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

간절한 사람들

순수한 남자 2010. 6. 5. 08:48

간절한 사람들
번호 166442  글쓴이 개곰 (raccoon)  조회 680  누리 260 (270-10, 11:44:1)  등록일 2010-6-5 03:21
대문 18

 

간절한 양보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하면서 민주당을 박살낸 뒤 잔류파만 남은 작은민주당과 당명을 신민당으로 바꾼 평민당이 1991년 9월 통합민주당으로 합친 것은 김대중이 지분을 5 대 5로 나누어야 한다는 이기택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의원 숫자로 보았을 때 평민당과 작은민주당이 대등한 지분을 갖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였지만 김대중은 야권 통합을 위해 양보했다. 김대중이 양보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정권 교체를 해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기택 같은 정치자영업자는 절대로 양보를 몰랐다. 그에게는 자기 육신의 안일을 넘어서는 가치를 추구하려는 간절함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그러나 이기택은 기득권을 가진 야당 정치인이었다. 큰 일을 도모하려면 그런 사람과도 손을 잡아야 했고 그러자면 결국 간절한 사람이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은 이기택과 같은 작은민주당 의원이었지만 이기택의 억지 요구에 내심 분개했고 김대중이 큰 양보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노무현도 조선 역사를 통틀어 600년 동안 정의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기회주의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의 승리자는 표면적으로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서울과 경기는 아깝게 내주었지만 인천,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강원도, 광주 등 7곳에서 이겼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92 대 82로 한나라당을 눌렀다. 서울에서는 25명의 구청장 중 21명이 당선되었고 경기도도 도시는 거의 다 민주당 소속 시장이 나왔다. 인천은 옹진군만 빼놓고 9명의 기초단체장을 당선시켰다. 지방의회에서도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대거 당선시켰다. 지방정부는 사실상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제는 시장, 군수만이 아니라 의회도 야당이 잡은 곳이 많다. 이명박의 전횡을 막으려는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웬만큼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진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민주당보다는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이었다.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은 연대 없이는 완패라는 절박감으로 초기부터 야권 후보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많은 양보를 했다.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가 기적적으로 후보 경선에서 이기고 나서 김진표 민주당 후보가 흔쾌히 결과를 수용하고 선거 과정에서도 도움을 준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한 행동이다. 소탐대실하지 않고 진정 멀리 볼 줄 아는 지도자의 길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선대본부장을 맡은 김민석은 여론조사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었을 텐데도 경기도는 승산이 없어서 거의 포기하는 것처럼 기자들 앞에서 선거 며칠 전 말했다. 유시민 후보가 경기도지사가 되지 않기를 염원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발언이었다. 민주당이 이번 지방총선에서 약진한 것은 유시민이 몸담은 국민참여당의 많은 후보와 강기갑, 이정희 의원이 몸담은 민주노동당의 많은 후보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양보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이명박의 전횡을 기어이 막아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민주당의 김민석류에게도 간절함은 물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명박이야 무슨 짓을 하든 자기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존재는 기어이 짓밟아야 한다는 그악스러운 생존욕이다.


2009년의 슬픔은 자기 육신의 안일을 넘어서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간절함을 가졌던 두 거목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는 한국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간절함을 가지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정치인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무게 중심을 두는 곳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간절함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똑 같은 정치 세력들이 손잡고 양보하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노무현 정신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탄생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이지만 그가 봉하 마을에 가서 노대통령 묘소에서 지역주의를 넘어섰다고 말한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김두관은 경상도에서 배척받는 정당의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니다. 그냥 무소속 후보로 나와서 당선되었을 뿐이다. 노무현은 그러지 않았다. 노무현은 지역주의를 자력으로 넘어서기 위해 끝까지 김대중을 배신하지 않고 불리한 당의 간판을 달고 나왔다. 노무현 같았으면 아마 무소속으로 부산 시장이나 부산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지역주의를 넘어섰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노무현이 겸손해서가 아니라 냉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실 인식을 냉철하게 해야 오류를 안 범한다.  


만약 이번 부산 시장 선거에서 김정길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그것이 진정한 뜻에서 지역주의를 넘어선 결과다. 김정길은 무소속으로 나오면 민주당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부산 유권자의 표를 많이 잃을 것이 뻔한데도 민주당 간판을 들고 나왔다. 이것이 노무현의 정신이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언젠가는 산을 옮기리라는 무한 긍정의 정신이 노무현의 정신이다. 김정길은 이번 부산 시장 선거에서 1995년 노무현이 부산 시장 선거에 출마해서 얻은 역대 최고 지지율 36.7%보다 크게 높은 44.57%의 득표율을 올렸다. 김정길은 지역주의의 문턱을 못 넘었을지 몰라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넘은 지 오래다. 김두관은 지역주의의 문턱을 넘은 것이 아니라 돌아간 것이다. 돌아간 것과 넘은 것은 다르다.

구도의 종점


수천년 수만년 수십만년을 유유히 흘러온 강들이 파헤쳐지는 것을 생살이 찢겨나가는 것처럼 아파하다가 4대강 사업 중지를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온 몸을 불살라 소신공양하신 문수 스님의 눈은 아이처럼 맑았다. 인간세를 넘어 자연계까지도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풀 한 포기의 고통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간절함을 스님의 눈에서 읽었다. 구도의 종점은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내 품에 안는 경지에 올라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대통령님의 서거 이후 또다시 마음으로 통곡을 하면서 스님의 극락왕생을 비나이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66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