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자들은 들어라. 듣기 싫어도 들어라

순수한 남자 2009. 6. 28. 17:40

기자들은 들어라. 듣기 싫어도 들어라
번호 68177  글쓴이 이기명 (seop1)  조회 1145  누리 475 (480/5)  등록일 2009-6-2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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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들어라. 듣기 싫어도 들어라
- 기자정신은 어디에 팔아 먹었는가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9-06-28)


박 군.

우리는 50년 벗이네. 졸업 후 신문사에 합격한 자네를 축하 하며 술을 마신 게 어제 같고 창간이 일천한 자네 신문이 정론지로 급성장 해 갈 때 그렇게도 좋아했는데 이제 자네는 세상에 없고 난 치사한 목숨 부지하며 지금 기자들을 욕하고 있네.

며칠 전 자네 아들을 봤지. 부전자전이라고 기자를 하고 있지만 몇 마디 나누는 동안 자네 아들이 느끼는 참담한 자괴감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더군. 안쓰러웠네.

왜 안 그렇겠나. 똑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기자들인데 오늘의 우리 기자들이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으며 자신들도 무슨 자부심으로 사는지 왜 모르겠나. 

내가 알고 있는 친구들 중에 절반 이상이 언론사에서 밥을 먹었고 고위간부로 퇴직을 했고 아직도 고위직에 많이 남아 있네. 내가 입만 열면 언론과 기자들을 비판하고 듣기 싫은 소리는 골라가며 하는 것도, 실은 기자들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며 기자가 바로 서지 않으면 사회정의는 사라지고 나라가 망한다고 까지 생각하기 때문이네.

자네 아들이 그러더군.

“속상하시는 거 잘 압니다. 기자들도 얘기 다 듣습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하지만 기자들도 다 그렇진 않습니다.”


박 군.

아들의 괴로운 심정을 왜 모르겠나. 기자들이 느끼고 있을 참담한 절망감을 왜 모르겠나. 서울광장 집회에서 시민들에게 쫓겨나는 조중동과 KBS기자들이 느낄 모멸감을 잘 알지. 조중동을 벌레처럼 징그럽게 여기는 깨여있는 국민정서를 왜 모르겠나.

하루에도 열두 번 씩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으면서도 그놈의 목구멍 때문에 얼굴에 철판 깔고 기자질 한다는 고백을 난 그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었네. 왜곡 편파 보도에 질린 나머지 사표를 쓴 기자들을 알고 있네. 월급 많이 주는 조중동 떠나 봉급적은 언론사 택한 기자들도 알고 있네.

세상에는 나쁜 놈 보다는 좋은 놈이 많다는 것이 내 믿음이네. 그래서 세상은 더럽고 고통스러워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지. 그러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과 같이 못된 놈들이 기승을 떨어 세상이 온통 못 된 놈 천지로 보인다네.

언론과 기자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분명히 좋은 언론과 훌륭한 기자들이 훨씬 많은데 못된 놈들 때문에 도매금으로 넘어가 욕을 먹으니 안타깝고 그들도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만 모진 놈 곁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고 자위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실은 나도 기자 욕을 하면서도 미안하다네.

수십만의 노무현대통령 조문시민이 모인 시청 앞 광장에서 카메라 한 대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변방의 기자들, 머리가 얻어터지고 카메라가 깨지면서 취재한 그들의 기사가 국민을 울리고 국민의 귀와 눈을 뜨게 하네. 

그런가 하면 죄라도 진 듯 시민들의 눈치를 슬슬 봐가며 취재랍시고 하는 자기들만의 일등신문인 조중동 기자들의 가슴을 확 열어 제친다면 그 속에는 어떤 진실이 있을까.

흔히 기자정신의 실종을 말하는데 요즘 기자정신 생각하는 기자는 있는가. 없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기자 정신 찾다가 목 잘리면 니가 밥 먹여 줄 것이냐고 할 수 있겠지.

언론민주화를 위해 온 몸으로 싸웠던 동아투위와 조선투위 그리고 그 많은 해직기자들이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고 처자식들 굶주리는 모습에 눈물로 세월을 보냈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자기 한 몸 적당히 타협하면 가족들은 고생 면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지 않겠으며 그것을 이해 못하면 그게 나쁜 놈인지도 모르겠네.

그러나 이해와 동의는 다르네. 아무리 도둑놈이 많아도 역시 도둑놈은 나쁜 놈이네. 기자정신을 포기하면 무슨 변명을 늘어 놔도 '나쁜 기자'인 것은 피할 수가 없네. 왜냐면 기자가 해야 할 일은 너무 중요하고 그것을 포기할 때 세상은 짐승의 소굴로 변하니까.

자네가 세상을 뜨기 전에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네.

“지금 이 땅에 기자는 없다. 약아빠진 처세만 있을 뿐이다.”

목구멍이 가장 소중한 생활인, 민주주의나 사회정의가 밥 먹여 주냐고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는 기자들이 오히려 현명하다고 평가받는 세상이네.

기자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소리가 고개를 들 때 마다 양심을 쥐어박으며 그런 자신을 미워하는 기자들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네.

몇 번인가 글에 썼지만 지금은 조선일보의 핵심간부로 있는 50대 기자가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무주단합대회' 때 내게 한 말이 기자들을 언급할 때 마다 떠오르네.

“우리도 알 것은 다 압니다. 그러나 조직에 몸 담고 있는 한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나는 믿네. 옳고 그름에 판단은 지적 수준과는 상관없이 본능적인 것이라고 믿네. 다만 지식인들은 계산을 잘 하지.

계산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눈 딱 감자. 모른 척 눈 감고 지나가면 편하게 살 수 있다. 옳다는 소신으로 나서다가 다치면 누구한테 보상을 받는단 말인가. 이해해 주겠지. 어느 놈은 별 놈이냐.’

‘아니다.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아닌 것을 기라고 하면 평생고통 받는다. 옳다고 믿는 길을 가자.’

두 가지 인간이 있겠지.


박 군.

대한민국의 기자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가슴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양심의 소리를 듣네. 언론모임에서 조중동을 비판 할 때 날 쳐다보는 조중동 기자의 눈빛에서 나는 호소를 듣네.

‘절말 우리가 양심도 없는 기자로 보이나요. 우리가 옳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괴롭습니다. 우리도 사람 대접받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자네가 데리고 있던 기자가 조선일보로 옮겨갔네. 어떤 모임에서 야당의원과 대화하는 그를 보고 한 마디 했네.

“그 친구와 얘기하지 마십시오. 소신대로 기사 쓰지 못하는 기자입니다”

그 친구 얼굴이 벌개 지며 하는 소리가 뭔지 아나.

“아 알았습니다. 갈게요. 선생님 있으면 말도 못한다니까.”

말은 웃으며 했지만 속이야 얼마나 쓰리겠는가. 자기가 모시던 상사가 나와 죽마고우이기에 대들지 못하지만 속으로 벼락이라도 맞아 죽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아니네. 그 친구도 자신이 비참해졌겠지.

기자시험에 합격되었을 때 제일 먼저 다짐하는 것이 무엇이겠나. 자네도 그랬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렇게 사는 기자들도 많이 있겠지. 지금 다시 그 다짐을 되돌아본다면 무슨 대답을 할까.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겠나.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해도 불의는 역시 불의고 정의는 역시 정의네. 세월 따라 정의가 불의가 될 수는 없는 것이지. 더구나 기자 정신이야 더 말해 뭘 하겠나.


박 군.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마을에서 투신한지 한 달이 넘었네. 긴 말 할 것 없이 국민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원인은 이명박 정권과 언론과 검찰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재계 순위 620위의 부산기업 태광을 이 잡듯이 뒤진 전대미문의 세무사찰, 아직 이해되는 해명은 없네.

검찰이 불러주는 대로 열심히 베낀 기자들은 할 말이 있는가. 아니라고 할텐가. 검찰 말고 취재를 할 곳이 없는데 안 쓰고 어쩌냐고 항의할텐가. 아니면 쓰지 말아야지. 안 그래.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네.

공원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뿌려준 경험이 있네. 모이를 뿌리면 비둘기 떼들이 몰려드네. 허겁지겁 쪼아 먹지. 그러나 비둘기들도 먹을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구별한다네.

검찰이 뿌려주는 것이라면 그냥 받아 삼킨 대한민국의 잘난 기자들, 먹기에는 편할지 몰라도 그것이 바로 자신을 죽이는 독약임을 알고나 있는지.

기자들은 공범이네. 아니 주범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 보도하지 않으면 존재의미가 없는 기자의 숙명이라고 한다면 거짓보도 왜곡보도 과장보도도 기자의 숙명인가. 그들도 알고 있네. 자신들이 얼마나 흉악한 죄를 지었는지를.

조중동을 비롯한 몇 몇 매체들이 기를 쓰고 아니라고 버둥대지만 이는 바로 시험지에 오답을 써 놓고 정답이라고 우기는 놈이나 같은 못 난 놈이 하는 짓이네.


박 군.

부관참시라는 말을 알겠지. 꼬투리만 있으면 사실여부는 상관없이 부관참시를 하기 위해 칼을 가는 언론과 기자들이 있다는 것을 아네. 꼬투리 잡을 것 있나.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언제는 진실 따지며 보도 했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를 들먹이며 화해를 강요하는 기사를 봤네. 저렇게 뻔뻔한 기사를 쓴 기자의 얼굴이 보고 싶었네.

대통령의 유서 중에 ‘원망하지 말라’는 말이 있네. 국민들은 뭐라고 대답을 했는가. 봉하 마을을 찾아 온 조문객들은 분명히 대답했지.

“죄송합니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국민감정이 무엇인가는 기자들은 알겠지. 그리고 용서받지 못할 대상에 자신들도 자랑스럽게 포함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네.

봉화산 곳곳에 망원카메라를 버텨놓고 대통령 사저를 감시하던 기자들, 이제 ‘부엉이 바위’에 올라가 언론이 무엇이며 기자가 무엇이며 사회정의가 무엇이며 권력의 주구가 누구이며 노무현을 죽게 만든 이른바 권력의 감시견이 누구인지 한 번 되돌아 볼 생각은 없는가. 부엉이 바위위에 처연하게 섰던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을 생각해 볼 용기가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 중에서 언론인을 가장 냉혹하게 처단했네. 왜 그랬을까. 설명해 줄까. 똑똑한 기자들이 잘 알 것이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출마를 하면서 한 연설의 한 구절이네.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그렇게 죽임을 당했네.


박 군. 

무관의 제왕과 유관의 제왕 중 누가 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적임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유관의 제왕인가. 그렇다고 치세. 그가 바꾸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20%대의 지지율이 보여주는 한계는 이미 그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소통을 말하며 불통이고 서민경제를 말하며 부자들의 경제도 점심 못 먹는 농촌어린애들의 급식비를 삭감하고 22조원의 국민세금으로 강바닥을 파내는 강물 살리기는 꿈에서라면 모를까. 현실에서 할 얘긴가. 그의 임기가 끝나는 2012년이면 어떻게 될까.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왜 이명박 정권이 미디어 법에 목줄을 매 달고 있나. 장기집권 기도라면 아니라고 할 기자들이 있나.

알면서도 말을 못하는 기자들, 그들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자만하는 펜은 실은 사회정의를 이룩하는 약이 아니라 정의가 불의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 독약임을 알아야지. 당연히 알겠지. 똑똑하니까. 그들은 언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구루보다 잘 알고 있지. 그래서 겁 없이 안하무인이네.

그러나 오늘의 그들은 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비겁이며 우물 안 개구리의 만용이지. 약자들 앞에서 기고만장하는 조폭집단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자네가 살아 있을 때 내게 한 충고를 난 지키지 못했네.

“기자와 경찰을 믿지 말라. 노무현을 위한다면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봉하고 지내라. 그게 노무현을 위하는 일이다”

난 그 충고를 지키지 못하고 지금도 기자를 비난하고 있네. 믿거나 말거나 난 지금 죽는 것도 무섭지 않네.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들이 어떻게 망하는지 꼭 보고 싶다네.

“살인을 한 것은 내가 아니고 칼이다”

살인범이 한 말이라고 하네.

“노무현은 기자가 죽인 것이 아니고 기사가 죽였어.”

기자들이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인가.

 

이기명(前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