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탐사기

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3)

순수한 남자 2010. 8. 31. 16:39

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3)
번호 196626  글쓴이 김제영 (seop1)  조회 162  누리 27 (27-0, 2:2:0)  등록일 2010-8-3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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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3)
이란의 한국대사관

(서프라이즈 / 김제영 / 2010-08-31)


한국·이란 작가 워크숍이 끝나고 각기 방으로 흩어져 볼일들을 보고는 곧바로 로비로 내려가야 했다. 테헤란에서의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우리에게 세심하고도 정성을 다해 신경을 써주고 있는 이상균 영사가 우리 일행이 다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하고 믿음직한 그에게서 나는 문득 시인이요 현재는 충남대학교 명예교수인 최원규 박사가 “미국에서 개최되었던 전 세계 고등학생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다니까요. 한국이 세계에 부상했지요. 케네디 대통령이 초청을 하고 미국의 각 주를 여행시켜주고, 그게 그의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대학 재학 시에 외무고시에 합격을 했죠.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을 했죠. 16세에 사법고시에 합격을 한 장기욱이 충남의 수재 제1호라면 반기문은 충북이 낳은 제1호 수재입니다. 주마다의 방언, 심지어는 속어, 욕지거리에 이르기까지 반기문의 영어실력이 자기네를 능가한다며 미국인들이 놀란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그 덕을 본 건 아시아 시인대회에 참석한 우리(조병화, 김양식, 최원규)였어요. 뉴델리에서 대회장소인 마드라스까지 그는 지리에 어두운 우리를 위해 동행해주었고 통역으로서가 아니라 한국대표의 자격으로 우리 시인들의 몫을 능란하고 멋지게 수행하는데 그의 영어실력이 위력을 발휘했으니까요. 반기문으로 하여 우리는 어찌나 신명이 나고 우쭐했던 지요…….”

고조된 억양으로 입에 침이 마르게 격찬의 대상이었던 한 외교관의 편린을 보는 듯 했다. 그의 영어실력이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시인의 넋을 완전히 사로잡은 인도의 아시아 신인대회가 70년대 중반이었고 당시 그는 인도 주한국대사관의 영사였으니까 이상균의 현재와 비슷한 연배였을 것이다.

현재 그는 외무부 차관으로 막중한 국가 외교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맡겨진 일에 충실할 수 있는 성실성과 세계의 어느 누구와도 겨루어 당당할 수 있는 실력을 겸비한 외교 인력이야말로 몇천 억불 수출액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소득 국가 수익이요 민족의 기반을 굳히는 만고의 자산이 아닐런지…. 우수인력으로 포진된 외무부에 거는 기대는 곧 민족의 희망이다.

디너파티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장밋빛 기대와 가벼운 흥분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하물며 외국에 나와 있는 우리나라 관리의 초대이니 어찌 기대에 부풀어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상균 영사가 우리와 버스를 동승했다. 호텔에서 대사관까지는 약 30분 거리이다. 담장을 덮은 아이비의 무성한 잎이 아치형 터널 양식의 천정에까지 뻗어 대사관 출입구의 긴 통로는 운치가 있고 여간 멋스럽지 않다. 수목을 대신한 푸르름이 방문객을 맞아주기 때문이다. 자생적 수목이 귀한 고장에서 주어진 여건을 충분히 살려 원예의 창의성을 발휘한 슬기가 돋보였다.

풀장이 있고 국기게양대가 있고 본관 건물이 있다. 신장범 대사 부부가 현관에 나와 서 있다. 정감이 넘치는 악수로 우리 일행을 한 사람 한 사람 맞아준다. 서구식 건물 구조가 유기적이고 아름다웠다. 실내에 들어서면서 맨 처음 내 시선이 머문 곳이 대통령 사진이다. 지난날 같았으면 심드렁하니 지나쳤을 사진이다. 박해와 투쟁과 민주화라는 ‘김대중’의 이름이 상징하는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격세지감의 감회와 감동이 용해되어 흘러내리는 느낌이다.

한 계단 정도의 높낮음으로 입체적 변화를 감안한 설계였을까, 두 공간으로 나뉘어 탁 터놓은 거실은 알맞게 넓다. 이란 주재 외교관들의 모임도 작을 것이고 이란 국가 요직의 사람들과의 외교 무대이기도 할 테니 거실과 다이닝 룸은 대사관의 노른자가 될 것이다. 품위가 느껴지는 문양의 이란제 카펫, 손때가 묻어 정겨운 장식장과 그랜드 피아노 뒤에 펼쳐놓은 산수화 병풍, 고급스럽고 안정감을 주는 소파와 응접탁자 등이 조화를 빚어내는 쾌적하면서도 밝은 분위기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 SEBASTIAN BACH)의 칸타타(CANTATA)를 부르기 위해 바흐시대의 성장과 머리 모양을 한 남녀 오페라 가수가 금세 화사하고도 세련된 자태로 등장할 것만 같다. 탁자에는 이란에서 생산되는 열매의 마른안주와 칵테일 음료수 등이 준비되어 있다.

“저희 대사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은 우리 지역입니다. 스카프를 벗으셔도, 팔을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신 대사의 한 마디에 으아 환성이 터졌다.

스카프와 위에 걸쳤던 긴 팔 블라우스가 모두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호텔에서부터 이럴 수 있었더라면 몸치장에 열을 올렸을 텐데…….

잠시 후 다이닝 룸으로 안내되어 내려가니 음식이 준비된 식탁마다 맨드라미꽃이 꽂혀 있지 않은가.

“어머, 이건 우리네의 토종 맨드라미와 똑같군요.”

순간 꼬리를 저으며 달려오는 삽살개, 양지바른 토방의 목화송이 등이 떠오른다.

“맨드라미를 처음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어찌나 반갑던 지요. 우리네 시골집 맨드라미와 똑같지 않겠어요? 오늘은 우리 작가님들을 위해서 특별히 맨드라미로 신경을 좀 썼어요.”

부인은 애교스럽게 미소를 보였다. 그리움과 추억을 대접할 줄 아는 여인, 초대되는 손님의 나라와 특성에 맞게 꽃꽂이의 소재를 택할 줄 아는 예리한 감각의 여인, 어쩌면 그것은 외교관 아내의 몸에 밴 매너인지도 모르겠다.

식단 또한 한국적이면서도 영양학적이고 깔끔하면서도 풍요로웠다. 육류(갈비), 해산물(새우, 낙지, 조개, 해파리 등), 산채(버섯 잡채), 남새(시금칫국, 김치) 등의 음식은 짜지도 맵지도 싱겁지도 않았다. 완숙한 여인의 은은한 미소와 같은 맛이었다. 세계의 어느 나라 사람을 식탁에 앉혀 놓아도 ‘원더풀’ 하겠으니 주이란 한국대사관의 주방 솜씨는 가히 A+였다. 식혜, 과일 등 후식을 들며 우리는 내 집 안방에서처럼 수다를 떨었다.

신장범 대사는 거실에서도 다이닝 룸에서도 우리들에게 꽤 긴 시간 열성적으로 무엇인가 설명을 했다. 신 대사의 테이블에는 주로 남자 작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내 테이블까지는 신 대사의 음성이 닿지 않았다. 남녀차별이란, 무의식 속에 형성되는 것이구나 싶어 씁쓰름했다. 신 대사의 홍보 주제가 무엇인지 이란의 정세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였지만 내가 그곳으로 가 메모를 할 경우 누군가가 내게 자리를 양보할 것이니 그것도 얌체라 느껴졌다. 귀국 후에 그 테이블에 앉았던 작가에게 묻자고 깨끗이 체념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한 작가가 알아봐 주겠다고 하더니 함흥차사이다. 하는 수 없이 2월 9일 외무부에 팩스로 의뢰를 했다. 이상균 영사에게서 즉시 팩스로 화답이 왔다. 일부를 전재한다.

-전략-

‘… 오늘 서울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필요하신 자료가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코자 몇 자 적습니다.

소설가 협회 회원 초청 만찬 시 대사님께서 주로 말씀하신 내용은,

1. 주이란 한국대사관 연혁,
2. 북한대사관 현황,
3. 최근 한-이란 간 경제협력 관계 강화 추세(한국은 이란의 4대 교역국, 이란은 한국의 10대 교역국.
4. 최근 일어난 학생소요 관련, 이란의 민주화와 개혁 가능성과 한계
5. 이란과의 역사적 배경(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대식국’으로 알려짐. 대사님께서 이 부분을 번역, 이란 외무부 내 직원들에게 이 내용을 소개하여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에피소드 소개) 등 입니다.’

-생략-

이상균 영사의 팩스 송부 날짜는 2000년 2월 14일이었다. 그의 팩스 내용 중에서 ‘현재 눈이 많이 오고 있어서…… (생략)’의 구절에 나는 의아했다. 지난번 이란 여행 때 이란은 여간해서 비가 오지 않는 곳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균 영사에게, ‘현재 그곳에 내린 눈은 계절에 따른 일상적인 현상입니까, 이상 기온에 따른 돌발적인 상황입니까?’ 팩스를 보내려다 말았다. 이곳 주 이란대사관에 문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란의 한국 유학생은 테헤란에 단 1명이고 77년 6월 테헤란시와 서울시의 자매결연으로 탄생된 서울의 테헤란로는 날로 번창 일로인데 테헤란의 서울 거리는 예나 다름없이 한적하게 가로수만이 서 있다고 적혀 있고, 이란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예술문화, 교통, 지리 각 분야별로 구체적인 정보를 백과사전처럼 적어 보내주었다.

이란 여행기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균 영사에게 이 지면을 빌어 그 수고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다음 행선지로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생략을 한다.

 

김제영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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