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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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심야 FM>은 스토커 얘기다.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아나운서 겸 심야 FM 라디오 MC인 여주인공이 방송 중에 또는 길거리에서 못된 자들을 보고 무심결에 ‘쓰레기’라 부른다. 언제 어디서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스토커는 그의 아이콘인 그녀의 관심을 사기 위해(그는 여주인공으로부터 ‘영웅’ 칭호를 듣고 싶어 한다) 직접 그 쓰레기들 처리에 나선다. 심지어 그녀에게 ‘쓰레기’를 직접 처리할 기회를 준다. ‘쓰레기 처치’ 장면을 생중계까지 하려는 스토커가 원하는 건 더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다. 기자 나으리들도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악플보다 무플지옥이라, 나으리들한테는 팩트냐 정론이냐가 아니라, 관심을 끌어 ‘논란’을 만들고 그걸로 장사할 수 있느냐 마느냐가 중요하다. 각종 기사 제목 끝에 붙이는 ‘파문’이 그걸 입증한다. 파문을 일으키려고 스스로 그 표제를 뽑아 제낀다(이게 ‘파문놀이’로 발전해 지금도 유행하고 있다). 정론 가지고는 장사 안된다. 오직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트집 잡아야 관심 끌 수 있다. <아시아경제>에 최모 ‘기자’가 있다. 이 자는 마봉춘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대한 스토킹으로 밥벌이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최씨는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청 평을 싣는 놀라운 필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평이라는 게 대개 이렇다. “위기의 무한도전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무도 빙고특집 진부한 포맷 식상… 무도 WM7특집 시청률 급락 충격… 무도 연극도전, 재미+감동 실종, 두 마리 토끼 놓쳐… 무한도전의 한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 등등 그렇다면 <무도>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어떨까? 무도는, 예능을 뛰어넘어 하나의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는 게 중론이다. 왜? 새로운 포맷의 ‘웃음’을 끊임없이 테스트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웃음에는 값싼 슬랩스틱이나 말장난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웃음들도 숨어 있다. 무한도전은 그 숨겨진 웃음의 코드를, ‘빅재미’에서부터 ‘깨알’같은 잔재미를 통해, 왁자지껄함에서부터 무언의 침묵으로부터, 심지어 은은한 패러디와 팽팽한 스릴에서도 찾아낸다. 가령, 무도에서 출연자들은 서울 거리를 무조건 뛴다. 왜 뛰는지도 모르고 그냥 뛴다. 남들이 뛰기 때문에 뛴다. 안 뛰면 남들에게 뒤질 것 같아 뛴다. 이것은 매일 출근전쟁에 시달리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적 삶을 그린 것이다. 이 웃기지 않는 현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언뜻 낯설어 보이는 이 무도의 포맷에서도 웃음을 찾아낼 수 있다. 지난주에 방송된 ‘텔레파시’ 특집도 그렇다. 핸드폰을 빼앗긴 채 서로 뿔뿔이 흩어진 멤버들의 임무는 오직 눈에 뵈지 않는 서로의 교감만으로 한 자리에 모두 모여야 하는 것이다. 이 특집은 ‘군중 속의 고독’에 처한, ‘핸드폰 없으면 초조해지는’ 현대인의 비극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아시아경제>의 최씨는 이런 김태호 PD의 실험 정신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씨 기사에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씨들에게는 프로그램의 질과는 상관없이 시청률이 높으면 선이요 시청률이 낮으면 악이라는 거다. 시청률 높은 막장 드라마는 좋은 거다! 최씨는 문화적 상징성과 파급력은 높으나 시청률은 15 ~ 17%에 머물고 있는 무도를 까서 장사를 해먹을 수 있는 요령을 찾아냈다. ‘무도를 건드리면 뼈도 못 추린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무도는 충성도 높은 엄청난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는데, 최씨는 바로 이 마니아층을 직접 겨냥함으로써 이른바 파문과 논란을 만들어내고 클릭수 높여 장사하는 거다. 하지만 이렇게만 보면 너무 단순하다. 기자 나으리들이 이렇게 하여 궁극적으로 얻으려는 것 내지 지켜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새 문화 아이콘을 물어뜯음으로써 최씨들은 독자들, 즉 대중들을 자기의 통제 하에 묶여두려 한다. 지식권력들 - 최씨는 그저 지식권력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 은 대중들이 새 아이콘을 통해 배우고 느낌으로써 권력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것을 스스로 행사하려 나서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사회적 아이콘들은 최씨들이 지향하는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것을 구사한다. 때문에 최씨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이유 불문하고 건수를 만들어내서라도 물어뜯어야 한다. 프로그램이 막장이더라도 시청률 높은 게 장땡이라며 수준 높은 무도를 잡고 늘어지는 것은, 무도가 (최씨들에게는 두려운 것이 아닐 수 없는) 새로운 지향점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아이콘이 성공하면 낡은 것들은 고립되고 결국 권력을 잃는다. 찌라시를 자처하는 곳에만 이런 자들이 있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지식인, 특히 진보를 외치는 지식인그룹에서도 이 현상이 도드라진다. 예를 들어 <경향신문>의 이대근은 왜 이정희를 까고 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의 세습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핑계다.
무도와 최씨의 사례를 통해 유추해보면, 진짜 이유는 행동과 사고의 폭이 대단히 넓어 기존 민노당 지지자까지도 어리둥절케(좋은 의미에서!) 하는 그녀의 행보 때문이다. 상당히 까다로운 노무현지지자들마저 주목하게 만드는 그녀의 유연한 스펙트럼은, 성공할 경우, 이대근을 포함 진보신당류의 진보들을 고립시킬 수 있다. 이정희가 보여주는 정신 - 오랫동안 답보를 면치 못했던 진보 측의 새 아이콘이다 - 은 진보신당류의 그것과는 정확히 반대의 것을 표현한다. 이정희는 무엇보다, 시대적 인식을 같이한다면 누구와도 뭉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있을 범진보 통합의 이니셔티브를 이정희가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대근의 최근 스탠스는, 이렇게 되는 경우, 자기들만의 고고한 진보를 우아하게 표현한 ‘B급 진보’, ‘C급 좌파’들이 단순히 언어유희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진짜로 B, C급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표현이다. 진보신당류의 ‘거두’는 최장집이다. 이대근은 아류일 뿐이다. 촛불이 한창 시대적 아이콘이었을 때, 전혀 촛불을 들어보지 않았던 최장집이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서) 훈수를 둬 촛불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촛불이 할 일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라. 이제 대의민주주의에 넘겨라.”… 이 인터뷰를 대서특필한 경향신문은 곧바로 (한창 촛불이 진행 중일 때) ‘촛불 이후의 과제’라는 대담 특집을 연재했다. 즉, 그만하자는 거다. 촛불 정국으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받았던 경향의 이 행동은 촛불이 경향-진보그룹의 손을 떠나, 자체 동력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자기 말 듣지 않고 자체적으로 행동하는 점을 불쾌히 여긴 최장집이 ‘더 이상 촛불은 안 된다, 나의 말을 따르라’고 외치자 경향은 아차 싶었던 거다. 그래서 (지들이 앞장서 꺼내 든) 칼을 황급히 칼집에 꽂았다. 최장집은 DJ 시절 좆선의 혹독한 ‘사상검증’을 당한 인물이다. 싸우면서 정든다고 이제 최장집들이 그 짓을 이정희에 하고 있다. 재밌는 현상이다. 하는 방식도 수구들을 빼닮았다. 예를 들면 이거다. 좆선,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는 자들은 빨갱이가 아닌지 검증해봐야 된다.’ 이대근, ‘북한의 세습에 대해 입을 열지 않으니 가짜 진보인지 확인해봐야 된다.‘ (햐, 하다 보니 이 논법 흥미진진하다. 끝없이 이어진다. 부시, “대 테러리즘의 성전에 동참하지 않는 자는 모두 테러리스트다.” 약간 말을 바꿔, 떡찰, ‘돈을 받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으니 돈을 받은 거다.’ 가카,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니 북한 짓이 맞다.’…) 이정희 이전에 최장집-이대근들이 가장 격렬하게 비토 놓은, 즉 그자들과 정확히 정반대되는 지점에 있던 아이콘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 아이콘을 잘 알고 있다. 왜 그들은 스토커마냥 이 아이콘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나? 그것도 수구들과 똑같은 스탠스로. 이 질문의 답도 이미 나왔다. 스토커들의 전성시대다. 스토킹의 상대인 아이콘들보다 더 각광받을 태세다. 스토커들은 스토커 대상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는 나머지 아이콘이 만들어진 시대적 환경, 그 아이콘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지향점에는 관심 두지 않는다. 그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오직 스토킹하는 것뿐인데, 문제는, <심야 FM>에서 볼 수 있듯이, 관심을 받을수록 스토커들은 희열을 느끼면서 더욱더 들러붙는다는 거다. 스토커들은 아예 무시하고 제 갈 길 걷는 게 낮다.
초모룽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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