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

'노무현 모델'의 빛과 그림자.

순수한 남자 2007. 10. 17. 19:19
'노무현 모델'의 빛과 그림자.
번호 136891  글쓴이 내과의사   조회 44  누리 17 (39/17)  등록일 2007-10-17 19:08 대문 0 톡톡

나를 가장 열 받게 하는 환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을 대신 보내 약이나 먹겠다며 처방전을 요구하는 부류들이다. '나는 바빠서 병원 갈 시간도 없다'는 거다. 거짓말이다. 진실은 '바쁨'이 아니라 '귀찮음'에 있다. 그렇게 보면 아마 요식업을 하시는 분들은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서 한 명분 한끼 식사 배달 주문 넣는 인간들을 가장 싫어하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사람을 지배하는 정서 중 '귀찮음'은 결코 무시 못할 힘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공식 명칭은 '참여정부'이다. '참여'를 이루기 위해 필연적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는? 바로 '귀차니즘'의 극복이다. 신당 경선에서 그나마 사람들의 참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아이템은 다름 아닌 모바일 투표였다. 조폭 언론과 청와대의 싸움에서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귀차니즘'에 있다. TV 브라운관에서 잘 생기고 이쁜 앵커가 지저귀는 뉴스멘트와 언제나 아침 일상에 익숙한 소품인 종이 신문. 그리고 인터넷으로 주소 찾아가 일일이 클릭하면서 읽어야 하는 국정브리핑. 사람들은 어느 쪽 이야기에 귀를 솔깃해 할까.

아는 만큼 보일 것이요, 그때 보이는 대상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시쳇말로 '알아야 면장도 한다.'고 했던가. 결국 '참여'를 이루기 위해서 사람은 배워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게거품 물고 노무현 욕하는 인간치고 뭔가 제대로 알고 공부한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배우고 공부하려면? 첫 번째로 돌아간다. '귀차니즘'을 넘어서야 한다.

주워들은 이야기지만 부동산 투기 전문가인지, 주식투기의 귀재인지 점잖게 말해 재테크 고수님과 밥한 끼 먹으면서 그의 비법을 전수 받는 이벤트 비스무레한 건수가 있단다. 밥값 + 출전비가 왠만한 서민들 한달 생활비를 훌쩍 넘기는 모양인데 예약이 몇 달인가 몇 년인가 밀려있다는 소문도 있다. '귀차니즘'을 가볍게 쯔려 밟는 눈물겨운 학구열이다. 이유는? 두말하면 잔소리인데 이게 곧 현찰과 직결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시민단체에는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다. 참여정부는 민주주의에 걸맞는 주권자들의 참여를 기대만큼 이끌어 내었을까? 가슴아픈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감히 말하련다. 왜? '참여'는 절대로 눈에 보이는 현찰을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차니즘'을 넘어설 동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당연히 배우고 공부하는 과정도 생략된다.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먼 미래의 이득을 위한 참여를 설득하는 일은 공허한 이상이다. 내가 먹고사는 업계를 철저히 고사시키는 정책으로 초지일관하는 참여정부를 끝까지 지지하는 나의 멍청함도 사실 먼 미래의 이득을 계산하는 고차원 투자심리와는 거리가 멀다. 보다 직접적인 동력은 '염치'이다. 쉽게 말해서 쪽팔림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해도 좋다.

역대 어느 정권도 국민을 '나쁜 놈' 만드는 경우는 절대로 없었다. 언제나 국민은 현명하고, 선량했다. 사람 백정 표본모델인 박정희와 전두환의 황제 시스템조차도 '영도자를 중심으로 일치 단결해야하는 착한 초등학생' 정도로 국민을 자리 매김 했었다. IMF로 나라살림이 거덜나는 순간에도 금 모으기로 국난 극복에 떨치고 나선 국민들은 언제나 '위대한 존재'였다.

개개인들에게 '당신은 그저 선량한 국민'이라는 속편한 방패막이를 제공하기 위해 지배권력은 '악역의 수건 돌리기'를 끝없이 유지하여 왔다. 정치인, 재벌, 검사, 공무원처럼 좀 잘나간다 싶은 부류들이 단골 타깃이 되어 주었지만 파업만 저질렀다 하면 그게 어느 집단이든,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마저도 밥그릇에 눈 뒤집힌 집단 이기주의자 집단으로 난도질당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언제나 나는  가엾은 피해자.'라는 환상 속에서 사람들은 죄의식 전혀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당신은 그저 선량한 국민일 뿐.'이라는 환상을 깨버린 장본인이다.  그뿐 아니라 더 진도 나가서 노무현은 '당신도 상황에 따라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잔인한 가해자 일 수도 있다.'는 추악한 진실을 국민 모두에게 뼈저리게 각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무현에게 새로운 악당의 창조를 기대했을 뿐이다. 노무현을 둘러싼 대한민국 파열음의 근본은 그 점에 있지 않았을까.  

2006년 대한민국에 휘몰아친 부동산 폭등.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사람들은 정책의 실패라며 노무현을 씹어댄다. 이것이 진실일까. 계속 업그레이드 되었던 부동산 규제 정책이 가리키는 지향점은 단 한가지였다. '이제 부동산 튀겨서 돈벌어 처먹겠다는 놀부 심보는 집어치워라.'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가관이었다. ' 정권만 바뀌어 봐라. ' ' 그래도 목 좋은 부동산은 황금알을 낳는다.' 결국 도리없이 갈 데까지 가버린 부동산 정책. 모두가 예외없이 종부세의 가련한 피해자란다. 말이 되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재테크, 남이 하면 망국적 투기....' 부동산 폭등 사태. 악당으로 만들어 목을 매달아야할 대상이 절실히 필요했다. 누가 가장 제격인가. 박정희나 전두환이었다면 아파트 50채 이상 가진 놈 중 평소 통치자금 짜게 바쳤던 열 명만 추려서 재산 몰수하고 삼청교육대 보내는 테크닉을 구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진실을 담담히 전했을 뿐이다. 당신이 바로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그 시점에서 교수대의 주인공은 정해진 거다.

사이버 세상, '서프앙'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한 사람의 가장 커다란 특징이 바로 염치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귀차니즘을 넘어서지 못하여 배우고 공부하지 않아 '참여'를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그렇게 멍청하게 살아간다면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 나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진실. 어쩌면 감당하기 벅찬, 노무현이 일깨워 주었던 평범한 진실에 공감한 사람들이 서프앙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노무현을 찍었던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중독되고 싶어하는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  " 나는 언제나 선량하고 가련한 피해자일 뿐이다. " 라는 한마디에.

이명박 고공 지지율의 이유도 나는 이런 맥락에서 답을 찾는다. '귀차니즘'.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무관심과 무지가 저변에 흐르는 이유라면 스스로를 선량한 피해자로 자리 매김 하기 위한 악당 만들기가 그 다음 이유일 것이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일. 노무현을 저주하며 악당으로 몰아가는 가장 적극적 의사표현이다. 그리고 꼭 이명박 정도만 위장전입하고 땅투기하면 나는 선량한 피해자에 어울리는 면죄부를 따먹고 들어간다는 보너스도 얻게 된다. 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이루든.
내가 생각해 본 '노무현 모델의 빛과 그림자'가 그 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바람'이 그립다. 2002년 겨울 나를 달뜨게 했던 노무현의 그 바람이.
하지만 '바람'은 언제나 나의 몫은 아니었다.
바람 불면 요란하게 울려대는 풍경. 현란하게 돌아가는 바람개비.
내가 그 정도만 제대로 되어도 나에게는 과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