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을 넘었다 돌아온 문규현 신부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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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기도, 염려와 정성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늦은 인사드립니다.
문규현 신부ⓒ 민중의소리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이 간단한 인사말로 숱한 고마움에 어찌 답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데 먼 길 달려와 가족들과 함께 안타까워해준 분들, 기고로 댓글로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수많은 네티즌들, 면회도 안 되는 병실 문 밖에 서성이며 말없이 힘주고 가신 분들, 기도시간마다 미사 때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시간에도 마음을 다해 문 신부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려주신 신부님들, 수녀님들, 신자 분들 모두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래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 부족하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인사나마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살다 하느님이 부르시는 그 순간이면 언제 어느 때라도 세상 떠날 수 있다고 큰소리쳐 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죽음에서 돌아와 새 삶을 누리는 이 시간, 모든 것들이 한편 낯설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완벽한 무의식, 완벽한 무력함의 시간이었습니다. 숨 쉬고 먹고 배설에 이르기까지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던 기막힌 시간들이었습니다. 의사, 간호사, 온갖 첨단 의료기기, 가족들, 그리고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 그렇게 외부의 도움과 손길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지탱할 수 없었던 완전한 의탁과 항복의 시간, 그곳에 존재한 것은 완전한 사랑 완전한 은총이었습니다. 오체투지 순례길을 가면서 ‘이보다 낮은 자세라면 죽음밖에 없을 터...’라고 중얼거렸건만, 정말 그 지경까지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그냥 ‘다녀오기만’ 했음은, 신께서 여러분의 간절하고 간절한 애원과 기도를 외면하실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제게 제일 궁금해 하는 질문이 ‘천국 봤냐?’입니다. 못 봤습니다. ‘지상에서 천국처럼’을 외치다 갔던 그 길이어서인지, 천국문은 제게 열리지 않았고 천국에 관한 그럴싸한 풍경도 기억에 없습니다. 혹할만한 이야기 한 자락 지어낼 넉살도 없기에 미안하게도 저는 천국을 증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단연코 증언할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 그냥 폼 나게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 그렇습니다. 절 보세요. 산 증인입니다. 오늘이 영원이고 영원이 오늘입니다. 내가 알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오늘이고, 지금 이 순간입니다. 세상 떠날 시간, 세상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내가 정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고 나누고, 미안하다 용서한다 말할 수 있는 순간도 오직 지금입니다. 내 욕망 내 명예 내 재산도 죽음 앞에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 생애 가장 확신할 수 있고 소중한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넘치는 사랑과 기도로 저는 소생했습니다. 죽음도 이기고 극심한 고통의 시간도 이겨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함, 함께 마음 모으고 함께 이겨가는 힘이 절망을 넘어서게 했습니다. 1퍼센트 가망성도 100퍼센트 현실로 만들어냈습니다. 기적의 비밀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2010년 새해입니다. 충격과 놀라움으로 주체할 수 없었던 그 날 새벽,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일 년이 바로 눈앞입니다. 저는 살았는데 용산은 아직 부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저를 살려냈던 그 간절하고 간절한 마음들은 이미 용산의 아픔을 보듬고 있던 따뜻한 연민과 연대의 마음임을, 어떤 암담한 상황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굴하지 않는 희망의 불씨들임을. 그 마음, 그 불씨들이 용산참사 현장도 부활과 기적의 현장으로 살려낼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던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의지해야 하고, 다른 이의 조력과 지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이 귀한 시간만이 오로지 내 것이라면, 더 많이 나누고 더 열심히 사랑하는데 써야 할 것입니다.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고 보듬는데 더 많이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 속에 숨겨진 숱한 기적의 비법을 현실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을 영원으로 빚고 영원을 오늘 속에 가져오는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딱딱한 허리 보조기구를 착용한 채 움직여야 하고 진통제를 먹어야 밤잠도 제대로 잡니다. 심장에 박은 보조 장치는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예전처럼 살 순 없는 거라고 쐐기 박듯 매번 일깨우고 시위합니다. 허나 이것들은 동시에 여러분이 주신 사랑과 기도가 만든 기적의 증표이기도 합니다. 이 불편함마저 고맙고, 이 불편함이 여러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게 합니다. 불의하고 부당한 각종 현실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들이 도리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이 사랑했고, 더 많이 용기를 내었으며, 더 많이 기쁘고 뿌듯했노라고 말할 수 있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희망과 기적의 창조자들 속에 바로 내가 있노라고 자부심 가득하기 바랍니다.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제 보답이라곤 어떤 육신적 불편함 속에서도 계속 더불어 가리리라는 다짐과 기도뿐입니다. 함께 하는 여정, 그래도 희망입니다.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2009년 12월 16일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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