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우제(三虞祭)를 마치고 |
번호 140651 글쓴이 손오공 (sonogong) 조회 1118 누리 694 (699/5) 등록일 2007-10-23 15:39 | 대문 9 톡톡 0 |
아버지 어머니께서 열 번 걱정하시는 말을 하실 때 아버지께서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보십니다. 어머니께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내실 때 아버지께서는 술 병 안에 눈물을 담아 두십니다. 어머니께서 제 자랑을 입에 달고 다니실 때 아버지께서는 묵묵히 머리를 쓰다듬으십니다. 겉으론 당당한 바위 같으신 아버지도 속으론 여린 하늘을 닮으셨나 봅니다. 겉으론 늘 웃고 계셔도 겉으론 늘 아무렇지 않으셔도 겉으론 늘 무표정이셔도 아버지는, 바위 같으신 아버지는 속으론 비도오고 눈도 오고 바람도 부십니다. 저 때문에 비도 내리고 저 때문에 맑게 개이기도 하는 그런 하늘같은 마음을 가지셨나 봅니다. ________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는 어느 중학교 복도에 걸려있는 중학생의 글이다. 어느 듯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입장에서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고... 아버지는 일흔 둘의 나이로 이제는 세상을 관조하시겠다며 소백산 깊은 골에 있는 토굴로 들어가셨다. 한 번씩 찾아뵈려 찾아가면 방을 데워 주신다고 장작을 패서 군불을 넉넉히 넣어주곤 하셨다. 식사대용으로 드시던 미숫가루를 산 속 돌 틈에서 퐁퐁 솟아나는 샘물을 길어와 시원하게 태워주고는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흙방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이 펼쳐져 있는 먼 산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참선하신다고 묵묵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건강을 잘 유지 하신 덕분에 소백산을 오를라치면 우리들보다도 멀찌감치 앞서서 오르곤 하셨다. 산은 쉽게 타겠는데 참선을 한다고 앉아 있기는 힘들다고 하시던 분이 한 해, 두 해가 나면서 이제는 한 번 자리를 잡고 앉으시면 서너 시간은 너껀히 견딘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시더니 일흔 여섯이 되던 해 젊은 스님들도 수행하기 힘들다는 무문관에 들어가셨다. 문이 없다는 무문관은 참선 수행에 정진하시는 스님들의 수행처이다. 하루 한 끼를 먹으면서 무문관에서 백일을 문 밖 출입도 삼가고 나름대로 수행정진에 몰두하셨다. 무문관을 다녀오신 아버지는 우리들이 보기에 너무도 불편할 것만 같은 산 속 토굴 생활에 더욱 행복해 하셨다. 하루 12시간 이상씩 정진하시며 손 수 밥을 지어 드시기도 하고 토굴 아래에 있는 스님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아버지의 말년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갔다.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신다던 아버지는 평소와 같이 넉넉한 오후 시간에 반시간 정도 운동 삼아 장작을 패 놓으시고 토굴 아래에 있는 절에 내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드시고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시다가 토굴로 들어가셨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조용히 앉은 자세 그대로 돌아가셨다. 경지가 높으신 스님들만 하신다는 좌탈을 하셨다. 토굴에 들어가신지 5년째이며 세수 일흔 일곱이시다. 아버지의 수행을 높이 평가한 주변 절의 스님들께서 아버님께 조암선사라는 호칭을 내려 주셨다. 자식 된 입장에서 감읍할 따름이다. 토굴 주변에서 함께 생활 하신 분들의 아버지에 대한 칭송도 너무도 갑자기 졸하신 덕분에 자식들의 가슴에는 씻지 못할 멍울로 남아 있다. 입관하기 전에 본 마지막 모습도 평온하였고 살아 생전에 주물러 드리지 못한 다리도 이제야 눈물과 함께 주물러 드렸다.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주검은 안온하였고 굳지도 않았다. 마치 주무시는 것 같았고 혈색도 그대로 맑았으며 주물러드리는 팔 다리의 관절도 부드럽게 움직였다. 아마 수행하신 공덕 같았다. 아버지 세대의 일생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격변기였다. 일제 침략과 속칭 대동아 전쟁의 희생자였고 육이오 전쟁의 한 가운데 있었으며 국민소득 40 불 시대의 초토화 된 조국에서 시작하여 허리띠를 졸라맨 세대였고 당시 우리들에게 꿈의 나라였던 필리핀과 버마를 뛰어넘어 국민소득 이만 불 기적의 시대로 달려 왔다. 더불어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의 빠른 시간에 민주화를 이룩한 세대이기도 하다. 토굴 아래에 있는 절에서 아버지를 다비하면 사리가 나올 것이니 부도탑을 세워주겠다고 하는 것을 세속 일에 현혹되지 말라는 아버님의 뜻을 새겨 그냥 양지 바른 선산에 모셨다. 좌탈하셨다는 소문에 많은 스님들께서 장지까지 다녀가 주셨다. 아버지는 여여하고 평온하신 모습으로 육체의 껍질을 벗으셨으나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인의 심정은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다. 이제 삼우제를 마치고 아버지가 계시던 토굴 아래의 절에 사십구제를 모셔 놓고는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무언가 헛헛한 마음이 쉽게 가셔지지가 않는다. 세상일이 무상하게도 느껴진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건만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부모님께 다 못한 정성을 이제는 아랫대에 갚아야 되려나 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092와 정동영이라. 역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저절로 하늘을 보게 된다. 이명박, 정동영, 문국현,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이제는 강금실 전장관이 나왔으면 하는데.... 문제는 이 가운데 전문 정치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어느 틈에 우리 국민들은 지난 시대의 정치꾼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렇게, 그렇게 시대는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들에게는 지켜가야 할 시대적 소명이 있다. 대통령 노무현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혀니즘은 이 시대를 지켜가야 할 우리들 최고의 가치관으로 떠오를 것이고 누가 되던 우리들이 지켜내야 할 과제이다. 5년 후 노무현은 또 다시 떠오를 것이다. 조암선사로 거듭나신 아버님의 영전에 다시 한 번 엎드려 눈물짓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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