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것이 무능한 것보다 낫다.'라고?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한 면죄부, 혹은 면피용으로 꺼내놓는 단골 대사 중 하나이다. 이명박에게 이 대사를 들이대어 보면 이명박 지지자들의 진실이 바로 드러난다. (노무현과 비교하여) 이명박은 '어느 정도' 부패하지만 '유능하기' 때문에 지지한다는 거다. 정치권 박 터지는 싸움 결과와 상관없이, 김경준의 귀국과 상관없이, 답은 이미 나와있는 거다. 이명박은 '어느 정도' 부도덕하고 부패하다. '정치인이 좀 부도덕해도 지지하겠다.'라는 의견이 어느 여론조사에서 절반가량 공감을 얻는 것으로 나왔다. 이 결과가 누굴 지향하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명박은 '어느 정도'는 부도덕하고 부패하다. 이것은 반대자들이 아닌 이명박 지지자들이 구사하는 부패와 무능의 수사학에서 간단하게 밝혀지는 참인 명제이다. 이명박에게서 풍겨나는 부패와 부도덕의 악취에도 불구하고 그가 워낙 유능하기 때문에 50%의 대한민국 국민이 이명박을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한다는 거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만에 하나라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당선되는 순간, 아래와 같은 조항을 삽입하는 헌법개정부터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
"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순간부터 당선 이전에 행한 모든 민, 형사상 범죄에 대해 사면을 받는다."
이러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유능한' 대기업 간부가 여사원들을 협박하고 겁간하여도, '유능한' 군대고참이 신참들을 구타하여도 '유능한' 공무원들이 독직사건을 저질러도 모두 처벌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은 무능하지 않고 '유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재앙을 막으려면 대통령 당선자는 딱 까놓고 당선되면 민, 형사상 면죄부를 준다는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
결론 --> '유능하면' 차떼기, 박스떼기를 해서라도 대통령이 되라. 안 그러면 감옥 간다.
'무능'이라는 프레임의 허구
그렇다면, 노무현이 무능하다는 근거, 이명박이 유능하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근거는 '닥치고 결과론'이다. '부동산이 폭등하고, 사교육비가 방방 뜨는 것은 노무현 탓이다.' '청계천 어항에 보기 좋은 산책로가 생기고 버스지하철 타고 다니기 편해진 것은 이명박의 업적이다'.라는 단순논리 말이다.
반대로 부동산과 사교육비가 어떤 작동 기제 탓에 그렇게 난리부르스인지, 청계천 어항을 감상하고, 버스지하철 조금 편하게 타고 다니는 알량한 혜택을 위해 우리가 아는 새 모르는 새 얼마나 세금을 삥 뜯기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고민하는 것은 대단히 귀찮은 일에 들어간다.
배가 아픈 환자를 어떻게 진료하는 것이 유능한 의사일까. 최단 시간 내 복통을 해결해 주는 것이 유능함의 척도라면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 한 방을 얼마나 빨리 쓰느냐가 유능함의 척도가 된다. 대한민국 건강보험의 철학을 충실히 따르자면 가장 싸게 치료하는 것이 최고의 의사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의사를 신뢰하겠는가. 과학적 접근을 통해 복통 원인을 규명하고, 원인에 따른 적절한 처방을 구사하는 의사가 진정 유능한 의사가 아닐까. 빠르고, 싸게 라는 척도는 그 다음 선택 옵션에 들어가는 거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의 참극을 겪었음에도 대한민국 국민이 제시하는 유능함의 기준은 결국 '삐가번쩍한 가시적 성과물'이다. 성과물의 과정과 내용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가는 절대로 중요하지 않다. 맑은 듯 보이는 시냇물 주위를 화려한 조명이 휘황찬란하게 비추는 어항가를 거닐면서 희희낙락하고, 카드를 대면 '환승입니다.'라는 안내멘트가 나오면서 금액이 0원으로 찍히니까 그게 내가 돈 버는 것이라는 망상에 젖어들며, 약간 부패해도 졸라 유능한 전직 서울시장을 칭송한다. 딱 한마디만 묻는다. 당신들 자식새끼들도 부도덕할지언정 유능한 인간으로 키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명박에게 휘호 한 자락 부탁해서 가훈으로 걸어두길 바란다.
"우리는 부패와 부도덕 속에서 유능함을 지향한다."
부패한 것보다, 부도덕한 것보다, 무능한 것보다 더욱 쪽팔리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명박을 지지하려거든 위선은 까지 마라. 적어도 자식새끼들 앞에서는. '부패'와 '무능'의 수사학. 결국, 무능은 부패라는 진실을 은폐, 엄폐하기 위한 위선에 불과하다. 부패와 유능, 부도덕과 유능은 하나의 공간에, 하나의 인격에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배타적인 대립가치이기 때문이다.
'지배권력'이 아닌, '지배정서' 바꾸기.
지금 상황에서 정동영은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2002년 대선처럼 서프가 총력을 다해 정동영을 밀어주어도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하지만, 지금 서프의 천덕꾸러기 넘버 1이 정동영이다. '정동영 찍느니 이명박 찍는다.'라는 표현이 아주 고상하게 통용되는 곳이 지금의 서프게시판이다.
김혁규, 강운태, 문국현 역시 생각을 뒤집으면 마찬가지이다. 서프가 총력으로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팍팍 밀어주더라도 소위 말하는 '호남의 지역주의자'들이 정동영에 대한 지지를 거두어 3인방 중 하나에게 쏠림을 주지 않는다면 지금 상황에서 그들은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한가지 변수는 있다. '영남의 우국지사들'이 이명박 대신 3인방에게 지지를 보내면 되겠다. 영남에서 김혁규를 호남에서 정동영 미는 것 반만이라도 밀어주면 김혁규는 무조건 대통령 당선이다. (영남과 한나라당의 결별, 과연 박철과 옥소리 이혼보다 쉬운 일일까?)
학교에서도, 경찰서에서도 크게 사고 친 놈은 절대로 때리지 않는다. 어차피 학교 잘릴 놈, 교수대로 갈 놈 때려봐야 내 손만 아프기 때문이다. 정동영이 그런 존재라면 차라리 서프 공간에서 그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완벽하게 무시하는 것이 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미움과 증오의 발산이 그의 당락에 변수가 될 수 없고, 정동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을 상기하자.)
이명박 묻지마 지지의 배경에는 치열한 반노 정서가 깔려있다. 이해찬의 3등 비극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정동영에 대한 서프의 감정 굴곡 역시 부당하고 비열한 반노 정서에 대한 자기 방어적 증오와 미움이 서려있다. 김혁규, 강운태, 문국현을 둘러싼 지지 공방도 지배 정서는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증오이다. 결국, 이번 대선을 지배하는 정서는 미움과 증오이다. 노무현 모델과 시스템으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일 수밖에 없다. 속도와 돌파력을 자랑하는 철갑 기병도 진흙뻘에 들어가면 물오리 사냥감 신세로 전락하는 거다.
미움과 증오를 이제는 좀 터뜨리지 말고 보듬었으면 좋겠다. 다만, 마음 놓고 욕할 대상은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족하다. 다른 종자들 중 패주고 싶은 존재가 있다면 그냥 없는 듯 철저히 무시하면서 살아갔으면 한다. 그리고 김혁규든, 문국현이든, 강운태든, 서프의 신당이든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상에 대한 뜨거운 애정의 표현만 넘쳐났으면 한다. 그것은 거창한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을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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