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과 함께 침몰하는 언론 (경향신문 / 김평호 / 201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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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평호 단국대 교수 |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군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정부가 천안함 사건에 왜 이렇게 대처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거짓말하기, 말 바꾸기, 변명하기, 자료 감추기, 사람들 입 막기, 심지어 실종자 가족에 경찰을 동원한 사찰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 와중에 북한 연계설을 유포하면서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부대는 조중동 같은 신문도 있다.
사실 천안함 사건은 2002년의 연평해전 때처럼 관련된 정보와 자료가 제대로 공개되었다면 상황이 이 정도로 혼란스럽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작금의 혼란은 거의 대부분 군과 정부의 해괴하기 짝이 없는 대응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천안함 사건에 대한 보도가 언론에 차고 넘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다른 중요한 사안들은 대부분의 언론에서 사라진 셈이 되었다.
주요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현안은 주요치 않은 것이고 언론에서 사라진 것은 존재하지 않는 사안이 되고 만다. 오늘날의 사회를 미디어 사회라 부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봉은사 명진 스님 축출발언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여론도 잠잠해지고, 일본의 독도 교과서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와 청와대의 조용한 외교에 대한 문제제기도 흐지부지되어갔다. 이뿐 아니다. 4대강 문제도, 이번 지방선거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무상급식 정책문제도 당분간 행방불명되었다. 또 지난달 31일 박지연씨가 숨을 거두면서 8번째 백혈병 사망자가 발생한 삼성 반도체 공장의 연이은 산재사태도 묻혀졌다.
한편 문화방송 노동조합은 월요일부터 파업에 돌입했고, 지난달 말 90%가 넘는 찬성률로 파업투표를 완료한 SBS 노조는 회사 측과 막판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나마 MBC 사태는 김우룡 씨의 '큰집 조인트' 발언으로 낙하산 인사의 실상이 일부 드러났지만, SBS는 2009년 하반기부터 무려 7개월이 넘도록 긴 기간 일부 관심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한 채 노사교섭의 막바지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언론이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다양한 정보의 제공과 비판, 문제제기를 통해 사회전체의 이성적 논의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사회의 합리적 발전을 도모하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의 다양성, 여론의 다양성, 이념의 다양성과 같은 것이 언론이 지향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가 되는 것이며, 또 그러한 가치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미디어 체제를 다지는 정책이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언론이 그러한 역할수행을 포기하거나 역행할 때, 또 그러한 정책체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민주주의는 질식하며 사회는 결국 비이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미래에의 희망과 동력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은 미디어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4대강 난개발을 밀어붙이듯이 유·무형의 폭력을 행사하면서 미디어를 장악해나가고 있다.
김우룡 씨가 방문진 이사장에서 사실상 퇴출된 것도 YTN, KBS, 그리고 MBC에 대한 연쇄적이고도 은밀한 '큰집 조인트' 폭력의 일부를 경망스럽게 드러낸 때문임은 불문가지이다.
지난 2일 MBC의 김재철 사장은 사원들에게 문화방송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 표준의 공영방송으로 만들고 싶다'는 요지의 글을 보냈다. 그런데 정작 김 사장은 같은 날 권력의 낙하산 장본인 중 하나를 부사장으로 선임, 끝내 노조의 파업사태를 불러일으켰다. 한편 국회가 열리고 파업이 시작되자 큰집 망나니 역할을 수행한 김우룡씨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도망치듯 날아가 버렸다. 특별한 작업 없이 그 누구도 그렇게 나갈 수는 없다는 공항 출입기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는 권력기관의 도움으로 빼돌려졌다. 수렁에 빠진 우리나라 방송의 모습이다.
출처 : http://epaper.khan.co.kr/경향ePaper
김평호 단국대 교수ㆍ언론학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2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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