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6일은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데, 11월17일에 미국에서 김경준이 들어온다. 그 사이가 10일이지만 일요일 이틀과 토요일 하루를 빼면 딱 일주일이다. 그 사이 대선 정국은 한바탕 요동을 칠 수 있다.
박근혜는 당대표 시절에 이재오가 항상 옆에 붙어서 언론에 자기 얼굴을 팔아먹다가 막판에 배신했을 뿐 아니라, 당권 장악마저 막아서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는데 때마침 과잉 충성용 헛소리를 하자 박근혜는 이재오를 사퇴시키지 않으면 당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물고 늘어졌다.
이에 놀란 한나라당은 이재오를 서둘러 사퇴시켰다. 박근혜 진영은 그게 다가 아니라며 잠적에 들어갔는데 김경준이 도착하기 전에는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가 이재오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진짜 이유는 당대표 시절에 자신의 수첩에다 '경제가 어렵다.', '서민을 살려야 한다.'를 계속 써주어 결과적으로 이명박이 승리하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정치적 역량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 이명박을 위시한 한나라당과 이회창과의 개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있다가, 검찰이 떡검과 삼성을 보호하려고 이명박을 전격 구속하면 경선 후보 승계에 따라 26일 이전에 재빠르게 후보 등록을 하려는 정치적 계산이다. 만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당권 전체를 자신에게 넘겨주지 않는 한 이명박과는 절대로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이 거래는 이회창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근혜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회창이나 박근혜의 행보를 보면 이명박이 BBK 사건을 절대로 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박근혜는 당권을 장악하려고 버틴 면도 있는데 최근에 이회창이 대선 출마 연기를 본격적으로 피울 무렵 태도가 돌변하기 시작함은 둘 다 이에 관한 확증을 나름대로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만일에 삼성비리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검찰은 김경준의 조사를 엿가락처럼 늘리거나 아예 대선 이후로 뭉개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검찰의 수뇌부가 걸려 있는 떡값 때문에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 떡검 명단을 넘겨야 수사에 착수한다고 했는데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은 명단을 넘기지 않고 있다. 삼성비리에 관한 수사를 검찰 내부로 돌려서 본질을 흐린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검찰이 떡검 명단을 먼저 요구한 것은 나름대로 자신감 때문이다. 김용철이 퇴직한 이후에 도청사건에 연루된 상당수의 검사들이 슬그머니 옷을 벗고 나갔기 때문이다. 퇴직한 자라도 혐의가 있다면 불러들여 조사를 하고 처벌해야 마땅하다. 이때에 맞춰 삼성은 구조본에 있는 법률팀을 무료법률 서비스 어쩌고 개나발을 불며 해체했다.
김용철이 퇴사 이후에도 받아먹은 떡검의 여부는 명단이 공개되어야 아는데, 만일 있다면 고발자는 혼자가 아니다. 검찰은 오늘 떡검 명단을 12일 기한 제출하라고 했다. 이는 상당한 조바심을 보이는 것으로 김경준이 도착하기 전에 뭔가를 해결하려는 의지다.
퇴직한 지 3년 된 사람이 왜 하필 이 시점에서 터뜨렸냐는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데, 김용철이 사제단을 찾아간 시기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기막힌 시점이 아닐 수 없다. 고도로 계획된 시점이다. 참여정부 내내 검찰에게 철저히 수모를 당한 국정원의 대반격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 국정원은 검찰 조직보다 훨씬 방대하며 호구가 아니다.
검찰은 이명박을 전격 처리하는 것으로 관심을 돌리고 삼성비리 조사는 대선까지 질질 끌다가 이회창이 되면 더 좋고, 다른 후보가 된다면 개인과 측근 비리나 선거법 위반 사실 등을 빌미로 잡아 새 정부와 협상을 하고 언론이 그때까지 받쳐 준다면 뭉개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한나라당의 지도부는 이를 몰랐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한나라당은 언론, 검찰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려 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안강민 전 검사장을 검증 위원장으로 내세운 것은 애초부터 검증이 아니라 검찰에 선을 넣어서 보호하려고 한 것인데, 본인이 검증 자체가 안 된다며 고사를 했다. 어떻게 하던 대선 전까지 이를 막아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왔다. 그러던 차에 김경준이 들어오고 의외의 삼성 비리 고발사건이 터진 것이다.
청와대의 깊은 고뇌를 알지 못하고 성급히 특검이나 검찰에 수사를 지시하라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무지함이다. 노 대통령은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주려고 임기 내내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막판에 와서 이를 허물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청와대가 수사를 지시하면, 검찰 수뇌부는 청와대가 검찰을 죽이려 든다고 설레발을 치며 순식간에 내부 결속을 다질 것이다. 그렇기에 청와대가 철저히 원칙을 지키려고 하는 고뇌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특검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실현성과 시기 면에서 모두 어려운 일이다.
앞서 살폈지만 검찰은 이 두 사건을 떠안고 갈 수는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결국 자신들의 숨통을 옥죄게 될 것이다. 이명박을 잡아들여도 대선 후보라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며 삼성을 터트리면 자폭을 하는 것인데, 둘 다 어물쩍어물쩍 넘어가다간 핵폭탄을 맞을 수 있다. 말 없는 국민을 우습게 보지 마라!
과거의 검찰은 꼼짝없이 권력의 시녀 역할을 했다. 공안 검사가 안기부에 파견되어 그들의 지시를 받고 구속영장을 대서해주는 대서방 노릇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검찰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타성과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함은 무엇 때문일까?
'권력에 함몰되어 의식의 절대적 빈약함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1600여 명의 검사 중에 도둑놈을 잡을 검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인가? 그렇게 자기 자리가 목숨보다 중요한가! 아니면 삼성이 그토록 무서운가!
일련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검찰 내부가 요지부동이라면, 사람이 먹다 남은 밥을 먹는 개는 도둑을 보고 짖기라도 하는데, 2007년 오늘 근무 중인 대한민국 검찰은 개가 먹다가 흘린 밥알을 주워 먹어서 그런지 개들만도 못한 존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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