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참여정부 실정 부각하면 할 수록 보수진영만 유리하다는 걸 왜 모르나

순수한 남자 2007. 11. 23. 19:50
[칼럼] 참여정부 실정 부각하면 할 수록 보수진영만 유리하다는 걸 왜 모르나
입력 :2007-11-23 10:35:00   조기숙 이대 교수
먼 훗날 후손들은 요즘 신문을 읽으며 ‘경제’와 ‘탈세’는 동의어라고 기록하지 않을까. 경제전문가가 탈세전문가임이 밝혀졌으니 말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진보개혁진영은 물불 안가리고 다 합한다 해도 이번 대선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왜 이런 상황이 초래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없으면 진보진영 후보는 지지율 높이려다 더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지금 정동영, 문국현 두 후보가 나란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진보개혁진영이 현재와 같이 한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진보개혁진영의 오판과 착각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국민들로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착각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은 단 한 번도 진보적이었던 적이 없다. 미국 국민들이 단 한 번도 진보적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러면 미국에서 민주당은 어떻게 정권을 잡았는가. 지역주의와 공화당의 실정이 합해져서 정권을 잡았다.

해방 이후 줄곧 미국의 정치적 영향 하에 있었고 남북의 분단으로 진보의 씨가 말라버린 현대 한국정치사에서 진보정권을 만들어낼 만한 지지세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따라서 지금의 보수일변도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은 놀라울 일도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잠시 일탈에서 벗어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면 어떻게 두 번이나 진보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느냐고? 그것이 가장 큰 착각이다. 국민들은 한 번도 진보정권을 뽑아준 적이 없다. 그걸 진보정권의 수립으로 착각한 진보진영이 바로 문제라는 말이다.

현대정치에서 보수와 진보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중심으로 나누어진다. 보수는 시장의 순기능을 신뢰한다면, 진보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공공성을 담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뉴딜로 국가의 역할이 강화된 이후, 보수라고 해도 19세기 야경국가와 같이 자유방임 국가의 개념을 지키는 현대국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 국민은 작은 정부, 시장만능에 대한 신화를 지니고 있다. 조세부담율이 20%를 겨우 넘는 나라에서 세금 소리만 나오면 세금을 한 푼도 안내는 사람들이 결사반대를 한다. 정부는 악이라는 독재시대의 유산과 보수적인 언론과 교수 일변도인 나라에서 국민을 열심히 세뇌한 결과이기도 하다. 참고로 보수 일변도인 일본도 대학과 주요 언론은 진보적이다.

우리 국민은 어느 나라 국민보다 역동적이고 개혁적이라고? 맞는 말이다. 진보진영은 한국 국민의 역동성을 진보로 착각했다. 한국민은 기득권에 대한 저항심리가 매우 높다. 외세의 침략, 일제시대,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저항세력의 정당성이 입증되면서 더욱 강화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선거전략을 세울 때에도 기득권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야 유리하다. ‘정권 교체’ ‘낡은 정치 청산’ ‘의회권력 교체’ 등이 성공한 슬로건이다. 권력을 가졌다고 오만 방자하면 국민들의 역린을 건드려 전복당한다. 우리처럼 초선의원 당선율이 50%가 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민주화정권 10년의 집권은 보수의 패착, 진보진영의 총단결, 지역 연대, 한국민의 역동성이 더해져서 가능했다. 진보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앞으로 20년 이상 진보가 실력만으로 정권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신승은 보수의 분열, 경제환란, 지역연대 이 셋 중 어느 하나만 없었어도 불가능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경제환란이 일어났을 때에 반대 정당에게 의석의 2/3과 3/4을 몰아 주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한국에서 보수의 뿌리가 얼마나 견고하고 무서운지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 총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이 1당이 될 것이라는 언론의 예측을 뒤엎고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이건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맞추는 정상적인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치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은 정치부패와 기득권에 대한 반발이 하늘을 찌르는 분위기에서 보수후보와의 연대로 가능했다. 선거쟁점이 정치개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지난 대선이 결코 진보정권에 대한 추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등장은 탄핵이라는 예외적인 사건과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로 가능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들고 나옴으로써 다수 국민의 보수적 정서를 배반했다.

차떼기, 책떼기가 밝혀진 직후 탄핵 와중에 총선을 치렀지만 한나라당은 노인발언 하나로 건재하게 살아남았다. 그것이 보수세력의 복원력이다. 이런 정치지형에서 한나라당의 재보궐선거 지방선거의 승리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보수의 견고한 뿌리에 민주정권 10년 기득권에 대한 저항심리까지 합쳐지니 보수 후보에 대한 지지가 60%를 넘나드는 것이다.

게다가 2002년 대선은 기득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반영되었기에 기존질서의 해체를 주장하는 노무현 후보가 가장 유리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갈등과 해체에 대한 싫증이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치러지기 때문에 누가 안정된 질서를 가져올 것인지 그 동안의 성과를 보고 투표하게 될 것이다. 지난 대선이 전망적 투표가 주를 이뤘다면 이번 대선은 회고적 투표가 지배적일 것이라고 예측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선거를 분석할 때 또 하나 필요한 것은 한국민의 집단주의 정서에 대한 이해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곳에서는 일단 양 캠프가 팽팽하게 만들어지면 양쪽의 의견을 들어보고 판단을 하지만, 어느 한 쪽으로 기울었다 싶으면 소수자는 침묵하는 정서의 정도가 매우 심하다. 국민이 후보의 말에 귀라도 기울이게 만들려면 최소한 25% 정도의 지지율 확보가 필수적이다. 정동영 후보의 고전은 지지도가 임계점(critical mass)에 다다르지 못 했다는 데에 있다.

한국인의 투표행태에 대한 분석을 해 놓고 보니 올 대선의 전망은 더욱 우울해진다. 우리를 더 절망시키는 것은 정동영과 문국현 후보의 행태다. 특히 정후보의 원칙없고 비전없는 합당행보는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들이 참여정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 하는 것이 지지도에 있어서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으냐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15-20%의 지지도는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 보수언론이 아무리 패악질을 해도, 부동산 정책이 단기적으로 실패해 주택값이 폭등할 때에도 믿고 지지하는 집단이 있었다. 이들이 그렇게 정치적으로 무지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후보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정, 문 두 후보는 참여정부 실패론을 놓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후보가 참여정부와 차별화를 한다고 해서 이들에게 찍어줄 표가 있겠는가. 이는 오히려 자신들의 발등을 찍는 일이다. 국민들에게 왜 진보진영에게 표를 다시 줘서는 안되는지를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인물보다는 세력을 먼저 구분한다. 정동영, 문국현 뿐만 아니라 이명박, 이회창의 동반상승, 동반하락에서도 알 수 있다. 참여정부의 실정을 부각하면 할 수록 유권자는 보수진영에 표를 몰아주게 돼 있다.

현대정치에서 성공했다고 회자되는 레이건, 클린턴, 대처 정부는 모두 성공했는가? 이 세상에 흠결없는 100%인간이 없듯이 그런 정부도 존재하지 않는다. 참여정부 또한 무오류의 정부일 수 없다. 하지만 참여정부기간 동안 이룩한 놀라운 객관적 실적을 보라. 국가경재력 11위, 과학경쟁력 7위, 기술경쟁력 6위, 지난 정권이 모두 확보한 것보다 더 많은 유전(油田)확보, 시민자유도, 언론자유도 개선, 개성공단과 남북관계 개선, 성과가 너무 많아 언급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물론 지난 5년간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 크고 작은 실수도 있었다. 그 동안 민생이 어려웠다면 한나라당이 가져온 경제환란의 후유증이 가장 큰 원인이고, 산업이 재편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전통적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타격을 입은 것이다. 정부의 공적 영역이 워낙 미약하기에 벌어진 구조적인 일이다.

성장을 한다고 민생이 해결되는가? 대기업의 설비투자는 30%가 증가했지만 고용은 오히려 줄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히려 민생 해결을 위해 보수정책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진보진영은 보다 확실하게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역으로 진보진영 후보들이 마치 노 대통령의 무능력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처럼 비난만 한다면 국민들이야 당연히 보수진영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하지 않겠는가.

선거운동은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홍보하고 잘못한 점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비전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참여정부가 잘한 것은 모두 엎어 버리고 잘못한 것만 반복해서 부각시키면 누구에게서 표를 얻겠다는 말인가?

국민들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획득해 기득권으로 비쳐지면서부터다. 과반수는 몇 개월 가지도 못했고 실제로 많은 법안이 누더기가 되거나 한나라당의 방해로 상정도 되지 못했다. 참여정부가 충분히 진보정책을 펼칠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언론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부공격에 열을 올렸고, 진보교수들조차 참여정부를 공격하며 보수언론의 여론몰이에 이용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일변도 지형이 조성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번 선거에서는 진보진영에서 누가 나와도 당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보수의 분열이 다시 진보진영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정, 문 두 후보가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명약관화하다. 참여정부를 공격하며 뭔가 우회를 꾀한다면 100%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실패한 진영은 정권을 반대진영에 내주는 것이 당연하다. 권력을 또 달라는 주장 자체가 뻔뻔한 일이다. 문 후보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 조기숙 이대 교수 
하지만 민주정부 10년의 업적을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면, 50%의 실패와 50%의 성공이 기다리게 된다. 패배하더라도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차기를 도모할 가능성이라도 남기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초기 25%의 지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두 후보가 취해야 할 전략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진보진영 후보는 참여정부가 얼마나 기득권의 핍박 속에서 일해 왔는지, 권력은 여전히 보수기득권 세력에게 있으며 진보는 여전히 소수자임을 명확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삼성비자금, BBK, 얼마나 많은 호재가 기다리고 있는데 진보진영 후보끼리 공격하고 흠집 내는데 몰두하는가.

진보진영의 후보단일화 효과를 단순 산수로 계산할 일은 아니다. 시너지 효과는 몇 배의 결과도 가져 올 수 있다. 하지만 원칙 없는 단일화, 비굴한 구애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패배하더라도 당당하게 전진할 때 지지도도 올라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