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취임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새 대통령은 시들한 데, 전임 대통령 인기는 폭발이다. 가오 깨나 잡고 있는 세종로 1번지는 인상 구기고 있는 데, 한적했던 봉하마을 92-1번지는 즐거운 사람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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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이후 국정운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민이 49.1%로 조사됐다. 이는 민선대통령 취임 지지율로는 역대 최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가 지지자들과 누리꾼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청와대 홈페이지는 상대적으로 조용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귀향 후 첫 휴일을 맞은...1일부터 2일까지 봉하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이 1만5천여명에 육박할 것으로...”
두 곳의 분위기다. 찌라시들은 땅박의 ‘인사’에 대한 실망과 역사상 처음으로 귀향한 대통령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며 그들답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그렇게 ‘욕’을 많이 먹은 노짱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의외라는 반응이다. ‘동정심’이라고 보는 한심한 자들도 있고.
이렇게 지꼴리는대로 해석하면 절대 찌라시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는 ‘땅박과 노짱의 정체성(identity)’이라는 문제의 핵심으로 곧장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 즉, 저 대비되는 분위기는, 땅박은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거나 갈팡질팡하고 있는 반면, 노짱의 감추어졌었거나 비뚤어져 전해졌던 정체성은 새삼 제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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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린 입이라고 국무회의용 의자를 팔걸이 없는 간소형으로 바꾸는 것에 ‘실용’이라는 말을 함부로 갖다 붙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쇼다. 오죽했으면 쇼를 하면서 ‘이것이 실용아닌가베’라며 떠들어댈까 이해도 되지만, 묻지마들조차 이게 실용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쯤은 안다. 지금 사람들은 땅박이 ‘갱제’ 생각은 안하고 왜 의자바꾸기 쇼들에만 열심인지 궁금한 것이고, 더 나아가 의자교체를 갱제살리기의 하나라고 우길까 봐 당황한다.
정체성이 헷갈린다. 땅박이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인 ‘준법’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모름지기 땅박은 ‘몬짓을 하더라도 갱제만은 살리겠다’며 대선과 특껌을 통해 면죄부를 받았다. 이것은 ‘코드’다. 땅박 장관들이 줄줄이 떨궈져 나간 것은 이 코드를 무시하고, 그들답지 않게, 조현욱이 말했듯이, ‘(우리는) 너무 정직한 게 흠이야’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 대신 ‘까짓 탈세, 투기, 위장이 뭔 대수요? 갱제 살린다는데!’라며 선수를 쳤어야했다. 그렇게 했다면 사람들은, 땅박에게 그러했듯, ‘살 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이해했었을 런지도 모른다. 근데, “자연을 사랑한 나머지 절대농지를 매입했고...”라는 말을 듣자 그만 짜증이 나고 만 것이다. 그런 말 듣자고 쪽팔림 무릅쓰고 땅박을 찍은 게 아닌데 말이다.
사람들은 갱제가 어렵다고 하고 땅박이 그 갱제를 살린다니 ‘도덕’은 잠시 덮어두기로 작정했다. 진심으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듯 보여서 덜컥 그렇게 했다. 일종의 유행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땅박은 꼭 성공해야 했다. 성공한 듯 보여야했다. 그래서 그런가. 불과 두 달 만에 고소영임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5년간 해쳐먹을 것임을 뻔히 보였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땅박에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앞으로는 (땅박이) 잘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80%를 웃돈다고 한다.
땅박이들은 절대 준법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오직 갱제만 얘기해야 된다. 그게 묻지마들을 안심시키는 것이고 그래야 땅박들답다. 그게 싫다면, 이쯤해서 차라리 이실직고 하던가. '살릴 갱제'는 없다고...그동안 국민들한테 갱제 살릴 것처럼 뻥쳐왔는데 사실은 자신 없다고...연 7% 성장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고...보니 참여정부가 그동안 잘해왔다고...솔직히 말해버리면,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겠는가.
땅박은 며칠 사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선진일류국가의 바탕이다“, ”국무위원 뿐 아니라 고위 공직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확고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숨돌리지 않고 말했다. 금지어로 지정해도 모자랄 판에 너무 자주, 그것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썼다. 집총, 거수 경례 자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자가, 일반인의 몇 십배에 달하는 군면제율을 자랑하는 내각의 수장이라는 자가, "군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땅박은 그저 ‘등 따숩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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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찾는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 첫째는 지지여부에 관계없이 찾는 사람들이다. 찌라시들이 워낙 홍보를 많이 해줘서, 어찌 된 것인지 어찌 지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대체 그게 가능이나 한 것인지 반신반의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당연히 노짱 지지자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사람의 고향과 집을 그저 휘 둘러보고 맘에 새기는 것으로 족 한다(족해야 한다).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참된 노무현의 모습을 알고 있거나 알고자 하거나 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노짱을 직접 보고 직접 듣는다. 직접 소통으로 노무현의 진짜 정체성을 발견하고 즐기고 있다.
왜 봉하마을인가. 사람들은 봉하에 직접 내려와서, 봉하에서 완전한 ‘수평적 인간’이 되어가는 노짱에 다가가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사람은 부모를 닮기보다 시대를 닮고, 시대를 닮기보다 고향을 닮는다. 중간에 끼어들어 소통을 막고 노무현 정신에 어깃장 놓던 찌라시들이 사라진 이곳 고향에서 사람들은 직접 소통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이곳에서 노무현은 “국민한테 거역 안했으나 언론한테 틀림없이 거역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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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뿐 아니라, 노짱이 직접 운영하는 노하우는 ‘매력적인 무기’다. 온오프를 막론하고 그 어느 때보다 노무현 정신에 대한 애정과 궁금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소통의 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제 뻘줌해진 선관위도, 헌재도, 조중동도, 딴당도 이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한 고조 유방은 그의 고향 '패'에서 만들어졌다. 진나라의 혹독한 동원체제는 안티테제를 필요로 했다. 진나라의 말단 관리이면서도 반은 건달인 유방에게는 딱히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람 끄는 힘’이 있었다. (나중에 대 재상이 되는) 소하, 번쾌 등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자들도, 가진 것 없으나 ‘옆집 아저씨’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유방을 졸졸 따라다녔다. 분명히 그에게는 새 나라를 일으켜 세울 '정신'이 있었다. 유방은 식객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국밥’ 먹이고 재우고 입혔다. 이들은 나중에 새나라를 건설한다.
패는 물 많고 따뜻하고 넉넉해 사람들을 품고도 남았다. 그곳에서 자란 사람답게 유방은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드넓은 인간이었다. 힘 좀 쓰는 장사 항우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소하는 겉으로는 ‘참 못난’ 유방을 본 것이 아니라 본질을 봤다. 노무현의 시대정신과 정체성은 재야의 시절에도 청와대, 봉하마을 시절에도 똑같다. 27%라는 사람들은 일관되게 그의 본질을 알아보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찌라시가 걷혀진 봉하마을에서 비로써 참 노무현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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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에게 '강연'처럼 좋은 정치는 따로 없다. 봉하마을을 방문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연이다. 참여정부는 무엇이고 그동안 왜 소통이 단절되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설명해야 한다. 그것은 다양한 방문객들을 의미있는 식객으로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게 된다면 노짱으로 되돌아 온 그의 폭발력은 이제 누구도 가늠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