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세종대왕이 위대하다고 한다. 이 순신 장군이 위대하다고 한다. 백범 김구 선생님과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위대하다고 한다. 요즘은 부쩍 박정희 대통령도 위대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동안 여러 대통령을 배출했으나 다른 대통령 분들은 위대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위대하다는 말의 본뜻이 무엇이기에 위대하다는 말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일까? 이 나라 국민으로 한 번 짚어 봄직하다.
우리말 국어사전에는 위대하다는 형용사로서 도량이나 능력, 업적 따위가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인권 대통령으로써 뛰어나고, 박정희 대통령이 개발독재자이기는 하지만 민족중흥이라는 대업을 이루었으니 위대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오늘날 이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 위대하다는 형용사를 붙이고 싶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적으로 열악한 토양위에서 젊은 대통령으로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보는 관이 있기에 그렇다.
우선 그는 링컨처럼 한국에 인권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 준 그리고 실천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동포 형제가 으르렁거려야 하는 반목의 시대를 청산하게 한 것이다.
예를 들면 그의 치적 가운데 크게 빛나야 할 업적이니, 핵무기라는 인간 존엄의 가치가 제로 지대로 떨어지게 하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 핵무기를 이북이 실험을 한 것이다. 몸서리가 쳐지는 원자탄을 실험한 일이다. 이 무서운 시간대에, 통이 크고 뛰어난 그는, 그의 날카로운 예지력으로 남북 화해의 물고를 막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북이 핵실험을 하던 그 고통스런 시간대에 금강산이나 개성의 통로를 막아야 한다는 봇물 같은 여론의 비등을 잠재우고 일관된 정책 기조를 가져갔다는 사실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정권을 가졌었다면 그 때 남과 북은 꽁꽁 얼어붙고 말았을 것이다. 미국이 외쳐대는 그 소리를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했다면 한민족의 통일로 가는 길은 다시금 암흑의 터널 속으로 빠져 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백척간두에서 민족의 활로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2007 남북정상회담의 결과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위대한 능력이고, 위대한 업적이 아니고 무엇이냐.
우리나라의 이름 있는 언론들이 남북 정상회담이나 노무현 대통령을 과소평가하는 것을 보며 필자는 심히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가 아무리 개천에서 난 용이라 하더라도 크게 실정한 사실이 없는데 어찌 저급하게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탄핵의 바람 속을 뚫고 만들어 낸 제일 여당, 그 다수당을 과신하지 않고 착실하게 민생을 챙기며 청렴 강직한 외길, 정도정치를 베풀었다. 비도덕적인 타협의 불허로 끊어진 정경 유착, 민권의 극대화로 이루어진 문화의 한류 열풍, 멈출 줄 모르는 주가의 상승과 외환 보유고의 신장이 말하는 경제의 안정, 사회복지의 확대로 사회안전망 구축 등등. 참으로 그 업적은 지대하다. 다만 문민정부가 도산한 그 환부가 완치되지 않았으므로 양극화라는 딱정이가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교류의 확대와 사회복지예산의 확충, 국방비 절감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다면 이 문제도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다. 그리고 2030과 같은 교육행정의 로드 맵이, 남북 경제 협력시대의 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이 또한 젊은 대통령의 치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열거하다 보니 개천에서 난 용 한 마리가 한민족사에 끼칠 영향은 괴연하고 위대한 것이라 할 것이다.
‘아이까, 아이까, 저 젊은 것이 뭘 해.’
끌끌 끌 혀를 차며 한나라당의 함정으로 함께 빠져들었던 우리 국민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그리고 4년 반, 참여정부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위대한 지도자의 진면목을 보았을 것이다.
‘위대한 국민의 위대한 선택,
노무현 시대를 연 우리 국민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누가 남북이 저리 뜻이 맞아 경제를 함께하자는 시대가 성큼 다가올 줄 알았으리... 해주를 열고, 진남포를 열고, 신의주, 백두산, 그리고 안변마저 열겠다고 한 오늘을... 감격 또 감격이어라. 서해 오도가 풀리는 시대가 열렸다. 뱃길도 열리고, 하늘 길도 열리는 시대가 열렸다. 철길이 열려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으로 간다 하였다. 그런데 왜들 이러시나. 우리의 이웃들 중 몇몇은 입이 한 자쯤 나와 부르터져 있어라. 사촌이 논을 사니 배가 아프시나. 끌,끌,끌, 저 젊은 대통령이 늙은이가 못할 일을 하였으니 배가 아프시나. 그래서는 아니 된다. 잘한 일은 잘 했다고 감싸 주어야 한다. 만약 김 전 대통령처럼 덜렁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 떡값을 주고 상을 탔다고 억지를 쓰시려나.
우리 대통령 노무현은 세계가 놀라고 미국이 놀라서 혀를 내 두르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내었다. 그 보따리가 너무 커서 부정적인 사시안을 가진 자들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 정도의 감 밖에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어긋난 마음으로는 아니 된다. 잘 한 일은 사나이답게 잘했다고 하자.
‘부정 사관을 긍정 사관으로 바꾸어라.’
당리당략 때문에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 된다. 지구가 엄연히 돌고 있는데 주석을 붙여서 잘못된 창세기와 같은 것을 부둥켜안고 고리타분한 변명을 하는 낡은 사고는 버려야 한다. 한나라당과 이 후보는 사시의 눈동자를 바르게 안정시켜서 만약에 얻을 지도 모를 정권에 대하여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시대와 역사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사건들이 저만큼 앞서 가는데 백악관의 눈치를 보면서 이 나라를 끌고 갈 생각은 한시 바삐 버려야 할 것이다. 또한 다가오는 대선에 대하여 우리 국민들의 시각도 한 차원 더 높은 융통성 있는 생각으로 고쳐 먹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민족이 하나 되는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데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이 나라가 하늘 복을 받았는지 하는 일이 다 잘 되는 듯하다.
‘발전할 수밖에 없는 젊은 대한민국.’
우리국민은 현명하여서 반세기 동안 전진만 하여 왔다. 젊은 대통령을 낼 줄 안 젊은 대한국인이다. 우리가 선택한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답이라도 하듯이 위대한 지도자로 탈바꿈하여 의연하게 국민 앞에 나타났다. 겸허하고 안정된 차분한 자세로 나타난 것이다. 이 아니 경사냐?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사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