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온 마음으로 맞이하겠습니다
(서프라이즈 / 아름이 / 2010-12-08)
8년 만에 생계를 위한 새로운 일이 찾아온 터에 이것저것 궁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참여정부 정찬용 인사수석께서 함께하고 계시는 국민의 명령 백만 민란과 관련한 일도 궁리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매월 1개 이상의 접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2월 목표는 달성했다. 1월 목표 달성도 가능할 것 같다.
12월 5일
실천하는 지성인,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조금 부족한 8백여 리다. 요즘 거리로는 그리 멀지가 않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망설임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5.18 민주묘역에 안장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 자리에 반가운 마음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가지 않는 미안함과 송구함을 떨쳐 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12월 6일
리영희 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 부족한 마음 짓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빛고을님께 전화를 드렸다.
“리영희 선생님 5.18 민주묘역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답변 없이,
“아름이님 마음이 제 마음과 통했나 봅니다.”
이심전심이다.
나는 만장을 제안했고, 빛고을 님은 펼침막을 제안했다. 구 묘역으로 모시면 만장을 신 묘역으로 모시면 펼침막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5·18묘역은 두 곳의 묘역이 있다. 구 묘역은 민족민주열사 묘역이고, 신 묘역은 민주묘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리영희 선생님께서는 5.18 유공자이시기에 민주묘역으로 모신다고 한다.
참고로 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와 국가보훈처 간의 통화내용을 살펴보자.
이주빈 - 고 리영희 선생께서 영면하실 곳이 5.18 국립묘지 7구역 4번 묘지 맞습니까?
보훈처 - 예, 맞습니다.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이주빈 - 고인께서 5·18묘지에 영면하실 수 있는 근거가…?
보훈처 - 저희들은 사회민주화 공헌 부분 등은 얘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들은 고인께서 80년 당시 5.18과 관련 부상자로 인정되셨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일 뿐입니다.
이주빈 - 예? 고인께서 5.18 부상자라니요?
보훈처 - 고인께서는 1980년 5월에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심문과정에 고문을 받아 척추를 다치셨습니다. 그래서 5.18 부상자로 인정되셨고요.
이주빈 기자가 진솔하게 술회한 것처럼, 나 또한 리영희 선생께서 5.18 부상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구 묘역으로 모시면 만장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아 펼침막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광주서프라이즈, 국민의 명령 광주들불, 조선대학교 총학생회, 광주한바퀴(정찬용을 사랑하는 사람들) 관계자들께 연락을 드렸다.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펼침막 문안을 정리하고 있는데, 광주인터넷 언론 ‘광주in’ 이상현 편집장께서 연락을 주셨다.
“펼침막 제작하신다고 하는데, 저희도 포함시켜 주시겠습니까?”
12월 7일
대인동에 있는 청우당으로 향했다.
정찬용 수석은 인재육성아카데미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후학을 양성하는 사단법인이며, 다른 명칭은 무등사랑(無等舍廊)이다.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 정찬용 수석 집무실 청우당이다. 매주 화요일 오전에 정기모임이 있는데, 10여 명이 모여 궁리를 한다.
이러저러한 대화가 오고 갔다. 말미에 제안을 했다.
“오늘 점심값은 만 원씩 갹출했으면 합니다. 남은 금액은 펼침막 제작비 후원금으로 사용하겠습니다.”
모두 흔쾌히 동의를 했다. 몇몇 분은 별도의 후원금을 주셨다.
5.18 부상자회 회원 가화만사성님은 “함께 가서 설치하자.”며 자원봉사에 합류하셨다. 점심이 끝나고 자리를 마칠 무렵 이혜명 선배의 제안으로 모두 함께 광주YMCA 무진관으로 향했다. 리영희 선생님 분향소가 있는 곳이다. 입구에 “겨레의 스승 리영희 선생님 분향소”라는 펼침막이 펼쳐져 있다. 조화를 들고 헌화를 했다.
55사단님이 합류하셨다. 원조 서프앙이면서, 자원봉사에는 항상 앞장서는 분이다. 일곡동을 거쳐 용전을 지나 옛 길을 따라 5.18 민주묘역으로 향했다.
민주묘역을 휘감아 도는 계곡의 손돌바람이 매서웠다. 펼침막 부착 협조를 받기 위해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서프라이즈에서 왔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리영희 선생님 근조 펼침막을 게시하려고 하는데, 어디에 게시하면 되겠습니까?”
친절하게 사무실 밖으로 나오더니, 손짓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민주의 문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 입구 가로수였다. 펼침막을 설치하고 있는데, 참배객으로 보이는 낯선 여성 두 분이 가까이 다가왔다.
“리영희 선생님이 이곳에 안장되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셔야지요.”라는 짧은 말이 배웅의 인사가 되었습니다. 말씀의 리듬이 경상도 리듬이었다.
펼침막을 나무에 묶고 돌아오는 길에 국민의 명령 광주들불 빛고을 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 수고했다. 내일 몇 시에 모여서 가느냐?”라는 말씀이었다.
오전에 대인동 청우당에서 나눈 간담회가 기억났다. 거개의 의견이 “안장식은 4시부터이지만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금남로에서 노제를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답변을 드렸다.
빛고을님께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더라도 일찍 가서 마중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djroad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산과바다님께서도 리영희 선생님 안장식에 참석하겠다는 연락을 주셨다.
안장식 전후로 날씨가 무척 쌀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장식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옷 두툼하게 차려입으셔서 감기 조심하시기를 바란다.
광주 YMCA 무진관에서 상주를 자임하고 계시는 이혜명 선배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안장식이 예정보다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광주시민들의 바램처럼 금남로에서 노제를 지낼 수도 있을 것이고, 나아가 금남로에서 5.18 민주묘역까지 도보 또는 차량의 행렬이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겨레의 스승,
사상의 은사,
우리 시대의 참언론인,
우리 시대의 큰 스승,
우리 시대의 참스승,
우리 시대의 양심,
리영희 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보다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기를 소망한다.
리영희 선생님께서 이 땅의 참다운 민중의 벗으로서 평생 올곧게 살아오신 그 위대한 여정을 뒤돌아보며….
아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