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우리 대통령님은 이런 분 입니다...

순수한 남자 2010. 4. 17. 12:18

이글의 작성하신분은 사진의 주인공 김준호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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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이툰부대 출신자 입니다. 
향수를 뿌리치고 멀고 먼 타지 이라크라는곳에서 7개월을보냈죠 
해외 다녀오신분들은 누구나 아시겠지만 3개월지나면 향수병에 걸리게 됩니다. 
전 그랬습니다. 해외에 놀러간게 아니라 내 한목숨걸고 자랑스러운 태극기 
어깨에붙여 나라에서 보내준 파병이었으니까요 근데 4개월쯔음 파병생활을 하고 있을때였습니다. 
정말 힘들었죠 부모님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리웠죠 근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저희 자이툰을 방문해 주셨습니다. 
많은 격려와 찬사를 쏟아주셨죠 그러던 와중 어떤 자이툰 장병한명이 
단상으로 올라가 노무현 대통령님께 '아버지!' 라고 외치며 꽉 끌어안았습니다. 
(국군통수권자인) 일국의 대통령입니다. 군인신분으로 그렇게 함부로 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자리입니다. 
경호원들도 어쩔줄 몰라했었죠.. 그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는 손짓한번으로 재빠르게 다가오는 경호원들을 막으시고 그 장병을 꽉 껴안아주시며 '그래 아들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군들이 울기시작합니다.  감동으로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전 그때를 그순간을 잊을수가없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님 존경합니다.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꼭 끌어안으며 '아버지'라 불렀던 이 글의 주인공....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번쩍 들어올린 자이툰 부대원이 중위가 되어 돌아와
영정을 들었습니다.

 
















우리 대통령님 이였으면

천안함 장병들과 유가족들 부둥겨 안고

통곡 하셨을 겁니다

기분과 슬픔 그리고 아픔까지 동감하며

모든 비판과 비난을 혼자 감수 하셨던

그런 분 입니다

노 대통령, 특별교부금 6조원 전부 사회환원
(서프라이즈 / 영린 / 2009-05-26)


노무현 대통령은 소위 통치자금이라고 하는 "대통령특별교부금"을 국가사업 필요한 행정기관에 내놓았습니다. 이 돈은 오로지 대통령 재량에 달려있는 자금입니다.


“노 대통령,특별교부금 폐지 검토 지시=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24일 행정자치부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특별교부금을 폐지해 보통교부금에 흡수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특별교부금은 원칙 없이 정치적 선심사업에 사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특별교부금의 배분기준을 재검토해 자의적으로 사용될 여지가 없도록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도 특별교부금이 권력층의 쌈짓돈처럼 사용돼 왔다는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특별교부금 제도는 폐지되지 않고 규모와 운용방법 등만 조금씩 변해왔다. 2003∼2004년에는 1조원이 넘던 특별교부금 규모가 2005년부터는 7000억 원대로 축소됐고 사용용도도 재해대책비와 특정현안비로 단순화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특별교부금이 도로 개설 등 지역개발보다는 사회복지·문화사업에 집중 지원되도록 했고 심사와 사후관리도 강화했다."

결국, 그 돈은 2003년 태풍 매미 피해가 났을 때 그 돈으로 복구사업비로 사용했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단 한 푼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마음대로 사용 할 수 있는 1조원 넘는 돈을 국민들의 피해보상에 사용하게 지시를 한 그가.. 지금은 퇴임 후 집 한 채 지을 돈이 없어 자신의 오랜 후견인에게 돈을 빌린 것이 온 세상 매스컴에 부패의 화신으로 둔갑시켰으니 이 쓰레기 언론들을 어떻게 응징해야 할까요.



ⓒ 영린









노무현 대통령 일화 모음

(서프라이즈 / 원칙과 상식 / 2009-05-26)


너무나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생전 일화들을 모아봤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대통령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분들이 알고나 있는지...

그립고 또 그리운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이십니다.
대통령님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웠습니다만, 이렇게 보내고 나니 이런 나라의 국민인 것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일하는 대통령, 따뜻한 대통령


생리학 교수님 절친이 알고보니 노무현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다고 하오..  그래서 들은 이야기 몇개 쓰오.


1. 밤새도록 일하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이후로는 일이 세배가 많아졌다고 하오. 보통 보좌관들이 하는 일보다 세배는 많아져서 밤을 새고 새도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고 하오.

 

소햏 교수님의 친구분은 그게 너무 힘들어서 어느날은 서류를 보다보다 지쳐서 몇 개를 좀 덜 읽고 정리해서 노무현 대통령께 보냈다고 하오.. 그런데 청와대에는 그쪽에서 사용하는 전용 전화가 있다고 하오.

 

새벽 3시에 그 보좌관이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었소.. 일을 왜 이렇게 대충 처리했느냐, 다 틀리지 않았냐. 이거 하나 잘못되면 얼마나 큰일이냐. 다시 해와라.

 

정말 호되게 혼났다고 하오. 노무현 대통령은 새벽 세시가 넘도록 밤새도록 보좌관들이 정리한 자료들을 보고 보고 또 보고 일을 밤새도록 보았다고하오. 역대 대통령중에 그만큼 열심히 일한 사람이 없었다고 했소.. 변호사 출신이라 자료를 정말 끝내주게 잘 잡아내고 정리했다 하더이다...


2. 프리토킹

 

원래 청와대에서 회의할때는 항상 대통령이 위주로 말하고, 아래 사람들은 그냥 멍하니 듣는게 먼저인데 노무현 대통령때는 그런거 안했다고 하오.. 프리토킹으로 누구든지 먼저 나서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셨다고하오.. 이런 대통령은 단 한번도 나온적이 없다더이다.


3.구식 텔레비전

 

노무현 대통령 집무실에 가보면 구형 브라운관 텔리비젼이 있다고 하오. 다들 LCD 보고, 국민들도 좋은 텔레비젼 볼때 노무현 대통령은 철 다 지난 구형 텔레비젼을 보셨다고 하오.

 

부좌관들이 LG나 삼성이나 그런데 말하면 좋은 거 주는데 바꾸시는게 어떻냐고 말해도 절대로 안바꾸셨다고 하오. 행여나 잘못받았다가 일이 잘못되면 어쩌냐고.. 대통령이 오래된 구형 브라운관 텔레비젼을 끝까지 고집했다고 하오. 진짜 끝까지..


4. 화싱회의 시스템

 

외국에는 화상회의 시스템 기계가 있다고 하오. 노무현 대통령은 그걸 엄청나게 부러워해서 그 기계를 매일 구경만 하면서 많이 사고싶어 하셨는데.. 그게 3억정도라고 하오.

 

그깟 3억, 충분히 들어오는 돈을 대충 빼다가 쓰면 살 수있는건데 노무현 대통령은 절대로 안샀다고 하오. 3억이라는 말을 들으면, "에이, 아직 아니지?"하면서 절대로 안쓰고.. 끝까지 사고 싶어만 하시고, 절대로 나라에 필요한 돈을 사비에 이용하지 않으셨다 하오.


5. 그외에 에피소드


(1) 한창 줄기세포 파동있을때 보좌관들 집에, 청와대에 기자가 백명씩 오고 그랬다고 하오. 그래서 너무너무 힘이들고 도저히 자기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소햏네 교수님 친구분인 그 보좌관이 너무 힘들다고 사직서 내면서 그만둔다고 하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나도 이렇게 버티는데, 보좌관이 힘든 만큼 나도 힘들다. 죽을 것 같지 않으면 버텨라." 라고 하셨다 하오. 그 분은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노무현 대통령이..너무너무 섭섭해 하고 화를 내면서 "나도 이렇게 견디는데, 당신들이 가면 나는 혼자서 어쩌냐.." 라고 했다 하오...


(2) 노무현 대통령이 극비에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 방문했던거 기억하시지라? 그때 있었던 일이라고 하오. 한국으로 돌아온 날, 원래는 보좌관들이 대통령이 있는 곳에 직접 찾아뵈어야 하는건데. 그 날 새벽, 한국에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이 차도 탄 것도 아니고, 직접 발로 걸어서 보좌관들이 있는 방 하나 하나를 찾아갔다고하오.

 

그것도 새마을모자를 쓰고 똑똑 두들겨서 보조관들 한테 "나 왔어~"하고 있다 했다고 하오....ㅠㅠ.. 어느 보좌관은 잡상인인줄 알고 나가라고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웃으면서 "나라니까, 나~"하면서.. 너무너무 반가워하면서 일일이 보좌관들을 찾아가서

다녀왔다는 인사를 했다고 하오..


오늘 생리학 시간이 이걸 들었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오. 이런 대통령..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같소...ㅠㅠ    ( 출처: <다음 쌍코 까페> 한유주 님 )

 

너무나 인간적인 대통령 - 그래 내 아들아!


(첨언. 아래 사진속 인물은 그 당시 자이툰 부대의  김*석 당시 상병이 아니고 윤*광중위 라고 합니다. 일화가 전해지면서 윤색되었나 봅니다.)

 

저는 자이툰부대 출신자 입니다.

향수를 뿌리치고 멀고 먼 타지 이라크라는곳에서 7개월을보냈죠

해외 다녀오신분들은 누구나 아시겠지만 3개월지나면 향수병에 걸리게 됩니다.

전 그랬습니다. 해외에 놀러간게 아니라

내 한목숨걸고 자랑스러운 태극기 어깨에붙여 나라에서 보내준 파병이었으니까요.

 

근데 4개월쯔음 파병생활을 하고 있을때였습니다.

정말 힘들었죠. 부모님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리웠죠 근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저희 자이툰을 방문해 주셨습니다.


많은 격려와 찬사를 쏟아주셨죠.

그러던 와중 어떤 자이툰 장병 한 명이 단상으로 올라가

노무현 대통령님께 '아버지!' 라고 외치며 꽉 끌어안았습니다.

(국군통수권자인) 일국의 대통령입니다.

군인신분으로 그렇게 함부로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자리입니다.


경호원들도 어쩔줄 몰라했었죠..

그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는 손짓한번으로 재빠르게 다가오는 경호원들을 막으시고

그 장병을 꽉 껴안아주시며 '그래 아들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군들이 울기시작합니다. 

감동으로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전 그때를 그순간을 잊을수가없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님 존경합니다.


 

25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 해병대 윤영광 중위가 조문을 하고 있다

노건호가 쓴 군대 이야기


제가 군대를 간 것은 93년도 3월이었습니다. 저로선 군대를 간다는 것이 무섭긴 했지만, 가지 않을 수 있는 곳이라던가, 내 뜻대로 편한 곳에 갈 수 있을 것이라던가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해보았습니다.


국가가 절 잘 봐줘서 그런지 신체검사도 에누리없는 1등급이 나왔습니다.학 공부도 하기가 싫었고 이것저것 마음이 복잡한 일도 많아 1학년 때 남들보다 비교적 일찍 입영원을 제출하게 되었고, 술 마시면서 기다리다 보니 3월에 영장이 나와서, 전 춘천 102보로 가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점이 없어 군 생활을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욕도 많이 먹고 나름대로 인정도 받으면서 어쨌든 남들처럼 무사히 제대의 그날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함께 생활했던 소대원들 생각이 많이 나는데, 모두 저에게 잘해줬던 것 같습니다. 특히 고참들의 경우 제가 얼마 있지 않아 편한 곳으로 옮길 것이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다소 냉정하게 대하다가, 계속 생활하면서 점점 잘해줬던 기억이 많습니다.


제가 군대에 가 있을 동안 아버지는 면회를 따~악 한번 오셨습니다. 신교대 퇴소식 날이 그 날이었습니다. 그 이후 아버지가 면회를 오신다던가 편지를 보내신 적은 없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면회를 자주 오신다던가, 편지를 자주 보내셨다면 부대에서도 많이 부담스러워 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군대 가기 전 아버지께서 들려 주셨던 말씀이 기억에 많이 남는데, 지금까지도 제 좌우명으로 쓰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동전엔 양면이 있다. 지금 군대를 가는 것이 시간 낭비 같기도 하고, 억울한 부역을 떠맡는 것 같기도 하지만, 결코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세상 모든 일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있으니 피할 수 없는 일은, 일찍 해치우고, 즐겨야 한다.”

 

예비군훈련에 한번도 빠지지 않은 유일한 법관


나는 대전에서 사는 평범한 직장인 입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우연히 노무현님의 초임 법관시절 얘기를 듣고 콧등이 시큰해 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분을 가까이서 같이 근무한 법원 직원(지금은 퇴직한)이 전한 말입니다.


노무현님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젊은 나이에 처음 근무한 곳이 대전 지방법원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군대가고 군대제대하면 예비군 훈련을 받고 예비군을 마치면 민방위로 편성되어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요. 당시 노무현님은 예비군이었답니다


당시 법원직원의 말씀 ; 

" 법관으로써 한번도 예비군 훈련을 빠지지 않은 사람은 노무현 뿐이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훈련을 받아야죠. 그러나, 당시 빽있고 힘있다는 사람들의 권세를 상상할때 이는 실로 신선한 충격을 넘어 법원 직원들이 인정한대로 대단한 분이라고 밖에 할말이 없군요.


그리고, 덧붙여서 하는말;

"그는 아무리 하위 직원이라도 함부로 대한적이 없었으며 권위를 부리지 않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대하여 준 누구나 존경받는 법관이었다."

 

독종 노무현


아마도 87년 쯤이었을 것입니다. 전 86-88년 까지 군생활을 부산에서 했습니다. 그것도 악명높은 백골단이었었죠. 남포동 부영극장으로 기억합니다. 그당시 우리부대는 워낙 인기(?)가 높아 부산시 전역을 카바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더러운 인기였지요 그만큼 진압이 빡시었으니까요.


그날 우리에게 내려진 특명은 지도부 체포였습니다. 예의 진압방식대로 우린 깊숙히 침투했고 최루탄 소리와 동시에 지도부를 잡았습니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가 남포동 하늘을 감싸고 비명이 메아리친다음 우린 습관처럼 전리품들을 차에 실으려 했습니다.


그때 사라진 최루탄 연기사이로 어떤 사람이 보였습니다. 눈물이 범벅이 된채로 그이는 외쳤습니다.


'이놈들아 내가 노무현이다 나를 잡아가라 노동자가 저 힘없는 저 양반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나를 잡아가라 ....' 우는게 아니라 울부짖었습니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되어 제대로 떠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전 노무현님을 만났습니다. 중대장은 그러대요. '저 새끼는 잡지마라 독종이니까' 아마도 그 당시는 허삼수니 하는 사람이 중심인 사회였던걸로 기억 합니다.


그리곤 그 골수분자였던 사람이 정주영씨를 증인으로 세우고 정말 힘없는 노동자의 편이되어 눈물을 흘리며 정주영씨를 몰아 부치는걸 봤습니다

 

바보 노무현


오늘 아침에 차를 보니까 완전히 달마시안 같더군여.. 그래서 자주가는 세차장에 세차하러 갔는데 사장님이 저보구 "대선 누구뽑을꺼냐??" 하시더군여..


바로 당연히 노무현이죠..할려다가 무슨얘기하나 들어볼려구

"저도 잘 모르겠어요.." 라구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내가 옛날얘기 하나 해줄께..하시더군여..그러니까 사장님 나이가 한 35세~ 40세 추정되는데 정확히는 잘모릅니다.


젤 처음하는 말이.."난 노무현한테 죄를 진사람이야.."하데요..

깜짝놀래서 그게 무슨얘기냐고 물었더니 아저씨왈


"내가 군생활을 의경으로 했는데 자대가 경남 마산에 기동대로 떨어진거야.. 매일같이 닭장차(의경들타는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시위 막으러 가는데 하루하루 참 힘들고 그때는 시위하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젤 나쁜놈들이라고 생각했지.. 왜냐면 내 몸이 힘드니까..


하루는 울산인가..그곳에서 데모한데길래 또 버스를 타고 거길 간거야.. 다들 내려서 대열정비하고 서있는데 누가 마이크잡고 큰 소리로 막 소리치는거야..그래서 우리부대 전체가 그사람얘기하는 걸 들었지..


그 사람 입속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가슴에 다가오던지..

말속에 진실이 묻어나왔어..진짜 그사람 피눈물 흘리는거 같더라구.. 우리는 그 사람 얘기 들으면서 한참을 그곳에 침묵하고 있었어.. 대원들끼리 여기저기 수군수군 대드라구..


저사람이 누구냐..저사람 말이 다 맞는거 아니냐.. 저사람 좀 멋있다....뭐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갔어..난 그때 쫄병이라 조용히 있었지만 속으로는 저런 사람도 대한민국에 있구나..그런생각을 했지.


그러던중에 시위가 거세지고 한번 붙었는데 우리가 개스를 쐈어.. 그사람 있는쪽이었지..근데 그사람 그 독한가스 마시면서도 얘기를 계속하는거야..다른 사람은 개스피해서 뛰는데 그 사람은 그곳에서 개스에 목이메어도 계속 소리를 지르는거야..

우리는 다 뭐 저런사람이 다 있냐고 그랬지..


그날 밤에 내무반에 왔는데 모두 그사람 얘기하더라구 오늘 그사람이 누구냐? 노조간부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뭐 부산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고.. 하여튼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다들 얘기하고 개스 쏘고나서 미안해서 혼났다고도 하고 바보같이 피해야지 거서 마이크 잡고있는놈이 어딨냐고도 하고 온통 그사람 얘기였어..


그후로 몇번을 봤는데 그사람은 똑같애..하나도 안틀리고 매번 똑같더라구.. 좀 바보같다는 생각도 좀 했지..


제대하고 나서 하루는 집에서 티비를 보는데 많이 본사람이 있는거야..

국회의원이라고 하데.. 하는데 내가 국회의원중에 아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싶어서 잘못봤나..했는데 유심히 보니까 우리가 깨스쏠때 서있던 바보라고 생각한 그사람인거야~~난 깜짝놀래서 있는데 이름이 노무현 이라고 나오더라구..


아..노무현이구나..그때 그사람이 노무현이구나..


근데 그사람 티비에 나올때마다 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거야..

우리가 쏜 깨스 그사람이 다 마셨잖냐..그래서 손님들 오면 지금 이 얘기 해주면서 노무현 한표 부탁한다고 선거운동하지..


나한테는 최소한 그사람한테 진 빚 갚는 유일한 방법이잖냐....

 

노무현과 '와이키키 부러더스'


요즘 '와이키키 부러더스'라는 영화가 화제다. 죽었다 살아 난 영화라던가. 네티즌 덕분에 이 영화도 살아 났다는 것이다.


오늘 토요일 5시. 여자 친구와 스카라 극장을 찾았다. 아직 상영시간이 안되어 밖에 의자에서 기다리는데 어! 나는 깜짝 놀랐다.


노무현이 극장문을 들어서는 게 아닌가. 딸인듯 한 20대 아가씨와 둘이서 말이다. 두 사람은 웃으며 벽에 붙어있는 좌석번호를 확인한다.


노무현은 내 앞 좌석이다. 잠시 귀를 기우려 들으니 둘은 부녀 사이다. 어쩐지 얼굴이 비슷하더라니.


딸이 음료수를 사다 노무현에게 준다. 영화 상영되는 동안 자꾸만 노무현에게 신경이 간다. 영화가 끝나고 둘이 거리로 나섰다. 나도 여자 친구와 나왔다. 길가던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인사를 한다.  어떤 청년은 싸인을 청한다. 나도 싸인이나 받을까.


노무현이 딸과 무엇인가 잠시 의논 하더니 바로 길 건너 낙지집으로 들어 간다. 따라 들어가서 얘기나 해 볼까. 아니지. 모처럼 딸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방해를 해서는 안되지.


여자 친구가 내게 말했다. 

'노무현이 참 멋지지 나도 저런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동의 했다. 이름 좀 알려진 정치인이 행차를 하면 참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닌다. 얼마 전 이회창 총재가 극장에 갔는데 언론이 야단법석을 떨더군. 영화를 보러 간건지 선전을 하러 간건지.


오늘 저녁.

노무현은 참 보기 좋더라.  영화도 좋았고.. 오늘은 재수 좋은 날이다. 오래 기억해야지.

 

죽 한그릇만 주세요


옛날에 모호텔 일식당에 근무했을 때 국회의원 시절에 오셨었죠.. 많은 정,재계인사들이 자주 식사를 하셨는데..주로 접대를 받으셨죠..


전부 항상 최고급회나 고급양주들을 드시니까 그 날도 주방은 최고급 횟감을 준비했고 저도 그러려니 하고 "무얼 드시겠습니까?" 그러니 "아가씨 죽 한 그릇만 주세요.."

"네???"  기업대표가  " 아 왜 그럽니까.. 아가씨 젤 맛나고 비싼 걸로 줘"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었죠. " 아가씨 나는 얻어 먹는 건 너무 싫고 내 돈 주고 먹을라니까 호텔에서 죽 한 그릇 먹을 돈 밖에 없어.."


그러고 매번 오실 때 마다 죽 한 그릇 드시고 계산도 따로 하셨죠...ㅠ  전 믿어요..그리고 존경합니다~  < cyworld.  권보영씨글 (05.23 14:57) 출처 : 베티 >

 

담배에 얽힌 일화들, 맞담배도 OK - 값싼 '디스'애용


장관때 기자에게도 권한 애연가,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장소라면 전국 어디서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불을 댕긴 담배다.


고인이 지난 23일 오전 투신 직전 동행한 경호관에게 "담배 있느냐"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화와 함께 담배가 추모객들이 고인을 기리는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애연가였던 노 전 대통령이 그토록 원했던 '담배 한대' 태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것 자체가 지금의 비극적 상황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담배를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는 도구로, 다른 사람과의 대화·토론의 윤활유로 활용했다. 그래서 담배와 관련된 일화도 유난히 많았다.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인 2002년 12월 20일.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과 이광재·서갑원·백원우 의원,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등 386측근 전원을 당시 서울 혜화동 사저로 호출했다.


부인 권양숙 여사와 만찬을 함께 한 후 노 전 대통령은 갑자기 이들을 한 방으로 불러 모았다. 그는 문을 닫자마자 자신의 담배갑을 꺼내 방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일일이 한 개비씩 권했고, 직접 불도 붙여 줬다.


참석자 중 일부가 '맞담배'에 주저하자 노 전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됐다고 그러느냐. 그러지 마라. 앞으로도 이전처럼 나를 대해달라"며 나무라기도 했다. 소탈하고 격의없는 '노무현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선 취재기자들에게도 담배 인심이 후하긴 마찬가지였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기자가 그의 집무실을 찾아가면 그는 어김없이 담배부터 물고 대화를 시작했고, 그후엔 자신의 담배갑과 라이터를 내밀며 같이 피기를 권했다.


노 전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맞담배 상대는 이해찬 전 총리였다. 재임 시절 매주 2~3회 노 전 대통령을 '독대'했던 이 전 총리는 고인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담배갑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여러번 금연을 시도했다가 이 전 총리와 마주 앉으면서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값싼 '디스' 담배를 즐겨 폈지만, 특별히 한 종류만 고집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봉하마을로 '낙향'한 후엔 보다 순한 국산 '클라우드 나인'을 피고 있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기도 했다.


박진홍 기자 jhp@  - 지역의 빛으로 독자의 희망으로 - 지방제휴사 / 부산일보


시골 한의사 기억속의 노무현




     
 
 
노무현 어록| 대통령집
대열로 조회 42326 | 08.05.14 01:32 http://cafe.daum.net/HOMLOVE/IaKo/37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통령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 욕하므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전 기쁜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어록 중>..그립 습니다.ㅠㅠ



 

 
 
 
   

 




이 작은 촛불 뿐입니다.

님과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쌀과 공기를


마시고 지난 5년 동안 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마 웠습니다.



님을 선택 할 수 있어 기뻣고 함께 웃고 울고


할 수 있어 행복 했습니다.


살아가야할 이유를 알고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