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

오늘은 참 재미난일이 많았습니다.

순수한 남자 2007. 10. 26. 18:33
오늘은 참 재미난일이 많았습니다.
번호 142101  글쓴이 nightowl   조회 3467  누리 1019 (1019/0)  등록일 2007-10-26 10:36 대문 12 톡톡


눈팅5년, 밤택시 5년차 nightowl 입니다.

어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께서 택시노조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했다는 뉴스보고, 글 올리다가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내용이 너무나 방대해지고 글이 길어지다 보니 본인 스스로 지루해진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고랑창님이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주신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첫째, 이명박을 신뢰할 수 없음과 같이 택시노련 관계자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그들이 택시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는 거) 둘째, 택시업의 여러 가지 문제는 그 주체가 풀어야 한다는 것(제도와 시스템의 개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 셋째, 안타깝게도 현재 택시노동자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택시업이 자영업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 그래서 결론은 최저임금제, 특소세경감 등의 문제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명박이건 누구건 날 한번 찾아오세요. 자세히 갈켜주께!'

경선이 끝나고 한동안 저는 우리의 미약함에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전시작전권환수문제를 놓고 만나는 손님 중 10중 8,9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했을 때의 절망감(이거 월드컵 때 대한민국! 외쳤던 국민 맞아!)과 아주 흡사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개혁세력의 "세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는 요즈음입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다시금 힘을 얻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 만나지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일상은 나의 정치적 방향을 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나의 삶 속에서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하니까요.


오늘은 참 재미난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에피소드 1)

라디오에서 9시 뉴스가 흘러나올 즈음, 선릉역에서 30대 남자직장인이 택시를 잡았다. 신사역으로 가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소기업을 위해 뭐했나. 서민이 살아났어요? 지나간 5년 동안은 중산층이 서민 되고 서민이 빈곤층 되고 그런 거 아닙니까?" - 이xx 한xxx 대선 후보

"서울시장 3년 하면서 서울의 빈부격차가 더 벌어진 거 같은데?" 한마디 툭 던졌더니 손님이 "킥킥" 거리며 웃는다. "맞는 말이네요.", "이번 대선엔 푹 쉴랍니다. 찍을 사람이 없어요.", "참 걱정입니다.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는 거요."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어진 말이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노무현이도 찍어줬더니. 다소용 없어요. 그 땐 참 좋았었는데."

"손님! 저는 노무현 찍은 거 후회하지 않습니다. 노무현 아니면 안될 일들을 많이 해놨고요, 또 지금도 진행중이거든요. 사람들이 대통령 아무렇지 않게 씹어대는 거 이거 노무현이니까 가능한 일 아닙니까? 앞으로 누가 대통령 되든 우리 국민은 이제 눈치 안 보고 맘대로 대통령 씹어 돌려도 되거든요.",

"참…. 듣고보니 그러네요."

"노무현은 국민과 대중의 시대를 완성한 대통령입니다. 경제요? 5년 내내 대통령한테 경제 살려내라고 악다구니 쳤는데 한번 망했던 경제가 순식간에 살아온답니까? 요즘은 손님들도 경제 얘기 별로 안 하는 거 보면 좀 나아지긴 하나 봐요."

"요즘은 경제 얘기 별로 안 하는 거 같긴 해요."

"이회창이 뭔 집횐가 나와서 수구 꼴통이란 얘길 들어도 할 말은 해야 한다면서 친북좌파니 그랬다던데 북한 핵위기 때 이회창이 대통령 됐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남북이 싸우면 누가 대한민국에 투자한답니까? 그러면 경제가 나아졌겠습니까? 노무현이 뚝심 있게 미국과 잘 조율하면서 북한문제 풀어낸 것만 가지고도 국민은 대통령한테 박수 보내야 되는 거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대통령의 억양을 따라하게 되었다.) 손님은 지난 선거에서 정말 잘하신 겁니다."

"(당황스럽다는 듯)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거 같습니다." 누구를 찍어야 할지 아직은 결정하지 못했지만, 분명 한xxx은 아니라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 바둑을 두는 심정으로.', 종종걸음으로 사라져가는 손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에피소드 2)

손님을 태우려고 신사동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던 차에,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50대 아주머니가 택시에 올랐다. 9시 뉴스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동서울 터미널에 델다 주세요."

한남대교를 넘어 강변북로로 접어드는데 선거방송이라면서 대통xxxx당 정xx이 라디오에 출현하는 것이 아닌가! 채널을 돌리려다가 '그래 뭐라 하는지 한번 들어보자.'라는 심산으로 채널 가까이 갔던 손가락을 내려놓았다.

"정동영이 동대문엔 왜 갔답니까?"

"아~그게요."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하여튼, 선거 때만돼면 서로 서민이라고 하는데. ㅉㅉ."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은 눈이 선해야 하는데. 이 사람 옛날 앵커 할 때는 참 눈이 선했는데, 정치하면서 점점 변하더니 지금은 그 눈이 아녀요. 한번 변한 눈빛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데…."

중얼거리듯이 들리는 나지막한 음성이 나의 폐부를 찔렀다. 이리도 간결한 인물평을 할 수 있을까? 룸미러로 아주머니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녀의 얼굴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저기. 그럼 이xx은 어떻습니까?"

"그 양반 눈은 옆으로 째져서 잘 모르겠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어찌도 이리 명쾌하단 말인가!'

"손님! 저 좀 실례되는 말씀인데요.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전 부당하게 공격당하는 '노빠'가 되긴 싫거든요. ㅋㅋ.  


에피소드 3)

서늘한 기운을 몰고 가을비를 휘 뿌리는 잿빛 하늘과 오늘도 어김없이 거리의 주인이 되어버린 네온사인이 한데 어우러져 몽환적 판타지의 세계로 빨려갈 것만 같은 밤 12시 강남역. 즐비하게 늘어서서 택시를 잡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던(이런 걸 승차거부라고 하죠) 차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젊은 아가씨를 발견하였다.

"아저씨. 저 좀 태워주세요. 급한 약속이 있는데. 택시가 그냥 지나가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청량리요."

'지금 시간에 청량리 가면 망하는데….'를 되뇌면서도 약해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급하다는데. 

"타세요." ,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 왜 이리 택시가 없는 거죠?"

"오늘 월급날에다 비까지 오니까 그렇습니다." 꽉 막힌 강남대로 사이를 요리조리 달리고 있는데 손님의 통화가 시작되었다.

"뭐라고? 그런 게 어딨어! 혼수, 예단해서 1억 가까이 들었는데  뭐? 그럴 수가 있어?" 한참을 다투던 통화는 청량리에 진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결혼하시나 봐요?" 그녀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차창 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때 조심스레 운을 뗐다. "네." 나지막한 대답이 돌아오기 무섭게 뭔가를 작심한듯한 그녀의 모습에서 다음 대화를 예상할 수 있었다.

"아저씨!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예요?"

처방을 내려주었다. 결혼은 둘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거지 부모님 행복하라고 하는 건 아니다. 결혼할 사람과 다시 결혼의 원칙을 세워라. 살집? 혼수? 예단? 이런 건 결혼할 당사자들의 능력 안에서 결정해야 한다. 원칙에 어긋날 땐 과감히 부모님과 맞설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 이점을 남자한테도 주지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작 내가 들러리서는 결혼이 될 수 있고, 불행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는 등등.

"오늘 택시 참 잘 탔네요. 명심할게요." 그녀에게서 돌아온 대답이었다.


에피소드 4)

이게 젤 잼나는 얘긴데, 글이 길어져서 담으로 미뤄야겠습니다. 졸리기도 하구. (죄송^^)


행복이라는 것. 행복해진다는 것.

더 많은 사람이 이것을 얻어가기 위해 우리는 어느 정치세력을 반대하고, 어느 정책을 반대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이것을 느끼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어느 정치세력을 지지하고, 우리 스스로 한 세력이 되어 참여하기도 합니다. 나만 행복하게 살면 될 거 같은데, 우리는 왜 이렇게 안달하며 울고 웃고 있을까요.

나만 행복하게 산다는 건 애초부터 가능한 얘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냐면 사람과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내가 혼자 아무리 발버둥쳐도 절대로 이것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nightow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