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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좃설비판] 개인적원한을 대통령 권력으로 풀고있는 대통령....[홍재희]

순수한 남자 2007. 10. 21. 15:31
[좃설비판] 개인적원한을 대통령 권력으로 풀고있는 대통령....[홍재희]
번호 139517  글쓴이 메롱~ (kgb007)  조회누리 0 (0/0)  등록일 2007-10-21 15:27 대문 0 톡톡

조선 [사설] ‘개인적 원한’을 ‘대통령 권력’으로 풀고 있는 대통령 에 대해서


    
(홍재희) ======

1997년과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냉전수구기득권 정치집단의 편에 서서 진실과 거리가 먼 거짓과 불공정 편파 왜곡된 대선관련   사설과 칼럼을 통해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위한  건강한 여론형성에 걸림돌 역할을  했던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사설>은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뒤인 2003년 3월 청와대 워크숍에서 “언론은 통제되지 않은 권력, 검증받지 않은 권력, 스스로 만든 권력”이라며 “적당히 소주 한 잔 먹고 우리 기사 잘 써주면 고맙고 내 이름 한번 내주면 더 고마운 시대는 끝내자”는 말로 처음 언론과의 관계를 맺었다. 2003년 8월 총리와 장·차관급 130명을 모아놓고는 “기자들에게 술·밥 사봐야 득 될 것 없다”고 했다.

세계 어느 나라 대통령도 언론에 이런 첫 인사를 건네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아무리 크다 해도 이건 상식인의 예의에 어긋난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언론의 5년은 이렇게 시작돼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


======조선일보 는 순수한 언론이라고 볼수 없다.  

형식적으로는 신문의 외피를 걸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냉전수구 정치공작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1989년 10월 26일 청와대노태우대통령과 방우영 당시 조선일보 사장의 술과 얽힌 일화 를 한번 살펴보자.

1989년 10월 26일 청와대.노태우대통령은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 김병관 동아일보 사장, 이건희 중앙일보 사주, 장강재 한국일보 사장을 초청, 저녁을 함께 했다.

당시 노태우는 미국 순방에서 돌아 온 직후 였으며 이날 모임은 자신의 방미 기간 중 언론 보도가 작게 취급 된데 대해 언론 사주들에게 섭섭한 감정을 전하는 한편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마련 한 것이었다. 동동주와 생선회가 곁들여진 저녁 자리는 자못 화기애애하게 시작됐지만 술이 몇 순 배 돌면서 느닷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골프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방사장이 갑자기 갑자기 무릎을 꿇고

“각하, 제 술 한 잔 받으시죠”라고 술을 올린 것.

이에 대통령이 오히려 당황,“아니,편하게 앉으시죠”라고 말하자 방사장은 “ 아닙니다.저는 이게 더 편합니다.”라며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술잔을 올렸다.

이 광경을 보다 못한 동아일보 김사장이 방사장에게 핀잔을 주었다.

김사장: 각하,각하 하는 것은 옛날 호칭 아닙니까.

방사장:(얼굴을 붉히며)나는 일제 때 교육을 받았으니 옛날 식대로 하는 것 아니요. 해방후 교육받은 사람들하곤 다르지.

김사장: 아니 그런 식으로 사람을 어린애 취급하면 곤란합니다.나도 환갑이 내일 모렙니다.
(화가 나서 위스키를 요청,대통령에게 “제 술도 한 잔 받으시죠”라고 권했으나 대통령은 이를 사양했고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자리를 떴다.)

방사장:이 사람아,나는 자네보다 인생 경험도 많고 언론계 선밴데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나. 나는 자네 아버님한테 그렇게 대하지 않았어.

김사장: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요.아버님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지 않소.

방사장:뭐라고? 이게 무슨 말버르장머리야. 너 혼 좀 나 볼래.

방사장이 김사장의 멱살을 잡자 김사장도 맞서 방사장의 멱살을 잡고 싸우다 주위에서 말림. 결국 술자리는 파장 나 버렸다. 한편 이날 싸움의 발단은 방사장이 대통령에게 사과를 하면서 “언론계를 대표해서 방미 기사가 작게 취급돼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언론계 일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는 말도 있다.


            (참고자료출처=1989년 언론노보)


======  1989년 당시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은 현재 연세대 재단이사장직을 맡고 있고 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작은아버지이기도하다. 노태우정권에 굴종했던 방씨족벌 조선일보의 행태를 잘 알수 있는 일화였다.  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버지인 방일영은 2003년 8월8일 사망 했다. 장례는 8월12일에 5일장으로 치러졌다.  2003년 8월13일자 한겨레 신문 의 안수찬 기자가 보도한 아래와 같은 내용을 한번 참고해보자.

신영국의원 “조선 장례보도 지나쳤다”

신영국 한나라당 의원(경북 문경·예천)이 방일영 전 조선일보사 명예회장의 장례식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신 의원은 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에서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를 지목해,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관혼상제 간소화’와 거리가 멀고,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임감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글에서 “자사 지면을 지나치게 할애해 방 전 회장에 대한 기사와 조문객 사진 및 명단 등을 보도한 것은 ‘과유불급’(‘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의 교훈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주요 사건을 중요도가 큰 순으로 지면에 배정을 한다는 측면에서, 방 전 회장의 보도를 1면에 이틀, 6면에 나흘 동안 전면에 할애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신 의원은 이런 글을 쓴 데 대해 “언론이 개인의 것도 아닌데 나흘간 계속해서 한 면을 털어서 보도하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된다 싶어 몇마디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01년 ‘아름다운 혼·상례를 위한 사회지도층 100인 선언’에 참여하는 등 이 분야의 캠페인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다.

(참고자료출처= 2003년 8월13일자 한겨레신문)



===== 조선일보가 펴낸 방 회장 전기에 “권번출신 기생의 머리를 제일 많이 얹어준” 사람이 바로 방일영 조선일보사주 라는  이야기까지 버젓이 나와 있다고 한다,  

이런 권언유착의 술판에 익숙했던 방씨족벌 세습사주체제를 상대로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뒤인 2003년 3월 청와대 워크숍에서 “언론은 통제되지 않은 권력, 검증받지 않은 권력, 스스로 만든 권력”이라며 “적당히 소주 한 잔 먹고 우리 기사 잘 써주면 고맙고 내 이름 한번 내주면 더 고마운 시대는 끝내자”는 말로 처음 언론과의 관계를 맺었다. 2003년 8월 총리와 장·차관급 130명을 모아놓고는 “기자들에게 술·밥 사봐야 득 될 것 없다”고 했다“라고 주장하면서 조선사설이 조선일보 임직원들에게 술대접하지않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정권과의 주지육림의 권언 유착성 술파티에 익숙했던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가 보여주고 있는 일종의 금단현상에서 비롯된 넋두리로 볼수 있다. 선진국가들의 대통령들이나 총리나 수상들은 기자들 데리고 기생파티하지 않고  주지육림의 권언 유착성 술파티 하지 않는다.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는 우물안 개구리식의 권언유착성 술파티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선사설은


“대통령은 2004년 수도이전 반대 여론이 커지자 이를 “광화문에 거대 빌딩을 가진 신문사들”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수도 이전을 위헌이라고 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라는 편법으로 비켜나갔다. 대통령은 올해 신년 초부터 언론을 ‘불량상품’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곧이어 “몇몇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사를 담합한다”고 하더니 급기야 기자들을 정부 청사에서 쫓아내는 일을 벌이고 있다.“


===== 조선일보 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추진해온 수도이전사업에 대해서 일관되게 찬성하고 있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자 반대로 돌변하는 정략적  행태를 보였고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추진해온  한국군작전지휘권 환수를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자로 돌변하는 정략적  행태를 보였다.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가 불량상품인 이유는 불법 탈법 편법을 통해 종이신문시장의 반칙거래를 일삼고  거짓과 왜곡된 보도를 통해 민심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일제시대에 매국매족의 민족 반역의 범죄행각을 자행하고도 천연덕 스럽게 방씨족벌 조선일보를  ‘민족 정론지’로 과대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전세계에서 각부처 마다 기자실이 있는 곳은 일본밖에 없다.

일본의 폐쇄적인 기자실 운영에 대해 국경없는 기자회는 비판한바 있다.  미국의 경우 브리핑실은 국무부·국방부·법무부·농무부·교통부에만 있고 기자실은 국무부·국방부·법무부에만 설치돼 있고 한다. 영국은 물론 의원내각제 를 하는 국가들 대부분은 정부부처에 브리핑 실이 없고  의회내의  브리핑실을 기자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정부 각 부처 를 비롯한 37개의 기자실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 대한민국은  정부 각 부처 를 비롯한 37개의 기자실을 운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지는 지난 6월7일자 기사를 통해서 한국정부부처마다 있는 기자실에 대해서   프레스룸(press room)이 아닌 '기자들의 사무실'(reporters' room)으로 지칭하고 한국에서는 ‘기자실’로 불린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기자실들은 일제 식민시대에 생겨난 것으로 그 이후로 모든 주요 정부 기관에는 기자들을 위해 이 같은 사무실이 별도로 운영되는 것이 관행이 되어왔다고 보도했다고한다.  한국에서의 ‘기자실’은 주요 언론매체 기자들이 회원의 자격 부여, 책상 배치, 취재원에 대한 접근 등에 관여하는 일종의 사적인 클럽처럼 운영되어왔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지가 지적했다고 한다.


=====  한국의 기자실은 언론과 정부 간의 도덕적이지 못한 유착관계를 낳고, 주요 언론매체(조중동)등이 신생 언론, 특히 인터넷 언론들의 등장으로 인한 새로운 경쟁의 제한을 가능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 또한 사실이라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지는  지적했다고 한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지는 외신의 경우도 ‘기자실’ 출입이 ‘국익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금지되어 왔으며, 반면 내신 기자들은 당국의 뉴스 배경에 대한 브리핑을 독점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고한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지는 노 대통령과 한국의 주요 신문과의 관계는 전례가 없는 비방과 매일 매일의 맞대응으로 특징지어지지만 그러한 모습에 아연실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고한다. 한국은 신문의 사설들이 일상적으로 대통령을 “정신병자”라고 칭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된 국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라고 배경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지가 부연했다고 한다.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사설은 종종대통령을 “정신병자”라고 칭할 정도로 격렬하게 비판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언론감시단체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2006년 10월24일  1백6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6 세계언론자유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의 언론자유가 2005년에 비해 개선돼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치고 가장  언론자유를 누리는 국가로 조사됐다고 밝힌바 있다.

대통령과 언론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권언유착의  정치와 언론동반부패의 구습을 극복한 것은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한다.


=====세계 최대 통신사인 미국의 AP통신은 한국의 기자실 관행에 대해서  기자단에서 제외된 매체는 접근할 수 없는 배타적 정보를 제공하는 정부 혹은 기업 관계자들과의 유착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며, 기자들은 정보접근을 상실할까 우려해 이들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쓰길 꺼린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AP통신은 특히 외신들은 기자단 가입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되며 인터넷 뉴스사이트 같은 한국의 비주류 매체들 역시 정보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AP통신은 정부 관계자들은 때때로 외신기자들의 공식브리핑 참석을 허용하기도 하지만 출처공개를 원치 않는 추가정보를 출입기자단에 제공하려 할 때는 외신기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조선사설은


“언론은 원래 권력자에게 밉고 싫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 4년을 지낸 뒤엔 “신문이라는 대포가 마음 내키는 대로 포탄을 장전해 우리에게 퍼부었다”고 비난했다. 1972년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는 물러나는 날 관저 회견장에서 “오늘은 자유로운 날, 그간 너무 시달렸다. 신문기자들은 나가 달라”고 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회견장에서 TV 카메라만을 앞에 두고 퇴임사를 읽었다.“


===== 방씨족벌 조선일보는 일제시대에 일본왕에 충성을 맹세하고 조선총독부의 나팔수 노릇을 했다. 친일인명사전 1차명단에는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주와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자,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등이 일본군국주의 전쟁협력과 친일단체 가입 등의 이유로 친일인사에 포함됐다.

1972년 워싱턴 포스트지의 족벌사주와 봅우드워드와 칼번스타인 두 젊은 기자는 미국의  닉슨행정부의 워터게이트도청은폐사건을 파헤쳐 닉슨대통령을 퇴진시켰다. 반면에  1972년 방씨 족벌 조선일보는  박정희 유신독재의 언론탄압에 맞선 조선일보의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기자들을 대량해고했다. 1972년 방씨 족벌 조선일보는  박정희 유신독재의 충직한 나팔수 노릇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시 1년에 한 두번 의례적으로 신문사 발행인을 한자리에 불러 환담을 나누었다. 자주 독대한 신문사주는 방일영 조선일보 회장과 동아일보 김상만 사장 정도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은밀한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만하다.

조선일보사는 1967년 박 정권이 베푼 특혜에 힘입어 건물과 코리아나호텔을 짓기 위해 일본에서 4000만 달러의 상업차관을 아주 좋은 조건으로 들여왔다. 코리아나호텔이 세워질 당시 조선일보 구 사옥 일부가 도시계획에 포함돼 있었으나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았다. 차관 도입시 조선일보 경제부에 근무했던 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코리아나호텔 건립을 위한 자금은 1967년 대일청구권 자금 중 상업차관으로 들여온 것이며 언론사가 도입한 상업차관으로는 첫 번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국내금리가 연 26%나 됐던 것과 비교하면 연 7∼8%에 불과한 상업차관을 허용한 것 자체가 엄청난 특혜임에 틀림없다. 당시 상업차관을 주선한 사람은 방일영씨와 막역한 사이이며 공화당의 돈줄로 통하는 김성곤씨로 알고 있다.”


(참고자료출처 = 김해식 <한국언론의 사회학> 나남 1994. 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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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민주정부의 지도자들이 함부로 언론을 몰아세우지 않는 것은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대행하는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같은 대통령이나 종신 집권을 꿈꾸며 비판적 방송사를 폐쇄하는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  방우영 조선일보 당시사장은 1980년 당시 5·18광주민중항쟁을 유혈진압한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그해 5월31일 설치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문공분과 위원으로 활약했다고한다.

국보위는 전국 비상계엄에서 행정과 사법 업무를 조정 통제하던 초헌법적 기구로 신군부 정권찬탈의 전초기지였다고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군부세력이 저지른 언론사 통폐합 과정에서 조선일보만 비껴갔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대행하는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에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학살을 ‘구국의 결단’으로 칭송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박정희의  종신집권을 꿈꾸는 유신독재를 찬양한바 있다.

(참고자료출처= 2005년 8월31일 오마이 뉴스[기고] 김주언 전 언론재단 이사... 언론사주권력은 어떻게 유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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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본업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니 언론이 본업에 충실하면 할수록 권력자는 언론을 귀찮아하는 것이다. 권력이 반기는 언론은 권력과 정부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써주는 언론이다. 그러나 그런 언론은 권력의 환영을 받는 대가로 국민에게 외면당해 사라질 수밖에 없다.”


===== 조선일보의 미디어 담당 기자였던 진성호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현역기자신분으로 언론인으로서 지난 7월9일 이명박 대선캠프에 합류했고  진성호는 스스로를 ‘한나라당 대선준비팀 뉴미디어 분과 간사를 맡고 있으며, 현재 이명박 후보 공식 홈페이지의 운영책임자인 진성호’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진성호의 주장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본업과 거리가 멀다.  

조선일보 기자들의 정치계진입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최병렬도  전두환 신군부시대부터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한나라당의 차떼기 돈선거의 후폭풍으로 물러난 바 있다. 어디 그뿐인가?  조선일보 기자출신 허문도 또한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인 대학살의 공동정범노릇을 했다.


====== 1992년 대선 때 현 한나라당의 당시 김영삼 후보를 가장 열심히 밀었던 언론사는 조선일보였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사설과 칼럼, 기사를 통해 '국민당 정주영 후보 죽이기'와 '김영삼 후보 키우기'에 앞장섰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국민당은 조선일보 취재를 일절 거부하고 신문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항전을 벌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김영삼 언론장학생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 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주돈식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김영삼 대세론을 전파하면서  김영삼 대통령 당선에 기여해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1992년 대선 직후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는 조선일보 사주의 집을 직접 방문했다고한다. 자신을 지지해준 데 대한 답례였다고한다.  김영삼 ‘낮의 대통령’과 ‘밤의 대통령’인 조선일보 사주가 만나 새 정권에서의 새로운 권언유착의  파트너십을 다짐하는 자리로도 해석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참고자료출처= 2005년 8월31일 오마이 뉴스[기고] 김주언 전 언론재단 이사... 언론사주권력은 어떻게 유착했나)


===== 1997년 대선에서는 좀더 노골적인 '권력 만들기' 행태가 드러났다고 한다. 중앙일보가 노골적으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당시 국민신당은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국민신당에 대한 김영삼 대통령의 신당지원설을 악의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며 "언론이 특정후보를 지원하려고 한다면 당당하게 지지사실과 이유를 밝혀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안기부 미림팀의 X 파일내용 중에는  1997년 대선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사주가 삼성그룹의 불법 정치자금을 당시 이회창후보에게 전달해주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고 방상훈 사주의 조선일보가 어떤 일이 있어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당선을 막아야한다면서 적극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고 나와 있다고 한다.  


조선사설은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을 가리켜 ‘선출되지 않은, 스스로 만든 권력’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말은 언론의 진실한 힘은 국민이 궁금하고 의심스러워하는 것을 국민을 대신해 확인해주고 국민이 소리치고 싶어하는 것을 국민 대신 소리쳐주는, 독자와의 일체감에서 비롯된다는 민주국가에서 국민과 언론과 권력과의 관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이 지난 5년 동안 대통령의 언동을 비판한 언론에 해온 막말과 폭행은 결국 국민에 대한 욕설이고 폭행이었다는 말이다.”


====== 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버지인 방일영은  1992년 11월 당시  고희연을 가졌는데 조선일보의  사원대표인 신동호 당시 스포츠조선 대표가 “낮의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분이 계셨지만 밤의 대통령은 오로지 회장님 한분이셨다”라고 말했다고 조선일보 사보에 실린 것을 <기자협회보>가 다시 보도하여 널리 알려진바 있다.

(참고자료출처= 2005년 8월31일 오마이 뉴스[기고] 김주언 전 언론재단 이사... 언론사주권력은 어떻게 유착했나)


===== 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버지인 방일영은  ‘낮의 대통령’ 박정희의  가까운 술친구였다고 한다.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 희 대통령이 요정에 가보면 방일영 조선일보 사주는  화술로나 주량으로나 늘 좌중을 휘어잡았다고한다. 방 일영조선일보사주는 술이 거나해지면 동석자들의 지갑까지 털어 기생들에게 듬뿍 돈을 쥐어주었다고 한다. 한번은 박정희  대통령이 방 일영 조선일보사주의 대지 3700여평이나 되는  흑석동 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기생들을 불러 술판을 벌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며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불렀고 나중에는 '미꾸라지 잡기'라는 일본 민속무까지 멋들어지게 추었다는 일화도 있다고한다.

(참고자료출처= 2005년 8월31일 오마이 뉴스[기고] 김주언 전 언론재단 이사... 언론사주권력은 어떻게 유착했나)


===== 나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다섯 살 위였지만 술집출입 경력으로 보나 여자들 다루는 솜씨로 보나 방일영 조선일보 사주가  ‘촌놈’ 박 대통령보다 한참 위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 형님’이라 부르는 방일영 조선일보 사주를 “제일 팔자가 좋은 사람”이라며 부러워 했다고한다. 그러면서 “낮에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밤에는 임자가 대통령이구먼”이라고 박정희 대통령이 말했다는 것이다. 좋게 말해 당대 풍류객이고 한량이라는 얘기다.

이런 박정희와 방일영 조선일보 사주의  권언유착은 언론의 진실한 힘은 국민이 궁금하고 의심스러워하는 것을 국민을 대신해 확인해주고 국민이 소리치고 싶어하는 것을 국민 대신 소리쳐주는, 독자와의 일체감에서 비롯된다는 민주국가에서 국민과 언론과 권력과의 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언론권력의 탈선을 실사구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력과  기생파티하는 언론권력의 자유속에 언론의 진실한 힘은 국민이 궁금하고 의심스러워하는 것을 국민을 대신해 확인해주고 국민이 소리치고 싶어하는 것을 국민 대신 소리쳐주는, 독자와의 일체감에서 비롯된다는 민주국가에서 국민과 언론과 권력과의 순리적 관계는 불가능하다.

(참고자료출처= 2005년 8월31일 오마이 뉴스[기고] 김주언 전 언론재단 이사... 언론사주권력은 어떻게 유착했나)


조선사설은


“언론이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의 말과 행동과 처신이 나라의 자존심을 해치고 국민과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흔들 위험이 크기에 한 말들이었다. 대통령은 2003년 처음 일본을 방문해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서 “일본은 (한국이 우호관계를 돈독히 해야 할) 첫 번째 나라”라 하고 1년 뒤엔 “내 임기 중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더니 2006년엔 “일본의 물리적 도발에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전쟁도 불사할 듯 나섰다. 대미관계, 대일관계 등 대한민국의 핵심 외교 사안에 대해 이렇게 널뛰듯 하는 대통령에게 불안해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고 이런 국민의 뜻을 언론이 어떻게 반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고이즈미총리와 아베총리가 야스쿠니 참배하고 독도영토침략을 일삼는 일본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바른 소리한것은 타당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바른 소리한것이 타당했다는 것이 고이즈미총리와 아베총리의 불명예퇴진이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박정희식의 조용한 대일 외교를 탈피해 고이즈미총리와 아베총리가 야스쿠니 참배하고 독도영토침략을 일삼는 일본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바른 소리하면서 견제하자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진출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그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비핵화해결을 위한 한국의 역할을 자리매김한것도 평가할만하다. 남북간의 군사적 문제해결의  당사자로서 자리매김해 놓은 것도  평가할만하다.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가 비판해야할 사안은 이라크 파병과 아프칸 파병을 통해 한국인들이 이라크와 아프칸에서 인질로 붙잡혀 희생당한 점을   비판해야 했는데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이라크 파병과  아프칸파병의 뜻을 함께 했다. 조선일보가 비판해야할 사안은 한미FTA 졸속추진인데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한미FTA 졸속추진의 한배를 탄 권언유착의 어용신문역할을 톡톡히  했다.


조선사설은


“대통령은 지난 6월 “한나라당 집권하면 끔찍하다” 같은 발언들로 선관위로부터 정치중립 위반 결정을 받았다. 대통령은 곧바로 ‘자연인 노무현’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런 대통령에게 어떻게 언론이 침묵할 수 있었겠는가.“


======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의 칠순잔치날인 1998년 1월22일 저녁 조선일보 본사 7층 강당에서 열린 방 회장 고희 출판기념회에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참석해 방 회장 왼쪽에 서서 함께 축하 케이크를 잘랐다는 것은 밤의 대통령 권력인 방씨족벌의 언론권력의 힘을 실사구시적으로 보여주었다.  언론은 정책결정에 대한 영향력뿐 아니라 때로는 횡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한다 .

북한 핵사찰 문제로 시끄럽던 시절 모 외무부 장관은 청와대 보고시간에 늦어 혼쭐났고하는데  보고시간에 늦은 것은 모 신문사 사장과의 점심 때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문사 사장은 외국손님과 오찬을 빛내기 위해 외무장관을 느닷없이 호출했으며 장관은 반강제로 폭탄주까지 먹어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참고자료출처= 2005년 8월31일 오마이 뉴스[기고] 김주언 전 언론재단 이사... 언론사주권력은 어떻게 유착했나)


===== 한완상 통일부총리가 조선일보의 집요한 사상검증에 걸려 물러난바 있다.  

이런 밤의 대통령 권력인 언론권력의 힘에 김영삼 정권이 압도돼 언론사 정기  세무조사를 해놓고도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못했었다. 김영삼 정권 초기 청와대의 핵심위치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언론을 개혁대상으로 꼽았다가 '왜 우리 밥그릇에 손을 대려고 하느냐'며 언론사주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고한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했더니 몇몇 사주들은 청와대로 찾아와 협박을 합디다. '권력이 센지 신문이 센지 어디 한번 해볼 테냐'라고 말입니다. 이때부터 기가 꺾인 겁니다. 언론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라고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통령들은 외국방문을 떠나는 날 아침 몇몇 신문사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녀오겠다”는 인사말을 직접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고전해지고 있다.. 대통령과 신문사주의 만남은 대개 비공식으로 비밀리에 진행된다고한다. 유력 신문사는 사주 요청에 따라 대통령과 종종 독대했고, 사세과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고한다. 이들의 만남은 대개 국정여론 청취 등의 명분을 걸고 이뤄진다고 한다.

(참고자료출처= 2005년 8월31일 오마이 뉴스[기고] 김주언 전 언론재단 이사... 언론사주권력은 어떻게 유착했나)


조선사설은


“2003년 8월 청와대는 양길승 제1부속실장이 경찰의 수사를 무마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향응을 받은 파문이 터지자 1차 조사를 한 뒤 별일 아니라며 주의만 주고 끝내고 말았다. 꼭 4년이 흐른 지난 8월 청와대는 변양균 정책실장의 권력남용 의혹에 대한 첫 보도가 나오자마자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통령은 ‘깜도 안 되는 사건’으로 언론이 시끄럽게 한다고 했다.“


====== 청와대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고 견제해야할 조선일보 또한 청와대 못지않은 도덕적 사회적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방항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대법원은  2006년 6월29일 조세포탈 및 회삿돈 횡령 혐의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한다. 재판부는 증여세 포탈 혐의에 대해 "피고인이 회사 주식 6만5천주를 명의수탁자를 거쳐 아들에게 명의이전해 주식이 증여됐다고 판단한 원심의 조치와 허위의 주식 양도ㆍ양수계약서를 작성하고 실질적 매매인 것처럼 조작해 증여세 23억여원을 포탈한 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조치는 옳은 것으로 수긍이 간다"고 밝혔다.


===== 복리후생비 인출ㆍ사용 관련 법인세 1억7천797만여원 포탈 혐의와 관련해서는 "피고인이 전무와 공모해 허위전표를 만들어 법인손금을 증가시켜 1996사업연도 법인세를 포탈하고 일부 횡령한 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조치는 옳은 것으로 수긍이 간다"고 설명했다. 회삿돈 25억여원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허위전표를 만들어 복리후생비 명목으로 인출한 돈 중 일부를 횡령한 사실과 조광출판 자금을 임의로 인출해 사주 일가 주주들이 납부해야 할 증자대금으로 납입한 사실 등을 횡령죄로 인정한 원심 조치에 법리오해 등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2001년 8월 증여세와 법인세를 포탈하고 회사 공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벌금 56억원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억원이 선고됐다. 이에 따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신문법(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 13조의 정기간행물 발행인ㆍ편집인 결격사유(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유예기간에 있는 자)에 해당돼 앞으로 4년 간 발행인을 맡을 수 없게 됐다고 보도된바 있다. 



=====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큰아들인 방준오는 2003년 조선일보 편집국에 특채라는  낙하산을 타고 쉽게 입사했다.  중앙일간지에  입사하는 것은  '언론고시'라고 불릴만큼 어렵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큰아들인 방준오에게 특출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가지 있다면 방준오가 중학생 신분일때인 1989년 서울특별시 토지분 재산세 고액 납부자 상위 6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부동산 부자였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둘째 아들인  방정오(30)는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산하 멀티미디어팀에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한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둘째 아들 방 정오(30)는 디지틀조선일보의 지분 7.09%를 보유하고 있어 2대 주주이자 개인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2006년  4월에  조선일보  총무국 수습사원으로 슬그머니 발령을 받은바 있다고 한다. 이런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의 불법 탈법 편법 경영과 족벌세습낙하산 인사관행은  사회적 공기이고 사회적 목탁이어야할 조선일보를 방항훈 세습족벌언론권력사주의 사유화된 권력으로 타락시킨 전형이다. 



===== 이런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사설이   변양균 정책실장의 권력남용 의혹을 제기하면서  변양균 정책실장의 권력배후에 무엇이 있는 것인양 의혹을 증폭시키는 보도를 했으나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변양균 신정아 스캔들 사건으로 밝혀지고 있다.

변양균 정책실장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응분의  책임을 묻고 노무현 대통령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한다. 뿐만 아니라  변양균 신정아씨 사건을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집중보도하면서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는  언론으로서  넘어서는 안될 탈선적 경계의 선을  넘어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의 조선일보 구독거부 운동에 직면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조선일보 구독거부 운동에 대해서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가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 조선일보는 신정아씨 사건을 보도하면서 신정아씨의 청와대 방문사실에 대해서도 강한의혹을 제기했고  변양균씨와  신정아씨의 사적인 연애편지까지 시시콜콜하게 공개보도하면서  한편으로 신정아씨가  '포야' 라는 모임을 통해  조선일보 현직간부인 강효상 조선일보 사회부장과  한두달에 한 번씩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어슬렁거리면서  어울리고 다닌 사실에 대해서는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사설이 죽음같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두 사건 모두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브리핑과 변명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언론이 권력의 브리핑만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이 두 사건은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거짓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지금 권력에 굶주린 하수인 몇몇을 앞세워 기자들을 청사에서 몰아내며 권력의 브리핑만 받아쓰라고 강요하고 있다. ‘자연인 노무현씨’의 사적 증오와 원한을 ‘대통령 노무현’의 권력을 빌려 위헌적 방법으로 풀고 있다. 일종의 ‘정신적 강박증’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


======= 조선일보 사설은“두 사건 모두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브리핑과 변명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언론이 권력의 브리핑만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이 두 사건은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거짓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조선일보 기자들이 정부각부처의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정부의 보도자료에 만 치우친 관행에 안주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사설이 “ 대통령은 지금 권력에 굶주린 하수인 몇몇을 앞세워 기자들을 청사에서 몰아내며 권력의 브리핑만 받아쓰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한편으로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와 아프칸에 대한 한국 기자들의 취재를 봉쇄 조치한 것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보신주의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와 아프칸에 대한 취재봉쇄조치에 순응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조선일보 기자들이 대한민국 정부의 각부처 기자실을 사수하기위해 우물안 개구리식의 언론기득권을 지키고 있는 시점에 미얀마에서는 수많은 민주시민들이 미얀마 군부의 무력진압으로 살상 당하는 비극적인 현장에 조선일보를  비롯한 한국기자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한국기자들은 미얀마의 유혈 항쟁을 외신들 보도 받아쓰기로 일관했다.조선일보를 비롯한 한국기자들은 이라크와 아프칸 뉴스도 외신받아쓰기로 일관했다.

이런 조선일보와 한국 기자들이 노무현 정권을 상대로 요구하는 ‘취재자유’는  언론소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기자들의 기득권을 확보하기위한 과대포장용으로 보인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과 현정부가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보인 졸속성이나 밀어붙이기식의 잘못된 접근법은 고쳐야 하고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취지는 백번 옳다.  노무현 대통령이 술밥사주고 기자들 과 유착하는 것보다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치와 언론의 동반부패를 막고 상호 견제를 통해 함께 발전할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사설은“‘자연인 노무현씨’의 사적 증오와 원한을 ‘대통령 노무현’의 권력을 빌려 위헌적 방법으로 풀고 있다. 일종의 ‘정신적 강박증’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라고  노무현 대통령을 근거 없이 비방하고 있다.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임직원들을 따로 청와대로 불러 노무현 대통령이 주지육림의  질펀한 권언유착성 술판을 벌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값비싼 중국음식점에서 베푼 폭탄주 술파티에 참석해 이명박식 인생의 지혜를 주제로 한 여성 맛사지걸 고르는 방법이란   이명박의  강연을 듣는 권언유착성 폭탄주에 기자정신을 질식 시켰다는 말인가?


====== 조선일보가  제대로 된 신문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의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놓고  기자들이 강력반발하자 공개토론을  제안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주와 편집국장등을 초정했을 때 적극 응해서 언론취재와 관련된 생산적인 토론을 해야 옳았다.

그러나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값비싼 중국음식점에서 베푼 폭탄주술파티에 참석해 이명박식 인생의 지혜를 주제로 한 여성 맛사지걸 고르는 방법이란   이명박의  강연을 듣는 권언유착성 폭탄주에 기자정신을 질식시키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공개토론을 스스로 거부하고 불참한것은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임직원들에게 기자정신이 존재하지 않고 타파해야할 언론권력과 언론기득권 만이 존재하고 있다을 실사구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취재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권언유착성 이명박 폭탄주가 곁들여진 여성 맛사지걸 고르는 인생의 지혜 강연속에서 찾을수 없다. 차라리 소주한잔 대접하지 않고 언론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이 한국언론의 자유를 신장하고 권언간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통한 정치와 언론의 동반 발전에 기여한다고 본다.

권언유착성 이명박 폭탄주를 받아 마신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편집국장이 접근하는 언론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명박 폭탄주를 받아 마신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사설과 기사와 칼럼속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  대한 비판적 검증의 날카로운 필봉을 찾을수 없다. 이명박 폭탄주에 취한 조선일보 편집국장의 올 대선 대선관련보도의 편집방향이  궁금하다.


  (자료출처 = 2007년 10월18일 조선일보 [사설] ‘개인적 원한’을 ‘대통령 권력’으로 풀고 있는 대통령 )


글이 길어서....반복부분 줄이고...단락도 나누었음...원문은 안티조선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