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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가 우리에게 남긴 것(펌)

순수한 남자 2007. 10. 22. 22:19
신정아가 우리에게 남긴 것(펌)
njbora(njbora) | 2007-10-22 08:05 조회/점수 21 / 0 글씨크기설정

신정아가 우리에게 남긴 것

 

*) 어떤 현직 기자가 쓴 글입니다.

 

○… 저는 신정아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던 지난달11일부터 서부지검으로 출근하며 현장을 지켰던 한 기자입니다. 특별히 단독 취재를 하지도 못했고 기사를 뛰어나게 쓰지도 못하는 그저그런 자리만 지키던 기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일선에서 지켜보며 몇가지 느낀 바가 있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 도대체 신정아씨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던가요. 신정아씨의 혐의는 현재까지 네가지입니다. 사문서위조, 사문서위조행사, 공무방해, 업무방해. 그러나 이 혐의들은 우리가 신문에서 보는 것처럼 대단한 죄는 아닙니다. 한 변호사는 신정아씨의 죄에 대해 “신씨가 일반인이었다면 300만원 가량의 벌금형을 받을 죄”라고 하더군요.

 

물론 횡령 혐의가 밝혀진다면 구속영장도 발부가 될 터이고 실형도 예상 됩니다. 그러나 최초 수사인력 12명(검사3수사관9)에서 세배이상 늘어난 39명(검사12명 수사관27명)에 대검의 중수부 검사들마저 동원된 현재까지도, 검찰은 신씨가 기업의 돈이든 리베이트든 어떤 돈을 횡령했다는 증거를 못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검찰은 영장 재청구를 자꾸만 미루고 있고요. 횡령 혐의가 입증이 안되면 구속영장 발부는 불가능 합니다.

 

또한 구속이 안되면 지금까지 법원의 관행상 신씨가 초범이고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했기 때문에 ‘집행유예’ 정도의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씨 개인금고서 발견된 2억원은 박문순 관장의 것으로 밝혀졌고 박관장의 자택에서 40∼50억원의 뭉테기돈이 발견 된 이후로는 신씨 횡령을 조사하다 자칫 대기업 비자금 수사 쪽으로 방향이 선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신씨는 처음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자신의 횡령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습니다. 일부 신문들은 ‘신씨의 계속된 거짓말’이라고 추궁하고 있으나 ‘무죄 추정의 원칙’처럼 한사람의 일관된 진술에 대해서는 적어도 거짓이 입증 되기까지는 옳음을 가정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마치 뻥튀기 과자를 다시 물에 넣으면 손톱보다 작은 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신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은 실체없이 덩어리만 컸던 것이 아니었었나 생각하네요.

 

○… 신씨가 자진 귀국했던 것과 관련해서도 한 언론은 ‘자포자기 상태’의 선택일 뿐이었다며 기사를 썼습니다. 글쎄요. 정말 자신이 잘못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신씨가 아무리 ‘자포자기 상태’라 하더라도 한국으로 귀국 했을까요. 본인이 정말 큰 죄를 저질렀다면 (국내 여론 분위기상) 오랜 기간의 감옥살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이와 관련 서울 서부지검 구본민 차장검사는 “신씨가 자진 귀국하지 않을 경우 신씨를 강제로 데려오는 데는 변호사 선임에만 수년이 걸린다”며 수사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그러나 신씨는 언론들이 말했던 미국으로의 도피(?)를 접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귀국했습니다. 그런데 또 언론보도는 ‘기획입국’이라며 검찰이 신정아씨에 당했다고 몰아갔습니다. 말하자면 신씨 수사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지 않던 검찰이 갑작스런 신씨 귀국으로 오히려 당황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검찰이 당황할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겠지만 제 개인적인 판단의 무게추는 그의 귀국으로 ‘신씨의 말이 맞을 것 같다’로 옮겨 갔습니다. 물론 신씨의 학위는 가짜임이 이미 예일대를 통해서 확인 됐고 4∼5명의 작가들로부터 알선 수수료를 받았다는 혐의도 시인했지만 이는 앞서 밝힌 300만원 가량의 벌금형(사문서 위조, 업무방해 등)이 고작일 겁니다. 

 

○…  10월 2일 현재 서울 공덕동 서부지검의, 변양균과의 ‘뜨겁고 부적절한 관계’를 대서 특필하던 언론들은 현재 ‘별것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4개 언론사 중계차가 가득 차 있었던 서부지검 현관은 현재 썰렁하기만합니다. 기자들은 대부분 서울 중앙지검 등으로 흩어져버렸습니다.

 

○… 저는 이번 사건을 통해 몇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 첫번째 대중의 남의 사생활 훔쳐 보기 욕망.그리고 그런 욕망에 기생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신정아 사건이 급부상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은 날은 지난달 12일이었습니다. 12일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씨가 연인 관계였음을 입증하는 이메일이 검찰의 신정아씨 자택 압수수색을 통해 밝혀진 날이었습니다. 권력과 돈 그리고 로맨스까지.

 

언론은 까발겨진 남의 사생활은 그가 공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혐의를 뒤집어 씌워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사랑하는 쩡아’로 시작하는 가짜 변씨의 이메일도 포털에 돌고요.  심지어 지난달 18일에는 언론을 참칭하는 한 찌라시일보가 자신의 종이 색깔과 같은 노랑 저널리즘을 보여주더군요. 그리고 그 신문의 편집국장은 신씨의 누드 사진을 ‘국민의 알권리’라 말하더군요.그는 “신씨의 누드 사진이 변씨와의 관계를 입증하는 단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를 대한민국의 언론의 현실이라고 확대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저 다양한 언론들이 있다보니 별 허섭쓰레기도 언론을 참칭하고 나선 것이라 분을 삭이며 생각하겠습니다. 어찌됐든 그날 해당 찌라시 사이트는 방문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 됐다네요. 아마 판매 부수도 올랐을 겁니다. 노랑저널리즘이 제대로 먹힌 거죠. 그렇게 보면 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딱 맞는 언론을 가지게 되고, 언론들은 국민들의 또는 대중들의 훔쳐보기 욕망을 숙주로 해 기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두번째, 검찰의 막무가내 수사. 신씨의 영장이 기각되자 구본민 차장검사는 ‘사법의 무정부 상태’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글쎄요. 검찰은 본인들의 위치를 명확히 인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거칠게 말해 검찰은 피의자를 잡아 가두기 위해 존재하고 변호인은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법원은 양측 얘기를 듣고 양측의 주장 중간 어느 즈음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검찰은 영장이 기각되자 본인들의 영장 청구가 적법했는지를 먼저 둘러보지 않고 ‘남 탓’ 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법원에 그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됐었습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구속영장에는 ‘업무방해, 사문서위조, 공무방해, 사문서위조행사’의 네가지 혐의만 포함돼 있었습니다. 횡령 혐의는 포함돼 있지 않았죠.(지금까지도 입증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후원금 액수가 늘어나면 신씨가 횡령했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 아니냐는 계산에 후원 기업들을 전수 조사하겠다네요. 대한민국 검찰 머리쓰는거 참 대단하더이다.)

 

다음날 법원이 밝혔듯 ‘신씨가 일반인이었다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도 않았을 사건’입니다. 제 보기에는 ‘사법의 무정부 상태’란 검찰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구속 수사’관행이 오히려 ‘사법의 무정부 상태’ 였던 듯 합니다. 또한 이번 검찰의 모양새는 '구속 수사'만이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믿는 구태로운 생각이 낳은 지체현상일 뿐이라는 생각마저 드네요. 이용훈 대법원장이 밝혔듯 구속영장은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에만 발부돼야 합니다.

 

법원은 이번 신정아 영장 기각 판결로 ‘불구속 수사 원칙’이라는 대의를 세웠고, 검찰은 안타깝게도 스타일만 구기게 되었네요. 고검장들이 10월 1일 모여서 대책 회의를 했지만 아마 뾰족한 해결 방법은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검찰의 위치가 전체 사법 지형에서 어느즈음에 위치하는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정신 건강상 좋으실 것 같네요.

 

○… 세번째,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론 보도만 놓고 보면 신정아씨는 ‘거짓말쟁이에 몸뚱아리 하나로 성공한 팜므파탈’ 정도로 요약이 되겠네요. 이는 성공한 여성들에 쏟아지는 남성사회의 '아니꼬운' 눈초리 때문에 생겨났을 겁니다. 또한 신씨가 미혼이라는 점도 신씨를 '팜므파탈'로 몰아가기 좋은 요소가 됐을 테구요.

 

물론 몇몇의 성공한 여성들은 '몸뚱아리' 하나로 성공 가도를 구가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일반론을 각론에 적용 시키기 위해서는 '일반화의 오류'를 항상 경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론들은 그런 오류의 위험을 피하려하기보다는 뭔가 더 자극적인 어떤 것들을 캐내고 밝혀내는 데에만 주력했습니다. 경희궁의 아침과 서머셋 빌딩이 얼마나 비싼 오피스텔이며 둘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웠나 등등.

 

언론만 뭐라고 할 수는 없지요. 포털서 인기있는 기사들은 외려 "신정아 '짱구'와 '새우깡'이 먹고싶다" 류의 기사들이니. 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언론을 가지게 될 겁니다.

 

○… 또하나. 신씨 관련 지금까지의 보도들이 깔고 있는 전제가 있습니다. 신씨는 ‘행위무능력자’ ‘식물인간’ 쯤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합니다. 그런 전제가 바탕이 돼야 ‘신씨의 성취는 변씨의 비호 덕분’이라는 명제가 참이될 수가 있거든요. 그리고 앞의 명제가 참이 돼야만 이번 사건을 ‘권력형 비리게이트’로 몰아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신씨의 능력은 탁월한 사교성, 해박한 미술지식, 적당한 미모에 일을 참 열심히 하던 사람 정도입니다. 우리가 전제했던 '행위무능력자'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이죠. 첫 전제가 무너지니 이후의 답들도 모두 거짓이 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닐까요.

 

○… 안타깝게도 검찰은 중계차들이 모두 빠져나가버린 오늘까지도 변씨 비호 덕에 신씨가 후원금을 받아냈다는 단서를 확보한 것이 없습니다. 또한 동국대 임용에서 변씨가 처음으로 신씨를 추천한 것은 맞으나 당시 총장이었던 홍기삼씨는 "내가봐도 괜찮았다"고 말했습니다. 외압으로 보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검찰 수사능력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검찰이 서둘러 초기에 ‘권력형 비리게이트’라며 골인 점을 정하고 몰아가기 수사를 펼쳤기 때문에 겪어야될 좌절이죠. 검찰이 실적주의에 빠져 ‘크게 한껀’하려다 갈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아닐까 하네요. 현재 검찰 수사는 변씨는 흥덕사, 전등사, 보광사 등에 대한 부당지원으로 직권남용 혐의 입증에 주력하고 있고 신씨 수사는 사실상 고소 혐의 내용 외에는 추가된 것이 없습니다.

 

신씨와 박씨를 ‘엮어내기’에 실패한 검찰이 개인 비리 쪽으로 초라하게 수사 방향을 선회한 것 같네요. 신과 변을 엮어야 사건이 폼나게 커질텐데 그게 안되니 답답한 일이지요. 그리고 그런 답답한 마음에 법원을 향해 눈을 흘겨 보지만 별달리 방법이 없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 대한민국이 정말 뜨거운 나라인 것은 분명합니다. 올해만해도 한나라당의 검증공방, 아프간 피랍사태, 청와대의 이명박 고소, 그리고 신정아 파문까지. 이와 관련 바다건너 중국의 한 언론은 “한국은 잘못된 것에 대해 끝까지 파헤치고야 마는 근성있는 국가”라고 고맙게도 치켜세워줬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런 뜨거운 나라에 사는 능력 없는 한 기자는 그런 뜨거움이 불편하게만 느껴지네요. 한순간 달아올랐다 다음 순간은 급랭해버리는 온탕냉탕의 어지러움이… 또 사건이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다음 순간에는 또다른 사건으로 옮겨가는 언론의 모습도 불편하기만 합니다.

 

○…얼마전 과거에 ‘O양’으로 불렸던 분이 재기하셨더라고요. 그리고 울고불던 백모 가수도 다시 컴백 하신지 오래 됐고요. 아직 검찰의 수사가 종결되지 않아 차후를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신정아씨에 대한 평가도 10년쯤 지나면 지금의 ‘O양’이나 ‘백모’가수 처럼 ‘언론의 지나친 선정 보도의 피해자’로 평가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2007년 뜨거웠던 9월의 서부지검을 지키던 한명의 기자였었으니 도덕적으로 자유롭지는 못할 것 같아서입니다.

 

붙이기: 노무현과 김정일이 만나던 날 썰렁한 서부지검서, 저는 신씨가 지난달 27일에 남겼던 희미한 미소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도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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