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미선

효순·미선아, 해마다 봉숭아는 피어난단다

순수한 남자 2007. 6. 13. 09:53

효순·미선아, 해마다 봉숭아는 피어난단다

오늘(6월13일)은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양의 5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효순·미선 양은 효촌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교장 선생님이었던 송운 도기종 시인은 유난히 운동을 좋아했던 두 여중생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도기종 시인이 하늘에 있는 효순·미선양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편의 시로 썼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전재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 고 신효순양과 심미선양이 함께 찍은 사진.
ⓒ2003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우리들은 다 여기 있는데

너희들 간지 5년 세월

지금도 변함없이 봉숭아는 피는데

너희들이 있는 그곳에도

예쁜 꽃들이 피고 있겠지

효순아 미선아

너희들이 6학년때

학교를 대표하여 군 체육대회 나갔을 때

6학급 80명, 작은 학교이 처지도 잊은 채

큰 학교를 이겨달라고

목청높이 응원하던

우리들,

우리들은 다 여기 있는데

이제 너희들은 그곳에서

달리고 있겠구나

힘차게 뛰고 있겠구나

땀흘리며 엄마 아빠, 할머니 돕고 있겠구나

미선아 효순아

해마다 봉숭아는 핀단다

너희들의 아쉬움, 너희들의 애절함

뒤로 하고

해마다 봉숭아는 피어난단다

이제 스무 살 어른이 되었을

너희들 연지곤지 찍고

아름다운 화관 머리에 이고

성인식은 잘 치렀는지

 
▲ 효순·미선양의 은사였던 도기종 시인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

너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정말 잘 살아야겠구나

하늘나라에서 뛰어다닐 너희들

7년 전 너희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60이 가까운 시골학교 교장이

너희들을 그리고 있구나

조회를 서는 친구들 틈에 끼어 서 있는

예쁘고 아름다운 너희들을

바라보고 있구나.

▲ 효순이와 미선이의 초등학교 졸업사진. 왼쪽 첫째줄에서 5번째에 계신 분이 도기종 교장. 왼쪽에 나란히 앉은 효순이와 미선이가 눈에 띈다.


"아직도 나한테는 맑은 6학년 아이들..."
[인터뷰] 도기종 양주 삼상 초등학교 교장

▲도기종 교장이 쓴 추모시 '아! 봉숭아가 졌구나.'
효순이와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은 날은 2002년 6월 13일.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자 미 2사단은 100여일 후 사건현장에 추모비를 세웠다.

당시 "그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을 약속하며 용서와 추모의 뜻을 모은다"라고 아로새겨진 미 2사단의 추모문보다 추모비 뒷면에 박힌 추모시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두 여중생을 '봉숭아'에 비유하며 그들의 죽음을 눈물로 써 내려간 '아 봉숭아가 졌구나'라는 시였다.

"아! 봉숭아가 졌구나! 아직 피지도 않은 봉숭아가 차디찬 기계에 무참히 떨어졌구나. (…) 사랑하는 우리들의 딸 효순아, 미선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구나. 가슴이 아파 아무 말도 못하겠구나. "

이 시를 지은 사람은 당시 효촌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도기종 시인(당시 54세). 효순이와 미선이는 이 학교 43회 졸업생으로 도 교장은 두 학생에게 은사가 된다.

당시 효촌초등학교는 학생 모두 합해 80명밖에 안되는 작은 학교였다. 그런 만큼 도 교장에게는 두 여중생에 대한 7년 전 기억이 생생할 수밖에 없었다.

"효순이가 아마 효촌초등학교 멀리뛰기 대표선수였어요. 초등학교 육상대회 때 저희가 목소리를 높여 응원하던 기억이 나네요. 비록 학생 수가 적은 학교이지만 큰 학교에 지면 안 된다고 모두들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가며 응원했죠."

도 교장은 효순이 미선이 등 학생들에게 담임선생님이나 다름없었다. 평소 도 교장의 성품을 잘 알던 효촌리 주민들은 추모비 건립 얘기를 듣자 곧바로 도 교장을 찾아와 추모시를 부탁했다.

"추모시란 점도 있지만 비에 새겨져 오랫동안 글이 남아있다는 것이 부담스럽더군요. 저보다는 유명한 문인이 낫지 않겠냐며 여러 번 사양했지만 부모님이 꼭 제가 해야 한다며 거듭 부탁하셔서 시를 짓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선생과 제자라는 관계 속에서 서로 간의 믿음과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탁하신 거겠지요."

5년이 지나 하늘에서 성인식을 맞았을 효순이와 미선이의 5주기를 맞아 도 교장은 한 번 더 붓을 들어 아이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봉숭아는 여름이 한창일 때 피는 꽃입니다. 6월 중순이면 꽃망울이 터지고 봉우리가 지지요. 그런데 5년 전에 아이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 봉숭아가 떠올랐어요.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린 봉숭아가…."

피붙이 같았던 두 제자의 죽음. 도 교장에게 그 죽음은 어느 누구보다도 충격이었다.

"저는 작은 시골학교의 교장일 뿐입니다. 저의 입장에서 무엇이 문제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단지 사람이 태어났으면 살고 싶은 만큼은 살아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안타깝고 애통할 뿐입니다."

도 교장은 몇 해 전 양주 삼상 초등학교로 옮겼지만 아직도 가끔 추모비에 들러 그들을 추억한다.

"그 때는 참 큰 문제였는데 지금은 참 조용하네요. 아무래도 시간이 흘러간 탓 아니겠습니까. 살아있었으면 스무 살이 된 아이들이겠지만 아직도 저한테는 6학년 때 그 맑은 아이들로만 기억됩니다." / 이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