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짱님

경선결과에 승복합니다. 그러나...

순수한 남자 2007. 10. 18. 17:47
경선결과에 승복합니다. 그러나...
번호 137417  글쓴이 참평지기   조회 2644  누리 652 (689/37)  등록일 2007-10-18 09:33 대문 5 톡톡


경선결과에 승복합니다. 그러나...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 안 희 정


안희정 상임집행위원장의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steel0225) 에서 퍼온 글입니다.


2001년의 일입니다.

해수부 장관직을 그만 두실 무렵, 저와 이광재씨는 노무현 대통령과 상의 없이 후에 노무현 캠프를 '금강캠프'라 이름 붙이게 한 금강빌딩에 사무실을 냈습니다.

대통령 후보 경선을 준비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장관직을 그만 두신 후, 금강빌딩으로 노무현 대통령님을 모셨습니다.

금강빌딩이 작은 빌딩이기는 했습니다만, 한 층을 다 빌려서 이리저리 방을 쪼개어 놓고 달랑 몇 명이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무실을 들러보신 후, 후보님 방이라 명명된 회의실에 앉은 노무현 대통령은 저와 이광재씨를 뚫어지라 쳐다보시면서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이 사무실 왜 냈는가?"

     "대선 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시더니 이렇게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이인제씨한테 지면 어떻게 할 건가? 이인제씨 피켓을 들고 전국을 다니며 선거운동
      해 줄 자신이 있는가?”

     "그거야 그때 가봐서 판단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한참이나 다시 말 없는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3당 야합을 구국의 결단이라며 쫓아간 이인제씨였습니다.

그리고 97년, 이회창씨하고의 경선에서 지고 나서 이회창씨 지지율이 떨어지니 당을 박차고 나와 경선 불복을 했습니다. 그런 이인제씨가 97년 김대중 대통령이 승리하고 난 후, 국민의 정부에 참여해서 김대중 대통령 이후의 차기 후보로 대세를 굳힌 지 오래였습니다. 국민의 정부 내내 이인제씨는 당의 실세였고 차기 후보로서 대세를 이루어왔습니다. 모든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20%대를 이루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한 자릿수의 지지율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세력이라고 해야 국회의원 한 명도 거느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밖에 있던 비정치권의 민주인사들은 탈당 후 독자출마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권할 정도였습니다.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고착화시킨 90년 3당 야합, 민주정당사의 근본을 유린하는 경선 불복의 역사... 그런 이인제씨와 맞붙는 일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라면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우리가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교동이 뒤를 받치고 있는 이인제씨를 상대로 우리는 어떻게 이길 것이냐란 질문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것은 그때 가봐서 생각하자는 수준의 제 고민이 참으로 초라하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일단 붙어보고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또 다른 도전의 길을 찾으면 된다는 나의 생각이 정치판에 물든 무원칙한 정치꾼의 태도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은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의 채비도 없이 덜컥 사무실부터 내고 본 저희들의 치기를 대통령은 지적하신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질문에 대해 답하려 참으로 오랫동안 고민하셨습니다. 때마침 제3의 힘 청년단체 간부들로부터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권유받기도 했습니다.

경선에 임했으면 승복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자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인제씨에게 져서 그를 도와 선거운동을 하는 일은 정치철학과 소신에 참으로 맞지 않는 일이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2001년 여름 내내 고민하셨습니다.

이기면 그만이다.

지면 그때 가서 적당히 핑계를 대고 기회를 보면 되지.. 하고 생각하는 게 여의도 정치판의 일반적 상식(?)이었습니다. 이인제씨가 워낙 문제투성이 정치 이력과 동교동의 측면 지원이라는 불공정한 당내 역학 구도를 갖고 있어서 설령 지더라도 불공정 경선을 이유로 적당히 판을 깰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태도가 무원칙한 정치꾼들의 구태라고 대통령은 지적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참 그때 많이 배웠습니다.

정동영 후보가 이겼습니다.

이유야 어떠하든 우리는 졌습니다.

이 경선의 결과에 대해 우리는 승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정동영 후보가 우리당 간판을 부수고 참여정부에 대한 야당과 언론의 근거 없는 공격에 줏대없이 흔들렸었지만 그리고 경선에서 구태를 보였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승복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참여정부와 우리당에 대한 공격에 줏대없이 마음이 흔들렸던 그가, 그런 과오에 대해 깊은 반성과 새로운 각오를 밝히지 않는 한, 우리의 마음까지 모두 가서 그를 돕기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승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까지 다 가긴 참으로 어렵습니다.

지난여름에 저질렀던 그 과오에 대해 깊이 있는 반성과 새로운 각오만이 우리의 미래를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미래가 있어야 우리의 마음이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