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평화의 길로 가는가?
필리프 퐁스
냉전의 유산이 남긴 마지막 화약고 한반도는 화해로 나아가는가? 10월 4일 평양에서 이루어진 남과 북 두 정상의 평화 선언은 올해가 가기 전에 북한이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핵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것과 연동되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1950-53년의 군사 충돌 이후 고착되어온 적대 상황 -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은 그 적대 상황의 마지막 "표현"이었다 - 에 종지부를 끊을 수 있는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 못지않게 아직은 불확실성도 있다.
2000년 6.15 선언은 화해의 길을 열었지만 일반론에 그쳤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1953년 휴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한다거나 남북의 경제 협력을 다양한 구체적 사업으로 확립시킨 것은 아니다.
서울과 워싱턴은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일컬어지던 나라와 외교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시간을 많이 허비한 끝에 현실주의가 자리 잡았다.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은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안 될 수가 있다고 하워드 프렌치는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지에 썼다. 북한의 행동은 조지 부시가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에 집어넣으면서 가한 위협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고 다년간 동북아시아 정세를 관찰해온 노기자는 지적했다.
핵실험은 김정일에게 미국과의 팔씨름에서 카드를 쥐여주었다. 핵 비확산 원칙이 깨지고 의회에서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된 현실로 말미암아 조지 부시는 북한을 제거하는 정책을 포기하고 대화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도 상황이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김정일 체제는 기울고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체제 안전을 보장받아서 국제사회로 들어가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다. 그렇게 해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빈사 상태에 빠진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희망을 걸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만이 아니고 6자회담에서도 북한은 유연성을 발휘하여 관계국들을 놀라게 했다.
200만의 군인이 휴전선을 맞대고 대치한 현실에서 한국도 전쟁 상황이 종식되면 얻을 것이 많다. 남북 긴장으로 말미암아 한국은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할 수밖에 없다. 북한과 사이가 좋아지면 북한의 광물자원과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은 북한이 고립무원이라는 점에 편승하여 북한의 천연자원을 독차지할까 봐 우려한다. 중국의 "식민지" 상태가 되어도 북한으로서는 현재 상황에서는 속은 터져도 뾰족한 수가 없다. 이번의 남북 관계 증진도 이렇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핵실험에 사용된 플루토늄을 추출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는 2008년 1월 31일 이전까지 실행되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 아래 원자로는 이미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핵시설 불능화는 이 가동 중단에 뒤이은 논리적 수순이다. 아직 6자회담 의제로 오르지는 않았지만 좀 더 민감한 문제는 50kg에 이르는 비축 플루토늄과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의 문제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언제까지 삭제하겠다는 약속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하지 않았다. 미국은 "적성국가" 북한과는 그렇지 않아도 1950-53년 전쟁 이후로 교역을 금지했지만 이제는 다른 나라 기업들까지 미국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북한과의 교역을 꺼렸다. 대북한 제재 해제 문제는 조지 부시가 북한의 모든 "물타기"에 적대적으로 대응해온 자기 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10월 4일의 선언으로 남북은 화해로 한 걸음 다가섰지만 이 선언은 국제법상으로는 아무런 구속력을 못 갖는다. 그것은 합의도 아니요 조약도 아니요 그저 선언일 뿐이다. 2008년 2월 임기가 끝나는 노 대통령의 후임자는 이 선언에 과연 얼마나 책임감을 느낄 것인가?
그러나 한국은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은 전쟁을 하기는 했지만 1953년 휴전조약의 서명당사자가 아니다. 휴전조약은 미국, 중국, 북한 사이에 맺어졌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만을 창구로 인정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은 한국의 참여를 인정하면서 한국과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엄청난 외교력이 동원되는 한반도 정세에서 한국은 지금까지 가장 약세였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의 대결 정책을 임기 내내 차분하면서도 일관되게 반대하는 업적을 세웠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고립보다는 대화가 낫다는 것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10월 4일의 남북회담은 교류 정책의 신뢰성을 끌어올렸다. 한반도 위기의 마지막 라운드가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올해가 가기 전에 미국과 북한은 자기의 패를 좀 더 보여주면서 진의를 명확히 밝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월 18일)
출처: http://www.lemonde.fr/web/article/0,1-0@2-3232,36-96833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