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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아산병원 내의 메디포스트 제2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성체줄기세포 배양 실험을 하고 있다. |
지난 5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발표는 국민에게 참담함을 안겨줬다.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등 ‘세계적인 성과물’은 존재하지 않았고, 황 전 교수는 사기와 횡령 혐의로 법정에 섰다. ‘세계 줄기세포 허브’를 꿈꿨던 국가적인 프로젝트가 대형 스캔들로 막을 내리면서 줄기세포는 국민의 뇌리에 수치와 분노의 상흔(傷痕)만 남겼다.
하지만 줄기세포는 ‘황우석 파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다. 황우석 전 교수와는 다른 길을 걸어온 많은 연구자에 의해 한국의 줄기세포는 계속 자라고 있다. ‘한국 줄기세포 연구의 경쟁력은 아직 세계적 수준이며, 국가적 과제로 육성해야 한다’는 명제도 그대로 살아있다.
황우석 전 교수의 연구는 사실 줄기세포 분야의 한 갈래일 뿐이다.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를 황우석과 동일시해온 시각이 오히려 문제라 할 수 있다.
줄기세포는 크게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로 나뉜다. 배아줄기세포란 초기 분열 단계의 배아(胚芽·정자와 난자가 수정한 후 장기와 조직 등으로 나뉘지 않은 세포덩어리)에서 채취한 세포로, 모든 종류의 장기와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일종의 만능세포다. 보통 수정 후 4~5일이 경과하면 아직 뱃속에 정착하지 못한 배반포(수정란의 초기 분화 단계로 주머니 같은 것의 안쪽에 성장판이 생김) 내부에 내세포괴(inner cell mass)로 불리는 30~40개의 세포가 생기는데, 이것이 수백만 개의 세포로 분화하면서 심장, 폐, 피부, 뼈 등 인간의 몸을 만들어 간다. 배아줄기세포는 이 내세포괴의 세포를 분리해 수립한 것으로, ‘배아줄기세포를 특정세포로 분화시켜 환자의 손상된 세포를 대체함으로써 질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하겠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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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권기령 |
배아줄기세포만 해도 배양법에 따라 크게 4가지 종류로 나뉜다. 정상적인 수정을 거친 신선 배아를 사용하는 방법과 불임 시술 과정에서 사용되고 남은 냉동 인공 수정란을 녹여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인간의 체세포 핵을 핵이 제거된 동물 난자에 이식하는 이종(異種) 간 핵 이식과 인간의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동종 간 핵 이식 등의 방법이 있다. 이 중 황우석 교수팀이 주도한 것은 동종 체세포 핵 이식 방법이다.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제대혈(탯줄 혈액)이나 성인의 골수, 혈액 등에서 추출해낸 세포로, 구체적인 장기 세포로 분화하기 직전의 원시세포를 뜻한다. 다 자란 조직이나 장기가 상처를 입으면 스스로 재생되는 것은 성체줄기세포의 존재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뇌, 골수, 혈액, 혈관, 근육, 피부와 간 등에 성체줄기세포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골수에도 백혈구나 적혈구를 만들어내는 조혈모(造血母) 세포와 뼈, 연골, 지방, 섬유조직 등을 만드는 골수 기질세포(基質細胞ㆍstromal cell) 등 두 가지의 성체줄기세포가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증식력이 약하고 분화돼 나갈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지만 역시 이를 이용하면 손상된 장기나 조직의 세포를 유지, 복원할 수 있다. 특히 성체줄기세포는 배아를 생명으로 봐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생명윤리 문제에서 자유롭다.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일반적으로 세계 7위 수준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성체줄기세포와 수정란 줄기세포를 수립하고 배양하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들 줄기세포에서 원하는 세포를 분화시키고 줄기세포를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는 기술은 아직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원하는 세포를 분화해 내는 분화 유도기술의 경우 외국의 10분의 1~20분의 1 정도의 실력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고려대 생명공학부 유승권 교수는 “논문 수, 인프라, 투자 연구비 등 전반적인 경쟁력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 실력이 세계 7위 수준이라는 것은 맞다”며 “하지만 성체·배아 줄기세포를 막론하고 단순히 줄기세포를 수립하는 능력만을 따지면 외국도 이제 상당 수준이기 때문에 원하는 쪽으로 줄기세포를 분화하는 분야가 더욱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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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권기령 |
전문가들은 온 국민이 주목해온 황우석 전 교수 주도의 동종 체세포 핵 이식 방법에 의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사실상 중단됐다고 보고 있다. 황우석 파동을 거치면서 난자 제공자를 확보하기가 어렵게 됐을 뿐 아니라 정부가 황우석 전 교수의 체세포 이식 연구 승인을 취소한 데 이어 앞으론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허용 범위를 규정한 생명윤리법도 엄격하게 적용될 방침이기 때문이다.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희망이 꺾인 가운데 새롭게 조명 받는 분야는 성체줄기세포 연구이다. 사실 성체줄기세포는 1960년대 조혈모세포 연구로부터 시작된 오랜 연구 분야이다. 동물 배아줄기세포가 1970년대에, 인간 배아줄기세포가 1998년에 등장한 것과 비교하면 연구의 역사가 훨씬 길다. 세계적으로도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연구 투자가 10배 이상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연구가 축적돼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괄목할 만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는 대학병원만 해도 가톨릭의대, 서울의대 등 10여곳에 이르고 세포를 분화 증식시킬 수 있는 기술을 지닌 의료 벤처기업도 메디포스트, 이노셀, 히스토스템 등 7~8개에 이른다.
지난 7월 14일 가톨릭중앙의료원 세포치료사업단(단장 천명훈)은 세계적인 성체줄기세포 연구자들을 초청해 ‘가톨릭 국제 줄기세포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해온 가톨릭계는 지난 6월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주교) 발족식을 갖고 성체줄기세포 연구 발전을 위해 100억원을 지원키로 한 바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한국 측 발표자로 나선 오일환 가톨릭의대 교수(기능성세포치료연구센터 소장)는 “성체줄기세포의 기술적 한계들이 최근 3~4년 사이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연구 성과들이 발표됐다”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일본 교토대 마리 데자와 교수는 골수에서 채취한 성체줄기세포가 신경세포로 재생된다는 것을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며 입증했고, 미국 워싱턴대 그린버그 교수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면역치료세포의 암 세포 살상 능력을 높이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췌담도세포의 인슐린 생산 능력을 높일 수 있고, 심장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가 근육으로 분화돼 죽어가는 심장 근육을 살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 등이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