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선이야기는 논란의 여지도 많아서 글을 자중하려고 했지만 이번 BBK 건을 보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분노와 짜증이 너무 도에 지나치는 것 같아 저도 한마디 거들까 합니다.
일단 이번 일은 매우 복잡해 보입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마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마타도어나 음해 공작 뭐 이럴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나라당의 대응도 따지고 보면 이런 교묘한 물타기, 재 뿌리기, 동문서답하기 식 대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손해를 봐서 핏대를 올리는 사람에게 왜 반말하냐로 몰고가기 식이죠.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소위 벤처기업으로 인생을 바꾼 시점이 바로 2000년 여름입니다. 지금 BBK가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과 비슷한 시기이고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벤처 열풍의 끝물에서 투자와 계약을 수도 없이 협의하고 조인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대충 들어보니 그림이 빤히 보이는 일입니다. 저는 빤히 보이는데….
다시 생각하면 일반 사람들은 헷갈릴만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단 저는 아무리 명박사마가 질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해도 겨우 코스닥 주가조작이나 해서 돈을 벌 위인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김경준씨도 그의 경력이나 학력으로 보아 처음부터 주가조작으로 푼돈 벌고 감옥 갈 위인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첨부터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이는데… 제가 보기에 과거 진승현이나 최규선 같은 스캔들과 기본적 골격에서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정에 성공하면 공신, 실패하면 역적입니다. 즉 일이 성공해서 잘되면 성공한 사업가고 실패하면 사기꾼이 되는 것이지요. 본질적으로 김우중이나 정주영이나 솔직히 사기꾼으로 젊은 인생을 마칠 수도 있었지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정주영과 김우중의 클론들이 70년대 60년대에 싹을 못 피워보고 사라졌는지 모릅니다.
소싯적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에 제세산업 창업주 이창우씨가 쓴 '옛날 옛날 한 옛날에'라는 책과 율산의 신선호씨가 쓴 '서울은 지금 몇 시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그 책을 읽으면서 이들의 인생이 과연 정주영이나 김우중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곤 했지요. 그들이 정치권의 비호를 받으며 성공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김경준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의 마음속에 어떤 사기꾼적인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사기를 칠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진성 사기꾼과 가성 사기꾼을 구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가장 돈을 많이 챙길 때 돈을 들고 튀었느냐 아니면 망한 다음 남은 돈을 들고 튀었느냐, 둘째 자기를 도와준 사람의 돈까지 챙겨 가느냐 남기고 가느냐입니다.
여러 수사자료를 보면 김경준은 끝까지 돈을 변제하려고 노력했던 정황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 만약 1998-2000년 사이의 벤처 붐이 이어졌다면 그는 지금 상당히 다른 위상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추가 펀딩 계획만 처음 약속대로 이어졌다면 지금 제 명함의 글자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2001년부터 시작된 벤처 자금 시장의 공황은 참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루게 했습니다. 벤처 기업가 중에 전사자가 속출했고 제 주변에도 사망자(가정파탄 후 행불)와 중상자(신용불량, 가정해체 후 일용직 전락, 교도소행)가 널려 있습니다.
당시 김경준과 같은 브로커들에게는 한국이 천국과도 같은 시장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가오만 선다면 (해외학력, 경력, 그리고 어느 정도의 사업적 마인드) 돈을 모으기는 정말 쉬운 시절이었지요. 자기 자신의 수준에 따라 거의 모든 대한민국 졸부들에게 브로커들이 달려들었다고도 보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광기의 시대였습니다. 돈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어디든 투자를 해서 벤처신드롬에 편승하고자 아비규환을 떨던 시절이었지요.
적어도 김경준 정도면 우리나라 톱클래스를 상대하는 브로커였겠지요. 제가 보던 브로커들은 제 수준에 맞게 조금은 한심한 놈들이었지만… 브로커 사기꾼들에게도 격이 있고 아우라가 있습니다.
명박사마같은 돈과 힘이 있는 사람에게 김경준과 같은 브로커의 결합은 정말 이상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썩은 생각 중 하나가 주가 조작이라는 것을 하나의 금융기법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전혀 범죄의식이 없습니다. 시장의 돈은 그냥 자기가 퍼오는 돈입니다. 주식시장의 돈은 힘(=정보)이 있는 사람이 알아서 퍼오는 화수분 정도로 보는 것입니다. 그게 잘되면 네이버 다음이 되는 것이고 안되면 철창 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명박사마께서는 김경준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간단합니다. 돈 줄 테니 돈 벌어와라. 내가 패트론이 되어주마.
자 그럼 그 다음은 뭘 했을까요?
뭐긴 뭡니까? 뭐하냐고 물어봐야지요. 몰랐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뭔지도 모르고 돈을 넣고 사인을 합니까? 눈감고 연대보증 하는 미친놈 아니 바보가 있답니까? 그리고 일단 투자자문사나 창투사 비슷한 머니게임 시작하는 자들의 마인드 자체가 돈 놓고 돈 먹기 식이라는 점입니다.
자기가 건설업으로 제조업으로 세상을 살아왔으면 제조업으로 살아갈 생각을 해야지 무슨 이뱅크니 사이버 금융거래니 하는 보도 듣지도 못한 분야에 투자를 합니까? 자기가 잘 아는 분야라면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 사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업분야는 이명박 전문 분야가 아닙니다.
그런데 모르고 했다고요? 그럼 둘 중에 하나지요.
바보거나 사기꾼이거나.
무슨 생지�을 하고 둘러대도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몰라서 당했다면 바보고 알고도 당했다면 사기꾼이지요. 결국, 자신도 당하고 소액주주들도 당한 것은 사실 아닙니까?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대권을 잡는다… 정말 눈물이 날 일입니다.
세상에 대한민국이 겨우 이 정도의 국격과 상식을 가진 나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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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랄프386
▣ BBK 타짜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