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노인복지가 '생색'입니까
- 성장 만능주의 중앙일보, 복지 콤플렉스 떨쳐라
올해 9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내년 기준으로 65세 이상인 노인 516만 8400여 명의 소득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은 소득이 전혀 없었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임대소득, 이자소득 등 국세청을 통해 파악되는 소득을 가진 노인은 전체의 6.8%에 불과했다. 공적연금을 받는 경우는 전체 노인 가운데 22.7%였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동안 노인 복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노인 부양은 사회의 몫이 아니라 가족과 자녀의 몫이었다. 사회가 발달하고 복지제도가 정비되면서 노인에게 경로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금액도 3~5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는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을 위해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했다. 2008년 1월부터 70세, 7월부터 65세 이상 노인 중 하위 60%에게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월액의 5%인 8만 4000원가량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내년에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노인은 약 301만 명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재정부담을 최소화하고 혜택의 폭은 넓히기 위한 고심을 한 끝에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최대 8만 4000원가량의 연금은 노인이 살아가는데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최소한의 노인복지를 '세금 샌다'고 호도
그런데 중앙일보는 5일자 '착한 정부 환상을 깨라'는 기획시리즈에서 이 기초노령연금 제도를 '착한 정부 생색에 세금 줄줄이 샌다'는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공적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을 정부가 보살피려는 최소한의 노인복지와 사회안전망 시스템을 '생색내기' 낭비 사례로 폄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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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7명은 특별한 소득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한 노인 일자리 박람회에 참가한 노인이 유심히 취업 안내서를 살펴보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들고 고령자가 된다. 고령 정책은 미래에 대한 선제적 투자다. 고령사회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고령친화적인 사회를 건설하지 않고선 국가의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출산부터 노후까지'라는 한국적 복지비전을 마련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리고 기초노령연금제도는 이런 노후 대책의 기초가 된다.
■ 복지예산 늘린 참여정부, 큰 정부 아니라 왜소한 정부
참여정부는 복지 등 사회투자 예산을 대폭 확충해왔다. 사회투자야말로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를 제공하는, 일거양득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부의 복지 등 사회분야 예산은 2006년 현재 GDP의 27.9%로 늘어났다.
이를 놓고 중앙일보는 대표적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예를 들며 실패한 정책을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9월 스웨덴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승리해 50년 넘게 지속해온 복지모델의 수정에 착수했다는 주된 근거다.
아쉽게도 중앙일보는 스웨덴의 복지지출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전혀 다루지 않았다. 스웨덴의 복지지출은 우리나라 복지지출 규모의 6배에 달한다. 2003년 스웨덴의 공공사회지출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31.3%에 달한다. 같은 해 우리나라의 공공사회지출 비용은 GDP의 5.7%에 불과했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폴란드도 공공사회지출 비용이 22.9%에 달한다.
복지지출이 우리보다 6배가량이나 많고 관련 예산이 국가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스웨덴과 복지 등 사회관련 예산이 국가예산의 25%를 겨우 넘은 우리나라가 같은 입장일까. 중앙일보의 주장은 비만인 사람이 살을 빼고 있으니 마른 사람도 살을 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복지예산 늘면서 양극화 완화…정책 효과 나타난다
중앙일보는 또 복지예산이 크게 늘었지만 양극화가 심화되고 절대빈곤층도 늘어나는 등 별 효과가 없다며 정부의 복지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나 양극화 추세가 어떤지, 절대빈곤층이란 무엇인지 등 자세한 정보는 담지 않았다. 복지투자와 양극화 완화효과는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다.
복지예산이 어느 정도 늘어나면서 소득불평등 심화 추세는 어느 정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개인이 벌어들이는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소득불평등은 확대되고 있지만 정부의 공적부조와 조세정책을 감안한 가처분소득은 소득불평등 추세가 정체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민이 실제로 손에 쥐는 소득인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소득분배 정도를 측정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국가구의 소득5분위분배율 개선율은 2003년 11.9%에 이어 2006년 16.7%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전국가구의 지니계수 개선율도 2003년 3.6%에서 2006년 5.5%로 늘었다. 전세계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국가에서 가처분 소득 기준의 지니계수가 상대적으로 덜 악화되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양극화 개선 노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정부가 거둔 성과는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OECD 국가 중 정부정책의 재분배효과가 작은 것으로 평가되는 일본만 해도 그 효과가 14.3%에 이르며 미국은 17.6%에 이른다. 이는 투입하는 예산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절대빈곤층도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절대빈곤층이란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계층이다. 정부가 최저생계비를 올리면 절대빈곤층의 수도 늘어나게 된다. 최저생계비는 2003년 3.0%, 2004년 3.5%, 2005년 7.7%, 2005년 3.0%, 2007년 3.0%, 2008년 5.0%씩 매년 인상돼왔고, 그에 따라 절대빈곤층의 수도 늘었다.
중위소득 50% 이하 비중을 나타내는 상대빈곤율은 참여정부 들어 증가폭이 오히려 둔화하고 있다. 전국가구의 상대빈곤율 추이를 보면 1996년 9.0%에서 2000년 13.4%, 2003년 16.0%, 2006년 16.7%였다. 이는 OECD 28개국 중 20위 수준이다.
■ 참여정부 운영 방만하지 않아…줄일 것은 줄였다
중앙일보는 또 나라살림이 적자나고 나랏빚이 크게 늘어 2008년 현재 318조 8000억 원에 달한다고 경고했다. 중앙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의 재정은 파탄났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해외의 반응은 다를까.
올 7월 국제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무디스사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5년 만에 'A3'에서 'A2'로 상향조정하면서 "한국의 재무건전성이 상향조정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또 올해 8월에 있었던 한·일재무장관회의에서 일본 측 재정정책관계자들은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한국의 재정건전성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드러냈다.
해외의 시각과 중앙일보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옳을까. 우선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은 맞다. 그러나 증가하던 국가채무비율은 2006년 33.4%로 정점을 찍은 뒤 3년째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재정운용계획에 따라 2008년 예상 국가채무비율은 32.9%로 줄어든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가채무는 약 149조 원이 늘었다. 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환율안정을 위해 발행한 외평채 58조 원(39%)이었다. 이는 환율안정을 가져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을 활성화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게다가 외평채는 국채발행분에 상당하는 금액의 외화자산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는 것으로 국민 부담이 되지 않는다.
또 나머지 54조 원(36%)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융구조조정 등에 사용된 공적자금을 국채로 전환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금융기관이 부도사태를 맞았을 때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나 상당금액을 되돌려받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넘어온 것일 뿐 참여정부가 늘린 것은 아니다.
국민주택채권 9조 원(6%) 역시 서민의 주거생활 안전을 위한 대출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채권발행으로 대출금을 회수하면 상환이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늘어난 국가채무 중 순수하게 적자보전을 위해 발행된 국채는 22조 5000억 원 정도로 전체 나랏빚의 15%에 불과하다.
선진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낮은 수준이다. 2006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3.4%였는데 같은 기간 OECD 국가 평균은 77.1%로 우리나라의 두 배가 넘었다.
정부는 자칫 샐 수도 있었던 국민의 세금을 아껴 써왔다. 정부는 재정사업의 성과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 철저하게 사업관리를 해왔다. 성과관리제도를 도입해 종래 투입에 대한 통제에 머물러있던 예산관리를 성과와 책임중심으로 전환했고, 대형사업에 대한 사전타당성 조사와 총사업비 관리, 예산낭비신고센터 운영 등을 통해 효율성을 관리해왔다. 그 결과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총 45조 원에 이르는 세금을 절감할 수 있었다.
국가가 선제투자 하지 않으면 국민이 병든다
정부는 또 국가재정법을 제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라 국가채무를 2011년 31.0%로 낮춰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는 유럽연합 가입조건인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국가채무를 GDP 대비 60% 이내로 관리할 것을 권고한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중앙일보는 우리나라 재정은 깊은 병이 들고 있는데 반면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세금을 거둬들일 기반은 빠르게 잠식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써야 할 재정을 쓰지 않고 선제투자를 하지 않으면 저출산·고령화시대 국민이 깊은 병이 든다.
중앙일보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서비스 일자리창출 정책 등 복지정책이 이 같은 고령화사회에 대비한 정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스웨덴은 보육과 간병 등 사회서비스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여성의 사회활동을 촉진시켜 노동력을 늘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선제투자를 해 노인도 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고령화에 대비할 수 있다. 성장 만능주의의 낡은 사고의 틀 아래 복지 콤플렉스를 느끼며 복지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는 달라진 함께 잘 사는 동반성장은 요원하다. 복지 콤플렉스야말로 양극화의 공범자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