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

서프에 묻어뒀던 얘기 ...

순수한 남자 2010. 5. 27. 10:13

서프에 묻어뒀던 얘기 ...
번호 154611  글쓴이 둘째천사아빠  조회 1143  누리 545 (545-0, 25:69:0)  등록일 2010-5-27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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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에 묻어뒀던 얘기
(서프라이즈 / 둘째천사아빠 / 2010-05-26)


아마 91년 경이었을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당시 모스크바로 출장 갈 일이 생겼다. 내가 탄 비행기는 김포공항을 이륙하여(당시 국제선은 김포공항이었던 관계로) 계속해서 고도를 높이더니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기수를 틀었다 - 왼쪽

당시 비행기는 북한 영공을 통과할 수 없던 관계로 서해 쪽으로 이륙한 비행기는 왼쪽으로 기수를 틀어 한반도의 남쪽을 선회한 후 북한 영공을 피해 동해의 끝자락을 거친 후에야 러시아의(당시 소련) - 아마 사할린이었을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 영토에 진입할 수 있었다. 길고 긴 시베리아를 거쳐 비행기는 모스크바를 향해 한도 끝도 없이 날았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아마 26시간이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모스크바의 출장은 몇 개의 공업도시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에서 마무리됐고 귀국 시에는 에어로플로트의 항공편을 이용했다. 당연히 북한 영공을 거쳐 김포공항에 도착했는데 귀국시간이 무척이나 짧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20여 일간의 긴 여정으로 피곤했던 나에게는 어쨌든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었다.

여긴 분당이다. 오늘 모임이 있어 10여 명의 지인들과 함께 자리를 했다. 그런대로 괜찮게 사는 사람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제력만을 놓고 평가했을 때의 얘기다. 천안함을 북한의 어뢰 때문이라고 너무나 당연히 믿는 그들의 정치적 인식능력은 도저히 그들의 경제능력과 어울릴래야 어울릴 수 없는 저급한 수준이다. 결국, 대략 1대 10의 힘겨운 싸움이 벌어졌는바 그들이 생각하기에 나는 정말 이상한 별종이다. 적어도 정치문제에 있어서만은….

천안함에 관한 논쟁은 급기야는 그들이 말하는 ‘북한 퍼주기’라는 테마로 귀결했다. 남한에 전세금 500만 원이 없어 죽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도대체 북한에 그러 퍼주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게 그들의 인식방법이다. 생각 같아서는 도대체 그대가 북한 퍼주기에 뭘 얼마만큼이나 기여했느냐고 따져 묻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모처럼만에 옛 러시아(당시 소련)으로의 출장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연유였다.

퍼준 것뿐일까? 받은 것은 없는 것일까? 당장 오늘부터 우리 비행기가 북한 영공을 피해 그 비싼 기름을 공해상에 뿌리고 다녀야 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받았던 혜택의 반납은 아닌가? 나는 비교적 이 얘기를 소상하게 - 그리고 사실 좀 재미나게 - 그들에게 전달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했는가? 그들은 분명 내 얘기를 재미나게 듣고는 있었지만 그냥 말 잘하는 사람의 궤변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나는 내 몫을 했다.

어디 이뿐이랴. 한반도의 평화분위기 자체가 얼마나 큰 현찰환급인지를 설명해야만 했다. 당장 전쟁분위기로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게 되었을 때 해외자본을 조달해야 하는 국내기업의 인상된 금리금액분만 계산해도 흔히 그들이 생각하는 ‘퍼주기 이상’의 상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마치 대학교수처럼 자세히 설명해야만 했다. 내가 오늘 그들을 설득시키는 데까지는 실패했겠지만, 적어도 -나를 포함하여 -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보다 더 논리정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데에는 나름 충실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이 말이 아니다. 벌써 몇 년 동안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서프를 눈팅하고 있는 눈팅족이다. 전에 어쩌다 한두 번 글을 써 본 적은 있지만, 어쨌든 나는 99.99%의 순도를 지닌 눈팅족이다. 그런데 식당 개 3년이면 라면 끓인다고 했던가? 오늘 나는 그들과 논쟁하면서 정말이지 서프의 덕을 톡톡히 봤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글은 이런 감흥의 발로이다.

버블어뢰 얘기가 나왔다. 버블어뢰란 것이 북한이 만들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전적으로 서프의 눈팅을 통해 얻은 지식이었다. 소형 잠수함 얘기가 나왔다. 당연히 소형 잠수함에 중형어뢰 장착이 불가능하다는 이론설명도 서프가 알려준 지식이었다. 북한 잠수정 승조원 8명이 훈장을 받았다는 북한 소식통의 얘기가 나왔다. 어디서 보도된 것이냐고 물었다. 그냥 신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중동 보도라면 믿을 것이 없다고 되돌려 줬다. 그러면서 우파 신문이기는 하지만 “주장은 마음껏 펼치되 팩트만은 목숨처럼 여긴다”는 가디언 매체에 대해 설명해주고 조중동과의 차이점을 설명해줬다. 이 역시 서프에서 동냥한 지식이다. 조중동이 팩트를 왜곡한다는 사실은 광우병에 대한 그들의 팩트 기사가 참여정부 시절과 설치정부 시절 180도 달라진 점을 예로 들었다. 광우병 괴담을 인정하더라도 둘 중 하나는 팩트의 왜곡일 수밖에 없고, 결론적으로 그런 것은 신문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약 1시간 전까지 술을 마셨기로 지금 몹시 취한 상태다. 하지만, 내일 - 아니 잠시 후 오늘 - 다시 깨어도 이 말은 유효하다. 서프는 꼭 필요한 사이트다. 완벽한 인간이 없는 것처럼 서프 또한 결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 적어도 나는 지난 대선 때 투표를 하지 않는 서팡들이 지금쯤은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6월 2일 투표에 꼭 참석하라는 소리를 어찌 얼굴 붉힘 없이 말할 수 있으랴 - 지금으로써 서프는 시대의 양심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가장 분명한 이정표이다. 몇 년 동안 눈팅으로서 때론 미워하고 때론 실망하면서 그래도 가슴 속에 묻어뒀던 얘기를 한 번쯤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 서프 고맙다.

 

둘째천사아빠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5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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