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서프라이즈 / 강남 아줌마 / 2010-06-30)
과격하고 그로테스크한 묘사로 독자층의 호불호가 분명한,
아이큐 178, 일본의 배우이자 작가인 츠츠이 야스타카의 단편 중
‘나비’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어여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섬뜩하다.
주인공이 잡은 날개 직경 3센티의 아름다운 나비는 매일매일 점점 커간다.
5센티, 일 미터, 삼십 미터, 백 미터……
일 미터 정도 됐을 때만 해도 방송에 출연해서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지만
심한 바람을 일으키고, 태양을 가리는 날개와
나비가 빨아먹는 많은 양의 수액으로 도시의 나무들은 시들고
시민들은 햇빛조차 볼 수가 없어 일본 자위대는 나비에게 대포까지 쏴보지만
나비는 죽지 않고, 날개 파편만 떨어져
도시는 여전히 어둡고, 사람들의 목과 눈은 아파져 온다
사람들은 목이 아프다, 눈이 아프다 하면서도
도쿄 하늘을 덮은 나비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하늘이 어두운 것에도 익숙해진다.
작가는 말한다. 사람들이 왜 나비에 대해 잊었는지…
‘그것은 나비가 너무 커져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어제 피디수첩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하늘에도 거대한 나비의 날개로 덮여 있어서
원래의 하늘은 얼마나 밝았는지를 점차 잊어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개개의 사건에 대해선 흥분하면서도
날개의 존재에 대해선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민간인 사찰을 국무총리실, 나아가 더 높은 곳에서 주관하는 나라에서,
시민단체나, 교사, 공직자의 사찰쯤은 이제 당연하게 여기는 게 아닐까?
내 고향 야당 정치인이 누구지? 한번 되짚어보고,
그 정치인과 꿈에서라도 한 번 본 적이 있나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시대에
나랑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이 혹시 잘못되면
나까지 함께 엮이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옳지 않은 것에 눈 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튼튼한 실로 입을 꿰매고,
정부에 반하는 말에는 보청기 잃어버린 흉내를 내야 하는
장님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
며느리 삼계명을 외워가며 살면서 하늘을 덮은 정체에 대해선 아예 생각하지 않는
그런 암흑의 시대가 지금 대한민국이라면 소설 같은 세상이라고 기뻐해야할까….
사회적 상식이나 도덕에 반하고, 법의 적용을 왜곡해 합법성을 획득한 자들에게
과연 합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심한 반역이자, 무모한 짓일까.
이런 불가해한 현실과 절대적인 악을 경험한 사람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의미일까….
영화 ‘모범시민’에서처럼 직접 무기를 들어야 하는 걸까….
애써 일구어온 사업체, 보장된 미래, 가족들의 행복…
모든 것을 다 잃은 그가 흘리는 눈물이 쇠를 녹일 것처럼 뜨겁다.
이유는 단지, 지난 정부의 정치인과 고향이 같다는 이유,
그리고 십 년 전쯤 노사모에 가입한 전력 하나이다.
그리고 그 정치인이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다는 이유이다.
한 사람 인생쯤이야 우습게 알고 자신들의 목적만 이루면 되는 인간들에게
‘설사 제가 노사모이면 어떻고 이광재를 알면 어떻습니까?’
상식적인 나라에서 정당하게 통용되는 그의 항변은 외계어로 들릴 것이다.
노사모면 범죄자를 돕는 집단, 회원이면 잠재 범죄자이고,
이광재를 알면 전 대통령의 비리에 가담한 부패한 자가 될 것이니….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 각 기관에서 기관장을 몰아내려 먼지털이를 했고,
그 먼지털이를 하러 온 자들이 말한 게 국무총리실이었다.
국무총리실? 총리실에서도 그들의 존재를 모른다고 한다. 그럼…?
꼭 찝어주지 않아도 우린 답을 안다. 그 비열함이 어디, 누구에서 비롯됐는지…
통장을 조사하고, 뒤를 캐고, 사람을 붙여 미행하고 부하직원들을 조사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게, 아니면 더러워서 그만두게 한 수법은
약점을 잡고 가족을 인질 삼아 영업권을 따내는 유흥업소의 깡패들과 같아
가족을 살리려 영업권을 내놓고, 죽음을 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엔 그런 방법이 새로울 것 없고,
새삼 분노할 것 없는 당연한 수법이 되어 새로운 뉴스거리도 안 되었다.
하늘을 덮은 나비의 날개에 익숙해진 것처럼….
…그런 줄 알았다.
박쥐가 아닌 이상 인간은 어두운 것보다는 밝음을 좋아하고 추구한다.
밝음에 대한 열망이 투표결과로 나타났고,
그것이 나비의 심장을 뚫는 화살이 될 것을 모르고
나비는 찢긴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다.
이광재 도지사를 직무 정지시키고, 한명숙 총리를 수사하고, 시민단체를 고발하고,
진실에 대해 의문을 갖는 자를 국가 보안법으로 다스리려 한다.
아직도 자기들의 날개가 큰 줄 알고 있다. 찢기고 구멍 난 주제에…
뒤지고, 쑤시고, 찌르고, 파헤치고… 다 해도 한 가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결백이 증명될 때까지 유죄인가,
유죄가 증명될 때까지 결백한가.’
법 좋아하는 것들이니, 답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아무리 큰 나비라도 평균 수명이 한 달에서 수개월,
황모시나비라는 희귀종의 수명이 2년으로 가장 길다는 것쯤
잘나신 그대들은 잘 알 것이다.
강남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