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참여정부의 흔적, 억지로 지워지는 것 아니다

순수한 남자 2008. 4. 21. 20:51
참여정부의 흔적, 억지로 지워지는 것 아니다
번호 81104  글쓴이 이기명 (kmlee)  조회 1519  누리 387 (387/0)  등록일 2008-4-21 11:24 대문 19 추천


참여정부의 흔적, 억지로 지워지는 것 아니다
 - 성공이든 실패든 평가는 국민과 역사의 몫이다
 


이기명 칼럼니스트 


개성 선죽동에는 선죽교가 있다. 평범한 돌다리인 선죽교가 유명한 이유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테러리스트 조영규에 의해 철퇴로 살해된 곳이기 때문이다.

▲ 개성 선죽교 전경

정몽주가 죽은 후 대나무가 솟아 선죽교라 했고 지워지지 않는 그의 혈흔은 지금도 충절의 상징으로 추앙된다.

이방원은 정몽주의 혈흔이 몹시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그의 충절이 빛날수록 자신의 테러는 비난의 대상이다. 그러나 정몽주는 없앨 수 있어도 국민의 마음을 죽일 수는 없다. 선죽교를 없애버릴 생각도 했겠지. 간단한 일이다. 없애면 혈흔도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이방원은 왕위에 오른 후 정몽주에게 시호를 내리고 충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왜 그랬을까. 어떤 계산이었을까. 이방원은 현명했다. 선죽교를 없애도 백성의 가슴속 혈흔은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정몽주의 혈흔을 지우기보다 그의 충절을 기리는 것이 훨씬 얻는 게 많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보존상태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이외에는 누구의 열람도 허용되지 않았다. 절대 권력자인 왕은 실록의 내용을 얼마나 알고 싶었을까. 왕실의 공과가 고스란히 기록된 실록을 왕이 볼 수 없도록 한 것은 절대 권력자가 사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예방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한 이방원의 [하여가]는 한마디로 적당히 살자는 유혹이다. 요즘 정치인과 딱 어울린다.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하여가’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들은 당선을 위해 [하여가]처럼 살기 때문이다.

요즘 뉴타운 '헛공약'으로 사기꾼 취급을 받고 있는 당선자들은 이 시를 정말 좋아할 것이다. 언제는 '헛공약'하지 않았더냐. 죽기 살기 선거판에서 거짓 공약 좀 했기로 뭘 그걸 따지며 그것으로 당선됐기로 어떻다는 것이냐. 먹는 놈이 장땡인 노름판이나 당선이 장땡인 선거판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적당히 살면 되지 골치 아프게 따지지 마라.

낯가죽 두껍고 뻔뻔한 인간들이 정치하기 좋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도토리 키재기인 정치판에서 이번 뉴타운으로 주목을 받는 정몽준이나 신지호나 오세훈도 억울할 것이다. '헛공약'하지 않은 후보 있으면 손들고 나와 보라고 큰소리칠 것이다. 자신의 거짓말은 제쳐놓고 뉴타운 공약을 선경지명이라고 한다든지 뉴타운 안 하면 직무유기라고 큰소리치는 정몽준은 참 대단한 인물이다.

용감하게 여기자를 성희롱하고 아니라고 딱 잡아떼다가 궁지로 몰리니 방송국에 찾아가 사과하는 배짱도 정몽준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이미 그는 2002년 대선에서 국민과 약속한 노무현 지지를 투표 하루 전날 파기한 용기있는 사나이다.

"남자는 배짱 여자는 절개"라는 약장수의 만담도 있지만 정치가 이 수준으로 타락하면 국민은 정치인들을 어떤 급수로 분류해야 할지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역사는 공정하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한다. 국민은 현명하다. 진실은 정몽주의 혈흔처럼 지워버릴 수가 없다.

요즘 뉴타운과 함께 정치적 초 관심사가 된 것이 혁신도시와 균형발전 비판이다. 감사원이라는 곳에서 정리되지도 않은 문건이 조중동에 흘러가 대서특필됐다. 기다렸다는 듯 정부는 백지론 뉘앙스의 논평을 했다. 이를 언론은 연일 도배질했다. 전국이 술렁인다. 반발이 거세다. 여론 떠보기였나. 국토해양부는 허겁지겁 아니라고 불을 끈다.

혁신이 무엇인가. 개혁하고 바꾸자는 것이다. 균형 발전은 무엇인가. 한 곳에 편중됨이 없이 골고루 발전하자는 것이다.

왜 강북에 출마한 입후보자들이 여야 가릴 것 없이 한 입처럼 뉴타운을 들먹였는가. 강남에 비해서 강북이 형편없이 낙후됐다는 것이 아닌가. 뉴타운을 만들어서 강남처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게 균형발전이 아니고 뭔가.

▲ 혁신도시 조감도

혁신도시를 보자. 지금의 지방 도시로는 발전 가망이 없다.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집중된 상태에서 개인 기업이 골 비었다고 지방으로 이전한단 말인가. 때문에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해 지방을 혁신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닌가. 오랜 시간을 두고 토론을 하고 법도 만들고 예산도 집행되고 토지도 보상금이 지불되었다.

혁신도시 백지화 소문으로 민심이 흉흉한 지방도시가 애초 혁신도시에 극렬하게 반대했다면 어떻게 혁신도시가 오늘에 이르렀겠는가. 혁신도시와 국토균형발전은 수도권만이 아닌 전국이 골고루 발전해 보자는 원대한 계획이다.

역사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듯이 국가의 발전도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 반대인가. 토론이라도 제대로 해 보았는가. 이게 즉흥적으로 해치울 일인가.

정권이 바뀌면서 국민은 혼란스럽다. 강북의 부동산이 요동친다. 남북관계가 안갯속이다. 교육자율화라는 이름으로 공교육이 무너진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출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언제든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한다. 한국의 합참의장이 선제공격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발언을 하고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을 들먹인다.

역시 국민은 혼란스럽다. 정책은 바뀔 수도 있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바꿔야 한다. 그러나 혁신도시나 균형 발전 같은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정책은 보완이 필요한 것이지 폐기의 대상은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는 근거가 없는가. 균형발전 사업이 지역이기주의인가. 혁신도시 정책이 국가발전을 막는가. 영남정권 호남 푸대접은 무엇인가. 균형발전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분명히 한나라당 정권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권임에는 틀림없다.

참여정부의 흔적은 무조건 지우려 한다는 것은 우려겠지만 오해의 소지는 분명히 있다. 왜냐면 대안도 없이 갈팡질팡하기 때문이다.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혁신도시 계획과 균형발전 정책은 말 한마디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몽주의 혈흔을 없앴으면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 보았을 이방원이 왜 선죽교의 혈흔을 지우지 않고 역사에 남도록 했을까. 정부나 국민이나 모두가 마음에 담아 둘 역사의 교훈이다.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