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의 출마, 꼴통보수의 집합, 안개정국으로 한치 앞을 보기 힘든 대선 판세, 이런 모호한 상황에 박근혜처럼 복잡한 속내를 가진 사람도 드물 것이다. 몸값이 올라가서 좋은데 잘못 처신했다가는 처박힐 수도 있고 여기에서 잘하면 한 건 할 기회는 왔는데….
화려한 싱글
탄핵 열풍으로 한나라당은 파멸 직전으로 갔고 혜성같이 나타나 한나라당을 구한 것은 박근혜였다. 그녀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5년간 퍼스트레이디(영부인) 노릇을 했고 2000년부터 지금까지 국회의원(2선),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시절 한나라당지지도를 7%에서 52%로 열린우리당 대표 8명 갈아치우면서 각종 선거에서 40:0으로 승리한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나라당을 휘어잡으며 최대의 주주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대통령 후보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이명박의 출현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고 이명박이 자기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에 용납이 되지 않아 경선국면에서 검증 면도날로 칼춤을 추었다.
그녀의 얼굴에 그려졌던 면도날의 자취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 면도날은 마음속 깊은 곳에 또 다른 모습으로 자리매김을 하여 그녀의 입이 면도날로 변했다. 그녀는 과거의 이미지와 달리 이명박의 면상을 사정없이 긁어서 검증공주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어냈다.
현재 이명박의 부도덕성으로 제기된 거의 모든 문제는 박근혜가 경선과정에서 제기한 것이다. 그 와중에 여권과 청와대와의 내통설이 제기되었고 이명박 측은 그녀를 불륜을 저지른 타락한 여자로 부르기도 했다.
비참한 옹주 신세
경선 탈락하여 옹주 신세로 전락한 박근혜는 마음이 말할 수 없이 비참하였다. 그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박사모나 에코넷 그리고 자기를 추종하던 세력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해체하지 않고 다음을 기다리면 와신상담하면서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박근혜가 발설한 말 중에 ‘이명박은 불안한 후보이다. 필패 후보이다.’라는 것은 상대방만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다짐한 결심에 찬 독백과 같은 것이었다.
경선 패배 후 ‘감사하다, 미안하다.’로 시작한 그녀의 홈피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숨이었다. 9월 11일 두 번째로 “붙잡을 수 없는 시간 알차게 채워야”라는 요지로 순응하고 체념하는 듯한 말을 남겼다. 9월 16일에는 '강은 비가 오면 불었다 줄었다 하지만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인 것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는데 15일 ‘가을이 시작되었다.’라는 색깔이 없는 글 제목을 하루 만에 바꾸어 무언가 시사하는 비유를 표현했다.
10월 22일에는 “찢어진 낙엽이 유독 정겹다 항상 여러분과 함께 갈 것”이라는 요지로 글을 남겼다. 마음이야 찢어져 있겠지만 추종자들과 함께한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 글을 남기기 전에 문제의 발언인 ‘나를 도운 게 죄인인가요?’가 10월 15일에 발표되었다.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이유 하나로 한나라당에서 찬밥이 된 측근들을 위해 도발하는 심정으로 작심을 하고 내뱉은 말이다.
이 무렵 서청원이 이회창을 만나서 하루 만에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 후 박근혜는 서청원과 지지자와 함께하는 등산에서 “어린이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무럭무럭 마음을 키워서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로 강력한 의지를 표현했다. 이산의 화환옹주가 세손을 흔들어 낙마시키려 하듯이 그녀의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계약동거녀
저돌적인 멧돼지 형제인 이명박과 이재오가 덫에 걸렸다.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한 이재오가 박근혜 잔당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이다. 이 분노의 불길은 이회창이 출마하지 않았다면 이재오가 오줌을 눠도 꺼질 불이었다.
박근혜의 쿠션과 이회창의 노망스러운 대통령 병이 결합하여 큰불이 일어났다. 여기에 이명박의 경박스러움과 무식함이 어우러져 조기 진화에 실패하고 이재오가 석유를 부어버렸다. 당황한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재오를 일선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일단락 짓자는 것이다.
이제 계약서를 써야하는 박근혜의 입장은 어떤가? 그녀는 동거의 조건으로 이재오, 이방호의 목과 당권을 요구했다. 속마음이야 당장 후보 자리까지 요구하고 싶겠지만 분위기상 그럴 수는 없는 것이고 이재오의 목으로 만족하고 수습을 할 것인지 아니면 이왕 주어진 기회에 몽니를 더 부릴 것인지 주판알을 튕기기에 여념이 없다.
박근혜가 탈당을 하여 이회창을 지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과거에도 가출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탈당을 하면 불량한 저질 여자로 보이기 때문에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측근들이 이회창과 연통을 하여 바람을 피우는 것은 서청원, 정인봉, 홍사덕 그 후 또 다른 사람으로 이어지겠지만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고 은밀하게 저지를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내뱉은 말이 있고 상황도 애매해서 이명박의 품에 안겨 행복한 세월을 보낼 수도 없다. 애정과 신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대상과 헤헤거리면서 지낼 수는 없다. 이명박을 발아래 깔아뭉개면서 놀면 되는데 이명박도 만만치 않아서 이재오 외에는 더 줄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세상도 많이 변해서 계약 동거라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합리화되어 있다. 정치인이 계약 동거를 한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도 거의 없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명분과 실리를 다 얻는 것인지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족보다 좋은 족발
지금 대선 주자들이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한 수 배우려고 노무현을 예방하는 상상을 해본다. 순서는 가나다라 순서입니다. 이인제 이하는 지면 상 생략했습니다. 김혁규, 강운태, 그리고 참여정부 관계자는 질문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문국현 : 대북정책은 미국의 도움 없이 남북 관계만으로는 전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미국을 잘 알고 많은 국제관계를 해본 저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답 : 이회창이는 나보다 미국에 더 호의적이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전쟁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겉만 보지 말고 속을 볼 수 있도록 공부하세요(땅).
이명박 : 읍참재오를 하였습니다. 박근혜가 저를 지지하겠지요?
답 : 제가 점쟁이입니까? 여인네 속마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미아리 근처로 가보시지요. 동거계약서 내용이나 잘 확인하십시오. BBK처럼 어수룩하게 하지 말고
이회창 : 박근혜는 매력이 있는 여자입니다. 관속에나 들어갈 나를 일으킨 것을 보니 허허허
답 : 식욕, 성욕, 수면욕은 나이가 먹을수록 줄어들지만 노망기 있는 권력욕은 더 늘어나는 법입니다.
정동영 : 이회창이 나와서 이제 단일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마디 도움되는 말이라도….
답 : 단일화 문제는 지난번에 다 말했습니다. 상식과 원칙에 입각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내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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