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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 노무현 그리고 손학규

순수한 남자 2010. 10. 20. 10:35

김정길, 노무현 그리고 손학규
번호 208479  글쓴이 나사랑 (nasarang)  조회 147  누리 9 (25-16, 3:3:1)  등록일 2010-10-20 09:41
대문 1


김정길, 노무현 그리고 손학규
(서프라이즈 / 나사랑 / 2010-10-20)


요즘 손학규 씨 진영이 마음이 다급한가 봅니다. 말도 안 되는 것들을 가지고 그걸 펙트라 치장하고 손학규 씨의 전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네티즌들을 호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솔직히 손학규 씨가 지난 전당대회에 나갈 당시에도 저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손학규 씨가 당대표가 되든 그 어느 누가 되든 결과는 뻔하니(별 신뢰할 당대표 후보가 없으니) 신경 쓰고 말고 할 이유가 없었지요. 더욱이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이른바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되면서 손학규 씨가 당대표로 추대되는 것을 보고 아예 한나라당 3등이 당대표로 거들먹거리는 그 꼴이 보기 싫어 아예 나 스스로 20년이 넘게 지켜온 정통야당 민주당의 당적을 버렸으니 제 입장에선 욕이 나오는 그런 손학규 씨이기도 하지요.


‘팔색조’ 손학규

정치인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걸어온 시간들을 보고 평가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아마 그 사실을 알기에 손학규 씨의 지지자들은 끊임없이 손학규 씨가 민주개혁세력이라 포장하면서 이전 그의 학생운동 경력과 한나라당 내에서 개혁세력의 선두주자였다는 사실을 설파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 이 손학규 씨의 학생운동 경력은 당시 학생운동을 같이하였던 분들에게 그리 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손학규 씨의 학생운동 경력을 표현한 것이 최근 시사인 161호(10/16일자) 52,53페이지의 팔색조라는 만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 시사IN

학생운동 막바지 시점… 학생운동권이 완벽히 소멸되기 직전의 가장 곤란한 시점인 1981년에 손학규 씨는 영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진정한 민주화 세력들이 피를 흘리며 아파하며 고전하던 1981년부터 손학규 씨는 영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따느라 불철주야 코피를 흘렸지요. 당시 남아있던 같이 숨쉬기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손학규 씨에 대해 가진 감정이 어떨지는 미루어 짐작할 일입니다.

저는 손학규 씨의 영국행이 이른바 기득권 계층들의 습성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초반에도 그런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의사집안의 친구였지요. 그 친구는 법대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법대에서 고시를 준비하여야 할 친구가 스터디를 하고 시대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니 우리들 눈에는 생경했지요. 하지만 거리에 나설 때면 급작스레 움츠리고 그리고 6월항쟁이 시작되고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친구…. 결국, 그 친구는 현재 잘나가는 사업가가 되어 있습니다. DJ 정부 당시부터 이따금 연락이 와서 밥이나 한 끼 하자고 보채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뿐 아니라 친구들의 시각은 따갑습니다. 이전 숨쉬기 운동 경력이 있는 친구들이 혹시나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친구들의 인맥으로 자신의 사업에 보탬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그 기회를 노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친구를 뒤에서 비겁하게도 ‘배신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참 나쁜 우리들이지요.

손학규 씨는 김영삼이 집권한 93년 정치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신한국당) 소속으로 14,15,16대 3선 의원으로 잘나갔지요. 그리고 1996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2002년에는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 이른바 대권 주자 반열에 화려하게 등극했습니다. 2006년까지….

실제 손학규 씨는 한나라당에서 대통령직을 빼고는 누릴 만큼 누린 사람입니다. 아마 한나라당에 남아있었다면 어쩌면 지금쯤 총리직을 제의받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김황식 총리대신에….


지역감정 타파를 평생의 정치적 도구로 삼은 김정길, 노무현

김정길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12대 총선에서 윤석순, 박찬종을 제치고 중,동,영도구에서 파란을 일으킨 초선이었지요. 김정길은 13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재선의원으로서 통합민주당의 원내대표로 지명되기까지 하였지요.

노무현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13대 총선에 동구에서 출마하여 허삼수를 꺾고 화려하게 정치권에 데뷔했습니다.

13대 국회 회기 중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의 열풍으로 거리는 연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로 넘쳐났지요. 물론 최루탄 가스도 연일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거리에서 김정길과 노무현은 서로를 알아갔습니다. 남포동에서 그리고 서면에서 같이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리면서 시대를 이야기하고 앞으로 이 땅의 정치가 가야 할 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을 함께 몸으로 배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국민들의 생각도 듣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 빌어먹을 3당야합이 있었습니다. 김정길과 노무현은 3당야합에 관한 소식을 듣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결국 결정했지요. 3당야합에 반대할 것을!!!

합당을 결의하던 날 김정길은 김영삼 친위대들이 사주한 깡패들에 의해 양팔을 잡힌 채 당사 밖으로 끌려나왔습니다. 초선의원이었던 노무현은 그곳에서 목소리를 크게 높였지요. 이른바 “이의 있습니다.” 그 사건입니다.

3당야합을 결정하던 그 순간 이미 밖으로 끌려나온 김정길


다들 잘 아시는 사진이죠?

저 순간 어떻게 그 다혈질인 노무현 의원을 끌어내지 않고 있었는지 의아하지만 김상현 전 의원과 함께 서 있는 이 사진은 참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이 3당야합은 촉망받던 정치인 두 사람을 나락으로 끌어내립니다. 노무현 김정길, 이 두 잘나가던 정치인이 김영삼의 텃밭인 부산만 아니었더라면 이들의 정치역정은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김영삼은 스스로 노무현을 자신이 정치에 데뷔시켰다고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김정길은 김영삼이 다닌 거제 장목 초등학교의 후배이자 양가의 부모님들이 서로 잘 아는 그런 사이이죠. 그 덕분에 김영삼은 다른 누구보다 김정길과 노무현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철저히 죽이겠다 결심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김정길과 노무현은 철저히… 그리고 완벽히 죽었습니다. 낙선, 또 낙선… 그렇게 말입니다. 이른바 김정길의 표현처럼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된 것이지요.

노무현과 김정길은 이전부터 생활정치를 주장했습니다. 당시에는 생활정치의 가장 기초적인… 당원이 당비를 내서 정당활동을 하게 하자는 그것이었지요. 그 생활정치는 개혁당에서 그리고 열린우리당에서 실제 시행되었습니다. 물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현재까지도 그것이 일상화 되어 있지만.

김정길과 노무현은 지역감정 타파를 평생의 정치적 도구로 삼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낸 지역감정 구도를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3인의 야합으로 지역감정 구도를 더욱더 고착화하고 악화시켰다고 믿었기에 노무현과 김정길은 그 지역감정의 벽을 깨기 위해 부산을 떠나지 못하고… 잘 나가는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 따라가지 않고 정통야당이었던 민주당을 사수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김정길의 지역구도 타파에 대한 역사는 훨씬 이전입니다. 1971년 김정길이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하였을 때의 공약이 바로 지역감정을 없애자는 그것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지켜온 정통야당 민주당입니다. 그렇게 지켜온 민주세력들의 목숨입니다. 그런데 그 민주당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려는 불온한 시도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로 손학규라는 한나라당에서 3등 대권 주자인 그 사람에게서….


민주당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려는 손학규의 불온한 시도에 대한 김정길의 분노

손학규 씨는 김영춘 전 의원을 차기 19대 총선에서 부산에서 출마한다는 그것을 조건으로 민주당의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했습니다. 그점 환영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김영춘 전 의원의 스펙이 최고위원으로서 부족했다 스스로 느낀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민주당 당원들을 암묵적으로 묵을 먹일 생각이었는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김영춘 전 의원을 ‘영남 몫 최고위원’으로 규정했습니다. 또한 그것도 부족해 ‘제2의 노무현’의 길을 어쩌고 운운하는 망언을 저질렀지요.

저는 김정길 지지자이기도 하지만 노무현 지지자임도 사실입니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손학규 씨 같은 철새 정치인의 입에서 오르내릴 이름인가요? 또한, 김영춘 전 의원 스스로 이야기하였지만 어디서 감히 김영춘 전 의원을 가지고 ‘제2의 노무현’ 운운한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지쳤는지 더 이상 분노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親盧라 불리는 정치인들도…. 그리고 스스로 노빠라 자칭하며 지난 세월 그 많은 수모와 모욕을 경험하였던 노무현의 지지자들도 침묵합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그냥 좋은 게 좋다 그 생각들인가요?

여하튼 노무현의 평생의 지기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김정길 혼자 분노했습니다.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자청하였지요. 그리고 손학규 씨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1. 김영춘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함에 있어 그를 영남 몫 최고위원이라 함은 지금까지 20년 동안 부산과 영남에서 지역주의에 맞서 싸우며 수모와 모욕을 받아 온 영남 민주세력들에 대한 능멸이다.

2. 3당야합 당시 3당야합 세력에 합류한 김영춘을 단지 19대 총선에서 부산출마를 예약하였다는 그 하나만으로 김영춘에 대해 ‘제2의 노무현’ 운운함은 노무현과 김정길을 비롯한 영남민주세력에 대한 능멸이다.

바로 이 두 가지에 대한 사과요구입니다. 그런데 이 김정길의 기자회견에 길길이 날뛰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바로 김정길의 이 기자회견은 ‘몽니’ 또는 ‘노욕’이라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들께 묻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정길의 정치인생에 대해서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 김정길이 기껏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 하나 받으려고 손학규 밑에서 굽실거리겠습니까? 지명직 최고위원… 실제 별 영향력이 있는 자리도 아니고 특별 당비나 내는 자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듯 그것을 받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이라도 있는 듯 표현하는 그것은 김정길이란 사람을 폄훼하려는 의도적인 작태가 아닐까 합니다.

더 이상 손학규 씨 홈페이지에서나 이곳에서나 김정길을 깎아내리는 그런 일은 삼가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분명히 밝히지만 본인은 손학규가 마뜩치 않았지만 김정길이란 양반의 체면 때문에 전당대회 전까지 일체의 별다른 코멘트도 없이 단지 손학규 씨가 뉴라이트 창립행사에 가서 손을 흔드는 그 사진 이외에는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별 언급할 가치도 느끼지 않는 그런 인물이란 것이 솔직한 심정이겠지요.

그냥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민주당 깃발 아래 서 있다고 손학규 씨가 민주세력일 것이란 생각으로 우르르 몰려 있는 그 지지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입니다.

철새는 언젠가 때가 되면 날아가는 법입니다.

 

나사랑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08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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