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브리핑

수십 년 묻혔던 진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순수한 남자 2008. 1. 9. 14:59
수십 년 묻혔던 진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번호 197934  글쓴이 국정브리핑   조회 707  누리 402 (402/0)  등록일 2008-1-9 14:11 대문 24 톡톡


수십 년 묻혔던 진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박미영 국정홍보비서관실 행정관 


2007년 11월 22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이해승 등 친일파 8명 소유의 토지 233필지(시가 410억 원 상당)를 국가에 귀속시켰다. 이완용 등 친일파 9명(시가 63억 원 상당), 민영휘 등 친일파 10명 땅(시가 257억 원 상당)에 대한 국가 귀속 결정에 이어 세 번째다. 식민의 역사가 시작된 지 100여 년, 해방 후 62년 만에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구체적인 단죄가 이뤄진 것이다.

2007년 11월13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전남 구례 봉성산 등 4개 지역에서 한국전쟁 전후 집단 학살된 민간인 유해 400여 구와 유품 1085점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민족의 최대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에서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처형당한 양민들의 유해가 57년 만에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국가차원의 조사가 이뤄진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정권이 바뀌고 수십 년 시간이 지나도록 규명되지 않고 누적되어왔던 수많은 사건의 진실들이 참여정부 들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진보당 조봉암 선생'의 사형이 이승만 정권에 의한 정치탄압 사건이라는 것이 밝혀졌고(07.9.27), 1961년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에 대한 처형도 부당한 법률적용과 불법구금에 의한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06.11.28) 1975년 '인혁당 재건위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에 대해서는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고,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도 637억 원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모두 국가에 의한 사법 살인의 희생자들이었다.

최근에는 1991년 당시 민주화 운동세력 전체의 도덕성을 뒤흔들었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국가 권력에 의한 부당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는 결정(07.11.13)이 있었다. 필적 재감정을 한 결과, 故김기설씨의 유서는 자필이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16년 만의 일이다.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는 화해와 통합을 이룰 수 없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이어져 온 얼룩진 과거사로 인해 국가 권위의 정당성이 크게 훼손되어왔다. 해방 이후 친일행위 청산의 실패, 좌우 이념 대립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벌어진 숱한 양민학살, 군부독재가 벌인 고문조작과 인권유린, 의문사 등 아직 진상조차 밝히지 못한 숱한 과거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이러한 인권유린과 불법행위는 대부분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국가가 스스로 진상을 밝히고 사과하고, 배상과 보상의 책임을 다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만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비로소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기득권층의 반발과 진실규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괄적인 과거사 정리를 추진해온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노력이 참여정부에서 처음 추진된 것은 아니다. 문민정부시절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법적 단죄는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된다는 전례를 남겼다. 과거사 정리가 국가적 수준에서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은 국민의 정부에서부터다. 국가인권위, 의문사진상규명위 등이 설립됐고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시작됐다.

그러나 참여정부 이전의 과거사 정리는 개별적인 사안 또는 사건별로 진행되어 그 한계를 나타냈다. 친일문제와 집단희생사건은 물론이고 인권침해사건도 상당부분이 해결되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이러한 한계를 뛰어 넘어 △일제 식민지배로 인한 부정적 요소의 청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진실규명 △권위주의 통치 시기 국가권력에 의한 피해 진실규명 등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과거사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포괄적 과거사 정리와 국가기관의 자기반성

이 같은 원칙에 따라 참여정부 과거사 정리는 크게 세 축으로 진행됐다.

첫째, 포괄적인 과거사 정리를 추진하기 위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을 제정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6년 11월 28일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시작으로 2007년 11월 현재까지 757건에 대해 진실규명결정을 내렸다.

둘째는 국회통과 당시부터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본격적으로 친일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점이다. 해방 후 62년 만에 처음으로 친일파 재산에 대한 국가귀속 결정이 내려진 것은 그 첫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과거사 문제를 발생시킨 국정원, 국방부, 경찰 등 권력기관의 자체적인 과거사 정리 작업이었다. 이는 과거 불법적으로 저지른 반인권 행위에 대한 자기반성을 통해 신뢰받는 국가기관으로 새로 태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민청학련·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김형욱 실종사건 △부일장학회 강제헌납·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등 7대 의혹사건에 대한 조사를 완료하고 지난 10월 24일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11월 12일까지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제 △삼청교육대 사건 △실미도 사건 △10.27법난 사건 등 8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청 과거사위도 이에 앞서 △서울대 깃발사건 △남민전 사건 △나주부대 사건 △불법선거개입 사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등 10개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비뚤어진 역사 이대로 덮자는 말인가

그러나 정통성을 가진 민주국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이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분열과 반목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뿌리내려야 한다"며 '포괄적 과거사 정리'와 '국회 과거사진상규명특위' 구성을 제안하자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거세게 비판했다. 

한나라당"서민들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한데 대통령은 '엉뚱한 일'에 매달려 있다"(04.8.16)고 했고, 조선일보"반대세력의 약점을 캐내 정치적으로 득을 보겠다는 불순한 의도로 과거사를 거론"(04.8.20)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시각은 과거사 정리가 '국력 및 혈세 낭비'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취미 삼아 과거를 또 한 번 뒤집겠다면 국민 세금 쓰지 말고 과거사 '뒤집기 동호회원'들끼리 모금을 해서 하라"(2007.3.15 조선)는 신문 사설까지 실렸다. 과거사 정리를 '엉뚱한 일' 또는 '취미활동'으로 여기는 이들의 비뚤어진 역사의식으로는 과거사 예산은 '혈세 낭비'일 뿐이었다.

먹고살기 바쁜데, 예산낭비, 정치적 의도 등 여러 이유를 둘러댔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과거사 진상규명 그 자체에 대한 반대였다. "대부분 50∼60년 전 벌어진 일들" "무슨 조사를 또 어떻게 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2007.3.15 조선).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과거사 정리였다. 역사의 진실을 기록한다는 언론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말이다. 역사는 그것이 자랑스러운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나가야 한다. 후세에 거짓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극우세력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언론은 국가의 사법 살인과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동안에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1974년 4월 26일자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 '민청학련 노농정권 수립기도/ 인혁당-조총련서 조종/폭력데모 4단계 조종' 등 여러 면을 할애해 "공산계열인 인혁당이 학생시위를 배후조종했다"는 당시 중앙정보부의 발표를 충실하게 보도하고 있다. 당시 엄혹한 언론통제 아래서 비록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할지언정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과거의 잘못된 기사를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회복하고 선진 미래 사회로 가는 길

"국가는 법에 의해 국민의 행동과 자유를 규제하고, 때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은 도덕의 최정점에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할 때 국가가 국민에게 규율을 강제하고 의무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억울한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고, 억압받은 사람의 신원(伸寃)을 푸는 것은 국가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자 국민 모두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2004.10.14 해외민주인사초청 다과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발언)

국가 권위의 정당성이 확보되려면 국가가 도덕적으로 정당해야 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한다. 국가 권위에 대한 도덕적 신뢰가 없으면 국가 권력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고 국민통합이나 효율적인 국정운영도 기대할 수 없다. 국가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를 침해한 행위에 대해 국가가 앞장서서 진실을 밝히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무엇보다 불행한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평가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자는 국민적 다짐이 있어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일은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으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진정한 화해와 사회통합을 이룰 수는 없다.

참여정부가 과거사 정리를 국가적 과제로 추진해온 또 하나의 이유는 올곧은 역사인식에서 올바른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사람들이 득세하고 그 사람들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냉소하는 역사가 계속된다면 우리 한국사회는 미래가 없다. 이런 체제에서는 경제발전도 선진화도 미래를 위한 장밋빛 구호도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3대가 망하고, 친일했던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리며 산다"는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