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의 투표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4-20)
영국에 복지국가의 기틀을 세운 정당은 노동당이 아니라 자유당이었다. 자유당은 일명 휘그당으로 불렸는데, 토리당으로 불리는 보수당과 함께 수백 년 동안 양당제로 굴러간 영국 의회제의 쌍두마차였다.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수백만 명의 영국 아동에게 국가가 공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19세기 말 영국 공교육의 틀을 만든 것도 자유당이었다. 자유당은 1910년 보수당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실업보험, 국민연금 같은 복지제도도 국가 차원에서 도입했다. 그전까지 영국에서 복지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교회 같은 자선단체였다. 자유당은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대지주에게 부동산세와 소득세를 매겨서 조달했다.
1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로이드 조지 자유당 총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시대는 자유당에 더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석탄 수요와 물류 수요가 급감하여 영국의 광산업과 철도산업이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자본가들이 임금을 대거 깎으려고 들자 노동자들은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요구했다. 영국 노동자의 국유화 요구 배경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제와 국유화로 급성장하던 러시아 공산주의 체제가 있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국유화는 공산주의라며 거부했다.
자유당의 이념적 근거는 자유주의였다. 자유주의가 18세기 이후 계몽을 앞세우면서 유럽 사회에서 개혁을 주도한 것은 왕과 귀족의 세습적 기득권에 맞서 개인의 권리를 옹호했기 때문이었다. 자유주의는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개인의 자유를 옹호했다. 그 자유의 핵심에 있는 것은 개인의 재산을 보장받을 자유와 개인의 사상을 보장받을 자유였다. 개인에게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자유주의는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이 자유당의 인식이었다.
1848년 공산당선언을 발표한 마르스크가 독일에서 탄압을 받고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급진분자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는 프랑스 정부에게 쫓겨나 다시 영국으로 망명하여 비록 가난에 쪼들렸을망정 정치적 탄압을 받지 않고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수십 년 동안 집필에 몰두하여 자본주의는 왜 필연적으로 몰락하는지를 분석한 <자본론>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개인의 사상적 자유를 보장하는 영국 자유당이 영국 자본주의의 한 축으로 굳건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당이 개인에게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의 진보정책은 추구하되, 생산수단의 국유화라는 진보정책을 거부한 것은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었다. 국유화와 중앙집권화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 노동자의 눈에 이것은 부르주아 정당의 위선으로 보였다. 기득권자의 개인주의를 고수하려는 나쁜 의미의 자유주의로 보았다. 그래서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자기들의 울분을 달래줄 정당으로 노동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양당제로 굴러가던 영국의 정치는 1920년대 이후 보수당, 자유당, 노동당 3당 체제로 바뀌었고, 2차대전에서 승리한 뒤로는 압승을 거둔 노동당과 보수당 양당 체제로 다시 바뀌었다. 집권하자마자 무상의료제를 도입한 노동당은 영국 개혁의 구심점으로 자리를 굳혔고 자유당은 정치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노동당은 50년대에는 정권을 잃었지만 강력한 제1야당의 지위는 유지했고, 60년대에는 정권을 되찾았으며 70년대에도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노동당은 노조에 점점 휘둘리기 시작했다. 강경 노조는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도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파업을 일삼았다. 공무원 신분의 청소부들이 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런던 시내의 하이드파크에 몇 달 동안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쥐떼가 들끓기도 했다. 강경 노조는 노동당 지구당을 장악하여 자기네 노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발언을 하는 정치인은 아무리 똑똑해도 후보 선출 과정에서 제거했다. 유능한 정치인으로 물갈이가 안 되니까 노동당은 집권가능성에서 점점 멀어지는 만년 야당으로 전락했지만, 강경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는 노동당 의원은 모두 사이비로 몰아세웠다.
견디다 못한 노동당 내부의 뜻있는 의원들은 1980년대 초, 로이 젠킨스를 중심으로 탈당하여 사회민주당을 만들었다. 영국의 경제 구조가 달라졌는데도 아직도 광부 노조와 철도운송 노조의 목소리만을 대변하는 노동당이 영국의 진보 세력을 말아먹는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수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때까지도 여전히 변방에 있던 자유당과 선거 연합을 맺었고 나중에는 아예 당을 합쳤다. 이것이 지금의 Liberal Democrats 곧 자유민주당이다. 자유민주당은 언제나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얻는 전국 정당이었지만 승자가 독식하는 소선거구제와 노동당 아성, 보수당 아성이 명확하게 나뉘는 영국 특유의 지역별 투표 성향으로 지지율보다 훨씬 적은 의원 수를 얻으면서 만년 3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는 5월 6일에 벌어지는 총선에서는 자유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영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총리 후보들의 텔레비전 토론이었다. 현 총리인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자유민주당의 닉 클레그가 90분 동안 벌인 토론에서 닉 클레그는 압승을 거두었다. 시청자의 3분의 2가 닉 클레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런 호평은 당 지지율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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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열린 TV토론 - 좌로부터 클레그(자민), 카메론(보수), 브라운 (노동당)총리. |
수십 년째 20%의 문턱을 넘어선 적이 없는 자유민주당이 YouGov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31%에 이어 29%로 2위에 오르면서 27%를 얻은 노동당을 3위로 밀어냈다. 데일리메일 여론조사에서는 32%의 지지율로 31%의 보수당, 28%의 노동당을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보수당, 노동당 등 지역 기반이 강한 당들에 유리한 선거제도로 말미암아 자유당은 전국에서 고른 지지율로 1위를 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당선되는 의원 수는 각각 250석 안팎으로 예상되는 보수당, 노동당의 의석수에 비해 100석 미만으로 훨씬 적다. 그러나 노동당, 보수당도 40%의 지지율을 얻어야 자력으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이번 총선에서는 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 경우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이 연정할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높다.
자유민주당은 특히 젊은 층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18-34세의 유권자 중 44%가 자유민주당을 지지한다. 그것은 자유민주당이 19년 동안 영국을 이끈 보수당, 그리고 이어서 13년 동안 영국을 이끈 노동당의 고만고만한 정책과 확연히 다른 정책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자유민주당은 대학 등록금을 단계적으로 줄여서 2015년에는 완전히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또 수십억 파운드가 들어가는 트라이던드 핵잠수함 교체에 반대한다. 핵 억제력 유지는 소련에 공산주의가 있던 냉전시대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자유민주당은 이라크전에 반대했다. 또 유럽연합에 대해서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는 보수당, 노동당과는 달리 분명한 친유럽연합 노선을 표명하면서 유로화 채택도 지지한다. 또 유럽의 진보 정당처럼 강력한 환경정책을 추구한다.
그러나 영국 유권자의 마음을 무엇보다도 흔들어놓은 자유민주당의 공약은 경제 위기를 몰고 온 장본인인 영국의 금융권에 대해 이익의 일정액을 세금으로 환수하고 은행을 철저히 규제하겠다는 공약이다. 영국 은행들은 거액의 국고 지원으로 회생했지만, 어느 정도 위기에서 벗어나자 또다시 상식을 뛰어넘는 보너스 지급으로 영국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다. 유권자의 울분을 대변하는 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이 급등하는 것은 당연하다. 1920년대에는 경제 위기를 맞아 노동자의 임금을 깎으려는 광산주와 그것을 두둔하는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울분을 대변하면서 노동당이 급성장했지만, 2010년에는 소수만이 기회와 부를 독점하는 카지노 자본주의와 그것을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못하는 제도권 정당에 대한 울분을 대변하면서 자유민주당이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선거라는 것은 유권자가 울분을 비폭력적으로 터뜨리는 방법이다. 그렇게 울분을 터뜨릴 수 있는 권리를 영국인이 얻은 것은 그러나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성인 남자에게 대거 투표권이 주어지자 영국 서민도 투표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귀족이 주축을 이룬 영국 의회는 두 세대 가까이 지난 1832년에야 재산 기준을 완화하여 성인 남자 7명 중 1명꼴로 투표권을 주었다. 1867년에는 자유당이 집권하여 남성 세대주에게 투표권을 주었고, 1884년에는 이 조치를 지방까지 확대하여 유권자가 550만 명으로 불어났지만, 성인 남자의 40%는 여전히 투표권이 없었다.
그로부터 꼬박 30년 동안 참정권 확대 운동이 벌어졌지만, 21세 이상의 성인 남자 전체와 재산이 있는 30세 이상의 여자에게 투표권이 처음 주어진 것은 1918년 1차대전이 끝난 뒤였다. 투표권은 전쟁에서 싸우고 온 군인과 공장에서 남자 대신 일한 여자에게 주어진 보상이었다. 유권자는 770만 명에서 2,140만 명으로 획기적으로 불어났다. 덕분에 노동당 당세는 1920년대 이후 급성장했다. 20세기 초까지도 영국의 기득권 세력은 의회의 진입 장벽을 높이려고 의원의 월급도 주지 않았지만, 영국 노동자는 돈을 모아서 노동당 의원의 월급까지 대주었다.
영국에서 성인 남녀에게 동등한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928년이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국은 1948년 전 국민이 투표권을 얻었다. 영국 국민은 150년 동안 피눈물을 흘리면서 투표권을 쟁취했지만, 한국 국민은 해방과 동시에 투표권을 횡재했다. 그리고 때로는 고무신과 막걸리에, 때로는 부동산 거품으로 한몫 챙기리라는 허욕에 투표권을 팔아넘겼다. 자손만대가 살아갈 국토를 부동산 투기꾼 정권에 팔아넘겼다.
5월 6일은 영국의 총선일이다. 만년 3당 자유민주당의 지지율 급등이 예상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기사회생했으면서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여전히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금융권에 대한 영국 국민의 원성을 보수당과 노동당과는 달리 당론에 적극 반영한 것이 지지율 상승의 배경이다. 영국 국민의 울분을 달래주는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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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 축구심판 복장의 국민주권운동본부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앞 사거리에서 6.2 지방선거 정책평가와 투표참여를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6월 2일은 한국의 지방선거일이다. 투표권 한 장에 박힌 역사의 피눈물을 알지 못하면 내 자식과 내 손자가 반드시 피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다. 타국에 있어 투표를 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 지인에게 꼭 투표 참여를 독려하자. 울분을 달래줄 정당을 밀어주자.
(cL) 개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