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자백
(서프라이즈 / 내과의사 / 2010-09-15)
국방부가 천안함 침몰의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국방부가 ‘범행 당사자’로 지목한 북한의 동기나, ‘범행’을 뒷받침할 만한 사고 전후 북한의 행동 변화에 대한 의미 있는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들이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듯 엄연한 주권국가인 북한이(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으로 우리도 북한의 주권을 인정한 거다.) 대한민국 영해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군함을 격침시켰다는 논리이다.
침몰과 관련한, 이른바 과학적 설명의 논리체계는 정말 언급하고 싶지 않을 지경이다. 거의 판타지 소설 수준이다. 국방부 발표보다 “위대하신 수령께서는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셨다.”고 이야기하는 북한 정치 선전의 ‘전설’이 차라리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이다. 송진의 휘발성과 솔방울의 내부 압력을 맥가이버식으로 응용한다면 폭발력을 가진 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학계에 보고된 바 없지만 말이다.
보고서의 분량이 290페이지 정도인가 보다. 그러나 장황한 보고서에는 왜 북한이며, 어째서 어뢰인가를 설득해내려는 검증 노력은 전혀 없다. 다만 우리는 보고서에서 “무조건 북한이어야만 하고, 무조건 1번 어뢰이어야만 한다.”는 현 집권세력과 국방부의 집요한 의지만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뒷골목 담벼락을 보면 “소변금지”라고 휘갈긴 글씨 옆에 가위가 그려져 있곤 했다. 제발 여기다 오줌 싸지 말라는 주인의 의지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표현이 있을까. 천안함 보고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책 써 갈긴 놈도 헛소리인 거 뻔히 아는 290페이지짜리 판타지 소설책을 찍어내느니 차라리 A4 용지 딱 한 장에 뻘건 글씨로 “천안함 침몰은 무조건 북한이 발사한 1번 어뢰 때문이다.” 라고 큼지막하게 쓰고 쥐새끼가 삽자루로 사람 패는 그림 하나만 그려 넣었으면 세금은 팍팍 절약되고 효과는 백배 천배 나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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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침몰 최종‘전단지’ - 290페이지짜리 판타지 소설책이 꼭 필요할까… |
아무튼, 황당하고 해괴망측한 국방부 조사결과의 논리체계를 액면 그대로 수용한다면, 결국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북한의 군사조직과 무기체계가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국군이 보이스카우트보다도 자기 보호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국방부 발표대로라면 경계에 실패하여 사망한 장병들이 무공훈장을 받는 군대가 바로 대한민국 국군이다.)
“북한 인민군은 세계최고 정예강군, 대한민국 국군은 보이스카우트만도 못한 쓰레기 군대”라는 명제.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제발 믿어 달라고, 믿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부르짖는 명제이다. 그것도 온갖 허접한 가정과 논리들을 내세워서 말이다. 그렇다면 국방부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슨 절실한 이유가 있어 국제 공인 등신 3류 군대로 취급받기 위해 ‘무한도전’과 ‘무한비굴’을 편집광적으로 반복해야만 할까?
고관대작 집 아들이 테러 용의자로 수사기관에 잡혀왔다. 그는 줄기차게 결백을 주장하지만 무죄를 입증할 결정적인 알리바이를 제시하지 못한다.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끝까지 뭔가를 숨기는 것이다. 아버지와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테러범으로 감옥에 갈 처지가 되어도 그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버틴다. 결국 진실이 밝혀졌다. 그의 알리바이는 테러와 연관이 의심되는 순간 동성애를 즐겼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차라리 테러범으로 감옥에 가는 것이 게이로 커밍아웃하는 것보다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그나마 보전하는 일이라 믿었던 거다.
대테러조직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 ‘24시’ 시즌4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국방부 최종보고서의 의미를 나는 이러한 맥락으로 가볍게 이해한다.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 국군이 등신 3류 군대 취급을 받을지라도, 북한 인민군이 세계최강 정예 강군임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무한비굴’ 행위를 천연덕스럽게 반복하면서도 현 집권세력과 군부는 감추고 싶은, 꼭 감추어야 할 비밀이 있는 거다.
국방부는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그것은 명백한 논리와 과학적 증거는 결여된, 그러면서도 초지일관 스스로 국군은 바보 병신이라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명예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군인들이 바보 병신 취급을 받는 수모를 뻔뻔스럽게 무릅쓰면서까지 지켜야 할 비밀은 도대체 무엇일까. 국방부가 요란스럽게 자백한 진실의 단초이다.
내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