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스크랩] 천안함 사고원인 종합분석

순수한 남자 2010. 7. 7. 21:52

  

지난 3월 26일, 음력으로 2월 11일!

 

보름달을 3~4일 정도 남겨둔 달 밝은 밤에 9시 조금 넘어서 연평해전의 주력함인 천안함이 백령도 남쪽 바다에서 평상시의 속도인 시속 6마일(시속 11km 정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해병대 TOD(열상감지장치)에 잡혔다. 9시 3분!

 

이 TOD 초소는 백령도 동남쪽 콩돌해안과 장촌백사장 사이에 있는 작은 백사장 서쪽에 붙어있는 곶부리에 위치한 TOD 초소이다. 서쪽에 있는 용트림바위(한주호 준위는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순직)와는 장촌 만(灣, bay)을 사이에 두고 1.4km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 TOD 초소 위치를 사진으로 바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그리고 그 9분 후인 9시 14분!

천안함은 본부인 2함대에 “중국어선 감시관련 보고”를 했다.

 

그 1분 후인 9시 15분!

국방부 기록에는 천안함의 “최초 상황 발생”이 기록되어 있다.

 

다시 그 6~7분 후인 9시 22분 직후!

천안함은 두 동강난 상태로 다시 똑 같은 TOD 카메라에 잡혔다. 이번에는 뱃머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진행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상으로 우리는 천안함이 그날 중국어선을 감시하기 위해서 사고 직전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고, 중국어선 감시 임무를 마치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다시 복귀 중에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백령도 주변 중국어선 상황은 아래와 같다.

 

 

 

그리고 9시 3분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멀쩡하게 이동하던 천안함이 19분 후인 9시 22분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두 동강난 상태로 발견되었으니까, 시속 11km 정도로 움직이던 천안함이 9시 3분에 TOD에 잡힌 이후로 3~4km 거리를 움직인 후에 사고가 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중간쯤에서 유턴(U턴)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고, 9시 3분과 22분 사이의 9시 15분에 최초 상황이 발생했으니까 유턴하는 그 시점 정도에서 최초 상황이 발생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또, 위 TOD 동영상 화면만으로도 ‘천안함은 백령도 서남쪽에서 임무를 수행 중에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두 동강나는 사고를 당했다가, 함미는 그 자리에서 가라앉아버리고, 함수는 조류를 타고 백령도 동남쪽으로 7km 정도를 떠내려온 상태에서 거기에 타고 있던 58명의 승조원들이 구조되었다’는 정부발표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9시 3분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던 천안함이 최초상황이 발생한 9시 15분에, 즉 12분 후에 U턴을 하고 있을 지점에 어떤 사고요인이 있느냐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바로 연봉바위가 있다.

 

연봉바위는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떠드리려고 공양미 삼백 섬에 인당수에 뛰어들었다가, 효심에 감복한 용왕님의 배례로 연꽃봉우리를 타고 수면 위로 떠올라 조류를 타고 떠내려 오다가 걸렸다는 바위인데, 9시 3분에 TOD카메라에 잡힌 천안함의 위치와 연봉바위와는 1.5km 정도 떨어져 있었다.(뒤에서 추가 설명)

 

이쯤해서 우리는 믿을만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더 정확한 사고지점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국방부장관 정도면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의 이실직고]

 

아래 동영상 사진들은 천안함 사고 일주일 후인 2010년 4월 2일 국회에서 천안함관련 긴급현안 질의 내용들이다.

 

 

 

 

관련 동영상 보기 :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2798435

 

 

위 동영상 내용을 보면, 천안함 사고 직후인 4월 2일에 벌써 국방부장관과 한나라당 국방위 소속 김동성의원은 '천안함은 백령도 서남쪽 2.5km 해상에서 두 동강난 것이 아니라 육지의 TOD초소와 88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아주 가까운 해상에서 두 동강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국방부장관은 그 상황까지 자세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천안함 사고지점은 해병대 앞바다]

 

우리는 이제 TOD 초소를 알고 됐고, TOD 초소와 두 동강난 천안함과의 거리 880m도 알게 되었으니까 정확한 사고지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TOD 카메라에 나타난 방위각을 이용해서.

 

TOD 방위각은 아래 TOD 화면에 데이터로 나타난다.

 

   

 

 

TOD 방위각은 포병들처럼 1회전을 6400도 각도를 사용하고 있는데, TOD 각도 6400도는 일반각도 360도와 같고, 더 자세한 것은 아래 그림과 같다.

 

 

   

방위각은 북쪽을 기준 각도(0˚)로 잡는데, TOD 초소 위치에 방위각과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가르쳐준 880m를 대입하면 정확한 사고지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천안함은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두 동강난 것이 아니라 바로 세계 최강의 해병대 앞바다에서 두 동강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46명의 장병들이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죽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해군지휘부가 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사고지점 자체를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지경의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으로 옮겨버린 것이었고.

 

구글어쓰에서 ‘TOD초소를 기준점으로 잡고, 북쪽을 기준 각도 0˚로 잡고, 225˚ 방향으로 880m를 찾아가면’ 천안함이 두 동강난 정확한 사고지점(사고해상)은 북위 37도 54분 41초, 동경 124도 40분 43초이다.

 

 

 

 

[천안함의 이동 경로]

 

이쯤 되면 사고 직전 천안함의 이동 경로도 확인할 수 있다.

 

 

TOD 각도를 이용하면 9시 3분에 잡힌 천안함의 위치도 대략 확인할 수 있는데, 천안함과 연봉바위와는 직선거리로 1.5km 정도 안팎이었다. 유턴하면 조금 더 나오고. 그리고 천안함의 평상 시 속도인  시속 6마일(시속 11km 정도)로  12분을 운항하면 그 거리가 2.1km 정도 된다.

 

그렇다면, 9시 3분에 멀쩡했던 천안함이 12분 후인 9시 15분에 “최초 상황 발생”했던 시간과 거리와 방향의 3박자가 연봉바위에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이다.

 

 

 

[연봉바위]

 

그래도 연봉바위 주변을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안이 워낙 중요하니까.

 

 

 

아래 사진들은

연봉바위 주변의 해저지형도와 수심을 나타내는 지도이다.

 

 

 

해저지형도로 봐도 연봉바위 주위에 모래언덕이 퇴적되어 있고,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의 물골은 서해에서는 보기 드물게 깊은 수심을 유지하지만  연봉바위와 그 주변 모래언덕만은 피해 다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우리는 그 상황에서, 9시 3분 이후에  천안함이 좌초될 수 있는 암초나 모래언덕은 연봉바위와 그 주변 모래언덕밖에 없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고당시의 조류]

 

천안함 참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고당시의 조류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도 TOD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천안함 참사 직후 TOD 동영상 브리핑은 합참의 이영기 대령이 했다.

 

아래 사진들은 (2010.4.1) TOD 동영상 캡처사진들과 그 발언들이다.

 

 

 

 

 

관련 동영상 보기 :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2798435

 

 

위 동영상 사진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

 

천안함 TOD 브리핑 당시에 합참의 이영기 대령은 천안함의 모형 배를 TOD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쭈욱 잡아당기고, TOD 초소가 있는 위치가 백령도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면서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나는 사고 당시에 조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에서는 지금도-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두 동강나는 사고를 당했다가, 서쪽(정확하게는 서북쪽)에서 동쪽(정확하게는 동남쪽)으로 흐르는 조류를 타고 함수가 7km(6.4km) 정도를 떠 내려왔다가 백령도 동남쪽에서 58명의 승조원들이 구조되었다’

 

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합참의 이영기 대령은 사고 직후의 조류 방향을 간접적으로 가르쳐 줌으로써 국방부의 주장은 절대적으로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몸소 확인시켜주었던 것이다.

 

 

 

 

[구조지점이 바로 사고지점]

 

위 국방부 발표 브리핑 동영상을 보면 천안함은 두 동강 직후에 함수가 조류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반 바퀴 180도를 회전했다가 떠내려가는 듯 하다가 바로 멈춰버리는데, 이것은 두 동강난 함수가 닻(앵커)줄에 걸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천안함은 두 동강 직전에 닻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 위에 뜬 배나 부유물들이 거센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는 때는 그 물 속에 닻줄과 연결된 닻이 내려져 있을 때에 한한다. 그 덕분에 두 동강난 천안함의 함수가 거센 조류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반 바퀴를 도는 순간 팽팽한 줄에 걸린 것처럼 길쭉하게 쭉 뻗어서 더 이상 떠내려가지 못하고 잡혀 있었던 것이다.

 

해경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 당시 천안함은 오른쪽으로 90˚만 넘어져서 마스터(상갑판 지휘부) 부분도 물 위에 완전히 떠 있는 상태였는데, 완전히 떠있는 배가 거센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함수 뱃머리 보이지 않는 부분에 닻줄이 연결된 닻이 내려져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천안함은 두 동강난 사고지점이 바로 구조지점이 되는 것이다.

 

사고 다음날인 3월 27일 아침에 천안함의 함수는 장촌 백사장 1.1.km 앞에서 뱃머리가 뒤집어진 채로 떠올랐는데, 닻줄에 걸린 채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가 그대로 떠올랐던 것이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부산외항의 선박들처럼 함수에 닻줄에 걸린 채로.

 

 

 

 

이상으로 우리는 ‘국방부장관이 가르쳐준 880미터’와 ‘TOD 화면 왼쪽에 나타난 갯바위로 찾아낸 TOD초소 위치’와 ‘TOD 화면에 나타난 TOD 방위각’을 대입하여 찾아낸 두 동강 사고지점이 ‘다음날 아침에 함수가 떠오른 위치’와도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구조지점이 사고지점이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고, 함수는 사고 직전에 닻을 내렸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에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다시 떠올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천안함 시나리오]

 

이 정도 밝혔으면 어느 정도 사실에 대한 기초가 섰으니까, 우리는 이제 천안함의 사고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말로만 설명하기는 어렵고, 그림과 같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래서 천안함을 건져내고 보니까

좌현 선저에 엄청난 좌초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위쪽 사진을 보면 왼쪽 배 밑바닥에 부러진 부위가 우그러져 있고, 그 뒤쪽으로는 쓸리면서 용접 부위가 터져나간 것이 보인다. 이것은 폭발에 의한 흔적이 아니라 좌초에 의한 흔적인 것이다. 만약에 어뢰에 의한 파공이었다면 어뢰가 철판을 뚫고 들어갔지 저렇게 넓게 우그러뜨리지를 못한다. 우그러졌다는 것은 천안함의 무게로 눌렀다는 것이다.

 

용접 부위의 철판이 터졌다는 것은 YTN 사진에서 확실해 볼 수 있다. YTN 사진에는 선저의 철판들이 칼로 자른 것처럼 용접 부위들이 완전히 떨어져 있다. 만약에 어뢰에 의한 공격이었다면 파공 부위 주변의 철판들이 걸레처럼 찢어진 상태에서 뭉쳐진 마른 걸레처럼 꼬굴꼬굴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속에서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최초의 사진들이 중요하다. 천한함을 바다 속에서 막 들어 올릴 당시에는 두 동강 부위가 칼로 자른 것처럼 반듯반듯하지 않은가?

 

 

이때가 9시15분!

최초 상황 발생 시간이다.

 

천안함이 쿵하고 좌초되는 순간 함 내에는 순식간에 비상이 걸렸고, 당직자들은 뛰어가서 손상 정도를 파악했을 것이고, 갑판 아래 침실에 있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상갑판으로 탈출을 시도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통화 중인 사람도 갑자기 전화를 끊었던 것이고, 애인과 통화 중인 사람도 갑자기 전화를 끊어버렸던 것이고, 구조 후에 잠옷 차림의 장병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휘라인에 있는 사관들(장교들)은 본부(2함대)에 구조요청을 하는 한편 마스터에 급히 모여서 대책을 논의했을 것이고, 기술직의 부사관들(하사관들)에 일부 사병들을 딸려서 다시 돌려보내 침수를 막으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KBS 뉴스에 의하면 9시 16분에 해경에 구조요청을 할 때는 “물이 샌다고 구조요청을 했다”고 하고, 국방부도 사고 직후 브리핑에서 “배에서(천안함에서 포술장으로부터)... 좌초에 의한 파공으로 침수한다.”“구조요청을 해왔다”고 했다.

 

 

KBS 동영상/ 물이 샌다고 구조요청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2822134&q=&lu=v_relatedclip_relation_09&ref=&cateid=&relateid=24164913&relatepage

 

국방부 기자회견 동영상/최초의 교신은 좌초였고 파공으로 침수한다고 구조요청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2803416&q=%C3%B5%BE%C8%C7%D4

 

 

또 해군2함대의 보고기록에도 9시 15분에 최초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는 것은 천안함이 좌초 후에 즉시 구조요청을 보냈다는 것이고, 좌초에 의한 파공으로 침수된다면서 구조요청을 했다는 것은 사고 직후에 바로 정확한 내용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스터에서는 2함대와 계속해서 교신을 하면서, 46명의 하사관들과 일부 사병들은 배수 펌프의 호수를 풀어서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밖으로 퍼내면서, 천안함은 급하게 뱃머리를 돌려서 가장 가까운 포구인 4km 정도 거리의 장촌항(장촌 포구)으로 뱃머리를 돌려서 피항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연평해전의 주력 승리함인 천안함이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버리기 전에 해병대 부대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비상시에 경계엄호를 받을 수 있는 장촌항으로!

 

좌초에 의한 파공으로 침수가 생긴 직후부터 천안함은 함수 쪽으로 통하는 격문들을 막았을 것이다. 이것은 함 전체를 책임지는 함장의 고유 권한인데,  천안함이  동강이 나서도 함수 온전히 떠 있었다는 것은 함수 쪽으로는 물이 안 찼다는 뜻이고, 그것은 침수 시에 격문을 막았다는 뜻이다.  

 

그 상태에서 46명의 부사관들과 일부 사병들은 동료들과 천안함을 구하기 위해서 모든 배수펌프를 총 가동시키고 호수란 호수는 다 끄집어내서 밖으로 물을 퍼내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한준호 준위가 순직한 후 그의 동료의  “구조물에는 문까지 달려 있었고 그 안은 소방용 호스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 있었다.”는 말로써 유추할 수 있다. 한주호 준위는 해군지휘부의 명령에 따라 함미 수색작업을 하다가 순직한 것이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설명) 

 

그런데 사투를 벌이면서 장촌항으로 비상 속도로 달리던 천안함이 장촌항에 다다르기 전에, 장촌항을 1.3km 정도를 앞두고 침수에 의해 부력을 잃은 함미가 가라앉고 만 것이다. 좌초에 의한 파공이 커서 침수가 급격하게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연봉바위에서 좌초에 의한 최초의 상황발생 이후에 천안함이 비상속도로 4km 떨어진 장촌항을 달려온 거리는 (구글어쓰를 이용해 확인하면 )  2.7km 정도였다. 그때 우측(북동쪽)에 TOD 초소와의 거리는 880m, 장촌 백사장과는 1.1km, 장촌항 내만까지는 1.3km, 용트림바위와의 거리는 1.2km 정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수심이 24m 정도였다.

 

 

선체 길이 88m의 배가 수심 24m의 해저에

선미(함미)가 가라앉으면 아래 그림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인당수는 평상 시에도 조류가 시속 3노트 정도 되고,

합참 이영기 대령의 발표에 의하면

그 당시 (너울성) 파도 높이가 2~2.5m 정도 됐다.

 

바다에서 조류를 타고 오는 거센 파도는 공포 그 자체이다. 파도가 무릎 높이 이상만 넘으면 사람은 넘어져서 뒹굴어 파도에 휩쓸려 가버린다. 그래서 천안함의 함수에 있으면서 살아남은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함수의 마스터에 들어가 피신해 있었을 것이란 뜻이다. 기술직의 부사관들(하사관들)과 일부 사병들이 함미 쪽에서 배수펌프를 이용하여 물을 퍼낸다고 사투를 벌일 때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연봉바위에서 좌초된 후 함미가 가라앉은 부분까지 달려오는 시간이 5~6분 정도는 있었으니까.

 

그 상태에서 너울성 파도는 1초 정도에 한 번씩 몰려와 함수의 경사면을 타고 올랐고, 배의 왼쪽에서는 연안파도가 밀려들었을 것이다. 연안파(沿岸波)란 모든 바닷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바다 쪽에서 육지 쪽으로 몰려오는 파도를 말한다. 해수욕장에 가면 언제든지 바다에서 육지로 파도가 밀려드는데, 그 파도이다.

 

아래 그림은 뒤에서 몰려오는 조류와 왼쪽에서 몰려오는 연안파를 나타낸다.

 

 

 

그런 상황에서 -

 

함미가 가라앉은 천안함은 모래밭에 파묻힌 프로펠러를 뽑아내서 빠져나가려고 계속해서 프로펠러를 돌렸을 것이고, 그래도 프로펠러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모래 속에 파묻혀 멈춰버리자, 관련 기술직들(부사관)들 여러 명이 후타실로 뛰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생존자들이 후타실에 몇 명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것일 테고.

 

 

 

 

[프로펠러에 숨어있는 진실]

 

프로펠러에 관한 사진들이다.

 

 

 

천안함에는 프로펠러가 2개가 있는데, 인양하고 보니 프로펠러 날개들이 골고루 휘어져 있으면서 오른쪽이 더 많이 휘어져 있다.

 

프로펠러 날개들이 골고루 휘어졌다는 것은 프로펠러가 암반지대가 아닌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모래 퇴적층 속에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하고, 오른쪽 프로펠러가 더 많이 휘어진 것은 왼쪽에서 밀려온 연안파가 측면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선박의 프로펠러는 -

 

그 재질이  망간청동이나 알루미늄청동이 사용되는데, 구리(청동)를 주 재질로 하는 것은  염분에 의한 부식을 방지하고 잘 부러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이고, 구리에 망간이나 알루미늄을 섞는 것은 경도(금속의 단단한 정도)를 높여서 너무 쉽게 변형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천안함의 추진기는 2개의 축(軸)에 각각 5개씩의 날개깃(blade)이 달린 구조로 되어 있다. 천안함 정도 톤수(1200톤)의 선박 프로펠러는 1분에 돌아가는 회전수가 100~300rpm 정도 된다. 선박의 프로펠러는 소형 모터보트의 경우 1,000rpm이 넘어가는 것도 있는데, 선박은 크기가 커질수록 프로펠러의 회전수는 적어진다. 거대한 프로펠러가 소형모트의 프로펠러처럼 빠르게 돌아가다가는 물과의 마찰력에 의해서 구조와 재질 상 남아날 수 있는 프로펠러가 없으니까!

 

 

프로펠러에 대한 이 정도의 상식을 가지고

천안함의 프로펠러 상태를 자세히 풀어보면 -

 

저 프로펠러들은 모래 퇴적층 속에 파묻혀서 돌아간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시간 동안 돌아갔다. 여기서 상당히 많은 시간이란 ‘1~2초의 순간이 아니라’ 최소한 몇 십초는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위와 아래 구분 없이' 5개씩 달려있는 프로펠러의 날개깃들이 골고루 휘어진 것이다.

 

그리고 작은 흔적들이 있는 것은 그 모래가 푹석푹석한 모래가 아니라 그 옆에 콩돌해수욕장(콩알 같은 자갈들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 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모래 퇴적층에 콩돌들이 박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래퇴적층에 콩돌이 박혀 있어서 프로펠러가 돌아갈 때 기스가 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왼쪽 프로펠러는 덜 휘고 오른쪽의 프로펠러가 더 많이 휘어있는 것은 양쪽의 프로펠러가 동시에 돌아갈 때 오른쪽의 프로펠러가 더 많은 마찰력을 받았다는 것으로, 이것은 오른쪽의 프로펠러가 모래 속에 더 깊이 파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선체 길이 88m의 천안함 함미가 수심 24m 정도의 모래밭 해저에 가라앉았을 때, 천안함의 왼쪽에서 밀려드는 연안 파도에 의해서 천안함의 선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라앉은 함미 끄트머리 아래 달려있던 오른쪽 프로펠러는 모래 속에 더 많이 파묻히고 왼쪽의 프로펠러는 상대적으로 덜 파묻혀서 돌아 가다보니, 오른쪽의 프로펠러가 마찰력을 더 크게 받아서 더 많이 휘어진 것이다.

 

그리고 또 프로펠러들이 골고루 휘어진 것은 천안함의 프로펠러가 바위나 잠수함 같은 단단함 물체에 부딪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천암함의 양쪽 5개씩의 프로펠러 날개깃들이 골고루 휘어진 것은 프로펠러가 ‘물이 아닌’ 어떤 물질 또는 물체들과 접촉하면서 최소한 여러 번 이상의 회전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에 1,200톤의 무게를 받치고 1분에 100~300rpm으로 회전하는 프로펠러가 바위나 잠수함과 부딪히면서 그 정도의 시간 동안 그 정도로 돌아갔다면 프로펠러의 날개깃은 완전히 토막 나 있어야 한다. 그 정도 충격에는 청동에 경질(단단하지만 부러지기 쉬운 성질)의 망간이나 알루미늄 성분을 합쳐놓은 합금으로 이루어진 프로펠러 날개가 뚜두두두득득득- 부러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항간에 나도는 주장처럼 천안함이 미군의 잠수함과 부딪힐 때 프로펠러가 손상을 입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서로 움직이고 있는 군함과 잠수함이, 군함의 프로펠러가 잠수함의 등어리 한쪽에 몇 십초 동안 부딪힐 시간도 나올 수 없고, 몇 십초 동안 서로 부대끼면서 돌아갔다면 프로펠러가 저렇게 거의 온전한 상태에서 저렇게 골고루 휘어질 수 없으니까! 움직이지 않은 군함과 잠수함이 일부러 서로 부대끼면서 군함이 프로펠러를 계속해서 돌렸을 리는 만무하고!

 

 

천안함의 휘어진 프로펠러의 상태와 관련하여

민군합동조사단 윤덕용 단장은 -

 

“오른쪽 프로펠러가 게 조금 더 손상돼 있다. 이는 함미가 해저에 닿을 때 충격에 의해서, 또 프로펠러가 돌고 있었기 때문에 손상된 것으로 판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내용 보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4/25/0200000000AKR20100425048800043.HTML?did=1179m

 

 

합동조사단에서도 뉴스에 드러난 프로펠러의 손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함미가 해저에 닿아서도 프로펠러가 돌아갔다는 것은 88m 길이의 천안함의 함미가 침수에 의해 수심 24m 정도의 해저에 가라앉아서도 돌아갔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프로펠러가 거의 온전한 상태에서 골고루 휘어진 상태로 보아 최소한 수십 초 이상은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것이 천안함이 두 동강나면서 가라앉을 때 모래바닥에 순간적으로 찍힌 것이 아니라 두 동강나기 전에 이미 돌아가면서 휘어졌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울 파도의 무게가 천안함을 두 동강 내버렸다]

 

선수(함수)는 닻에 고정되고 선미(함미)가 처박힌 프로펠러에 고정되면 수면 위로 솟아오른 함수는 중력의 영향을 받게 되고, 함미는 부력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고, 수면 부위에서는 중력과 부력이 교차하게 된다.

 

아래 그림들처럼.

 

 

  

88m 길이의 유선형 선체는 그 바닥면이

모두 물에 골고루 닿아있을 때 안전하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

 

함미 쪽에서는 프로펠러가 계속해서 모래 속으로 파고들면서 말뚝같이 고정시켜버리고, 함수 쪽에서는 닻으로 고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함수가 수면 위로 50m 가까이 비스듬히 솟아있으면 부러지지 않을 배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 뒤에서는 시속 3노트 정도의 인당수 조류를 타고 파고 2m 정도의 너울파도가 비스듬히 경사진 함수의 상갑판을 타고 수십 미터씩 밀고 올라왔으니,  천안함은 함수에 올라탄 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두 동강나면서 부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부러진 부분이 연봉바위 모래언덕에서 좌초 시 충격을 입은 부분이었고.  

 

 

철판의 용접들이 뜯기는가 싶더니

용골(선박의 척추)들이 부러지면서

배관들도 동시에 부러지면서....... 꽈과꽈광꽝!.......

 

   

 

 

이 부분에 대해서

천안함의 함장 최원일 중령은 사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

 

“쾅하는 소음과 함께 충돌음과 함께 배가 오른쪽으로 90도 기울었습니다. 날면서 오른쪽으로 몸이 완전히 기울어서 책상 밑에 깔리고…. 함장은 당시 폭발음과 동시에 전 승조원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몸이 50cm 가량 날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발전기 통신 모든 교신이 다 두절 되었습니다…. 화염불빛이 없었습니다. 화약 냄새도 없었습니다.......

 

라고 밝혔던 것이고!

 

 

 

 

[철판의 휘어진 방향]

 

천안함이 함수로 올라타는 물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두 동강나기 직전에도 왼쪽에서는 연안파가 밀려들어 벽을 이루는 길쭉한 천안함을 활처럼 휘어지게 했을 것이다.

 

이러한 역학관계들 때문에 천안함의 철판들은 -

 

        - 왼쪽 철판들은 오므라드는 힘을 받아서 바깥에서 안쪽으로 휘어졌고,

        - 오른쪽 철판들은 튕겨나가는 힘을 받아서 안쪽에서 밖으로 휘어졌고,

        - 선체 밑바닥 철판들은 아래(바깥)에서 위쪽(안쪽)로 휘어진 것

 

이라고 판단된다.

 

 

 

 

[해병대에 구조명령이 전달되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880m 떨어진 지점에 있는 TOD 관측소에서는 천안함의 두 동강 장면을 찍지 못했다. 그래서 국방부 장관이 지난 4월 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TOD를 찍는 병사가 배가 이상한 모습이 되니까 그거를 타이밍을 놓쳐가지고 그게 안 찍혔습니다.”라고 밝혔던 것이다.

 

국방부장관의 답변은 TOD 병사가 자기 눈으로는 천안함을 보고 있었으면서 'TOD카메라로는 천안함을 따라가면서 촬영하지 않고' 카메라를 고정시켜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TOD 관측병이 천안함의 위급함을 몰랐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이유는 해군(2함대)이나 해병대 상급부대에서 ‘천안함을 정밀 관찰하라’는 지시(명령)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천안함이 좌초 후에도 일정시간(6분 이내) 동안 정상 운항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배가 파도에 가라앉을 것처럼 하다가 다시 솟아오르면서 계속 운항하는 경우를 숱하게 보고 사는데, 해안가에 사는 TOD 초병들 눈에도 천안함이 그렇게 보이면서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란 뜻이다.

 

만약에 해군사령부나 2함대에서 백령도 해병대로 천안함이 좌초에 의한 파공으로 위급한 상황이니까 구조에 협력하고, 집중 감시하라’고 통신명령을 보냈다면 천암함이 보이는 백령도 해병대의 모든 TOD초소에서는 천안함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잡았을 것이다.

 

 

 

 

[두 동강은 순식간]

 

그리고 TOD 초병이 눈으로 보고도 TOD 카메라로는 두 동강 장면을 놓쳤다는 것은 천안함이 순식간에 두 동강났다는 것을 입증한다.

 

천안함이 두 동강난 참사는 상식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순식간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달 밝은 달밤에 880m 거리밖에 안 되는 TOD 초소에서 관측병이 눈으로 보고도 배가 두 동강나는 상황을 잡지 못하고 카메라 앵글을 돌린다고 허둥댔던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그 배가 (양손을 들어 보이면서) 이렇게....... 에에....... TOD를 찍는 병사가 배가 이상한 모습이 되니까 그거(두 동강나는 장면)를 타이밍을 놓쳐가지고 그게 안 찍혔습니다. 그러나 그 병사 말에 의하면 그 앞에서 물기둥 같은 걸 본 것 같다고 하는데, 그 자체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밝혔던 것이고,

 

그 배가 (양손을 들어 보이면서) 이렇게....... 에에....... TOD를 찍는 병사가....... 배가 이상한 모습이 되니까”하는 상황은 침수된 함미 부분이 가라앉으면서 함수가 물 위로 비스듬히 솟아오른 모습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88미터 길이의 배가 24미터의 수심에서 침수에 의해서 선미(함미)가 가라앉으면 선수(함수)는 자연적(과학적)으로 솟구칠 수밖에 없으니까!

 

 

보다 더 정확히 설명하면,

여기서 우리가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부분들은 -

 

그 배가 (양손을 들어 보이면서) 이렇게....... 에에....... TOD를 찍는 병사가 배가 이상한 모습이 되니까”라는 말에는 천안함이 두 동강나기 전에 배가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고,

 

“그거(두 동강나는 장면)를 타이밍을 놓쳐가지고 그게(두 동강나는 장면이) 안 찍혔습니다.”라는 말에는 천안함이 이상한 모습(함미가 가라앉고 함수가 비스듬히 솟아오른 모습)을 보인 순간 곧바로 뒤에서 밀려오는 너울파도에 순식간에 부러지고 말았다는 찰나적인 의미가 숨어있는 것이고,

 

그러나 그 병사 말에 의하면 그 앞에서 물기둥 같은 걸 본 것 같다”는 말에는 천안함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나서, 두 동강이 나면서 물기둥(물보라)이 일어났다는 것으로, 시간적인 순서숨어있는 것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의 이실직고 속뜻]

 

그러니까 2010.4.2. 국회에서 천안함관련 긴급현안질의 때김태영 국방장관의 이실직고를 정리하면 -

 

만약에 어뢰에 의한 폭발이었다면 물기둥이 먼저 솟으면서 천안함이 이상한 모습으로 되면서 두 동강이 났어야 순리적인데,

 

천안함이 이상한 모습이 된 후에 두 동강이 나면서 물기둥 같은 걸 본 것 같다는 말은 천안함이 어뢰에 의한 공격으로 두 동강난 것이 아니라,

 

천안함은 침수에 의해 함미가 가라앉으면서 상대적으로 함수는 수면위로 비스듬히 솟아올라 이상한 모습을 보인 상태에서, 뒤에서 밀려오는 너울파도에 두 동강나면서, 부러진 함수가 수면 위로 떨어지면서, 물기둥 같이 보이는 물보라를 일으켰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1분 만에 가라앉아버린 함미]

 

국방부장관의 말을 빌자면 배가 이상한 모습을 보인 것을 보고 TOD 초병이 카메라를 돌려서 촬영을 서둘렀는데,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고 말아서 그 장면은 잡지를 못했고, 급하게 오른쪽으로 더듬어가는 TOD 카메라는 이미 함미가 대부분 가라앉은 상태의 천안함을 발견하지만 마지막 남아있던 함미마저 카메라에 잡힌 지 1분여 만에 가라않고 만다. 이것은  두 동강나기 전에 이미 함미가 대부분 가라앉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함미를 건져 올리자 외부는 페인트도 벗겨지지 않았을 만큼 말짱했는데, 수많은 침실과 격실로 이루어진 벌집형태의 함미가 이미 가라앉아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렇게 순식간에 가라앉아버릴 수는 없다. 함수는 그 이후로도 3시간 이상 떠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와 같은 상황은 국방부 브리핑에서 처음에 밝힌 것처럼 좌초에 의한 파공으로 침수에 의해 이미 선체가 대부분 가라앉아 있는 상태에서만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

 

또 두 동강난 천안함이 TOD카메라에 잡힌 지 1분여 만에 함미가 가라앉아버렸다는 것은 함수의 안전한 곳에 들어가 있던 생존자들도 대부분 함미를 보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동강나기 직전에

상갑판의 마스터 정도에 대피해 있었을 생존자들은

비스듬히 솟아오른 함수 때문에

몸을 낮추고 벽에 기대거나 무엇인가를 잡고 있었을 것인데...

 

꽈과과쾅~ 굉음과 함께....... 두 동강나면서....... 동시에 전기가 나가면서 시력이 어둠에 적응하기도 전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함수가 역V자를 그리면서 앞으로 처박혔다가....... 다시 앞뒤로 출렁거리면서 수평을 잡으려던 찰나에....... 왼쪽에서 밀려온 연안파에 함수가 오른쪽으로 90˚도 떨어졌다가....... 온갖 집기들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공포의 어둠 속에서....... 90도로 넘어진 탓에 벽이 되어버린 바닥을 타고....... 이제는 바닥이 된 선체 좌현의 외벽으로 기어올라 나왔을 때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함미는 가라앉아 없어지고 말았을 테니까!.......

 

그 경악, 참담, 허망....... 그리고 죄책감.......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이 부분에 대해서 천안함의 생존자인 정종욱 상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 그러나 (함미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바다에 달빛이 반짝이는 걸 보고 함미가 (절단돼)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지금부터는 두 동강 이후의 상황]

 

지금부터는 다시,

우리가 TOD 동영상으로 본 이후의 화면들이다.

 

  

 

아래 그림은

함수가 시계방향으로 180˚로 회전한 이후의 모습이다.

 

  

   

이 상태에서 함수에 타고 있던

58명의 승조원들이 해경에 구조된 것이다.

 

90도 오른쪽으로 엎어진 함수의 실내에서 생존자들이 기어 올라와 선체의 좌현 외벽에 모여들 때, 닻에 걸린 함수가 조류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반 바퀴 180˚ 회전을 한 직후에 곧바로 팽팽해지면서 고정될 때....... 지휘관들이 본부와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생존자들은 최소한 죽음의 공포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58명의 천안함 생존자들은‘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두 동강난 후에 백령도 동남쪽 장촌 백사장 앞 1.1km 앞바다까지 7km 정도를 조류를 타고 떠내려 온 후에 구조된 것이 아니라’ 장촌백사장 앞 1.1km해상에서 두 동강난 후에 닻줄에 걸려서 떠내려가지 않은 덕분에, 사고지점에서 바로 구조됐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면에 함수와 달리 닻줄이 없는 함미는 조류를 타고 떠내려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용트림바위 쪽으로!

 

 

 

 

[다시 떠오른 함미]

 

그런데 영원히 가라앉아버린 줄로만 알았던 함미가 그 당시에 다시 떠올랐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래사진들은 2010.4.1. 해경이 공개한 두 번째 동영상에서 캡처한 사진들이다.

 

 

  

그 당시에 모든 언론이 저것은 함수라고 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저것은 함미였던 것이다. 위 사진들은 천안함의 함미 오른쪽 우현 끄트머리 부분이다.

 

TOD 동영상에서는 사고 직후에 1분여 만에 가라앉아버렸던 함미가 해경의 카메라 동영상에 다시 잡혔다는 것은 가라앉았던 함미가 다시 떠올랐다는 뜻이다. 곤두선 채로!

 

 

이제 함수와 함미를 건져올렸으니까

그 사진들과 직접 비교 확인해보시라. 

 

천한함에는 군함번호 772가 4군데만 적혀 있는데, 함수 양쪽 닻 밑에 좌현과 우현에 적혀 있고, 함미에는 사각 진 모퉁이 앞에 좌현과 우현 양쪽으로 적혀 있다.

 

 

  

그런데 해경이 사고현장에 도착해서 함수에서 승조원들을 구하고 촬영한 동영상에 함미가 다시 나타난 것은 함미가 다시 떠올랐다는 것을 증명한다. 

 

건져낸 위의 사진에서 함수와 함미를 비교해보면 함수는 뾰족하고 오목한 곡선 부위 벽체에 772가 적혀 있고, 함미는 사각형으로 평평한 벽체에 772가 적혀 있는데, 해경의 동영상에는 사각형 평평한 벽체에 772가 적혀 있으니까 그것이 함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함미의 77(2) 글씨가 커 보이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

함미의 77(2) 글씨가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것은 빛의 산란 때문이다.

 

군함은 위장(은폐)을 위해서 외벽의 페인트를 기본적으로 빛이 나지 않는 무광의 페인트를 사용하는데 반해서 군대의 깃발과 같이 부대를 상징하는 군함의 번호만큼은 잘 보이라고 빛을 반사하는 백색의 페인트로 글씨를 쓰기 때문에  77(2) 글씨가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것이다.

 

사진을 많이 찍어본 분이라면 ‘카메라는 빛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해서 빛이 반사되는 물질은 빛의 산란(퍼짐) 때문에 그 부위가 퍼져서 넓게 보인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저 당시에 수많은 불빛이 떠오른 함미를 집중적으로 비추고 있는데, 함미의 77(2) 글씨가 유독 보이는 이유는 선체 외벽의 무광 페인트 가운데 유광의 백색 함 번호 글씨만 유독 빛에 반사되어 빛의 산란 차이 때문에 77(2)번호가 상대적으로 더 커져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위 사진들 중에서도 오른쪽 맨 위에 7자가 상대적으로 가장 크게 보이는데, 그것은 빛의 방향과 빛의 양에 따라 저 사진들 중에서도 글씨의 크기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더 예를 들면 이와 같은 경우는, 빛이 들어오는 밝은 곳에서 광택이 없는 오래된 동전들 무더기와 바로 막 나온 광나는 동전들 무더기를 사진으로 찍어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새 동전들은 사진을 찍어놓으면 화~하고 퍼지면서 실물보다 훨씬 더 커져 보인다. 보석이 빛나는 것처럼.

 

 

그리고 사고 다음날 장촌 백사장 1.1km 앞바다에

떠오른 함수의 진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데, 그것도 잠재울 필요가 있다.

 

 

 

건져 올려놓고 봐도

아래 똑같은 부위에 같은 손상자국들이 보인다.

 

 

 

사고 전의 사진과 건져낼 때의 사진과 건져낸 후의 사진에서 똑 같은 부위에 똑 같은 손상자국이 있다는 것은 사고 다음날 장촌 백사장 1.1km 앞에서 떠오른 함수가 천안함의 함수였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함수의 뱃머리가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적혀진 해경의 동영상에서 곤두선  77(2)의  선체가 ‘뾰족한 곡선 형태를 띤 함수가 아니라 네모반듯한 외벽의 함미일 수밖에 없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니까 해경이 함수에 올라탄 58명의 승조원들을 구조하고 난 다음에도 함미는 그 옆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다시 한 번 구조지점이 사고지점이였다는 것을 입증하고, 그곳에서 7km나 떨어진 백령도 서남방 2.5km 지점은 국방부가 조작해낸 사고지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해경이 천안함이 두 동강난 사고지점을 간접적으로 공개했다는 것이고, 함미가 곤두선 해경의 저 동영상은 '천안함은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두 동강나는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구조지점인 백령도 동남쪽 장촌 백사장 1.1km 해상에서 두 동강났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증거자료인 것이다. 이것만 가지고도 법원에 가면 정부와 국방부의 거짓말을 밝혀낼 수 있다. 판사가 미치지 않은 이상은!

 

그런데도 우리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국방부의 주장처럼 천안함은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두 동강난 것’이라고 믿고 있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언론에 이성을 세뇌당한 때문이고, 자기가 본 것을 스스로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믿는 것을 같이 믿는 것이 이롭다’는 대중심리 때문이다. 자아의 주체성이 부족해서.

 

만약에 지금이라도 어떤 공중파 방송에서 ‘알고 보니, 저것은 함수가 아니라 함미였다!’고 한번만 방송을 내보내면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고 말 것이다. 그 이후에 더 무서운 일들이 벌어졌으니까!

 

 

아래 동영상 주소를 클릭하면 함미가 곤두선 깨끗한 화면들을 충분히 볼 수 있다.

 

해경이 공개한 깨끗한 동영상 보기/한국일보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330145404685&p=hankooki

 

깨끗하고 큰화면으로 동영상 보기/중앙일보

http://tv.joins.com/channel/tv_player.asp?mov_id=2010_0330_142323&categoryID=101001001

 

 

 

 

 

[함미는 어떻게 다시 떠오를 수 있었을까?]

 

가라앉은 함미의 뒷부분이 떠오른 이유는 부러진 앞쪽에서부터 물이 밀려들어갈 때 ‘실린더 안의 피스톤처럼’ 남아있는 공기를 뒤로 밀쳐 모았거나 선체 안에 있던 가스가 뒤쪽으로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천안함은 디젤엔진(기관)과 가스터빈(기관)의 두 개의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두 동강난 함미 부위에 가스터빈 기관이 있었다. 그런데 건져내고 보니 가스터빈이 손상을 많이 입은 상태에서 떨어져나가고 없었는데, 이것은 천안함이 두 동강나면서 가스통이나 가스관에 들어있던 가스(LPG)가 급격히 새어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가스들과 원래부터 있던 공기는  ‘실린더의 피스톤처럼 완전 밀봉상태로 밀고 들어오는 때문에 함 내의 통로를 타고 뒤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풍선을 날려 보내기 위해 주둥이에 가스를 불어넣는 것처럼. 그러면 빈 공간의 격실로 이루어진 함미 끝부분의 부력이 커져서 물 위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아래 그림들처럼 곤두선 채로!

 

 

 

이런 상황은

침몰 직후부터 이루어졌을 것이다.

 

9시 15분에 좌초되는 직후부터 가스가 새어나왔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최소한 두 동강 직후부터는 배관이 터지면서 급격히 가스가 새어나왔을 것이고, 침수로 이미 대부분 가라앉은 상태의 함미의 침몰도 급격히 이루어져서, 통로를 밀폐시키면서 밀고 들어온 물이 쒜엑~하고 새어나오는 가스와 공기를 바로 뒤쪽으로 밀어붙였을 테니까.

 

이때 안에서 사람들이 격실 문을 닫았다 해도 가스와 공기는 밀려들 수밖에 없었다. 국방부가 “69시간 생존할 수 있는 공기가 있어서 생존 가능성이 있다”고 쇼를 하다가 그 시간 지나고서는 “각 격실마다 환기통이 있다.”고 미치게 하는 고백을 했으니까.

 

그렇다면 함미는 두 동강난 부위가 물속에 가라앉으면서부터 뒤쪽으로 몰려든 공기와 가스 때문에 가라앉아있던 프로펠러 부위가 점점 떠올라 앞뒤의 높이가 역전되면서 수면 아래서는 조류를 타고 떠내려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그 당시 사고지점에서의 조류는 용트림바위 쪽을 향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제3부표를 설치해놓고 수색작업을 하다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던 용트림바위 앞으로!

 

 

 

 

[조류는 용트림바위로 흘렀다!]

 

여기서 우리는 천안함이 두 동강난 사고지점의 사고당시 조류를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때 한번 떠오른 함미는

조류를 타고 용트림바위 쪽으로 떠밀려갈 수밖에 없었다.

 

해경의 발표에 의하면 ‘해경 501호가 10시15 분에 사고해역에 도착했을 때 해군 함정 4척이 침몰 중인 천안함과 주변을 서치라이트로 비추고 있었고, 501함은 바로 구명보트 1, 2호를 투입하여 승조원 구조에 나섰는데, 11시 35분까지 56명의 승조원을 구조해 냈고....... 이때 옆에 있던 어업지도선도 2명의 승조원을 구조해내서....... 총58명의 승조원을 구조를 마친 다음....... 새벽 2시가 넘도록 주변 수색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해경의 동영상에 나타난 함미는 함수에 타고 있던 58명의 승조원들을 먼저 구조한 이후에 찍은 화면인데, 해경은 11시 35분까지 58명 승조원들의 구조를 마치고 새벽 2시경까지 주변 수색작업을 했다고 하니까, 저 화면은 11시 35분 이후부터 새벽 2시경 사이의 화면이 된다. 사고 후 2시간이 더 지난 이후로 찍은 동영상이라는 뜻이다.

 

천안함이 두 동강난 사고지점과 장촌 포구 바로 서쪽에 있는 용트림바위와는 1.2km 정도의 거리이다. 그리고 저 인당수해역은 평상시에도 조류 속도가 3노트 정도(시속 5.6km 정도) 된다.

 

그렇다면 두 동강난 이후로 다시 떠오른 길이 35m 정도의 함미는 부러진 부위를 바닥에 질질 끌리면서 곤두선 채로 용트림바위 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용트림바위 앞바다까지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고 이후에

한주호 준위가 순직한 다음에 KBS뉴스 카메라에는 -

 

제3부표가 있던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판자 같은 것들을 싣은 헬기가 어디론가 날아가는 장면이 잡혔는데, 그것은 선체 외벽의 철판들이었다.

 

  

헬기 사진출처 : http://news.kbs.co.kr/tvnews/news9/2010/04/07/2076673.html#//

 

 

위 헬기에 사진은 KBS뉴스에서 캡처한 것인데, (지금은 인터넷에서 저 동영상이 지워졌지만) 동영상이 살아있을 때 자세히 살펴보니 헬기로 메달아가는 저 물체는 선체 외부의 철판들이었다. 길쭉길쭉 네모반듯한 패널(판넬)은 직선부위의 곧은 철판이었고, 구부러진 패널은 곡선부위의 일그러진 철판이었다.

 

헬기에 메달아가는 납작하고 길쭉하면서 낭창낭창하면서 날아간 물체가 어떻게 철판이냐는 것을 알 수 있느냐 하면,  YTN뉴스에 같은 물체가 나왔으니까.

 

천안함은 1989년도에 부산 영도에 있는 대한조선소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11.8mm 두께의 철판을 사용했다고 한다. 11.8mm 정도 두께의 철판은 수심 20m이상의 해저에서는 어떠한 조류에도 떠내려갈 수 없는데,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건져낸 철판을 메달아 어디론가 날아가는 헬기가 KBS뉴스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11.8mm 두께의 길쭉하고 무거운 철판이 용트림바위 앞바다까지 떠내려 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곤두선 35m 정도 길이의 함미수심 24m 정도의 해저에 두 동강난 부위를 질질 끌리면서 조류를 타고 용트림바위 근처까지 떠밀려갔다가, 바로 그 함미에서 ‘바로 위 YTN뉴스 사진에서처럼 덜렁덜렁 붙어있던’ 철판들이 떨어진 것들이라고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수는 두 동강난 다음 날 아침에 그 보다 훨씬 더 먼 장촌 포구 1.1km 해상에서 떠오른 것을 직접 확인했으니까, 그 철판이 함수에서 떨어진 것일 수는 없는 것이고.

 

 

그래서 종합하면

객관적으로 자연법칙상으로도 - 

 

그 당시 조류 방향 때문에 곤두선 함미는 용트림바위 앞바다로 떠밀려갈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에 증거물인 선체외벽의 철판이 나왔고, 사고 직후에 해경의 카메라에도 찍혔으니까....... 함미는 용트림바위 앞바다로 떠밀려갔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해경의 동영상을 보면

함미가 다시 곤두섰는데도 주위에선 모두들 보고만 있었다...

 

사진으로 보면 저 부분이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 저기에 나타난 함미의 폭이 9m 정도 되니까 솟아난 저 높이는 못해도 4~5m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웬만한 아파트 한 채 정도의 실내공간이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공기가 몰리면서 함미의 가장 뒷부분이 떠올랐을 수도 있었으니까, 어둡기는 하지만 (가스가 많이 찼다면 이미 질식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안에서 수십 명의 장병들이 고개를 내밀고 살아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영상에 보면 저 위로 올라가서 망치로 용접부위의 모퉁이를 내리쳐서 철판의 용접 부위를 떨어지게 하는 사람이 없고, 그라인더로 철판을 잘라내는 사람도 안 보이고....... 천안함의 함미를 건져 올리고 난 뒤에도 물 위로 솟아오른 저 부분이 말짱했다.

 

함수에 탄 장병들이 멀쩡한 것을 알았으면, 함미에 탄 사람들도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도....... 여러 척의 군함에서 불 켜놓고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함미에 있었던 46명의 장병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58명의 동료들과 천안함을 구하기 위해서 함수로 통하는 격실 문들까지 닫아놓고 쏟아져 들어오는 물들을 퍼내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는데.......그 와중에도 함미가 다시 떠올랐으니까....... 그 이후에도 해군은 “격실에는 68시간 동안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어서 생존 가능성이 있다!”고 난리를 피웠으니까........  죽어가던 46명의 장병들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었는데도....... 불만 켜놓고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국방부와 해군이 5일 후에나 도착할 수 있는 거제도에 있는 인양선을 불러놓고, 사고 이후에 68시간 동안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어서 생존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미치는 구조작업을 했던 것이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기만적인 언론플레이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천안함 함미에서 죽어간 46명의 장병들은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좌초 후에 침수 상황에서 함미에 들어간 것이 명령에 의한 것이든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든 군인이라면 당연한 도리라고 여기고 희생을 감수했다고 하더라도....... 46명이나 들어있는 함미가 다시 떠올랐는데도 4척의 군함에서 불 켜놓고....... 바로 앞에 있는 해병대 수색도도 투입 없이....... 어떠한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46명의 장병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숭고한 희생을 보여준 것이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당하는 전사자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 분들에 대한 보상은 전사자에 대한 예우라고 하면 안 되고, 국민들이 그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성금을 모아드린 것이고 국가가 손해배상을 했다고 해야 맞는 것이다. 젊음이 창창한 분들이었으니까.

 

이러한 상황을 명예를 생명같이 존중해야 할 많은 군인들이 알고 있었다. 죽어간 46명과 같은 배에 타고 있다가 살아난 58명의 천안함 생존자들,  4척의 군함에 타고 있었던 해군들, 해경 501호, 어업지도선, 그 근처 해안초소에서 수십 미터 간격으로 2인1조가 되어 야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던 백령도 해병대들, 그리고 지휘라인에 있었던 해군의 지휘관들까지.......

 

 

덧붙이면, 동영상에 나타나는 파란 불빛은

용트림바위 위에서 비추는 제논일 가능성이 높다.

 

저때 곤두선 채 떠오른 함미를 향해서, 위에서 아래로 내리비추는 엄청나게 밝은 푸른 불빛이 있는데 저 불빛은 용트림 바위 위에 초소에서 비추는 제논 불빛(탐색 경계용 서치라이트)이었을 것이다. 동영상에서 헬기 소리가 안 들리고, 해군의 군함에서는 저런 각도가 나올 수가 없으니까. 

 

만약에 헬기에서 내리비추는 불빛이라면 바닷물의 표면에 물결파가 일어야 하고, 불빛이 계속해서 흔들려야 하는데, 저 파란 불빛들은 전혀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것으로 보아서 용트림바위 위에서 쏘아주는 제논 불빛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사고 직후...]

 

두 동강나면서 오른쪽으로 90˚로 넘어진 함수의 넓적한 부위로 올라온 함장은 본부인 2함대와 휴대폰 통화를 했다. 사병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휴대폰은 수거한 상태에서. 이때가 9시 28~30분쯤 될 것이다. 함장은 5분 정도 후에 올라왔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해군은 11시에 백령도 서북쪽에서 북한을 향해 5분 동안 76mm 함포를 130여발 정도나 쏘아댔다. 사고지점에서 49km 남쪽에 있던 속초함에 A급 해상경계 태세를 내리고, 속초함을 북상시켜 함포사격을 명령했다고 한다.

 

 

 

 

이때 2함대에서 상부에 사격 명령을 요청했는데, 합참의장은 연락이 안 되서 김태영 국방장관이 사격을 허락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 해군은 천안함을 쏘고 달아나는 잠수정인 줄 알고 함포사격을 했는데, 잠수정이 아니라 새떼였다고 변명했다.  “물속으로 도망가는 잠수정인줄 알고 쏘았는데......... 하늘로 날아가는 새떼였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경은   10시15 분에 사고해역에 도착해서 11시 35분까지 함수에 올라타고 있던 승조원들을 구조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백령도 동남쪽에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구조하는 동안에도 2함대에서는 속초함을 백령도 서북쪽으로 보내서 물 속으로 도망가는 잠수함을 잡기 위해 하늘로 날아가는 새떼를 향해서 5분 동안 135발 정도의 함포사격을 하는 불꽃놀이를 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극히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동영상으로 보고, 해경이 밝힌 것처럼 해군은 해경의 구조선이 도착할 때도 천안함의 구조는 하지 않고 주변에 둘러서서 불만 비춰주고 있었는데.......  9시 22분에 사고가 나고 10시 15분에 해경이 도착할 때까지 그 바로 앞에 있는 1~2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해병대 수색대를 안 불러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정확한 사고 장소를 알았으니까, 천안함이 두 동강난 1.3km 앞에 있는 장촌 포구에서 해병대 수색대가 달려 나오면 1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데, 해병대들은 상륙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부대라 각 분대마다 고속정 고무보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9시 22분 이후로 52분 후에 해경이 도착할 때까지 그 바로 앞에 있는 해병대 수색대를 안 불러냈다는 것은 무었을 의미하겠는가?

 

해병대 TOD 초병은 880m 앞에서 천안함이 두 동강나는 장면을 목격했으니까 바로 상급부대로 연락을 해서, 최소한 그 이후로는 해병대에서도 천안함의 사고 내용을 알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군부대의 유기적인 특성상 천안함 같은 1,200톤 급의 초계함에는 1백 명 이상의 아군이 타고 있는 줄 알 수밖에 없으니까....... 바로 5분 대기조를 출동시켜서 고무보트들을 몰고 나오면 1~2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는데 1시간 가까이 해병대 수색대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무었을 의미하겠느냐고?

 

해병대가 안 나온 것은 상급부대의 명령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군 함정 4척한테도 구조 대신 진을 짜서 서치라이트만 비추게 한 것이었고. 마치 적의 기습에 대기하는 것처럼.  그러면서 49km 남쪽에 있는 속초함을 백령도 북서쪽으로 보내서 함포사격을 하라고 했던 것이고.

 

해군(2함대)에서는 사고 직후부터 구조보다는 책임회피를 위한 작업에 사활을 걸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본부인 2함대에서 최초로 작업했다것을 알 수 있고, 2함대에서는 처음부터 국방부장관까지 속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군(2함대)이 국방부장관까지 속였다는 것은 -

 

순간적으로 한두 발의 함포 사격도 아니고 5분 동안 130발이 넘는 함포를 북한을 향해 쏘았다는 것은 자칫 전쟁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선제공격은 국민의 합의 하에 대통령의 결정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고,  거짓말에 속지 않고는 아무런 준비도 안 된 국방장관이 그런 사격 명령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 속으로 도망가는 잠수정을 잡겠다고 하는데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떼를 향한 함포 사격을 허락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해군에서는 함장과 휴대폰 통화 직후부터 작업에 착수했를 것이다.  천안함 사고 직전에 남쪽에 있던 속초함이 49km 정도를 북상하여 함포사격을 했으니까. 야간에 1시간 여만에 50km 가까이를 이동했다는 것은 천안함 사고 직후부터 최고속력으로 달렸다는 뜻이다.

 

 

그 상태에서.......

백령도에서의 상황이 언론에 전해졌고.......

대통령은 청와대 벙커로 들어가 국무회의를 소집했고.......

 

모든 정보를 해군이 독점한 가운데, 해군과 해경이 발표하는 사고지점이 다른 가운데, 다음날 아침 백령도 동남쪽 장촌 백사장 앞 1.1km 해상에 함수가 떠오른 것이다.

 

이것을 두고 해군에서는 ‘천안함은 백령도 서남방 1마일(약 1,800m) 해상에서 두 동강나는 사고를 당했다가, 함미는 그 자리에서 가라앉고, 함수는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조류에 표류하여 동남쪽으로 이동 후, 함수에 타고 있던 승조원들이 구조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함미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그리고 국방부는 해군의 정보제공에 의해 다시 사고지점은 백령도 서남방 1.8km 해상이 아니라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이라고 정정했다. 나중을 위해서 더 깊은 물속이 필요했던 것이다. 45m 정도의 수심.

 

해군이 함미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계속 우기자 언론과 국민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고, 그러다가 사고  3일째인 28일 저녁 늦게 국방부는 해군이 발표한 백령도 서남방 2.5km 정도의 해상에서 함미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날 3월 28일

국방부(해군)는 선체 인양 방법에 대해서 언론에 공개했다.

 

군은 선체에 공기주머니를 달고 공기주머니에 공기를 불어넣어 선체의 자세를 바로 잡은 다음,  해난구조대 요원들이 선체 밑바닥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크레인으로부터 이어진 체인을 연결한 뒤 선체를 끌어올리는 작업을 실시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날(3월 28일) 오후에 20~30톤을 인양할 수 있는 광양함이 사고해역에 도착했지만 선체를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광양함의 인양능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래서 군은 민간인양선을 부를 것이라고 했는데, 민간인양선이 거제도나 부산에서 도착하려면 5일 안팎으로 걸릴 것이라고.......

 

 

그 이후로 해군의 구조작업 모습들이 언론의 카메라에 잡혔다.

광양함은 올 때는 안보이던 밧줄을 걸치고 있는 상태에서.

 

   

합참은 그때 국방부의 이름으로 발표만 한 것이었고, 사실상의 정보는 해군이 독점하고 있었다. 이것을 정치권에서도 답답해했고, 언론에서는 청와대에서도 정확한 정보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했고.

 

 

그러던 차에 3월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백령도를 방문한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함에 방문했을 때도 해군은 사고지점을 백령도 서남방2.5km 해상이라고 보고했다. 해군과 대통령이 짜고서 저 장면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아니라면 해군은 대통령한테까지 거짓보고를 한 것이다. 해군이 대통령을 속였다면 해군 지휘부 이외에는 모두를 속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백령도를 방문한 그날 오후 3시 30분경, 수색 작업 도중 과로에 의한 잠수병으로 한주호 준위가 실신 후 사망했다. 한주호 준위는 대통령이 백령도를 방문한 그 시간에 순직한 것이다. 해군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상상이 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언론에 밝혀진

한주호 준위의 사망 장소는 용트림바위 앞바다였다.

 

   

 

언론의 카메라에는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기 전에 작업광경들도 잡혔다.

 

  

 

한주호 준위는 순직하기 전에 제3부표가 떠 있는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UDT(해군해난구조대)와 특수팀을 이끌고 685 성인봉함에서 수색구조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주호 준위팀이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함미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주호 준위가 순직한 다음에

KBS뉴스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故 한 준위 사고 하루 전인 지난달 (3월) 29일,

        UDT 동지회 회원들이 이곳에서 수중수색 작업을 할 때

        단순한 파편이 아닌 대형 구조물을 봤다는 겁니다.  

 

       구조물에는 문까지 달려 있었고

       그 안은 소방용 호스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녹취> UDT 동지회 회원 :

       “해치문을 열었고, 한 사람은 로프롤 잡고 있고,

        나는 해치 안에 들어가서... 5미터 들어가서...”

 

        이곳은 어제(4월 6일) 해군이

        길이 2미터의 파편 2개를 건져 올린 곳이기도 합니다.

        이 파편을 실은 해군 헬기는

        백령도나 인근 바다에 떠 있는 독도함이 아닌 남쪽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구조물이 무엇이었겠는가?

 

함수는 그곳에서 1km도 더 떨어진 바다 속에 잠겨있다는 것을 사고 다음날 아침에 떠오른 것을 국민들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함수는 아닐 테고, 두 동강난 천안함에서 함수 아니면 함미였을 것인데, 우리는 이제 해경에서 공개한 동영상에 뒷부분의 선체가 곤두선 함미였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한주호 준위가 그의 동료들과 문까지 달려있고 소방용 호수 등으로 가득찬 있는 공간이 있는 그 구조물에 “해치 문을 열었고, 한 사람은 로프를 잡고 있고, 나는 해치 안에 들어가서... 5미터 들어가서......”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그 구조물이 함미일 수밖에 없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해경의 동영상 공개]

 

이명박 대통령은 백령도에 다녀온 이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철저하게 원인을 규명하고, 원인이 규명되면 상대를 가지리 않고 엄벌에 처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백령도까지 가서도 진실을 듣지 못한 불만과 분노가 내포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자 4월 1일. 해경이 추가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거기에는 가라앉은 줄로만 알았던 함미가 곤두선 채로 떠오른 함미가 나타난 것이다. 해경이 두 번째 동영상을 공개한 것은 사고 후 6일만이었는데, 대통령의 공표가 큰 힘이 됐을 것이다.

 

해경 입장에서는 구조작업을 해줬지만 그것은 군의 문제라 사실에 대한 보고관계는 군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고, 국가기관의 업무특성 상 쉽게 나설 수가 없었을 것인데, 대통령이 백령도에 다녀와서까지 엄포를 놓는 것을 보고....... 자기들은 알고 있는 정보를 일부러 은닉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는 의지를 보여주려고 설명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함미와 제논 불빛이 나타난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청와대 입장에서 보면 책임의 당사자인 해군 지휘부가 잘못을 덮으려고 비밀을 유지한 때문에 해경이 동영상을 공개하기 전까지 '사고 이후 일주일 가까이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안보 공백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 중요한 상황을 해경이 알고서도 청와대한테까지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노여움 때문에, 해경은 58명의 해군을 살려내는 훌륭한 일을 하고도 국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나 해경이 아닌 다른 정부기관으로부터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도 해경이 추가 동영상을 공개한 4월 1일 이후로

청와대와 국방부와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바로 천안함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다음날인 4월 2일 국회 천안함 관련 긴급현안질의에서 김태영 국방장관과 한나라당 국방위 소속 김동성의원 간의 질의응답을 보면 두 사람은 ‘천안함이 두 동강난 지점은 가장 가까운 육지의 TOD 초소로부터 880m 떨어진 지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국방부 장관은 그 상황들까지 상세히 설명했으니까!

 

이것은 그동안 해군에서 독점하고 있던 천안함 관련 정보가 다른 조직으로 새어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경에서 동영상을 공개해버리자, 해군에서 국방부에 스스로 이실직고 했을 수도 있고, 국방부와 한나라당이 해경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해병대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수도 있고!

 

 

만약에 그때

4월 2일 국회 천안함 긴급현안질의에서 -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천안함의 사고지점은 가까운 육지의 TOD 초소로부터 880m 지점이라는 것을 시인하면서 그 자세한 상황을 설명했을 때,

 

변호사 출신의 김동성의원이 “천안함 두 동강지점이 육지로부터 880m 정도면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두 동강났다는 지금까지의 국방부 발표는 거짓말이지 않느냐? 정확한 사고지점과 사고 상황을 밝히라”고 해서,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국회에서 정확한 사고지점과 사고 상황을 밝혔다면....... 천안함 참사는 그때 깨끗이 밝혀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김동성의원이 갑자기 사고원인을 어뢰폭발 쪽으로 말머리를 돌려버렸고, 국방장관의 저 중요한 이실직고를 더 이상 추궁하는 국회의원들이 없었다. 언론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그 이후로는 천안함 사건이 정치적인 문제가 되고 만다. 믿고 싶은 대로 믿어주면 좋은 문제가 되고 만 것이다. 때로는 눈물도 보이고... 때로는 결의도 보이고... 때로는 야바우 과학까지 불러들이고... 양심도 버리고...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그 틈새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알고 보면 그날 국방부장관은 초선의원인 김동성의원한테 군기를 잡힌 것이다. 변호사 출신인 김동성의원은 밝힐 수 있는 진실을 덮어준 것이고. 그리고 그날 이후로 약점을 잡힌 군은 계속해서 정치권에 이용당하게 되고 만다.

 

그 결과, 여야 할 것 없는 정치인들과 언론이 천안함 사고지점 880m를 덮어주면서,  국회에서 천안함의 사고지점은 880m라고 이실직고를 한 국방장관을 앞세워서....... 다시, 천안함 사고지점은 백령도 서남방 2.5km 지점이라고 밀고 나가게 해서.......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분들의, 천안함 참사와는 실질적으로 관계가 없는  군인들의 명예까지 개가치 만들어버린 것이다. 엮이고 엮이게 만들어서.

 

70만의 수장인 국방부장관 입장에서 볼 때, 사고지점이 백령도 서남방 2.5km가 아니라 880m라는 것을 이실직고하고 그 상황을 어렵게 어렵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초선이 갑자기 이야기 초점을 어뢰 쪽으로 돌려버릴 때  정치권에서 군의 약점으로 모가지를 잡는다고 생각이 들면서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까?

 

4월 2일 국방부장관이 국회 천안함 긴급현안질의에 불려나와 정치권으로부터 군기를 잡힌 이후의 천안함 사건의 진행은 그 표면적인 실행은 군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인 쇼가 개입되게 된다. 정치권과 언론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큰 떡을 두고 엠바고를 형성하게 되고. 

 

정치권과 언론이 엠바고를 형성했다는 보는 것은 똑똑한 초등학생 수준이면 밝힐 수 있는 조류방향TOD 초소 위치사고지점해경의 동영상에 공개된 함미 같은 문제들을 덮어두고  공론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령도 서남방에서 건져낸 멀쩡한 함미]

 

사고를 당한지 17일 만인 4월 12일, 함미는 국방부 발표 사고지점인 백령도 서남방 2.5km 정도 해저에서  들어 올려진 상태에서 수심이 낮은 백령도 남동쪽으로 일단 이동했다가, 사고 20일 만인 4월 15일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인양되었다.

 

 

그런데 선체 외부의

상갑판과 포신의 페인트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것은 함미가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부터 건져낸 자리까지 떠서 움직였다는 것을 뜻한다. 조류에 떠밀려 바다 밑바닥에서 뒹굴면서 갔다면 포탑이 저렇게 깨끗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두 동강난 부위의 양쪽에는

거의 똑 같은 자리에 인위적인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물속에서는 부력 때문에

물체의 비중이 육지에 비해서 6분의 1로 줄어든다.

 

1200톤의 천안함에서 두 동강난 함미는 4~500톤 정도 나갈 것인데, 7~80톤 정도면 물속에서 함미를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바다에는 하루에 조류가 두 번씩 있는데, 그 해역의 조류가 보통 3노트 정도 된다. 3노트면 시속 5.6km 정도인데, 35m 정도의 두 동강난 함미의 양쪽 철판에 구멍을 내서 그곳에 밧줄을 끼워 넣고, 길쭉한 포신같이 걸림 쇠가 있는 여러 곳에는 공기주머니들을 달아서 공기를 주입하고, 잡을 때가 없는 한쪽 밑으로는 튼튼한 로프를 넣어놓은 다음에.......

 

조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를 때, 뒤쪽에 크레인이 있는 큰 배가 크레인으로는 함미의 뒤쪽을 들고 선체 뒤쪽 외벽에 걸쳐진 밧줄로는 함미의 앞부분을 들어서....... 큰 배 밑에서 함미를 해저에 닿지 않을 정도로 살짝만 들어서....... 조류를 따라, 조류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측면 장력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국방부에서 밝힌 공기주머니 채우기 방식을 취하면, 2~30톤 정도만 들어 올릴 수 있는 크레인이 있는 길이가 긴 배만 있으면 수심 24m 정도에 가라앉아있는 35m 정도 길이의 무게 400톤 정도의 함미를 물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쓰기가 곤란하다.

 

 

 

 

[매직 1번 어뢰]

 

이후로 천안함 참사는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되고 말았고,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방부에서는 “북한 고유의 고유한 글씨체의 어뢰를 발견했다”는 발표했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부인할 수 없는 물증을 제시하겠다!”고 힘을 실었다.

 

 

 

그래서 혹시나 주물에 음각이나 양각이 된 북한의 고유한 서체가 나올 줄 알았는데, 설마! 아!....... 파란색 매직으로 어떤 개인의 필체로 그 얼마 전에 써놓은 1번설마 대통령이란 분이 그 ‘부인할 수 없는 물증’이라는 것이 파란색 매직으로 철판의 녹물 위에 써놓은 파란색 1번이라는 것을 보고를 받고도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을까? ....... 그 명박한 감각과 배짱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파란색 매직1번 북한산 어뢰 쇠뼈다구를

찾아내는 과정에 대해서 언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천안함 사건의 증거물을 채집하는 채집단장인 최두환 육군중령이 합조단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을 때 어뢰의 잔해물이 떨어져 있을 곳이 폭발 원점으로부터 30∼40m 근처가 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폭발 원점을 중심으로 조류를 고려해 어선을 운항했고 어선의 진행방향과 투망의 방향이 차이 나는 것을 고려해 이동하다가 약간 위쪽(폭발 해역 북쪽)에서 증거물을 발견했다.”고.

 

동아일보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00521/28500312/1/

조선일보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21/2010052100133.html

 

 

 

그런데 우리는 이제

천안함은 사고지점 자체가 조작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파란색 매직 1번도 풀 수 있는 것이다.

 

최두환 육군중령이 “합조단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을 때 어뢰의 잔해물이 떨어져 있을 곳이 폭발 원점(백령도 서남방 2.5km)으로부터 30∼40m 근처가 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는 것은 -

 

합조단에서도 저 어뢰 쇠뼈다구는 물속에서 조류를 타고 사실상 떠내려갈 수 없는 물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누군가가 저 파란색 매직1번 북한산 어뢰 쇠뼈다구를 국방부 발표 허위 사고지점에 빠뜨려놓았다는 것을 합조단에서는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신통력’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방부장관이 실질적인 지휘자로 있는 민군합동조사단에서 ‘한번 빠트려놓으면 움직이지 못할 북한산 어뢰 뼉다구’의 위치를 해군과 상관이 없는 객관적으로 제3자인 육군 최두환 중령에게 정보를 제공해서 진짜 사고지점으로부터 7km나 벗어난 허위 사고지점인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저에서 매직1번을 찾아낼 수 있도록 매직(마술)의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렇다면  저 쇠뼉다구에 매직 1번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시라! 선거를 앞두고 매직1번은 정치적인 쇼였다. 그런데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왔다가 한순간 부하들의 잘못으로 망신을 당할 대로 당한 국방장관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었겠는가? 그 상황에서 매직1번을 결정할 수 있는 권위자는 딱 한분 계시다. 정치적인 감각과 배짱을 두루 겸비하신 분!  

 

 

 

 

 

[정리하면...]

   

천안함 참사는 -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의 동쪽 NLL을 넘나들면서

불법어업을 일삼는 180여척의 중국어선을 감시하기 위해서

 

사고당일인 2010년 3월 26일, 음력 2월 11일

둥근 달이 뜬 달 밝은 밤에

백령도 서쪽에서 백령도 남쪽을 지나 동쪽으로 이동한 천안함이

중국어선 감시 임무를 마치고 좌회전으로 유턴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다시 돌아오다가

 

9시 15분경

백령도 동남쪽 2.7km 해상에 위치한 연봉바위 주변 모래언덕에 좌초되어

본부인 해군 2함대에 좌초에 의한 파공으로 침수한다고 구조요청을 하고,

 

급하게 선수를 우현으로 돌려서

좌초지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서북쪽에 4km 정도 떨어진 장촌항(장촌 포구)으로 내달리면서 피항을 하다가,

 

좌초지점에서 2.7km 정도를 달렸을 때

장촌항을 1.3km 정도 남겨둔 상태에서

88m 길이의 천안함이

파공으로 침수된 함미가 수심 24m 정도의 모래밭 해저에 가라앉고 말아,

 

함미는 해저에 가라앉고

함수는 수면 위로 20˚ 정도의 각도로 비스듬히 솟아오른 상태에서,

 

천안함은 조류에 떠내려가는 것을 막고

파도와 조류에 배가 전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급하게 함미 우현 닻을 내렸는데,

 

그때, 9시 22분 경!

동쪽(동남쪽)에서 서쪽(서북쪽)으로 진행하던 인당수의 조류를 타고

1초마다 함수의 뒤쪽에서 몰려드는 너울성 파도가

경사진 천안함의 함수를 타고 올라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천안함은 좌초 시 손상을 입은 선저의 파공 부위가 순식간에 부러지면서

두 동강이 나고 말았는데.......

 

천안함이 함미가 가라앉으면서 함수가 치솟는 광경을

사고지점으로부터 동북쪽으로 880m 정도 떨어진 TOD 초소에서

해병대 초병이 자기 눈으로는 직접 확인하였으나

TOD 카메라로는 잡지 못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천안함이 좌초에 의한 파공으로 침수된다고 구조요청을 하였으나

해군(2함대)에서는

해병대에 구조요청(구조협조 명령)을 하지 않았거나

구조요청을 했는데도 해병대가 협조를 안 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천안함은 두 동강나면서

수면 위로 떨어지는 50m 정도 길이의 함수가 역 V자 모양을 하고 떨어지면서

물기둥이 아닌 물보라를 일으킨 다음 평형을 유지했는데,

이것도 TOD 초병이 직접 눈으로 확인을 했고.......

 

천안함의 함수가 평형을 유지하려는 순간

항시 바다 쪽에서 육지 쪽으로 밀려드는 연안파도가

두 동강난 함수의 좌측을 강타하여

함수는 오른쪽으로 90˚ 각도로 넘어지고 말았고.......

 

이러한 상황들이 너무나도 순간적으로 벌어지고 말아서

함수의 함교에 피신해 있던 생존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넘어진 함수의 함교에서 기어올라

갑판처럼 평평해진 함수의 좌현 철판 위로 몰려들었을 때는

함미는 이미 거의 가라앉아버린 상태였다.

 

함미가 사고 후 불과 3분여 사이에 거의 가라앉아버릴 수 있었던 것은

두 동강나기 전에 이미 침수로 대부분 가라앉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58명의 생존자들은 함수의 함교에 있었고

46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들은 함미에 있었는데,

9시 15분에 최초 상황이 발생하여

9시 22분이 조금 못되어 두 동강나기 직전까지 약 6분 정도 사이에

피신할 사람들은 안전한 함수의 함교로 피신하고

침수를 막기 위해서

함미의 선저에서 배수펌프로 물을 퍼내는 사람들이 구분되어 있었다.

   

함미에서 죽어간 46명의 장병들이

대부분 기술직인 부사관(하사계급)들이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상황에서 침수를 막기 위해서는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퍼내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는데

배수펌프와 소방호수로 물을 퍼내는 것이었고,

이 부분은 기술 분야이다.

 

그래서 함장은 극도의 위험한 상황에서

가능한 많은 장병들을 안전한 함교로 피신시키고

배도 구하기 위해서 기술직들을 위험에 내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이 하사계급이었던 46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들은

그 위험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명령에 따르면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릴 각오를 감내했다는.......

그 군인정신, 희생 봉사 정신을 우리는 알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도 못했던,

너무도 순식간에 꽈과과꽝~하는 굉음과 함께 배가 두 동강 나버리고

생존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넘어진 함수에서 평평한 곳을 찾아올라왔을 때는

방금 전까지 같이 생활했던 46이 있어야할 함미가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그 경악, 그 참담, 그 허망, 그리고 죄책감.......

 

그래도 해병대는 나오지 않았다.

천안함이 두 동강난 그곳이 해병대부대들이 밀집된 해병대 앞바다였는데

해병대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벌어진 것이다.

해군지휘부에서  명령을 했건, 해병대의 자체 판단이었건 간에!

 

해병대는

전천후 기상 상태에서도 상륙과 침투를 전문으로 훈련된 특수부대인데,

해병대 중에서도 해병대수색대

침투 후 요인암살과 요인구조 같은 임무도 훈련된 정예부대인데.......

 

분대단위로 상륙을 하는 특수부대이다 보니

각 부대마다

수십 척의 동력 고속정 고무보트를 해안가에 보유하고 있는데,

해병대의 섬이라고 불리는 백령도에서

그것도 해병대의 부대들이 밀집된 해병대 앞바다에서

104명의 아군이 타고 있는 군함이 두 동강나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세계 최강의 해병대는 끝까지 사고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에 해군(2함대)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해경을 불렀다.

사고지점 자체를 사고지점과 다른 곳으로 불러주면서!

 

천안함으로부터

좌초에 의한 파공으로 침수된다고 구조요청을 받아놓고도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순식간에 46명이 타고 있던 함미가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는

휴대폰 보고를 받고는.......

 

해군에서는 그 책임이 두려워서

사고지점 자체를 옮겨버린 것이다.

 

천안함은 백령도 동남쪽 장촌 백사장 앞 1.1.km 정도

장촌항으로부터는 1.2km 정도

사고지점으로부터 동북쪽에 있는 TOD 초소로부터는 880m 정도

사고지점으로부터 서북쪽에 있는 용트림바위로부터는 1.2km 정도 떨어진

북위 37도 54분 41초, 동경 124도 40분 43초 해상(지점)이었는데.......

 

해군에서는 사고지점 자체를

해병대 부대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무인지경인

백령도 서남방 먼 바다로 2.5km 앞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

........

 

그리고 이후로 천안함 사건은

정치적인 문제가 되고 마는데......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이 또 거짓말을 낳으면서....

결국은 그 자리에서

그 얼마 전에 누군가가 철판의 녹물 위에 써놓은 매직 1번을 건져내게까지 된다. 

 

 

 

 

 

[군의 사기와 명예에 대한 당부의 말씀]

 

천안함 사건이 정치적인 당리당략에 이용되면서 더 이상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되지 말고 순리대로 조용히 마무리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고, 거짓말을 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명예와 사기를 먹고사는 군은 그 어떤 사회조직보다 정직과 신뢰가 중요합니다.

 

이번 천안함 사건은 끝까지 그 진실을 밝혀내서,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거짓말 했던 자들은 본보기를 보여서 군의 명예와 사기를 되찾기 바랍니다. 군은 몇몇 고위 지휘관들의 군대가 아니라 70만 장병들로 이루어졌고, 5천만 국민의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명예를 잃으신 분들도 자기 내면과 주변으로부터라도 먼저 명예를 되찾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의 국군은 어떠한 경우에도 명예와 사기가 실추되서는 안 됩니다. 군은 국가 최후의 보루이고, 통일이 되고난 후에도 사기충천 일당백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어야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일본의 4대 군사대국의 교통로에서 그 중심 역할을 하면서 강성대국의 길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몇번을 지웠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정리해서 다시 올리는 글인데...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퍼 나르기를 환영합니다.

 

    

출처 : 세라믹 인공어초 바다목장
글쓴이 : 윤승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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