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없으면 <조선>이 떠날 일이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은 취임사에서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직원들에게 던졌습니다. "참여정부에 하산은 없다!"
참모진을 모두 긴장시킨 이 얘기는 단지 레임덕 방지를 말한 것이 아니라, 임기 마지막 날까지 법률이 정한 권한과 책임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다해야 한다는 비서실 책임자의 당부이자 비장한 각오였습니다.
임기를 100일 조금 넘게 남겨둔 청와대는 여전히 분주합니다. 분주한 정도가 아니라 여전히 업무과중입니다. 최근 있었던 선임비서관 만찬에서 참석자들은 저마다 과로를 호소하며 농반진반으로 "레임덕이 와서 이제 좀 한가해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각 수석실마다 여전히 현안이 넘쳐나 죽을 맛인 처지를 서로 위로하는 마음에, 오죽했으면 그런 얘기가 나왔을까요.
참여정부에 하산은 없다… 각 수석실마다 현안 산적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 로스쿨, 이라크 파병연장, 한미 한EU FTA, 혁신도시 기업도시 점검, 부동산시장 및 금융시장 관리 등등 비서관실마다 마무리해야 할 기존 업무와 청와대가 직접 관리해야 할 업무가 간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요 비서관들은 하루 대여섯 개의 회의를 소화하느라 제대로 전화 받을 여유조차 없습니다. 휴일에도 회의가 소집되기 일쑤입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식 비공식 일정이 여전히 빡빡해, 최근엔 부속실과 의전비서관실에 일정을 좀 줄여달라고 당부했을 정도입니다.
이전 정부에서 청와대 근무를 해 본 직원들은 "임기 말까지 이렇게 바삐 돌아가는 청와대는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합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공치사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런 문화가 정상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청와대는 일반직 별정직 할 것 없이 나름대로 유능하다는 공무원들이 모인 행정부의 사령탑입니다. 국민세금으로 일하는 공직자라면 어디를 가릴 것 없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이자 국가에 대한 책임입니다. 하물며 청와대가 임기말이라고 빈둥댄다거나 한가한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참여정부 청와대가 가장 민감하게 거부감을 갖는 논리가 "임기 말 정부가 굳이 뭐하러…"입니다.
그런 청와대 분위기를 오늘 한 신문이 대단히 곡해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지금 청와대는 짐싸는 중'이라며 "임기말 현상 완연" "각기 갈 곳을 찾느라 부산한 모습" "퇴임 후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일손이 잡히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참모들도 각기 살길 찾아" "대통령도 전직 대통령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빈도 높은 고향방문" 등으로 묘사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월에도 '청와대를 나가는 사람은 많은데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고 희화화했습니다.
이 신문은 아마도 비교적 높은 대통령지지도, 이전과는 구분되는 국정장악력, 거침없이 주요 사안을 밀어붙이는 추진력 등이 못마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손 놓은 청와대' '스산한 청와대' '다 떠나고 외롭게 퇴임준비에 들어간 대통령' 등의 고립된 이미지로, 국정장악력과 추진력에 뭔가 흠집을 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래도 시비, 저래도 시비 조선일보식 논법
그렇다고 해도 시비 걸 일을 시비 걸어야지, 유치하기 그지없습니다. 대선 중독증에 걸린 이 신문의 논법이 뭐가 문제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총선에 출마할 사람이 적당한 시기에 청와대를 나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역으로 따져보면, 이 신문은 출마자들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으면 있는 대로 '마음은 정치판, 몸은 비서실…겉도는 청와대'로 제목을 뽑아 문제를 삼았을 것입니다.
둘째, 나가는 사람의 빈자리를 가급적 채우지 않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부 인사방침입니다. 남은 사람들이 힘들어도 함께 감당하고 가야지, 행정관들의 빈자리까지 정원대로 모두 채울 경우 업무파악과 연속성 측면에서 그리 효율적이지 못할 것이란 판단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였다면 '임기 말까지 몸집 불리는 청와대'로 비판했겠지요.
셋째, 퇴임 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 역시 달라진 권력문화, 정상으로 돌아가는 청와대 위상의 단면을 과대포장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 변화를 평가해 주지는 못할망정 '일손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식으로 연결해, 일하는 청와대를 왜곡하는 태도는 점잖지 못합니다. 이런 변화가 없으면 '마지막까지 제 식구 챙기기 급급'의 기사가 등장했을 것입니다.
매사를 시니컬한 눈으로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면 어느 경우든 비난기사가 됐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고향방문 빈도가 전직 대통령들과 비교해 잦다는 얘기는 어불성설입니다. 집이 없어 고향에 새로 집 지어 귀향한 대통령이 누가 있다고 비교를 하며, 비공식 일정으로의 대통령 관심사를 '퇴임준비'로 직결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자는 기사가 있는 곳 아니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최근 기자들의 '기자실 지키기' 다툼을 보면 기사가 있는 현장조차 외면하는 기현상도 있긴 하지만, 취재기자는 취재현장이 아니면 지킬 이유가 없습니다.
출입처가 '짐싸는 곳'이면 기사가 없을 것이고, 기사가 없으면 회사별로 출입처를 조정해 바꾸면 그만입니다. 바빠야 할 기자가 굳이 '기사거리도 없는, 그리고 짐싸는 출입처'에 대고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을 깎아내리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