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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국가이고, 정의다"

순수한 남자 2010. 12. 11. 14:52

"이명박이 국가이고, 정의다"
번호 219858  글쓴이 명덕  조회 317  누리 37 (37-0, 1:5:0)  등록일 2010-12-11 09:43
대문 4


“이명박이 국가이고, 정의다”
개만도 못한 수작 짓거리 그만 치워버리고 ‘먼저 인간이 되어라’

(서프라이즈 / 명덕 / 2010-12-11)


국가는 정치적 정의에 기반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잘 삶, 즉 행복이다. 행복을 그리스어로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한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은 인간이 ‘폴리스적 동물’(정치적 동물; zōon politikon)인 한, 또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인간적 좋음’인 한, 정치적 공동체를 통해 실현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공동체를 국가(polis)라고 부른다. 폴리스는 결국 궁극적 좋음을 목표로 하는 인간 공동체이다. 어떤 인간의 공동체이든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한다. 그럼에도 ‘모든 공동체 중에서 가장 권위를 가지며 또 다른 모든 좋음을 포괄하는 공동체는 최고의 좋음, 다시 말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권위를 가지는 좋음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공동체가 폴리스, 즉 국가이다.

정작 문제는 국가가 목표로 하는 좋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사적인 좋음이 아니라, ‘공적 이로움’(공공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좋음일 것이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국가가 사사로운 이익을 구하는 몇몇 집단을 위한 정치적 공동체로 변질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가장 권위를 가지고, 다른 모든 좋음을 포괄하는 최고의 좋음’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공동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공의 좋음(공동의 善)을 목표로 하는 국가 공동체는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평등한 자들의 정의를 실현하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곳에서만 자유는, 곧 평등이 되고, 나아가 정의가 꽃피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은 하등 다를 게 없다. ‘자유 없는 평등 없고, 평등 없이 자유 없다’는 말이다.

세종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명박을 추종하는 한나라당 최대모임인 ‘함께 내일로’ 대표를 맡고 있는 안경률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정의(正義)”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560만 표 이상의 압도적 지지로 이 대통령이 당선됐고 그 정권이 지금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내놓은 안과 또 다른 안이 경합을 할 때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대통령이 내놓은 안이 정의이고 옳은 것”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폈다.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으니, ‘이명박이 정치적 정의’라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군말 말고 무턱대고 따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다수표를 얻었다고 제멋대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그 <조폭적 생각>이 참으로 가소롭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 지도자가 자기의 사적인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권력을 행사했다면, 정의로운 일이 아니다. 공동의 이익이 아닌 사적인 이익을 앞세우면 정치적 공동체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조폭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다수의 힘을 빌려 사적 이익을 관철하려는 자세는 결코 정치적 정의라 할 수 없다.


“이것이 정의이고, 우리가 정의다”

이번에 새해 예산안을 날치기로 단독 강행처리하면서 이명박의 친형인 이상득을 비롯해 몇몇 의원이 작당을 해서 엄청난 지역구 예산을 챙겼다고 한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53191.html) 특히 이상득이 그간 챙겨온 자신의 지역구 국가 예산이 1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수의 권력 실세와 그들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예산을 무더기로 챙기며, 결식아동 지원비, 영유아 접종비와 같은 서민복지 예산, 힘없는 자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을 어떻게 ‘공동체를 위한 정의’라고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

“회기 내에 처리하라”는 이명박의 단 한 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이 일을 지휘한 한나라당 원내대표라는 자는 “이것이 정의이고, 우리가 정의다!”라고 승리의 깃발을 한껏 드높였다. 이 오만함과 뻔뻔함!

그 기세가 하도 기고만장해서 어이가 없다. 민주적인 정치적 절차는 고사하고, 정의란 그저 ‘힘 있는 자의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는 만세 삼창에 지나지 않는다. 그 무식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에서 ‘정치적 정의’를 위해선 ‘자유와 동등함’이 요구된다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치적 정의(to politikon dikaion)는 자족(自足)을 목표로 삼고 공동생활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 즉 자유롭고 또 비례적으로나 혹은 산술적으로 동등한 사람들에게 속한다. 따라서 이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서로에 대하여 정치적 정의가 있지 않고, 다만 유사성에 따른 어떤 정의가 있을 따름이다.”

우리에게 자유와 동등성에 기반한 평등 정신이 보존되고 있는가? 소수의 힘 있는 자는 강압적으로 다수의 의사와 의견을 깔아뭉개고, 법을 집행하는 자는 정의와 부정의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채, 권력자에게 아부하며 자유를 외치는 죄 없는 사람을 잡아 족치고 한정 없이 양심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민주적 절차는 도외시되고, 소수의 견해는 깡그리 무시되는 강한 자의 논리와 국가적 폭력만이 횡행하는 세상이 되었다. 소수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치는 타락된 정체일 뿐이다.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어리석은 자들의 정치가 되고 만다. 공적인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정치공동체는 더 이상 국가라 할 수 없는 조폭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도덕성과 정당성이 결여된 정권은 패도정치를 지향하는 이익집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정의는 지배자에 의해 부정의가 행해지지 않도록 법의 지배를 요구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배자는 정의의 수호자이며, 또 만일 그가 정의의 수호자라면, 따라서 동등함의 수호자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라는 작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국민을 겁박하고, 내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모두 감옥에 처넣으려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 법의 지배라 할 수 있겠는가?

‘짐이 곧 법이요, 정의’라고 당당히 외치는 저 개만도 못한 쥐새끼 같은 작자들이 진정한 정의의 수호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의는 다른 사람들의 좋음(이익)’을 위해 발현되어야 한다. 소수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법이 집행된다면 어찌 정의로운 국가라 말할 수 있겠는가? 깡패집단이고, 깡패국가일 뿐이다.

그것은 돈으로 권력을 잡고, 힘 있는 자들만을 위해 정치하는 ‘참주정치’에 불과하고, ‘짐이 곧 정의’라 외치는 것은 전제군주정치이고, 자유로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국가’에 불과한 것이다.

정치적 정의는 ‘주인과 아버지의 정의’와 비슷한 가부장적 정의일 수가 없다. 주인인 양, 아버지인 양 자애로운 모습을 하면서 길거리를 갈지(之) 자로 쏘댕기며 불쌍한 사람에게 동전 한 닢 던져주고 가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니다.

이는 독재자가 행하는 전형적인 정치수법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정의는 불편부당하게 법을 집행해야 하며, 소수보다는 다수의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가부장적 정의를 앞세워 타인의 침묵을 강요하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가로막고, 정치사찰을 통해 자유로운 정치적 행위를 통제하는 자와 그에 속하는 정부는 결코 정치적 정의를 실현하고 있지 못하다. 가소롭게도 ‘이명박이 정치적 정의다’, ‘우리가 정의’라고 외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식한 자들로 구성된 정치 사기꾼 집단에게 한 마디 던지고 싶은 말이 있다.

개만도 못한 수작 짓거리 그만 치워버리고 ‘먼저 인간이 되어라.’

 

명덕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19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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