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 비서관이 본 ‘감찰팀장의 사직’
(양정철닷컴 / 양정철 / 20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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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집 비리에 이명박 정권의 고위 공직자들이 벌벌 떨고 있습니다. |
‘함바집 운영업자 유 모 씨로부터 수천만 원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배 모 감찰팀장이 10일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청와대는 ‘배 모 감찰팀장이 유 모 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감찰팀장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한 결과, ‘돈을 줬다’는 유 모 씨가 지난 2009년 초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진정을 해와, 두 차례 만난 사실은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배 모 감찰팀장이) 돈을 받은 적이 없고, 청와대가 해결할 일이 아니라고 해서 돌려보낸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즉 ‘돈 받은 일은 없지만 청와대 직원으로 이런 의혹을 받는 것이 적절치 않아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것입니다.
청와대 감찰팀장은 민정수석실 산하 사정비서관실 소속의 선임행정관입니다. 통상 3급직입니다. 과거 정부에선 대개 검사 출신이 맡았던 직책입니다.
감찰팀장은 청와대 내부 직원들 비위를 찾아내거나 문제의 소지를 예방하고 이를 위한 암행감찰을 맡는 업무특성 때문에 평소 청와대 동료들도 만나지 않고 잘 어울리지도 않는 법입니다. 청와대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감찰팀장이 누구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 심지어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자리입니다.
청와대 내부 감찰을 맡고 있는 만큼 누구보다 강직하고 강단 있는 사람이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보직입니다. 특히 처신과 행동거지가 진중하고 무거워야 합니다.
당사자 주장을 믿더라도 본인이 외부 민원인을 만난 것 자체가 상당한 문제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시민사회나 민원 관련 비서관실 업무이지 청와대 내부 감찰을 맡는 감찰팀장이 나설 일은 결코 아닙니다. 자신에게 연락이 왔더라도 유관분야 비서관실로 이첩했어야 합니다. 스스로 나서서 만난 일이 이미 잘못된 처신입니다.
또 보도에 따르면 당사자는 이 사건 전에도, 지인들과 함께 발전관련 설비의 상표 등록을 출원하고, 취객과 몸싸움을 벌여 쌍방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등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청와대 내 암행어사’가 암행감찰 대신 주막집에서 백성들과 주먹질을 했다면 그 자체로 망신살 뻗친 일인데, 그때부터 예고된 불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문제의 인물은 감찰팀장을 맡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경찰청 소속으로 서울시에 파견됐으며 지난 2006년 6월 이 대통령이 시장 임기를 마치고 대선 행보에 나서자 경위를 끝으로 경찰을 그만두고 대선 기간 내내 경호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경호를 맡았던 인물이면 다른 업무를 맡겼어야 합니다. 청와대 감찰팀장은 대통령, 청와대 주요 간부, 대선을 같이 치른 참모들과 아무 친분이 없어야 본연의 감찰업무를 공평무사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5년 내내 당신과 일면식도 없고 청와대 주요 참모들과도 전혀 인연이 없는 강직한 검사 출신들에게만 ‘사정비서관-감찰팀장’을 맡겨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내부비위를 감시하게 했습니다.
청와대는 ‘지은 죄가 없는데 단지 의혹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직책을 그만두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까지 이명박 청와대에선 수많은 인사들이 크고 작은 사고를 쳤습니다. 직속상관을 비방하는 보고서를 몰래 대통령에게 직보해 자기 상관을 날리려 했던 비서관도 있었고 청와대 경내에서 백주대낮에 다른 수석실 상급자에게 패악질을 한 실세 비서관도 있었습니다.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승진했습니다.
문제의 인물도 과거 취객과 몸싸움을 벌여 쌍방폭행 혐의로 불구속됐지만 아무 징계도 받지 않았다는 것 아닙니까.
청와대가 의혹만 가지고 어떤 공무원을 사퇴시킬 경우 공직사회나 외부에 미치는 파장이 커 웬만하면 그리하지 않습니다. 사실 관계가 분명히 확인되거나, 본인의 자백이 있거나, 의심을 살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어 그냥 두기 어려운 경우에만 일반직은 부처복귀, 별정직의 경우 자진사퇴를 시킵니다.
그것은 청와대 현직으로 있으면서 수사를 받게 하는 것이 청와대에 부담인 면도 있고 수사기관이 청와대 현직을 수사하는 데 대한 위축감을 덜어준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번 건은 둘 다 아니고 청와대로 튀는 게이트 불똥을 차단하기 위한 조처로 보입니다.
어느 블로거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가 이렇게 알아서 처신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온갖 비리가 드러나도 능력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온갖 비리 덩어리들을 주요 보직에 앉혀온 청와대 아니냐. 그런 청와대 직원이 죄는 없는데 의혹만으로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 사퇴했다? 일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죄가 없다면, 어떻게든 누명을 벗고, 자신의 일에 더욱 충실해야 하는 게 보통 아닌가 말이다.”
일리 있는 시각입니다. 이번 일은 통상의 경우는 결코 아닙니다. 저의 청와대 경험으론 그렇습니다. 부적절한 인사(人事)로 인한 ‘예고된 재앙’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제2, 제3의 비리사건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그리 심각하게 보는 것은, 청와대 감찰팀장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내부 감시시스템, 일탈 견제, 도덕성 유지, 비리 예방의 최후 보루와도 같은 보직입니다. 그런 공무원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불미스런 일로 물러났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동안 ‘청와대 내부 감시’ ‘일탈 견제’ ‘도덕성 유지’ ‘비리 예방’을 못해 왔다는 의미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