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는커녕 세련된 기술자도 못 되는 검찰
2011년 1월 4일 한명숙 전 총리 공판 방청기
(서프라이즈 / 논가외딴우물 / 2011-01-05)
새벽 2시 20분경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공판이 끝났습니다. 서울 중앙지법 역사상 가장 늦게 끝난 재판이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내일 일이 있어 잠을 자야 하지만, 마지막 변호인 신문에서의 중요한 한 장면은 꼭 알리고자 간단하게 쓰고 자려고 합니다.
검찰이 한만호 증인의 휴대전화를 조사한바 한명숙 전 총리의 전화번호를 확인했고, 이를 증거로 제출했었나 봅니다. 말하자면 한만호 증인이 한 전 총리와 개인적으로 전화했었다는 물증으로 제출한 것이겠지요!
변호인은 그 전화번호부 목록을 프로젝터로 보여주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007년 7월 20일, 거의 같은 시간대에 생성된 전화번호가 수백 개가 된다. 이는 일시에 자동화된 방법으로 전화번호를 이전한 흔적이다. 이를 증인에게 확인하니 그때 즈음에 휴대폰을 바꿨던 것 같다고 한다.
따라서 이 번호들이 휴대전화 메모리에 생성된 것은 이전 휴대전화에서 데이터 케이블로 전화번호 정보를 이전하였기에 생성된 번호들이라 판단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송된 전화번호에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는 2007년 8월 21일에 최초 생성된 것으로 나온바, 그 이전에 한 전 총리와 직접 전화를 한 일도 없으며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변호인의 취지는 2007년 3월, 그리고 이후 4~5월경에 직접 전화를 하고 집으로 찾아가는 등의 방법으로 두 차례에 걸쳐 직접 3억씩 돈을 전달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이 휴대전화의 전화번호 생성 시기는 이를 증명하는 물증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한만호 증인은 어차피 조작해 진술한 것이므로 당연히 사실이 아니며 이 휴대전화 번호 생성 흔적으로 보아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습니다.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부 데이터를 복구하면서 검찰은 데이터 생성 시점에 대해서는 무지(無知)했던 것일까요? 자신들의 주장과 입증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거를 변호인에 제공하는 검찰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하는, 참으로 답답한 심정으로 재판정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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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숙 전 총리가 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3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오늘 검찰의 모습은 전반적으로 비루했습니다. 한만호 증인이 피고인인지 증인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한만호 증인과의 피 말리는 전투를 벌이더군요? ㅠㅠ
재소자 신분인 한만호 증인이 친지와 면회 시에 나눈 이야기들을 녹음한 기록을 법정에서 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몇 시간을 소비하고, 재판 중에 SBS 보도를 잠깐 검색했는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위증교사까지 운운했나 봅니다. 기사 내용 중에 “한 전 대표가 진술을 바꾸는데 대해 대가를 받기로 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혐의를 확인하는 대로 ‘위증죄’를 추가로 물을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라는 내용을 보면 한 전 총리 측에서 한만호 증인에게 대가를 미끼로 위증을 교사했으므로 이에 대해 수사를 할 계획이라는 것이죠! 기사 제목도 <“한명숙, 위증 교사 혐의 포착”…검찰의 반격 시작>입니다.
듣기로는 검찰 고위층이 이런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 확인해 봐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눈치가 있는지 다른 언론은 일체 위증은 몰라도 위증교사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있는데 SBS 대단하지 않습니까? 나가도 너무 나간 보도를 서슴지 않는 꼴이 종편 사업자 중 하나쯤은 망할 것이고 이를 넘겨받기로 약속을 받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만호 증인은 그야말로 증인입니다. 그가 법정에서 검찰에서의 진술과 다른 진술을 하면 이를 반박할 다른 증인을 찾거나 다른 물증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더욱 건설적인 방법이지만, 검찰은 다른 방법이 없어서인지 한만호 증인의 검찰에서 한 진술이 진실이라는 주장에 목을 매는 형국입니다.
이를 두고 방청석에 앉아 계시던 분께서는 검찰이 피고가 아니라 증인과 싸우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검찰이 마치 새로운 증거인 듯 한만호 증인의 구치소 접견 기록과 녹음을 언급하고 한 전 총리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계좌추적 결과를 프로젝터로 화면에 보이면서 예의 그 기자를 의식하는 식의 발언을 이어가던 재판 초반쯤, 피고인석에 앉아계시던 한 전 총리께서 재판장에 신상발언을 요청하시고 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받아 적은 것이라 간략히 요지만 옮겨적자면,
“지금 재판 상황을 보니 나는 이 재판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피고에 대한 의혹을 입증해 단죄하려는 검찰의 처지를 이해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지금 검찰의 모습은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식으로 주변 모든 사람의 계좌를 추적하는 일은 당사자들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며, 또한 이런 식으로 재판정에서 추적 내용을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일은 개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나는 검찰이 수사하는 동안 9억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이젠 검찰이 재판 중에도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도대체 피고의 인권은 어떻게 보호되겠느냐.”라는 요지의 말씀이셨습니다.
이에 검찰은 존경 운운하면서 동생분이 쓴 수표 부분에 왜 답변을 하지 않느냐고 항변하더군요?
그 답변을 왜 검찰이 요구하는 시점에 해야 합니까? 변호인이 필요한 시기를 정해 적절하게 답변을 줄 것인데, 그걸 피고에게 왜 답변 안 하시느냐고 묻는 검찰에 왜 월급을 줘야 하는지 매우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던 순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떼쓰고, 어르고… 무슨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이게 무슨 꼴입니까?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면 저렇게 목이 아파라 떠들 일도 없을 텐데 마치 3류 정치인처럼 미사여구와 개념적 단어를 나열하며 법정에서 목에 핏대를 올리는 검찰의 모습은 그야말로 빵점짜리 공무원, 무능력하고 권위적이기만 한 공무원의 대표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법률가는커녕 세련된 기술자도 못 되는 이런 검찰은 즉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법정에 사람들 심어 수시로 재판 진행 상황 보고받고 현장 검사들에게 지시하면서 자신은 기자들과 이야기하는 검찰 고위층이라는 사람들, 한마디로 ‘빨대 검사’는 검찰에서뿐만 아니라 법조계에서 아예 축출되어야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논가외딴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