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계보', 한나라당
국회를 출입하는 각 매체의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한동안 유행하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명 '세계의 8대 불가사의'라는 것인데, 1번에서 7번까지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집트 피라미드'·'중국의 만리장성' 등이다. 여기까지는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마지막 8번에 들어서면, 문제는 자못 심각해진다.
8번은 다름 아닌, '사고뭉치 정당인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이기 때문이다. 숱한 취중 망언과 성추행 사건, 그리고 폭행으로 이어져 온 17대 국회의 한나라당의 '사고일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절반 가까운 이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으로 한나라당을 꼽고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사고뭉치 집권 야당' 한나라당
물론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그 근거로 든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노무현 정부가 민생경제를 파탄 냈다"는 주장을 예로 들어본다면, 그 '파탄 난 민생경제'의 원인 제공자가 한나라당으로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한 신한국당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 역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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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홈페이지 |
오히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주장이기도 한 '국토 균형 발전'을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문화일보> 등 자신들을 기꺼이 지지하는 거대 언론이 만들어낸 "수도 분할"이라는 기상천외한 슬로건으로 여론 몰이(사실은 여론 조작이라고 봐야 한다는 게 언론사 기자들의 다수 생각이다.)를 한 끝에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을 이끌어내면서 '파탄 냈다.'
또한, 최근의 '신정아·변양균 사건'과 '정윤재 사건' 등에서 보이듯 한나라당이 그간 줄기차게 주장해온 '권력형 게이트'에 정작 훨씬 더 많은 핵심 인물들이 연루된 것은 다름 아닌 한나라당이다. 정치부 기자들이 17대 국회 내내 한나라당을 일러 '집권 야당'이라고 부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런 한나라당이 또 다시 '대형 사고'를 쳤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의 임인배 위원장과 김태환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난 22일 국정감사 피감기관으로부터 술 접대를 받았다는 게 26일 폭로됐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2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 6~7명은 22일 대전특구지원본부 등 7개 기관에 대한 국감을 마친 뒤 대전 유성구의 단란주점에서 피감기관 관계자들에게서 수백만 원어치 향응을 제공받았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또한 "단란주점에 갔던 국회의원 중 2명은 술자리가 끝난 뒤 여종업원과 함께 '2차'를 갔다"며 '성 접대'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 외에도 각 언론의 기사를 종합해보면, 22일 밤 술자리에는 이들 한나라당 의원들 외에도 류근찬 국민중심당 의원도 있었다. 하지만 류 의원은 피감 기관장들이 술집에서까지 합석하자 "부적절하다"며 10분 만에 일어난 것으로 확인돼 결국 한나라당에게 모든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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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배 한나라당 의원 ⓒ2007 민원기 |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한나라당은 즉각 진화에 나섰다.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당 진상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하겠다"며 "잘못이 있으면 관련자를 엄중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도 "조사 결과에 따라 당규에 의해 엄격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피감 기관 향응 접대'의 '몸통' 격인 임인배 한나라당 의원은 "밥값은 상임위 차원에서 추후 일괄 정산할 예정이었다"며 "(술값은) 내가 내려고 했는데 '얼마 되지 않는다고 그냥 가라'고 해서 내지 못했다"고 해명하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성 접대 등은 결코 없었다"고 언론의 의혹 제기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한편, 임 의원은 지난 2005년 12월 국회의장실 여직원에게 폭언을 해 국회 윤리위에 제소된 바 있다.
잊을 만하면 '돈 공천'
그러나 문제는 또 있다. 한나라당이 '사고를 친' 것이 '향응 접대'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한나라당 윤리위원회는 "지난달 실시된 전남도당위원장 경선에서 낙선한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일부 당원협의회 위원장에게 수천만 원의 불법자금을 줬다는 혐의를 포착하고 자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과 박세환 윤리관은 이날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혐의를 공개하면서도 "현재 상태에서는 증거가 없으니 징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윤리관은, "지난달 21일 실시된 전남도당위원장 경선에 출마했던 함평·영광 당협위원장 정모 씨가 '당선시켜주겠다'며 출마를 권유한 전남 지역 당협위원장 4명에게 활동비와 사례비 명목으로 최소 1,000만 원에서 최대 3,500만 원씩 모두 1억 원을 전달한 혐의가 2주 전 포착됐다"고 밝혔다.
인 윤리위원장도 "처음에는 (정 씨가) 돈을 주고 영수증까지 받았다고 했지만 나중에 거짓말이라고 전부 부인했다"면서 "돈을 준 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나 정황이 디테일하다. 윤리위는 심증이 있기 때문에 계속 조사해서 혐의가 확인되면 중징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러한 발표는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심증을 지울 수 없다. 이날 오전 각 언론 특히 인터넷 매체들의 대대적인 보도가 있고서야 이를 마지못해 시인한 꼴이기 때문이다.
경비원 때리고, 맥주병 집어던지고…
17대 국회 개원 이후 한나라당이 저질러온 사고는 셀 수 없으리만치 많다. 그리고 그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단연 '술'이다.
먼저, 지난 2004년 9월 김태환 한나라당 의원은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후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어 60대 비정규직 경비원을 술안주인 '오징어'로 때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의원은 국회 윤리위에 회부됐고, 결국 "부덕의 소치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내용의 사과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열었다.
그 다음으로 세간의 주목을 끈 것은 2005년 6월 곽성문 한나라당 의원이 대구 지역 기업인들과 함께 골프를 친 뒤 술을 마시다 "왜 여당에게만 후원금을 내느냐"며 맥주병을 수차례 벽에 던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곡경을 치렀던 일이다.
여기자 성추행에 제자 성폭행 미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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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희 의원 사건 당시 한 시민단체의 회원이 권언유착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07 민원기 |
한나라당의 추태는 지난 2006년에 절정에 달했다. 2006년 2월 말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던 최연희(현재 무소속) 의원은 일간지 여기자를 성추행했다. 최 의원은 당시 "술자리에서 만취해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았다"고 주장했으나 최 의원의 주장을 믿는 정치부 기자는 없었다.
결국, 최 의원은 당에서 탈당하고, 검찰 기소까지 당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최근 최 의원을 다시 당으로 불러들여 당 고문을 맡기려다 언론보도로 인해 이를 취소하는 등, '정신 못 차리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또 2006년 7월 강원도에 물난리가 났을 때, 한나라당 경기도당 소속의 원외 위원장들은 수해 피해지역에서 사업가들과 골프를 쳤다.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재민 고통 분담 주간'이라 해서 당원들에게 '수해 복구 지원 참여'를 지시한 상태였다.
'수해골프 사건'으로부터 2개월 뒤인 2006년 9월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김학송·공성진·송영선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감사 기간을 이용해 피감기관인 해군이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합숙 연찬회'라는 이름으로 골프를 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은 '피감 기관 골프 사건'의 한 달 전인 2006년 8월 당 윤리강령에서 골프를 금지한 바 있다. 이들은 "국정감사에 대비해 부대시설 등 현장 답사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국민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길이 없었다.
2006년 판 한나라당의 사고일지는 그해 12월 15일 정석래 한나라당 당진 당협위원장의 '여제자 성폭행 미수 사건'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 사건 역시 '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당에 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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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2007 민원기 |
한나라당의 추태는 2007년에도 그 전통(?)을 이어갔다. 지난 1월 4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신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당시 선정성으로 인해 국정감사에서조차 지적된 <문화일보>의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주인공 '조철봉'을 거론하면서, "요즘 조철봉(소설 주인공)이 왜 그렇게 섹스를 안 해?"라며 "예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은 하더니만 요즘은 한 번도 안하더라"고 말해 자신이 '강안남자'의 애독자임을 강조했다.
당시 기자간담회 현장에는 다수의 여기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강 대표는, "옆에 여기자도 있다"는 한 기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 대표는 "아니 그래도 말아야, 한번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면서 "너무 안 해, 너무 안 하면 흐물흐물 낙지 같아져"라고 말했다.
이후 강 대표에 대한 기자들의 평가는 "여태껏 자신이 속한 정당의 정체성을 이토록 잘 웅변한 대표는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사지걸과 '기회균등'이 무슨 상관?
또 지난 9월에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이른바 '마시지걸 발언'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처하기도 했다.
문제의 발언은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후인 8월 28일 이 후보가 언론사 편집국장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이날, 이 후보는 '인생의 지혜'를 설명한다며, 타이 마사지업소를 예로 들었다.
이 자리에서 이 후보는 "현지에서 오래 근무한 선배는 마사지걸들이 있는 곳을 갈 경우 가장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고르더라. 예쁜 여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을 받았겠지만 예쁘지 않은 여자들은 자신을 선택해준 게 고마워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하게 된다"는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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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2007 민원기 |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치권은 물론 여성계의 거센 반발을 낳았다."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성매매 기술을 강의한 셈"이라는 비난과 함께 "성추행당의 대선 후보답다"는 조롱도 나왔다.
이에 대한 한나라당의 해명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격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선배의 말을 전한 것일 뿐이다"며 "성매매업소가 아닌 발마사지 업소"라고 변명했지만 "상식에 반하는 빈약한 논리"라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결국, 9월 18일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 후보의 '마사지걸 발언'에 대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서 모두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또 다시 해명했지만, "지나가던 소도 웃을, 어이없는 변명(이낙연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한나라당 전체의 인식이 얼마나 천박한지 다시 보여준 사례(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란 차가운 반응만을 불렀다.
ⓒ 시간의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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