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에게 다가온 시련의 계절
(서프라이즈 / 흑수돌 / 2010-12-07)
박근혜 지지율… 조중동과 방송이 만들어낸 인위적 프레임이자 착시현상
어제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니 박근혜 지지율이 30.8%로 나왔다. 그 뒤를 유시민이 12.2%로 뒤쫓고 있다. 얼핏 보면 박근혜와 유시민 간 지지율 격차가 많이 나서 박근혜가 차기 대권의 9부 능선을 넘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어떤 수치를 놓고 비교하기 위해서는 제반 조건과 환경이 같아야 하는데 박근혜와 유시민은 마치 하늘과 땅 차이만큼 그것이 다르다.
박근혜는 조중동과 방송에 의해 현 정부 부동의 2인자로서 대접받고 있고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하루가 멀다고 기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고작 30%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다. 반면에 유시민은 방송으로부터 철저하게 왕따당하고 그 어떠한 정치적 프리미엄도 없이 12%를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트위터와 강연만으로 12% 지지율을 기록하는 거 보면 정말 유시민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특히, 박근혜가 공주로 군림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원내 150여 석의 의석을 갖고 있고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은 원내 의석 ‘제로’다.
참고를 위해 지금부터 딱 1년 전인 2009년 12월 마지막 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니 박근혜 40.2%, 유시민 14.7%, 정동영 10.8%, 정몽준 9.1%, 오세훈 5.5%, 손학규 4.6%, 이회창 2.2%, 김문수 2.2%였다. 이를 이번에 발표된 12월 첫째 주 리얼미터 여론조사와 비교해보면 박근혜가 10% 정도 빠진 반면 유시민은 오차범위 내로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주목할만한 것은 여야 당권경쟁에서 제외된 정동영과 정몽준 모두 지지율이 하락했고, 정동영은 아예 설문지에서 이름까지 빠졌다. 이에 반해 당권을 얻은 손학규는 3.7% 올랐고, 지방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한 김문수는 무려 5.7% 수직 상승했다. 오세훈은 큰 변동이 없다. 연평도 도발로 인한 최대의 수익은 이회창이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1년 만에 두 배 이상 올라 5.3%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지난 1년 동안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마디로 박근혜는 계속 지지율을 까먹고 있는 중이고, 유시민은 큰 변화가 없고 정몽준이 까먹은 표(4%)는 김문수(5%)가 가져갔고, 정동영이 까먹은 지지율(11%)은 한명숙(8%)과 손학규(4%)가 나눠 가져갔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한명숙이 훨씬 더 많이 가져간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까먹은 지지율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당시와 비교해보면 대략 무응답 비율이 5% 정도 늘었고 이회창 지지율이 3% 늘어난 것으로 나온다. 결론적으로, 박근혜로부터 빠진 지지율은 한나라당 내 다른 후보에게로 옮겨가지 않고 이회창으로 가거나 유보층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박근혜의 지지율이 이명박과의 대선경쟁이 치열했던 2007년 당시의 25% 박스권을 향해 계속 하향 조정 중이라는 이야기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40%, 박근혜 25%라는 등식이 수개월 이상 지속되었다. 결국 박근혜의 고정표는 대략 25%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표현 자체가 무색해진다. 아니 대세론이라고 이야기하려면 갈수록 대세가 확산되어야 하는데 40%에서 30%로 줄어들고 25%로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높은 그런 대세론도 있나? 그러니 이것이 조중동과 방송이 만들어낸 일종의 인위적 프레임이자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치명적인 약점…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정치적 유연성 부족
여론조사 이야기는 이쯤에서 해두고 이제 박근혜에게 다가온 시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고, 둘째, 대선 승리를 담보할 만큼의 광범위하고도 충성도 높은 전국 조직을 만들어낼 능력이 과연 박근혜 캠프에 있느냐의 문제다. 박근혜가 가장 즐겨 쓰는 말 중 하나가 “나에게는 측근도 없고 계파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이명박이 “나는 정말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생뚱맞게 들린다. 왜냐하면 ‘복당녀’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자기 계파를 챙긴 것 이외에 없다. 여당인 한나라당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한 것도 전혀 없고, 대한민국 사회를 위해서도 헌신하고 기여한 것이 없다. 이거 박근혜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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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색한 조우… 7일 백봉신사상 시상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
몇 달 전에 박근혜 좌장이었던 김무성이 언론에 이야기한 게 있다. “박근혜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정치적 유연성도 확실히 떨어진다”, 요거 정말 핵심을 잘 짚은 거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을 들고 나왔을 때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던 걸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내가 통 크게 수용할 건 수용하고 양보할 건 양보할 테니 한번 가슴을 열고 대화를 해보자는 취지로 말한 거였는데 ‘대연정’이라는 정치적 수단만 거두절미해놓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마찬가지로 2008년 총선 공천 때에도 막후에서 이명박-이재오-이방호 등과 얼마든지 대화하고 조율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냥 팔짱 끼고 있다가 공천 발표가 되고 나서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이렇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치의 기본이 결국은 협상과 조율인데 나는 박근혜가 그러한 과정을 한 번도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오죽하면 2007년 한나라당 후보경선 때 “5000표 줄 테니 기존 당규대로 하자”는 황당한 발언을 했겠는가? 민주주의를 알기는 하남?
박근혜로부터 이회창으로 넘어간 3%는 원조보수 중 박근혜의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인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일 테고 나머지는 박근혜로부터 확실하게 지지를 철회하기는 했지만 대안을 찾지 못해 부동층이 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 표는 앞으로 다시 박근혜에게로 돌아올 가능성이 대단히 희박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박근혜 지지율 25%는 과거 김대중 지지율 25%와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1997년 대선을 1년 앞둔 1996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DJ가 24~27%로 압도적 선두를 달렸고, 그 뒤를 10%도 안 되는 여야 후보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벌였지만 당시 언론 어디서도 ‘김대중 대세론’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동층이 20%가 넘고, 1위 후보가 지지율 25%에 불과한데 이것이 어떻게 대세론이겠는가? 지금 박근혜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나마 DJ는 정치적 유연성이 뛰어나 DJP연합도 성사시켰고 이인제도 탈당시켰지만 그러한 판짜기를 수첩공주 박근혜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 듯 싶다. 강재섭, 김덕룡, 나경원, 전여옥, 맹형규, 권영세, 정병국, 김무성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과거 친박이었다는 점이다. 이 많은 인물들이 다 박근혜를 떠나갔는데 2007년 이후 새롭게 박근혜 쪽으로 넘어갔다는 사람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지율만 마이너스 곡선인 게 아니라 측근과 참모도 계속 마이너스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국적인 조직을 갖출 수 있느냐의 문제는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중대요소다. 일각에서는 노무현에게 노사모가 있었듯이 박근혜에게 박사모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웃기는 이야기다. 그래도 노사모는 노무현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을 때에도 5,000명 정도는 벙개로 모였는데 박사모는 박근혜 지지율이 40%였을 때에도 300명도 모으지 못했다. 조직의 결속력 측면에서 아예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친박 지지그룹 내 파벌싸움이 극심해서 박사모 수석부회장이 정광용 박사모 회장을 규탄하면서 뛰쳐나가서 ‘근혜동산’이라는 것을 따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호박넷과 박사모 홈피가 인터넷활동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한두 번 벌어진 게 아니다. 노무현이 전국조직을 빠른 시간 내에 갖출 수 있었던 데에는 노사모의 역할이 상당히 컸지만 박근혜는 박사모로부터 그러한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재오나 박영준에 필적하는 조직전문가가 박근혜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그럴 능력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서청원과 김무성을 내쳤으니…. ᄒᄒ
엎친 데 덮친 격… 연평도 포격과 불법사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번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박근혜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박정희가 암살당했을 때에 “전방은요?” 했다는 앉으나 서나 안보 생각인 박근혜의 지지율이 왜 연평도 도발 이후 상승하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로 이번 이석현 의원의 불법사찰 공개시리즈 2탄으로 지지율에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도 생겼다. 요지는 박근혜가 임병석 씨엔그룹 회장과 만났다는 건데 물론 박근혜는 “그 사람이 누구예요?”라며 부인했지만 임병석의 누이가 운영하는 D 일식집에 갔다는 것은 친박 이성헌이 확인해줬고, 이성헌과 임병석이 같은 고향이어서 본래 친분이 있었다는 것도 확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정말 박근혜가 한 번도 임병석을 만난 적이 없을까? 나서기 좋아하고 우쭐대기 좋아하는 이성헌이 임병석이 잘나가던 시절에 박근혜에게 소개를 안 했을 리가 없다. 다시 말해 “몇 년 전에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최근 1~2년 내에 만난 적은 없다” 이렇게 말했으면 그나마 믿어줄 만 한데 “뉴규?” 하니 거짓말의 냄새가 풀풀 난다는 것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결백한 상황에서도 이미지에 적지않은 타격을 입었는데 정황증거가 이쯤 나오면 국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녀의 변명에 속아 넘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박근혜의 본선 경쟁력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으로 본다. 물론, 한나라당이 현재와 같은 MB 딸랑이 무뇌아 집단으로 계속 간다면 박근혜가 대선후보가 될 확률이 90% 이상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단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친이계가 도저히 박근혜에게 후보를 줄 수 없다며 비밀리에 정치공작을 펼쳐서 자유선진당과 합당하여 이회창 혹은 조순형을 박근혜 대항마로 내세우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김문수와 오세훈은 박근혜 대항마로는 역부족임이 이미 드러났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박근혜가 대선후보로 나오든 안 나오든 한나라당은 걷잡을 수 없는 분열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그러니 대선후보로 박근혜가 그대로 나오더라도 상처투성이가 돼 있을 것이고, YS-MB보다 정치적 센스와 기본 콘텐츠가 더 부족하니 대선후보 토론에서 유시민, 손학규, 한명숙 중 누가 나와도 완패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콘텐츠가 부족하면 이명박이 ‘한반도 대운하’를 들고 나왔을 때에 ‘서해 열차 페리’를 들고 나왔겠느냐? 그거 그냥 롯데나 한진 같은 데서 장사 차원에서 하면 되는 거다. 그게 무슨 국가정책이야…. ‘줄푸세’도 그냥 전 세계 보수주의가 표방하는 좋은 단어들을 하나로 묶어놓았을 뿐이고…. ᄏᄏ
과연 박근혜는 자신에게 다가온 시련의 계절을 어떻게 극복할까? 설마 시련의 계절이 다가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흑수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