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편지] 어두운 기억의 저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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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에 흡수통일되는 것입니다. 북한군부와 엘리트계층 중에는 김정일정권의 붕괴를 원하는 친중세력들이 상당수 포진되어 있다는 사실도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북한과 중국의 이중국적자로서 6·25 사변 이후 모택동이 남겨 놓은 중국 팔로군인들의 후예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바로 중국을 지지하는 쿠데타의 불씨라고 합니다. 3,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2004년 4월의 북한 용천역 열차 폭발 사건도 일종의 김정일 테러사건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쿠데타를 노리는 북한 내 친중세력들의 음모였다는 거지요.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래프 신문도 2004년 6월 13일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는 ‘북한 지도자 살해 음모’였다”(Train blast was 'a plot to kill North Korea's leader')는 제목으로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에 흡수통일되어 버리지 않을까?’하고 두려워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북한정권이 중국과 같은 공산정권이기는 해도 민족주의정권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서 자신들의 정권체제가 계속 유지될 수 있게끔 외교전략을 펼쳤던 것도 그런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이 미국을 견제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이이제이 전략을 사용했던 것이 아닐까요. 북한의 외교인력들은 참으로 뛰어난 브레인들이었습니다. 북한이 그다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이 군사적 경제적 공격을 감행해 자신들의 정권체제를 붕괴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독수리 훈련이나 키리졸브 훈련 그리고 2009년 4월에 수립된 ‘작계 5029’를 북한은 북한침략전쟁의 일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6자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과의 단독 회담을 북한이 원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미국이 자신들의 정권체제를 붕괴시키거나 북한을 침략하지 않는다는 불가침조약만 체결한다면 종국적으로 가능한 모든 제안을 수락하겠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북한의 핵전략도 북한정권의 생존전략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북한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비핵개방 3000’이나 ‘한반도 신평화구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너네들 잘 살게 해줄 테니까 핵무기개발도 포기하고 그냥 이렇게 된 김에 정권체제도 내놓아라 뭐 대충 이런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너네들 잘 살게 해주고 주식장사 땅장사 잘하게 해 줄 테니까 나를 대통령으로 뽑으라고 했던 이명박의 실용주의 즉 ‘MB 노믹스’가 통일문제에도 이런 식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정권 잡은 놈들이 자기 정권 내놓고 싶어하는 놈들은 이 세상 하늘 똥구멍 밑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현재의 북한정권이 5년짜리 10년짜리 정권입니까? 60년도 넘은 북한정권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난 직후부터 2009년 11월까지 이명박 정권의 대북 강경파들이 북한의 김양건과 만나 세 차례에 걸친 비밀접촉을 하고도 제3차 남북정상회담 계획이 깨어져 버린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6월 지방선거 이후에야 다시 비공식적인 비밀접촉이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남북한 정권이 외세의 도움이나 간섭없이 민족문제를 같은 민족끼리 타결할 수 있는 시기가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밀려나 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의 설득에 따라 6자 회담에 나서기로 했고 3월에는 6자회담의 개최날짜가 오늘내일 확정될 순간에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때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지요. 북한의 정권체제를 어떤 식으로든지 인정하지 않는 한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김대중이 그러했고 북한의 정권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한 통일은 힘들고 북한정권이 하루속히 붕괴하기만을 기도하는 대북정책을 계속 시도한다면 어쩌면 결국 남한정권조차도 붕괴하는 상황이 초래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한말 조선을 일본이 집어 먹는 대신 미국이 필리핀을 잡아먹는 것을 눈감아 달라고 했던 미국과 일본 사이의 가쓰라·태프트 협정을 기억하십니까? 역사적으로 힘센 나라가 약한 나라를 잡아먹는 것은 너무도 흔한 역사의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역사학자들은 그러한 역사의 사실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어쩌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도 지배자의 역사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전작권을 하루라도 빨리 대한민국 국군이 환수하기를 노무현이 바랬던 지도 모르겠습니다. 힘없는 나라 하나를 놓고 힘센 나라들끼리 서로 야합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군사작전권조차도 없는 나라가 도대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더구나 군사적 종속이 경제적 종속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말입니다. 이제 김정일이 결단을 내린 것 같군요. 중국과의 군사경제협력이 강화되면 중국에 흡수통일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기에 자기 정권의 체제를 보장받기만 한다면 같은 민족인 남한정권과의 협력을 원했었는데 이명박 정권은 대북강경정책을 앞세워 북한정권이 하루빨리 붕괴하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남한의 군사적 위협과 경제제재조치가 보다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럴 바에야 차라리 위험을 무릎 쓰고서라도 같은 공산정권인 중국과의 군사적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 김정일의 판단인 것 같습니다. 결국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김정일은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이명박은 러시아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군요. 이명박 정권은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구한 말로 되돌아간 것 같습니다. 레닌그라드의 붉은 광장에 가면 이명박 정권의 강경파 현인택 통일부장관이 “Back to the Past”라는 붉은색 깃발을 들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인제 통일은 물 건너간 것 같습니다.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되고 남한은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속국이 되어 버리는 아름다운 날이 머지않았겠군요. 바로 그날이 아마 기독교의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날이고 “하늘나라가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날이라고 이명박 정권 딴나라당 아해들과 골수 극보수 아희들과 기독교 천사들이 믿고 있겠지요. “아멘 노랑머리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북한 여성합창단이나 북한 어린이합창단이나 조총련계 아이들이나 해외동포 합창단의 목소리로만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설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른다고 해서 빨갱이로 잡혀가는 날이 오는 건 아니겠지요? 잘사시는 분들 통일세 많이 냅시다.
0042625 ※ 본 글에는 함께 생각해보고싶은 내용을 참고삼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론, 학문' 활동의 자유는 헌법 21조와 22조로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 학문, 토론' 등 공익적 목적에 적합한 공연과 자료활용은 저작권법상으로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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