿음과 시각으로 본 봉하마을의 첫인상이었다.

5시가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새로 만든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사람사는 세상' 현수막이 걸린 담장 위에 "18시에 나오십니다."라는 문구가 미술용 이젤 위에 걸려 있었다. 아이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생가 옆의 안내문구 앞에서도 사진을 찍어줬다.

5시가 조금 지나서 노짱을 잘 볼 수 있는 자리를 먼저 확보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고 아내와 아이들이 마을을 분주히 돌아다닐 때에도 그 자리를 고수했다. 10분이 남았을 시점에 아내와 아이들이 합류했다. "이 자리 좋은 거야?" 아내가 물었다. 적당히 그늘도 지고 노짱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는 명당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노짱이 나오셨다. 아, 이제 가까이에서 뵐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뒤에서 "잠시 만요. 미안한데요. 실례 좀 하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터주자 우리 앞에 처져있는 포토라인 안으로 들어가 턱하고 자리를 잡는데 순간 노짱의 모습이 가려지는 것이다. "좋은 자리라며…" 아내의 비꼼을 들어야 했다. 경호원 아저씨의 출현에 가세해 무비카메라 아저씨까지 가세해 조망권은 더욱 악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방문객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며 노짱이 등장했고, "다들 안녕하시죠.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말이 특유의 순진한(?) 미소와 함께 들려왔기 때문이다. 좋은 자리를 잡지 못한 실수는 이미 지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야가 가려 아내가 사진이 찍히지 않으면 안 되는 데 하는 걱정은 은근히 됐다. 노짱은 방문객들의 숫자에 놀랍고 신기해하셨다. 생가마당에는 약 700명(봉하사저 측 추정, 봉피리 추정 1,000명) 정도의 방문객이 꽉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4시 방문객들이 아직도 계시는 것은 아니지요?"라고 방문객을 향해 물으셨다. “맞아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노짱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라고 방문객들에게 물으셨고 이야기는 마을자랑으로 옮겨갔다. 봉화산의 아래라는 뜻으로 봉하가 되었다는 얘기와 봉화산의 사자바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멀리서 보면 학처럼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다. 뱀산과 개구리 그리고 학 이야기로 이어가셨다. 이 삼각관계를 위에서 보면 뱀이 그 앞의 개구리를 노리고 있지만 학이 턱 날개를 펼치고 지켜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을 맺으셨다. 말씀 중에 사자바위의 모양으로 부엉이, 독수리 등의 새 이름이 등장했다. 필자는 노짱의 의중처럼 '학'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짱의 진면목이 '사람사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제대로 인식되어 고고한 '학'을 닮은 대통령으로 영원히 각인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과 함께 말이다.

노짱은 봉화산 올라가는 길목에 왼쪽으로 가면 부엉이바위라고 있는데 이곳에는 수리부엉이가 살고 있다. 오리들을 이 수리부엉이가 종종 낚아채간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리고 봉하에 2,500마리의 오리가 있었는데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어서 1500(?)마리 정도로 줄였다. 그동안의 정리(情理)와 수고를 생각해서 먹이를 덤뻑 먹여서 보냈고 지금 가있는 곳에서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말씀도 하셨다. (필자가 놓친 것을 아들이 챙겨줬다.)

뱀산을 가리키며 "저의 아버지께서 과수원을 하셨는데 제가 산 중턱에 움막을 짓고 거기서 공부를 했습니다."라고 하시는 말씀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필자도 과수원집 아들이기 때문이다. 재배작물도 단감으로 똑같다. 그런데 왜 움막을 지어 법 공부할 생각은 못했을까. 한 분은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판사에 인권변호사를 하시고 대통령이 되셨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일까 하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하며 자위할 수 있는 것은 믿고 있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영특한 아들이 영명(英名)이 높은 관료나 선비가 되어 나의 못다 한 꿈을 이뤄줄 것이라는 신파조의 타령을 읊조릴 수 있기에 그렇다.

노짱의 말씀은 종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질문하세요."를 기다렸다. <검찰고발 건은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대응하실 계획이신가요?>를 몇 번이고 되뇌고 있었다. 신출내기 배우가 감독의 슛을 기다리며 대사를 외는 것처럼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길게 말씀 나누지 못하는 것은 식사시간이 다됐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일찍 밥을 먹느냐 하면 청와대에서의 습관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손을 들려고 하는데 옆의 아주머니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기습에 당했다. 노짱은 "이게 애매한 질문입니다.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음식… 이게 그때그때마다 다르거든요. 컨디션에 따라 자꾸 바뀝니다." 아주머니가 재차 여쭈었다. "그럼 대체적으로 드시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노짱은 "생선을 즐겨 먹습니다. 고구마 줄거지 같은 나물도 좋아하고요. 생선에 나물을 넣어 지지면 껌벅 넘어갑니다."라는 말씀에 방문객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노짱의 발언이 끝나면 손을 들고 질문하리라 벼르고 있었다. 말씀을 마친 노짱이 "그럼 이제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자 방문객들은 박수를 쳤다. 치고 들어갈 순간을 놓친 것이다. 그런데 바로 뒤에서 박수를 제압할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을 옮기시던 노짱이 고개를 돌렸다. "대통령님,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요즘 공부는 몇 시간씩 하십니까?"

노짱이 다시 방문객을 향해 돌아서셨다. "요즘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 못합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있어서… 그래도 한 4시간씩은 합니다."라고 대답하셨고, 청와대 때보다는 많이 하는 것 같다. 왜 청와대에서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냐하면 대통령의 컨디션은 최상이어야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현직 대통령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얼리버드가 대통령에게는 맞지 않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최상의 생체리듬을 유지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 질문해야 하는데… 초조해졌다. 노짱의 말씀이 끝나면 치고 들어가리라 결심했다. "그럼 이제 진짜 들어가겠습니다. 안녕히들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박수가 노짱의 인사말을 덮었다. 이런 <조선시대 당쟁사를 읽으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라는 질문도 생각났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다음에 와서는 다른 질문을 꼭 하리라.

노짱이 들어가시고 김경수 비서관님이 한 움큼의 소형인쇄물을 들고 단상에 서셨다. 멀리서 찾아오신 방문객님들에게 해드릴 것은 없고 대화하시는 동안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그 사진을 '사람사는 세상'에 올려놓을 테니 찾아가십시오 라는 안내를 하며 소형인쇄물을 경호원 아저씨에게 건넸다. 잊고 있었던 사진이 문득 생각났다. 많이 찍혔을까. 나보다 아내가 더 찍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봉하에서 식사를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 집에 도착했다. 같이 가지 못한 강아지 요키의 서럽고 반가운 짖음이 현관문을 통해 들려왔다. 9시30분, 들어서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사진을 확인해볼 요량이었다.

'사람사는 세상'으로 들어갔다. <사진을 찾아 가세요> 배너를 눌렀다. 18시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슬라이드 보기를 선택해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내와 아이들이 빙 둘러섰다. 한 장 그리고 한 장, 18시00분 첫째 115장의 전체사진 수가 훌떡 넘어갈 동안 우리 가족의 모습은 없었다.

63장의 두 번째 마당에서도 45장이 슬라이드로 넘어갈 동안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초조해졌다. 49번째가 되자 아들과 나의 모습이 잡혔다. 그럼 그 뒷장에는 아내와 딸아이도 출현하리라. 안심이 됐다. 아,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사진은 나무와 하늘과 구름이었다.

"얘들아, 씻고 잘 준비해야지…" 아내는 씁쓸한 듯 아이들의 잠자리를 봐주러 돌아섰다. 허, 이럴 수가. ㅠㅠ 이런 결말로 필자의 계획은 100%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자신의 모습을 전임 대통령의 홈페이지에 저장시키지 못했지만 아내는 이미 변해 있음을 읽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말을 나누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들은 참 힘들겠구나 생각했어. 어느 전직 대통령의 생가에 그렇게 많은 방문객이 찾아가겠어. 다른 대통령의 비서관들보다 몇 배는 피곤할 텐데 내색하지 않고 시종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서 아랫사람은 자연적으로 윗사람을 닮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왜 그들이 멀리서 그곳을 찾을까 의아했는데, 방문객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에서 그분이 참 솔직하고 진실한 분이라는 것을 느꼈어"라고 아내는 조용조용 말했다.

조만간 치밀한 계획을 세워 회개(?)한 아내의 모습을 '사람사는 세상'에 저장해 주리라 결심하며 봉하마을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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