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1세대임을 기억하며…!
이제 서서히 암울한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명박의 집권을 뜻하며 노 대통령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어떤 이는 내가 쓴 글의 댓글을 통해서 나를 정신병에 걸린 무뇌노빠라고 욕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내가 쓴 글들에 대해서 경멸을 감춘 조소와 비아냥으로 나를 욕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 어쩌면 나는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미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미쳤었기에 누군가가 나에게 조소하고 비아냥대도 별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나 보다. 돌이켜보니 나는 미쳤던 것이다.
소설 대망(원래 제목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을 보면 아주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어느 날, 이에야스가 자신의 큰아들이며 후계자였던 도쿠가와 노부야스(훗날,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자결을 하게 됨)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에야스: 너는 대장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노부야스: 지도력입니다.
이에야스: (고개를 흔들며) 아니다. 그것은 일군을 이끄는 장수로서의 역할일 뿐이다.
노부야스: 덕입니다.
이에야스: (고개를 흔들며) 아니다. 때로는 냉정해야 할 필요도 있다.
노부야스: 아버님! 그렇다면, 대장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이에야스: 반하게 해야 한다. 너를 보고 네 부하들이 반하게 되면, 너는 자연스럽게 지도력도 생길 것이고 덕도 따르게 될 것이다.
난, 노무현에게 반했었다. 그렇다고 그가 나에게 10원 한 장 준 적 없었고, 소주 한잔 사준 적 없었다. 그러나 난 그에게 반했었다. 뻔히 떨어질 줄 알면서도 구태여 부산에 내려가 쪽박을 스스로 찼던 그를 바보라고 책망하며 안타깝게 지켜보았었다.
그러다가 지난 대선의 민주당 경선 때, 후단협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정몽준과 단일화를 꾀하며 했던 그의 말…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 어려운 시기, 당 안에서도 흔들리고 당 바깥에서도 흔들리고 저 혼자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었을 때, 끝까지 저를 지켜주셨던 여러분께 이 결정은 무척 실망스러운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는 이 현실을 힘 있게 돌파하기 위해서 또 한 번 자신감을 가지고 뭉칩시다. 여러분이 마음을 먹으면 설사 이것이 원칙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승리를 통해서 돌파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믿고 내린 결정입니다. 도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겨내겠습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숙연한 표정을 보고, 아니 무엇인가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은 여러분의 표정을 보고 저도 지금 참으로 난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용기를 주십시오. 정정당당하게 검증받고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힘을 냅시다." - 노무현
이때 했던 연설을 통해서 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러다가 그가 임기 중에 탄핵을 맞이하고 나서 느낀 분노는 그대로 나를 열성적인 미치광이로 돌변하게 만들었다. 그랬다. 나는 미쳤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에게 반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지난 5년여의 세월을 미치광이로 지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뉴스를 보고 피곤할 필요도 없고 고리타분한 어르신들과 말싸움을 할 이유도 없어졌다. 그러나 나는 이 상황이 매우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제정신으로 돌아왔음에도 왜 이리도 마음만은 미치광이였던 시절이 그리운지 모를 일이다.
나는 한평생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미쳐있었던 20대 후반에서 갓 30을 넘긴 지금의 시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문뜩 깨닫게 된다. 때로는 미쳐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나는 다시 예전처럼 소극적이고 사회에 무관심한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내 가슴에 미친 열정은 빠지고 그 빈자리를 '성숙'과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생기게 될 '노련함'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열기는 서늘해질 것이지만,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글을 읽고 공감할 이들과 나는 이제 어쩔 수 없는 노무현 1세대가 될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라. 당신과 나는 노무현 1세대이다. 노무현이 아니라도 그가 꿈꾸고 가려 했던 길을 가고자 하는 누군가가 나온다면, 그 누군가가 노무현과 같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다시 2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안도하며 이 엿 같아질 세상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오늘 대통령께서 기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대통령께서는 이제 더 이상 승부의 대척점에 서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셨다. 뻐근한 슬픔과 한숨이 쉬어지는 안도감이 공존하는 이 마음은 대관절 무엇일까!
떠나는 대통령에게 마지막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글을 맺어야겠다.
대통령님! 많은 국민들이 당신을 원망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개중에는 저같이 당신에게 미친 사람도 있었답니다. 이것이 당신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당신을 원망하는 사람만큼 이렇게 당신을 열성적으로 응원했던 이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행복하신 겁니다. 대통령님! 솔직히 저는 당신이 명패를 집어던지며 분노했을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짓고 계실 때가 훨씬 보기 좋았답니다.
부디 웃으시며 떠나십시오. 권 여사님과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고향으로 떠나가십시오.
저는 당신의 미소를 보고 싶습니다. 아니, 당신의 미소가 그리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