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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아름다운 좌절

순수한 남자 2010. 6. 27. 22:51

노무현의 아름다운 좌절
번호 176919  글쓴이 뜻대로 (mkhksss)  조회 2250  누리 809 (809-0, 44:105:0)  등록일 2010-6-26 18:08
대문 57


노무현의 아름다운 좌절
(서프라이즈 / 뜻대로 / 2010-06-26)


요즘 나는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읽고 있다. 그 책의 프롤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가 매우 슬프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써야 하는 것은 그런 것(진보주의에 대한)이 아니다. 회고록을 써야 한다. 영광이나 성공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시행착오와 좌절과 실패의 회고록이다.” - 노무현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우리에게 그 존재만으로도 크나큰 축복이었던 노무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한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집권기간 내내 탄핵의 고비를 맞이하면서까지 힘겹게 정치적 정적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여온 과정, 그리고 퇴임 후 아주 잠깐이나마 그가 고향에서 평온한 한 때를 보내며 국민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짧은 시간, 그리고 그 후… 이 정부의 치졸하고도 집요한 정치공작으로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우리 곁을 매정하게 떠나버린 그의 처연한 최후.

나에게는 그 모든 것… 그의 대통령 당선, 정적들과의 힘겨운 싸움, 봉하에서의 평온한 삶 그리고 그의 슬픈 작별… 그 모든 과정이 한없이 서럽고 슬프기만 하다. 돌이켜 생각하여 본다. 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좌절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부정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즉, 그라면 또다시 시간을 되돌려 대통령 후보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별 수 없이 조선일보와 싸울 것이고 그로 인하여 보수 세력에게 집요한 공격을 당할 것이고, 그 때문에 다시 탄핵을 당하고, 이런 힘들고도 괴로운 과정을 그는 또다시 반복할 것이다.

내가 그의 삶을 기리며 슬퍼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생물학적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오욕의 삶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때문에 또 한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모순과 불합리함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의 그라면 또다시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그가 스스로 그의 신념과 양심을 속된 대중적 인기와 부정한 요구에 팔아버리지 않는 한, 그는 또다시 치열하고 비참한 삶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좌절일지라도 말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슬퍼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노무현! 그는 매우 용감한 사람이었다. 과연 우리 주변에 아니, 여의도 국회에서 기생하는 생물들 중, 노무현처럼 좌절과 오욕의 삶을 각오하고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꿋꿋하고 당당하게 펼칠 배짱이 있는 정치인이 또 어디에 있을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강건한 정치인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노무현처럼 용감한가? 아니다. 적당히 시대의 강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때로는 그가 정주영 회장에게 질책을 했던 것과 같이 시류에 편승하기도 한다. 그럼 나에게는 노무현과 같이 좌절을 각오하고 내 신념을 펼칠 의지가 있는가? 아니다. 3개월 후에 한 아이의 아빠가 될 내가 좌절하게 되면 우리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안전빵의 길만을 택하는 새가슴으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 시류에 편승하는 나약한 영혼이요, 뜨거운 심장을 보유하기에는 너무 작기만 한 새가슴의 초라한 사내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난 나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며 내 선택에 대하여 존경을 표한다. 비록 내게 직접 불의와 싸울 용기가 없고 또 그런 의지도 없지만, 적어도 누가 나 대신 불의와 싸울 인물이고, 그럴 의지가 있는 자인지 정도는 분명히 가려낼 분별력이 있다. 그래서 난 지난 2002년 말에 노무현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우 역설적인 감정이지만, 나 역시도 또다시 2002년의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노무현에게 투표할 것이고 그를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좌절을 지켜보며 슬픔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노무현을 또다시 택할 생각이다.

그렇다. 그의 좌절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슬픔은 슬픔이되, 그것에 후회는 없다. 노무현도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기를 간곡하게 바랄 뿐이다.

좌절이 꼭 추하고, 비참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좌절도 아름다울 수 있다. 노무현의 좌절을 보라.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가 겪은 좌절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이 증명시켜 주었다. 그렇기에 유시민이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것에 대하여 나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누구인가! 또다시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좌절을 각오하고 자신의 신념을 펼칠 자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그 누군가가 다시 한 번 아름다운 좌절과 싸워주길 기대한다.

 

뜻대로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76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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