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범야권이 하나의 세력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 2010-05-17)
유시민은 변했다
노무현 대통령님은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의 보편적인 이성을 신뢰한 분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원칙과 상식’은 서양의 ‘합리주의’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고,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었을 때에도 줄곧 정적들의 ‘최소한의 합리성’을 신뢰하고 정치를 하셨죠.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도 대연정을 제안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최소한의 상식’도 내팽개친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그런 줄 몰랐냐?”라고 되묻지는 말아 주십시오.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가지는 최소한의 예의를 가진 이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인간이니까’라며 일말의 기대를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유시민이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민주노동당과의 대립각을 세우면서 한나라당과 연정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최소한의 상식은 가졌을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이죠. 그래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거대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과 타협하고, 협상해서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전체 공동체를 위해서는 낫다는 판단이겠죠.
이제 이런 생각 자체도 순진무구한, 관념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결론 내린 듯 합니다. 아마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이후 확고하게 가진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유시민은 거침없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범야권과의 연대를 위한 포용력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그들과 화해를 청하고 있습니다. 별개로 존재하되 연대하고, 연합하는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있습니다. 이번 야권연합의 실험이 성공하게 되면 한국 정치에도 유럽과 같은 연정이 사실상 성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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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3당 경기도지사 단일 후보인 유시민 후보가 17일 오전 문래동 민주노동당사를 방문해 강기갑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
국민들 눈에 전선이 보이게 하자
유시민은 지금 전선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전선은 <MB vs 반MB>, 이걸 조금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MB 퇴진>이나 <MB OUT>은 헌법상 임기가 있으니 안 되겠고, <MB STOP>이 적절한 듯 합니다.
그리고 숨겨진 전선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상식 vs 몰상식>입니다. 천안함 사태의 진실도 그렇고, 각종 집회시위의 허가에 있어서 불공평이나, 4대강 사업 강행, 세종시 수정안 강행, 방송장악 등등에 공통으로 흐르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가치는 <몰상식>입니다. 범야권은 그 몰상식에 맞서 상식을 바로 세우는 세력입니다. 큰 덩어리로 하나의 세력이죠.
그렇다면 그 세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남았습니다. 여러 개의 정당이지만 <하나의 세력>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관념적으로도 인식되게끔 해야 합니다. 그 방법론으로 연합정부 구성을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렇습니다.
- 서울시장 한명숙(민주당), 서울시 정무부시장 천호선(국민참여당)
- 경기도지사 유시민(국민참여당), 경기도 정무부시장 안동섭(민주노동당)
- 인천시장 송영길(민주당), 인천시 정무부시장(창조한국당이나 진보신당)
수도권의 경우 일단 이런 식으로 연합정부를 구성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러닝메이트를 발표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제조건으로 민주당의 통 큰 양보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범야권은 하나의 세력으로 확실하게 각인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식으로 전국의 각 지방정부도 연합정부 구성의 전단계로 러닝메이트를 발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설마 야권 대연합을 외치면서 지방정부 접수 후에 단독으로 집권하겠다고 생각하는 정당이나 후보자는 없겠지요? 이건 완전히 망하는 길입니다.
어쨌든 지금은 세세한 정책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큰 흐름을 만드는 것이 더 중차대합니다. 보수언론은 <현 정권 심판 vs 친노세력 심판>이라는 구도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자 프레시안은 겁부터 집어먹고 엄하게 친노라는 분들을 두들기는 삽질을 하고, 민주당 일부에서는 선거결과가 좋지 않으면 ‘친노’세력한테 덤터기를 씌우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데요. 일단 이런 건 신경 끄고 갑시다.
지금은 싸움의 구도를, 즉 전선을 명확하게 하는 게 우선입니다. 국민들은 범야권을 따로국밥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단일화했다고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걸 빨리 깨트리고, 하나의 세력임을 보여주고,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 무엇보다 화급합니다.
- 타 정당 인물을 부시장과 부지사로 지명하여 러닝메이트 체제 구축
- 범야권의 공동선거전략 구축 하에 동일한 메시지 전파
- 대변인 명칭을 아예 ‘범야권 통합 대변인’이라고 칭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보도자료나 성명서를 발표할 때 말이죠.
- 각 후보들 명의의 성명이나 발표의 경우에도 자신이 속한 정당만을 표기하지 말고,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창조한국당 단일후보 아무개>라는 식으로 표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언론사에는 공식명칭으로 기사를 써줄 것을 요청하고요.
이런 큰 전선이 만들어진 토대 위에다가 세세한 정책들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정책은 전선이 만들어진 뒤에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전선이 엉망이면 제아무리 기발한 정책이 있어도 힘을 못 씁니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봅시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한테 전화기도 열심히 돌립시다. 투표권 행사를 독려합시다. 그리고 범야권을 찍어달라고 싹싹 빌어봅시다.
스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