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의 일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참여정부가 주관하는 2007년의 대한민국이 분명하건만, 2007년 대한민국의 안에는 아직도 60년대의 암울함과 2030년의 아득함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출근길에 차 안에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었다. 그날 패널로 조갑제가 출연했다. 조갑제가 이회창의 선거 출마설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의 말을 늘어놓았는데, 한번 감상해보자.
"10월 4일 노무현 김정일 합의가 헌법에 위반되고 여러 가지로 국가적 위기를 초래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거의 60%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영합해가는 자세를 취하는 데 대해서 화가 나 있다는 것이 이 분(이회창)의 최근 행보에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 조갑제
상당히 이례적이다. 조갑제가 이명박을 나무라다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명박을 나무라는 것과는 벌써 차원부터가 틀리다. 왜 노무현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따지지 않느냐는 것이 조갑제가 이명박을 나무라는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회창이 가만히 좌시하고만은 있을 수 없지 않겠느냐며 제법 매섭게 이명박을 압박하고 있다. 벌써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지 않는가? 60년대의? 아직 감이 오질 않는다면, 더 화끈한 60년대의 향수를 만끽하게 해드리겠다. 더 들어보자! 조갑제의 말을...
"12월 3일부터 12월 19일 사이에 암살이라든지 테러라든지 또는 큰 질병이라든지 해 가지고 유고상태(이명박이)가 됐을 때 현재 선거법으로는 대체후보를 낼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회창 총재가 등록을 해놓으면 일종에 스페어후보가 되는 거니까 이 말은 본인한테는 상당히 결례가 되는 이야기인데 그러니까 이회창 후보가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여론도 있어요. " - 조갑제
이명박이 북으로부터 암살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조갑제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근거가 무엇인고 하니.. 더 들어보자.
"김일성이가 우리나라 현직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서 4번 시도한 적도 있으니까 지금 또 친북세력들이 강하기 때문에 또 우리 노무현 정권의 대공방어망이 약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비록 작더라도 충분히 대비해야죠." - 조갑제
조갑제의 말씀을 음미해서 들어 봤는가? 어떤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노무현이 북한에 차를 타고 방문하는 2007년 참여정부의 세상인가! 아니면 김신조의 일당이 박정희 목을 따러 왔다고 엄포를 놓았던 1968년에 제3공화국의 세상인가! 조갑제는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의 사고방식으로 2007년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난 또 어제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하재근이 쓴 칼럼 '바보야! 이명박=노무현이고, 박정희는 그 반대야'라는 칼럼을 읽었다. 이 세상에는 조갑제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하재근처럼 살아가는 인간도 있다는 사실에서 코웃음이 지어질 뿐이었다.
" "박정희=경제기적 / 노무현=경제파탄" 이렇게 될 수도 있다. 뭐라고? 각종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경제 절대로 파탄이 아니라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다. 지표타령 하는 사람들은 자기 회사 CF 의뢰할 때 30초 동안 내내 재무제표 수치만 나열하자고 할 건가? 주권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정권을 찬탈했다는 점에서 당 태종과 박정희는 같다. 그런데 그 후 역사에서 당 태종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정관지치를 길이길이 추앙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도 정권찬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민생이다." - 하재근
하재근에게 역으로 다시 묻는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경제파탄? 말은 바로하자! 솔직히 우리나라 국민들이 경제가 어렵다고는 많이들 말하지만, 경제파탄이라고까지 생각하는가? 물론 개개인한테 전부 물어본다면 그렇게 느끼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것이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팽배해있는 정서인지를 묻고 싶다. '경제파탄', '민생파탄'과 같은 말들은 조선일보에서 신나게 떠들어대는 말 아닌가! 그것을 반론하는 차원에서 각종 지표를 드는 것 아니겠는가! 참여정부가 언제 CF 찍자고 한 적 있나? 보다 현실적인 상황 인식을 위해서는 예쁘장한 연예인을 써서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것 따위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적나라해야 한다. 적나라해야 한다면 각종지표는 필요하다. 왜 그것을 따지고 지랄인가! 경제가 파탄 났다면 그 근거를 들란 말이다. '그래서 뭐!' 식으로 무성의하게 배 째라 하지 말고 말이다.
그리고 당 태종? 그럼 박정희나 전두환이가 한 일도 잘했다는 말인가? 여기서 나는 하재근의 막무가내 식 논리를 느낀다. 하재근 식으로 당 태종 언급하며 역적을 두둔하자면, 나 또한 하재근 식으로 세종대왕을 독재자로 만들 수 있다. 지금의 민주주의적인 가치에서 조선시대의 세종대왕에 통치방식은 독재 중에서도 상 독재에 속하고, 조선의 관과 부는 국민을 구속하고 통제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던 타도의 대상이 되어도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종대왕이 성군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 이유는 그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당 태종 때와 어찌 지금을 같은 것으로 비교하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이명박 반대진영을 압박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기조와 상반되는 것이어야 한다. 박정희의 이미지 중 '경제기적+평준화' 이미지는 계승대상이다. 이명박에겐 아래의 두 가지를 덮어씌운다. '박정희의 국민 무시, 전횡, 부패 +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의 민생파탄' 이것과 반대되는 것은 강한 공화국이다. 경제도 챙기고, 교육도 챙기고, 민생도 챙기는 강력한 공화국,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 국민이 선장에게 원하는 건 단호하게 키를 움켜쥘 능력이지 선장의 도덕성이 아니다." - 하재근
박정희의 경제기적 이미지를 계승해야 한다? 그런가? 당 태종이 잘했다더니 결국 박정희의 경제기적 이미지를 계승해야 한다? 그 망할 경제기적 때문에 정경유착이 비롯됐다는 생각은 전혀 못하는가? 이제 서서히 그것의 고리를 끊어갈 무렵인데, 다시 그 이미지를 계승하자? 그러면서 하재근은 바로 아래 문장에서 박정희의 전횡과 부패를 비판한다.
제기랄! 어떻게 그렇게 하겠다는 건지 진짜 모르겠다. 부패와 전횡은 안 되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어떻게 하든 간에 경제기적은 계승해야 한다고 하면 그게 무엇이냔 말이다. '선장의 단호하게 키를 움켜쥘 능력'은 당 태종 식의 역적행위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박정희 식의 정경유착을 말하는 것인가! 그 능력도 도덕성에 뿌리를 둔다면 다소 더디기는 할 터이지만, 역적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고 정경유착에게 철퇴를 내릴 배짱이 생길 것이다. 이렇듯, 하재근이 말하는 세상이란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20~30년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는 바와 같이 2007년의 대한민국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사람인 조갑제와 2030년 사람인 하재근이 함께 공존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재근이여! 그리고 조갑제여! 명심하라! 지금은 2007년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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