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그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수줍음도 잘 탔다. 그래서였을까. 권력 투쟁의 한복판에서 거센 풍파를 거쳤으면서도, 그는 끝내 뻔뻔해지지 못했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그의 죽음을 놓고 '무사의 죽음'을 떠올렸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 봉하 마을 절벽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 5월, 김규항 발행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절대 고독 속에서 그는 깊은 침묵의 마지막 칼을 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비루한 것들을 단번에 베어냄으로써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갔다"고 적었다.
'무사의 죽음'이 터뜨린 눈물은 온 나라를 삼켰다. 잇따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 전 대통령은 열정적인 지지 세력의 존재, 민주화 및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여 등에서 노 전 대통령보다 앞선 평가를 받곤 했지만, 서거 이후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차분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가 낳은 거대한 사회적 열기는, 그래서 사회과학적 분석 대상이기도 했다. 투신 자살이라는 충격, 현직 대통령에 대한 반감 등 다양한 이유가 제시됐지만, 당시 우리 사회를 뒤덮었던 슬픔을 설명하기에는 조금씩 부족했다.
"그의 죽음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의 비극을 봤다"
그때 우리는 왜 그토록 서럽게 울었을까.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엄기호 씨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꼬라지'를 봤다"고 했다. 엄 씨의 글이다.
"그의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친구와 선후배들, 그리고 학생들의 하소연을 듣다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노무현의 죽음에서 이들이 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꼬라지'이다. 지금 여기서 사는 모습의 궁상맞음과 망가짐과 팍팍함과 초라함과 강퍅함을 슬퍼하고 있는 게다.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의 비극을 보았다.
(…) 산다는 것이 위대하기는커녕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고 보잘 것 없으며 헛헛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우리는 최진실의 죽음에서 보았다. 노무현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최진실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정서와 그리 멀지 않다. 그가 가고 난 다음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정점에 올랐던 최진실의 죽음에서 많은 여성들이 그들과 다르지 않은 '같은 여성'의 삶의 강퍅함에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말이다.
몰락이, 죽음이, 나락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 저런 사람들마저도 삼키는 그런 나락이 우리 삶에 아가리를 떡 벌리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 그 나락을 보며, 우리는 나락에 떨어져 죽은 자를 보며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락 옆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애도하고 있다. 우린 정말이지 산다는 것이 품위 없고 보잘것없으며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죽음이 아닌 산다는 것에 대한 애도가 있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가해서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 ⓒ프레시안 |
돈 냄새, 배운 티가 아닌 사람 냄새의 매력
인생이 예찬 대상이던 시대는, 까마득히 멀어졌다. 대신, 삶이 그저 밥을 벌기 위한 과정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렇다면 사람의 삶과 동물의 삶이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따로 있을 텐데.' 꾹꾹 눌려 있던 이런 답답함이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계기로 서러운 눈물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노 전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내걸었던 신조였다. 돈 냄새와 배운 티 대신,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언행은 그의 상징이었다.
"변호사 시절에 운동권 후배들이 나를 끌어들이려 애썼지. 하지만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아. 갑자기 비가 와서 전철로 뛰어들었는데 몇 정거장 안 가 개찰구로 나오면 벌써 누군가 우산을 팔고 있어. 그걸 어떻게 이념으로 막아? 나를 좌파라고들 하는데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는다고." (<시사IN> 119호, "못다 이룬 꿈 2010년에 이루려나")
개념어를 남발하는 학자나 법관의 말투가 그에겐 없다. 대신, 사람에 대한 꼼꼼한 관찰에서 비롯된 맛깔스런 비유가 있다. 어쩌면 그의 수줍음 타는 성격과도 관계가 있을 게다.
'사람 사는 세상'과 "분신으로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
ⓒ故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
그런데 정치에 대한 실용적 태도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지적을,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비판으로 여겼던 듯하다. 그가 비판자들에게는 종종 독선적인 모습으로 비쳤던 한 이유일 게다. '이념이 아닌 사람'을 남들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자신감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인간적이던 그가 분신한 가족의 시신을 안고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분신으로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말로 상처를 준 일을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머릿속에 든 건 이념 밖에 없는" 자들을 옹호할 필요는 없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진중권 씨가 진보신당 게시판에 적은 글이다. "세상이란 게 여러분의 그 허접한 이념으로 재단될 정도로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을 너무 간단하게 여기는, 그래서 너무 쉽게 꼬리표를 달고 낙인찍기를 즐기는 이들은 분명히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유고집 <진보의 미래>에서 '진보 원리주의자'라고 부른 이들이 종종 그랬다.
그러나 '진보 원리주의자'라는 낙인을 함부로 찍어대는 것 역시 곤란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방향만 다를 뿐 "머릿속에 든 건 이념 밖에 없는" 자들의 행태와 다를 게 전혀 없다. 나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념을 수학 공식처럼 써먹는 자들이다. 이념의 권위 없이는 어떤 현상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들 때문에, 이념 토론의 필요성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념 토론은 불온한 것이거나 시간 낭비일 뿐이라 여기는, 그래서 모든 가치를 경제적 실용성으로만 재단하는 분위기에서 탄생한 게 바로 이명박 정권이다. 여러모로 대조적인 노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모두 이념에 대해서는 냉소적이라는 점은, 걸핏하면 이념 갈등을 탓하는 보수 언론의 주장과는 반대로 한국 사회가 이념적 진공 상태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념 토론은 고도로 인문학적인 활동인데, 우리 교육 현실에서 인문학이 제대로 숨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념 토론이 불가능한, 척박한 인문학적 토양. 노 전 대통령의 비극과 현 정부의 독선이 함께 뿌리를 둔 곳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프레시안 |
'자본의 지배권'과 '시민의 힘'
노 전 대통령은 유고집에서 자신의 이념을 '진보'로 규정했다. 어떤 이들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어떤 이들에겐 당혹스런 자기규정이다. 한미 FTA 추진 등 몇 가지 정책 때문이지만, "이념과 물질 영역에서 자본과 충돌하는 일 없이 '진보의 미래'를 그리는 게 가능할까"라는 질문도 빠뜨릴 수 없다.
진보신당에서 이론가로 꼽히는 장석준이 <레디앙>에 기고한 <진보의 미래> 독후감에 이런 질문이 잘 담겨 있다.
"'진보 원리주의'라는 간편한 규정에 떠밀려 조명 받지 못한 '진보'의 얼굴은 '자본의 지배권'과 정면으로 맞서는 어떤 입장이고 세력이며 지향이다.
소극적으로 말하면, '자본의 지배권'을 용인하지 않고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자본의 지배권'이 관철되는 그 영역, 즉 경제 영역으로까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이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분배와 복지는 그 결과물일 뿐이다. 전쟁의 진짜 이름은 '자본과의 대결'이다.
그러나 '대결'은 어디에 있었던가?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그런 대결은 없었다. 그리고 이 유고집 <진보의 미래> 안에도 그런 대결은 결코 이야기되지 않는 무언가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평자는 여기에서 이 책의 실패와, 또한 그의 실패를 본다."
같은 글에서 장석준은 "(노 전 대통령이 강조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과 '지배권을 넘겨받은 자본'(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발언)이 도대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라고 적은 뒤, 세 개의 질문을 던졌다.
"'자본의 지배권'은 그러려니 하고 그 빈 구석에서 '시민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자본의 지배권'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힘'으로 '분배와 복지'를 쟁취하자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자본의 지배권' 그것에 맞서기 위해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이 가운데 두 번째나 세 번째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한다면, '진보 원리주의자'들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비록 많은 문제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자본의 지배권'에 대항할 이들이 그들뿐이다.
'빈 구석'은 너무 비좁다…박연차 수사와 이건희 수사
"'자본의 지배권'은 그러려니 하고 그 빈 구석에서 '시민의 힘'을 모아갈 방법"도 어쩌면 있을 게다. 하지만 그 빈 구석이 너무 비좁다. 온 국민의 눈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쏠려있던 지난 5월 29일, 대법원은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인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6대 5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관들이 영결식에 불참하면서까지 진행한 이 재판 결과는, 노 전 대통령의 비극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가한 시민들. 이날 대법관들은 국민장 장례위원임에도 영결식에 불참하고,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 재판을 진행했다. ⓒ프레시안 |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간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서 검찰은 주머니 속 먼지까지 털었다. 피의자의 인권은 아랑곳없다는 태도였다. 반면, 지난해 조준웅 특검이 진행한 삼성 비리 수사는 철저히 봐주기로 일관했다. 두 사건이 과연 다를까. 그렇지 않다. 기업인이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에 불법로비를 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삼성 비리가 압도적으로 규모가 컸다는 점, 삼성 비리에는 경영권 불법 승계가 추가돼 있다는 점 정도다.
그런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징역 3년 6개월에 벌금 300억 원을 선고한 법원이 삼성 비리 주범들에게는 실형을 면제해줬다. "세금을 포탈하고 해외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만들어 뇌물이나 정치 자금으로 제공해 공직사회의 기강을 흔든 만큼 죄질이 가볍지 않다"라던 박연차 사건 판결문이 비슷한 범죄를 더 큰 규모로 저지른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게는 적용될 수 없었다.
수사 과정을 들여다 보면, 대조는 더 뚜렷해진다. 삼성 비리 수사에서는 "해외 비자금은 수사할 수 없다"고 했지만,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서 검찰은 해외 비자금을 잘만 찾아냈다. 삼성 비리 수사에서는 내부 제보자인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이 철저히 무시됐지만,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선 박연차 전 회장의 진술이 의심 없는 진실로 통했다.
삼성 비리로 유죄가 확정된 이건희 전 회장, 이학수 전 부회장 등에 대해서는 판결 4개월만에 사면이 논의되고 있지만, 박연차 게이트에 측근이 연루된 노 전 대통령은 모욕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벌 총수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이런 차이는 '자본의 지배권이 미치지 않는 빈 구석'이 얼마나 비좁은지를 잘 보여준다. '진보의 미래'를 굳이 이런 곳에서 그려야 할까.
어쩌면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원대한 이상주의자였던 그가 뜻을 펴기엔 그에게, 아니 '깨어 있는 시민'에게 허용된 공간이 너무 좁았다. 도대체 '자본의 지배권이 미치지 않는 빈 구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숨이 막힐 듯 비좁은 방에서 몸부림치다 온 몸에 상처가 난 채로 죽었다.
▲ ⓒ故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
상처에 대한 연민, 고통에 대한 공감
누가 뭐래도 노 전 대통령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말과 글에서 한결 같이 드러나는 사실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회고다.
"19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 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 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냐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 이야긴 한 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 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 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변호사가 매년 1000명씩 새로 쏟아지는 요즘도, 이런 변호사는 흔치 않다.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태도, 그 사람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태도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들조차 옷깃을 여미게 한다.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 등 계속 이어지는 회고는 지금도 우리를 울컥하게 한다. 그가 떠난 자리에 눈물이 가득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오열하는 시민. ⓒ프레시안 |
'노무현의 비극'이 현재 진행형인 이유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무리 돈을 신으로 모시는 세상이라지만, 춥고 배고픈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이처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총명함과 용기까지 갖췄을 게다. 다시 그 중 일부가 정치를 직업으로 택하고, 여기에 약간의 운이 보태져서 '제2의 노무현'이 나올 수도 있을 게다.
그런데 그럼 뭐하느냐는 말이다. '제2의 노무현'에게, 그를 뽑아준 '깨어 있는 시민'에게 허용된 공간이 '자본의 지배권이 미치지 않는 빈 구석'뿐이라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데 말이다. '제2의 노무현'마저 그물에 옥죄인 맹수처럼 버둥대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도록 해야 하나. 결국 '자본의 지배권'을 제어해서 여유 공간을 넉넉히 만들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흘러간다. 최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사면을 청와대에 건의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지난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삼성 장학생 명단에도 포함돼 있다. 삼성에게서 부당한 돈을 받았다고 알려진 검사가 계속 승진해서 장관이 되고, 다시 이건희 전 회장을 위해 봉사하는 구조는 점점 견고해진다.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 노무현이 겪었던 비극이 현재 진행형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