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는 자신이 한 말도 까먹는다
신뢰의 출발은 정직이다. 정직하기가 그렇게 힘든가.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5-12)
아침에 꼭 듣는 방송이 있다. MBC 라디오의 ‘시선집중’이다.
왜 꼭 듣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꼭 ‘시선집중’을 들어야만 알 수 있는가. 다른 방송도 있고 수십만 부를 찍어 낸다고 큰소리치는 조중동도 있지 않은가.
혹시 조중동이나 KBS를 말하겠다면 단호히 거부한다.
독극물을 마시면서 꿀물을 마시는 줄 착각하는 꼴통들은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죽으면 된다. 자전거 신문, 비데 현금박치기 신문 등 경품에 정신이 오염되는 줄 모르는 거짓 속에서 진실을 모르고 살다가 죽을 것이다.
신뢰는 정직의 바탕 위에 존재한다. 거짓이 모래성이면 정직은 암반 위에 세워진 성이다. 절대 붕괴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직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며 거짓은 하루살이다.
손석희는 정직하다. 정치를 했으면 정치가 좀 신뢰를 받을 텐데 워낙 정치가 구정물이라 발을 안 담그겠다니 화는 나지만 도리가 없다.
그 대신 방송으로나마 바른 얘기를 하니 다행으로 생각한다. 옳은 말 하는 손석희를 정치권력은 절대 건드리지 마라. 제 무덤 파는 짓임을 경고한다.
늙은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노처녀 시집가기 싫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자기는 절대 거짓말 안 한다는 정치가들의 말은 완벽거짓말이다.
늙은이나 노처녀의 경우는 거짓말을 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가의 경우는 피해가 엄청나다. 황사다. 태안 앞바다에 유출된 원유다. 반도체 생산업체가 만들어 내는 백혈병 바이러스다.
인간에게는 면역이라는 것이 있다. 전염병에 대한 면역은 예방주사로서 해결이 된다. 그러나 면역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면역이 불행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정치인들이 쏟아 놓은 거짓말에 대한 면역이다.
정치인 중에 가장 높은 자리인 대통령의 거짓말 중에 늘 예로 드는 것이 이승만의 수도 서울 사수다. 6·25전쟁 당시 서울 사수 사기 바람에 서울에 남아 있다가 죽은 국민 참 많다.
대통령이란 자가 자신만 멀쩡하게 대전으로 도망가서 사기방송으로 국민을 죽게 한 천인공노할 죄악을 국민은 까맣게 잊었고, 경제가 거덜이 나서 나라 금고가 텅텅 빈 판국에 “씰데 없는 소리”라고 일축한 바보 같은 김영삼 대통령의 거짓말도 이제는 국민의 면역력 덕택에 잊어버렸다.
반드시 국민이 기억해야 할 거짓말들은 기억력 보관함이란 머릿속 특수 장치를 만들어 영구보관 할 수는 없을까. 아마 이런 장치가 발명된다면 제일 먼저 덜덜 떨 것이 정치인일 것이다. 판매가처분 신청이라도 하려고 들지 모른다.
요즘 다시 촛불이란 단어가 언론에 많이 나온다. 조선일보라는 데서는 기획기사로 촛불을 깎아내린다고 하던가.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역시 왜곡 허위가 미쳐 날뛰고 있다.
2년 전 촛불 시위에 참가했던 여학생을 인터뷰하면서 그의 말을 왜곡해 실었다. 그 기사로 여학생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촛불에는 시적 의미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소망이나 기도나 그리움 같은 것도 포함된다. 2년 전 국민이 켜든 촛불은 ‘미친 쇠고기’는 먹기 싫다는 국민의 요구와 분노가 폭발한 거대한 불길이 되어 마침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 불과 2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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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6월 1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6월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도 들었었습니다. 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분명한 사과였다. 사죄였다. 반성이었다.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들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반성이 없으면 그 사회의 발전도 없다”
정치인들에게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하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안 하면 되지 않느냐면 정치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한다. 결국,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촛불집회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이 어떠리라는 것은 알고도 남는다. ‘철천지한’일 것이다. 그러나 반성을 했다. 사과도 했다.
그의 반성은 진정성이 있었던가. 많은 국민들이 부정적으로 봤다. 왜냐면 그는 늘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너무나 많은 거짓이 있었다.
국민은 대통령의 진실성과는 상관없이 경제를 살린다는 한 가지 이유로 그를 선택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불과 2년 전에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깊이 고개를 숙이고 한 사과를 까맣게 잊다니 이건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촛불시위에 대해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는 질책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다. 그건 하지 말아야 할 말이었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자책” 했다고 고백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국민에게 반성하라고 야단을 치는 대통령의 모습을 국민은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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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26일 저녁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50차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
정말 짜증이 난다. 정말 화가 난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이야 정치편집광들의 잠꼬대 정도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말의 주인이 대통령으로 올라가면 달라진다. 대통령은 함부로 말을 해도 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짓말을 안 하고 평생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상습거짓말쟁이가 되면 문제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거짓말을 한다. 다음에는 그 거짓말을 정말인 듯 알리기 위해 다시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이 점점 늘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자신이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조차 까먹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은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 지경에 이른다면 그건 국가의 중대사다. 국민이 불행해진다.
대통령의 말씀은 이제 신뢰를 상실했다. 심각한 국가 중대사다. 대통령의 말이 상습거짓말로 인식되고 대통령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겸허한 반성이다. 대통령은 “남에게 바꾸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인 제 자신이 모든 것을 먼저 바꿔 나가겠다”고 했다.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한 말이다.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다짐이 얼마나 실천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촛불의 역사를 기록하라기 전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말의 역사’부터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거짓말을 안 하면 얼마나 속이 편한지 왜들 모르는가.
거짓말이 들통났을 때 얼마나 참담한 기본인가.
문제는 중독이다. 거짓말에 중독이 되면 자신이 거짓말하는 것조차도 잊어버린다. 그렇게 거짓말은 무서운 것이다.
2010년 5월 12일
이 기 명(전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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